공자의 전성시대
-권주가-
-이해식-
18세기 유럽에서 성행한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춤음악(舞曲 dance music)으로 구성하는 여러 악장(多樂章), 자유로운 변주형식, 자유로운 악기편성 등으로 다양성과 실용성이 충만한 악곡이다. 유럽 귀족들은 이런 음악으로 그들의 관혼상제(冠婚喪祭 ceremonies of coming of age, marriage, funeral, and ancestral worship)를 충당했으며, 이를 위해서 여러 작곡가들이 작품을 썼다. 특히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이 분야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탈리아 말인 디베르티멘토에 들어있는 <diverti>는 영어로 <기분 전환, 또는 풀이의 뜻에서 재미나는(amusing)>이라는 <diverting>이다. 그래서 <희유곡>(嬉遊曲)으로 번역되며 사교와 오락에서 자주 연주된다. 유럽 귀족들의 사교와 오락이라면 곧 연회(banquet)이고 식사(dinner)일진데 이런 행사의 분위기(mood)를 무르익게 하는 음악이 바로 디베르티멘토라 하겠다.
아래 인용은 일찍이 동양에서 공자의 [논어] <미자>(微子)편 제9장에 기록된 식사음악(dinner music)인데 이때는 춘추전국시대이다. 당시 8명의 식사악단(dinner ensemble)을 거느리고 있던 노나라의 군주(君主) 소공(昭公)이 세도가 계손(季孫)을 토벌함에 실패하여(소공 275년, 517 BC) 제나라로 망명하면서 그의 악단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다.
第十八 微子篇 No.9
大師摯 適齊, 亞飯干 適楚, 三飯繚 適蔡, 四飯缺 適秦, 鼓方叔 入於河, 播鼗武 入於漢, 少師陽, 摯磬襄, 入於海.
태사(大師) 지(摯)는 제 나라로 갔다. 둘째(亞) 식사음악을 맡은 간(干)은 초나라로 갔다. 셋째 식사음악을 맡은 요(繚)는 체나라로 갔다. 넷째 식사음악을 맡은 결(缺)은 진나라로 갔다. 북재비(鼓手) 방숙(方叔)은 황하 이북 지방으로 갔다. 땡땡이북(鼗)을 흔드는 무(武)는 용수(溶手) 지역으로 갔다. 소사(少師) 양(陽)과 경(磬)을 치는 양(襄)은 바다 섬으로 갔다.
위 인용문에서 서열별로 이름이 밝혀진 태사는 대사악(大師樂), 즉 악사장(樂師長)으로서 오늘날의 악단장(concert master)이고, 소사는 태사를 보좌하는 inspector 또는 general manager라 할 것이다. 연주자 서열로는 두 번째(亞=次)인 아반과 3반ㆍ4반인데 이들 셋은 필경 관현악기 연주자인지 악기 명칭과 연주자 이름이 없다. 그 다음 셋은 북재비(drummer) 방숙(方叔), 도재비 무(武), 경재비 양(襄)이다. 우리나라 민속악에서는 연주자를 <재비>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피리 연주자는 피리재비(잽이)이다.
소공의 악단에서 타악기와 그 연주자 이름만 밝힘으로 보면 식사음악이 아마 절주적(節奏的)이었가 싶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는 <절주>라는 용어가 여섯 번 나온다. 음악이 고대로 거스를수록 타악기 중심으로 절주적이다. 타악은 인류음악의 원초적인 발생과 관련된다.
한편 <入於河>의 ‘河’를 황하(黃河)를 의미하는 ‘河內’로, <入於漢>의 ‘漢’을 ‘漢中’으로 번역한 전적들이 더러 있다.
<도>(鼗)는 북통을 세로 지른 손잡이막대를 좌우로 돌리면(播=搖) 양쪽 북에 연결된 땡땡이가 북면을 쳐서 소리나게 하는데 흔히 어린이의 장난감으로도 만들어진다. 도는 아악(雅樂=祭禮樂)에서 시작을 알리는 악작(樂作 attack)으로 연주되는데, 두 개의 도는 <노도>(路鼗 땡땡이 넷), 세 개의 도는 <뇌도>(雷鼗 땡땡이 여섯), 네 개의 도는 <영도>(靈鼗 땡땡이 여덟)이다.
