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가( 短 歌) 23가지 모음 - .
1. 만고강산(萬古江山) 2.진국명산(鎭國名山).
3. 죽장망혜(竹杖芒鞋). 4. 불수빈 (不 須 嚬).
5. 운담풍경(雲淡風輕) 6. 홍문연가(鴻門宴歌)
7. 장부한(丈 夫 恨). 8. 역대가(歷 代 歌)
5. 운담풍경(雲淡風輕) 6. 홍문연가(鴻門宴歌)
7. 장부한(丈 夫 恨). 8. 역대가(歷 代 歌)
9. 조어환주(釣魚換酒(1)) 10. 탐경가(探 景 歌)
11.소상팔경(瀟湘八景) 12. 月 齡 歌(달거리)
13. 광대가(廣 大 歌(1) ) 14. 짝타령(짝 打 令)
15. 몽유가(夢遊歌) 16. 호남가(湖南歌(1))
17. 편시춘(片時春) 18. 초한가(楚漢歌)
19. 강상풍월(江上風月) 20.풍월강산(風月江山)
21. 역려가(逆旅歌) 22. 사시풍경가(四時風景歌)
23. 백수한(白首恨)
1. 만고강산(萬古江山)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三神山)이(1) 어디메뇨, 일봉래(一蓬萊) 이방장(二方丈)과 삼영주(三영洲) 이 아니냐 죽장(竹杖) 짚고 풍월(風月) 실어 봉래산(蓬萊山)을 구경갈제 경포(鏡浦)(2) 동령(東嶺)의 명월(明月) 을 구경하고 청간정(淸澗亭)(3) 낙산사(洛山寺)와(4) 총석정(叢石亭)을(5) 구경하고 단발령(斷髮令)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서니 천봉만학(千峰萬壑) 부용(芙蓉)들은(6) 하날 위에 솟아 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한 물은 은하수(銀河水)를 기울인 듯 선경(仙境)일시가 분명하구나. 때마침 모춘(暮春) 이라 붉은 꽃 푸른 잎과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춘색(春光春色)을 자랑한다.
봉래산 좋은 경치 지척에 던져 두고 못 본지가 몇날인가. 다행히 오늘날에 만고강산을 유람하여 이곳을 당도하니 옛일이 새로와라.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桑田碧海)(7) 웃들마소. 엽진화락(葉盡花落)(8) 없을손가. 서산에 걸린 해는 양류사(楊柳絲)로 잡아매고 동령에 걸린 달은 계수(桂樹)야 머물러라. 한없이 놀고가자.
【解 說】
만고강산을 유람하려고 나섰다가 삼신(三神)의 하나인 봉래산에 이르러 그 절승(絶勝)한 근경(近景)을 다시금 그려 보며 찬탄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그런데 보통 단가(短歌)하면, 으레 중국의 지명(地名)이나 인물 등이 나오는데, 이 노래만은 우리나라의 지명과 명승(名勝)을 엮었다.
즉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에 드는 강릉(江陵)의 경포대(鏡浦臺), 양양(襄陽)의 낙산사(洛山寺), 간성(奸城)의 청간정(淸澗亭) 등을 엮은,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노래이다. 장단은 12박인 중몰이다.
註 (1) 三神山 一蓬萊·二方丈·三層洲를 三神山이라고 하는데, 海中에 있는 상상의 仙山. 우리나라에서는 金剛山· 智異山·漢拏山등에 蓬萊·方丈·瀛洲라는 별명을 붙여 삼신산이라 일컬음. <史記> 「蓬萊 方丈 여洲 比三神 山者 諸仙人及 不死藥 在焉而 黃金 白銀 爲宮闕」
(2) 鏡浦 江原道 江陵市에 있는 경포대. 關東八景의 하나.
(3) 淸澗亭 江原道 杆城에 있는 亭子. 關東八景의 하나.
(4) 洛山寺 襄陽面 十里에 있는 절 이름. 關東八景의 하나
(5) 叢石亭 通川郡 庫底邑에 있는 海中의 亭子로 關東八景의 하나.
(6) 芙蓉 芙蓉은 연꽃의 一名. 산봉우리의 모양이 연꽃 봉우리 같다는 비유
(7) 桑田碧海 桑田이 변하여 碧海가 된다고 하는 뜻. 즉 세상일이 변화 무쌍함을 비유한말. <神仙傳>「麻姑云 接待以來 己見東海 三爲桑田 向到蓬萊 水淸淺干往者會時略半也 豈將 復還爲陵陸乎」
(8) 葉盡花落 꽃이 지고 잎이 다한다는 뜻. 즉 樂極生悲의 비유.