도(鼗):
좌로부터 노도ㆍ뇌도ㆍ영도(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2008. 5. 9)
위 인용문은 노 나라가 어지러워지매 여러 악관(樂官=연주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예악(禮樂)의 ‘악’이 무너짐은 곧 ‘예’조차도 무너질 것임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이것은 공자의 전성시대가 아니고 그의 모국인 노나라가 쇠락하는 시대이다. 이 기사는 [논어]의 전후관계로 보아서 [논어]에 끼일 부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른바 삽입기사라 하겠다.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유능한 음악가가 여러 곳으로 흩어짐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독재를 피하여 독일의 많은 음악가들이, 공산주의 혁명이 휩쓴 러시아의 음악가들이 예술가의 천국인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가야국의 음악가 우륵은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눈치채고 가야금을 들고서 신라 진흥왕에게 망명하여 현재의 충주인 국원(國原)에 살면서 법지ㆍ계고ㆍ만덕이란 세 제자를 길렀다. 우륵의 제자들이 임금 앞에서 그들의 음악을 연주하니 임금이 무척 기뻐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그 음악은 멸망한 가야국의 것이니 취할 것이 못된다고 아뢰니 이에 임금은 그것은 가야왕이 음란해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어찌 음악이 죄가 되겠는가. 대체로 성인이 음악을 제정(制定)함은 인정에 연유하되 표절(撙節)케 하는 데 있거늘 나라가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짐은 음악과 연유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륵의 음악을 권장함으로써 후에 큰 음악(大樂)으로 발전되었다(...後于勒以其國將亂, 携樂器投新羅眞興王. …王受之, 安置國原, 及遺大奈麻法知․階古․大舍萬德傳其業, 王聞之大悅. 諫臣獻議, 加耶亡國之音, 不足取也. 王曰, 加耶王淫亂自滅, 樂何罪乎. 蓋聖人制樂, 緣人情以爲撙節, 國之理亂不由音調, 遂行之, 以爲大樂…).
앞에서 인용한 [논어] <미자편> 제9장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음악가들이 그들의 고용주를 떠나는(告別) 장면이다.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노이지트라(Neusiedlersee) 호반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공(公 Prince Esterhazy)의 호사스러운 성(城)에서 살았다.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악단의 악장인 그는 생활이 불편하다는 단원들의 호소를 듣고 연주자들이 보면대(pult=music stand) 위의 촛불을 끄고 한 사람씩 악기를 들고서 퇴장하여 쓸쓸하게 끝나는 작품을 구상하여 이를 연주하였다. 이 작품의 우의(寓意)를 알아챈 에스테르하지 공은 즉시 악단원들에게 휴가를 내주었다. 1772년의 이 일화는 그후 「고별」(告別 Abschied =Farewell)이라는 제명이 붙었다.
중국 노나라 소공과 유럽 오스트리아 에스테르하지 악단 일화는 역사적 시간 차이도 크거니와 연주자들의 환경에도 큰 차이를 보여준다.
[진연의궤](進宴儀軌)는 조선 시대 여러 왕조의 궁궐 잔치를 상세하게 기록한 전적이다. 이밖에 조선의 여러 풍속도에서 연주로 연회 분위기를 높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성악인 12가사에 들어있는 <권주가>(勸酒歌)는 글자 그대로 술(酒)을 권하는 노래이다. 아래에 그 초앞(첫 머리)을 소개한다.
-勸酒歌-
不老草로 술을 빚어
萬年盃에 가득부어
비나이다 南山壽를
藥山東臺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籌를 노며
無窮無盡 잡으시오
勸君終日酩酊醉(그대여! 권하노니 종일토록 취하라)하자
酒不到劉伶墳上土(술이 유영의 무덤에 이르지 않느니라)니
아니 醉코 무엇하리
춘향가 변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풍자적인(satire) 날카로운 <권주가>는 최고조에 달한 잔치 엔트로피(entropy)가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로 바뀌는 순간이다. 바로 아래 인용과 오디오이다(LP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춘향가], Disk 6-side B, 소리/조상현ㆍ북/김명환. 서울: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82).
金樽美酒는 千人血이요 玉盤佳肴萬姓膏를 燭淚落時民淚落(금으로 만든 술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를 뽑아 만들었고, 옥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들은 만 백성의 기름을 짜서 만들었으며, 촛농이 떨어질 때에 백성은 눈물을 흘리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가 드높다)
예(禮)와 정치에 음악을 결부시킨 공자의 음악관을 부정하는 사상으로써 [묵자](墨子)의 <비악편>(非樂篇)이 있다. 비악(非樂)이란 음악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음악이란 공연히 사람의 마음만 흔들어 놓을 뿐이지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LP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춘향가], 서울: 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82.
Stanly Sadie(EDITED),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5, NEW YORK, NY, 1980.
[孔子], 서울: 汎潮社, 大思想家 生涯와 思想 2, 1983.
金富軾- 李丙燾 譯註, [三國史記](下), 서울: 乙酉文化社, 1984(3版)
金學圭 역, [墨子], 서울: 三省出版社, 三省版世界思想全集, 1979(15版).
[名曲解說全集] 1ㆍ4, 서울: 世光出版社, 1982.
李昌培 編著, [韓國歌唱大系], 서울: 弘人文化社, 1976.
朱熹ㆍ韓相甲 譯, [論語ㆍ中庸], 서울: 三省出版社, 三省版世界思想全集 1, 1985(19版).
車柱環 譯, [論語], 서울: 乙酉文化社 乙酉文庫 22, 1983(21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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