2. 진국명산(鎭國名山)
진국명산(1)만장뵹(鎭國名山萬丈峰)이요 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이라(2). 거벽(巨壁)은 흘립(屹立)하여 북주(北主)는 삼각(三角)이요, 기암(奇巖)은 두기(두起) 남안(南案) 잠두(蠶頭)로다(3). 좌룡낙산(左龍駱山) 우호인왕(右虎仁旺) 서색(瑞色)은 반공(蟠空) 응상궐(凝象闕)이요(4) 숙기(淑氣)는(5) 종영(種英)(6) 출인걸(出人傑)이라 미재(美哉)라.
아동방(我東方) 산하지고(山河之固)여(7) 성대태평(聖代太平) 의관문물(衣冠文物) 만만세지금탕(萬萬世之金湯)이라(8). 연풍(年豊)코 국태민안(國泰民安)커늘 구추황국(九秋黃菊) 단풍시절(丹楓時節)에 인유이봉무(麟遊而鳳舞)커늘, 면악등림(緬岳登臨)(9) 취포 반환(醉飽盤桓)하오면서(10) 감격군은(感激君恩) 하오리라.
남산송백(南山松柏)은 울울창창(鬱鬱蒼蒼) 한강 유수(漢江流水) 호호양양(浩浩洋洋) 우리의 임은 차산수류(此山水流) 같이 산붕수갈(山崩水渴)토록 천천만만세(千千萬萬歲)를 태평(泰平)으로만 누리소서. 우리도 일민(逸民)이되어 강구연월(姜衢烟月)에(11) 격양가(擊壤歌)를(12) 부르리라. 연광(年光)이 반이 넘거들랑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세상사람에게 모두 전하고 가다가 아무데나 산 좋고 물 좋은 데 명당(明堂)을 가려서 오간팔작(五間八作)으로 황학루(黃鶴樓) 만큼(13) 집을 짖고 유정(有情)한 친구 벗님 좌우로 늘어앉아 서로 의논을 하올적에, 일모도궁(日暮途窮)하면(14) 납촉(蠟燭)을 돋워 켜고 남녀 풍류랑(風流郞)이 모두 다 늘어앉아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자.
【解 說】
이 <진국명산(鎭國名山)>은 가곡 <편수대엽(編數大葉)> 에 있는 것을 따다가 만든 노래로서,서울 경복궁(景福宮)의 대궐터를 찬양하고 산세(山勢)와 지령(地靈)이 좋아서 인걸(人傑)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일민(逸民)이 되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것도 인군(仁君)의 은혜라고 했다. 역시 군조시대에 지어진 노래임을 가히 짐작할수 있다.
이 노래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한문(漢文) 문자가 너무 어려워서 글 모르는 사람이 부를 때에는 사설(辭說)이 틀기기 쉽다. 그런데 단가(短歌)는 중국 고대 인물들이나 경치를 쳐들어 나열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비하여 이것은 황학루(黃鶴樓)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이것도 역시 중몰이 장단이다.
註
(1) 鎭國名山 國都의 主山을 말함.
(2) 靑天削出金芙蓉 蒼空에 깎아 세운 듯한 산봉우리를 金芙蓉에 비유한말. 李白 <盧山時> 「盧山東南五老峰 靑天削出金芙蓉」
(3) 南安蠶頭 蠶頭는 서울 南山이 누에 머리같이생겼다는 말. 즉 남쪽으로 南山을 대한다는 뜻.
(4) 凝象闕 궁중의 대문. 혹은 象魏라고도 함. 象은 象法이니 즉 법률이며, 魏는 富이니 옛날 법률을 城門에 높이 게시함을 말함. <周禮> 「懸 治象之法干象魏」 <許運 時> 「雲凝象闕隱」
(5) 淑氣 靈氣와 같음.
(6) 鍾英 영특한 氣運이 뭉쳤다는 말.
(7) 山河之固 山의 험준함과 河水의 浩활함이 나라의 견고한 방어가 된다는 뜻. <通鑑> 「差哉山河之固 比 魏國之寶也」
(8) 金湯 金城湯池의 준말. 쇠 같은 城과 끓인 물과 같은 못. 즉 방어가 견고함을 말함. <韓非子> 「不謹蕭牆 之患而 固金城 於遠境」 <漢書>「有 石城十도 湯池百步」
(9) 승岳 먼 산줄기를 말함
(10) 盤桓 흔들흔들 머뭇머뭇. 즉 그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뜻. 陶淵明 <歸去來辭> 「撫孤松而 盤桓」
(11) 康구烟月 康壤는 四通五達한 큰 길거리이너데 태평한 세월을 말하는 것으로, 태평한 시대의 평화로운 풍경.
(12) 擊壤歌 擊壤은 上古때 민간에서 행하던 한가지. 擊壤歌는 풍년이 들어서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를 이르는말. 중국 唐堯때 늙은 농부가 태령한 세월을 즐거워하며 땅을 치면서 부른 노래하고 함. 그 내용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임.
(13) 黃鶴樓 중국 湖北省 武昌縣에 있는 누각. 崔灝 時 「昔人己乘黃鶴去 比地空餘鶴鶴樓」
(14) 日暮途窮 날은 저묵고 갈 길은 멀고 아득함.
3. 죽장망혜(竹杖芒鞋)
죽장망혜(1) 단표자(竹杖芒鞋單瓢子)로 천리 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다마는 여산(廬山)이(2) 여기로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은 옛말삼아 들었더니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은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로다. 그물에 유두(流頭)하여 진금(塵襟)씻은 후로 석경(石經)의 좁은 길로 인도한 곳 내려가니 저익(沮溺)은(3) 밭을 갈고 사호 선생(四皓先生)(4) 바둑을 둔다. 기산(箕山)을 넘어들어 영수(潁水)로(5) 내려가니 허유(許由)는(6) 어찌하여 팔걷고 귀를 씻고, 소부(巢父)는(7) 무삼일로 소 고삐를 거사렸노. 창랑가(滄浪歌) 반기 듣고 소리 좇아 내려가니 엄릉탄(嚴陵灘)(9) 여울물에 고기 낚는 어옹(漁翁)들은 양(羊)의 갖옷을 떨뜨리고 벗을 줄을 모르는 구나.
오호라 세인기군평(世人棄君平) 미재(美哉)라. 군평역기세(君平赤棄世)라(10) 황산곡(黃山谷)(11) 돌아드니 죽림칠현(竹林七賢)이(12) 모였구나. 영척(녕戚)은(13) 소를 타고 맹호연(孟浩然)(14) 나귀 타고 여동빈(呂洞賓)은(15) 사슴타고 두목지(杜牧之)를(16) 보이랴고 백낙천변(白樂天[川]邊)(17) 내려가니 장건(張騫)의(18) 승사(乘사)로다(19).
맹동야(孟東野)(20) 넓은 들에 와룡강변(臥龍崗邊)(21) 내려가니 과연(果然) 선생(先生) 계시는데 학창의(鶴창衣)(22) 흑대(黑帶) 띠고 팔진도(八陣圖)(23) 축지법(縮地法)(24) 흉장만갑(胸藏萬甲)하여(25) 두고 초당에 앉아 조을며 대몽시(大夢詩)만(26) 읊는구나. 물외협경(物外狹逕) 다 버리고 탄탄대로(坦坦大路) 다시 찾아 문수(汶水)에 배를 타고 이천(伊川)으로(27) 흘러저어 명도(明道)에게(28) 길을 염계(염溪)로(29) 내려가서 회암(晦庵)에(30) 들어가니 성리대전(性理大全)(31) 가례책(家禮冊)을(32) 좌우에 벌여 놓고 사서삼경(四書三經)(33) 예기(禮記)(34) 춘추(春秋)(35) 집주(集注)를(36) 내계시니 호걸지풍(豪傑之風)이요 성현지학(聖賢之學)이로다.
고래천지기천년(古來天地幾千年)이요 금성옥신(金聲玉振)(37) 여기로다. 강산풍경(江山風景) 매양(每樣)보니 풍월(風月)이나 하여보자. 음영완보석양천(吟영緩步夕陽天)에 촌려(村廬)로 돌아오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명월(明月)은 만정(滿庭)이라 강산풍경 이러하니 금지할 이 뉘 있으리. 어화 벗님네야, 빈천(貧賤)을 한(恨)치 말고 자락(自樂)하며 지내 보세.
【解 說】
이 <죽장망혜>는 흔히 많이 불리는 단가(短歌)이다. 세상 영욕(榮辱) 다 버리고 간단한 몸 단장으로 강산풍경(江山風景)을 찾아 탐승(探勝)하는 것을 엮었다. 중국 고대의 요순(堯舜) 시절에서부터 거슬러 내려와 면면 수천년에 달하는 인물들은 나열했는데, 제왕(帝王)·은사(隱士)·호걸(豪傑)·학자·문사(文士)·명장(名將) 들을 다채롭게 엮어 놓았다.
註 (1) 竹杖芒鞋 대지팡이와 짚신.
(2) 盧山 중국 江西省 九江府에 있는 山이름.
(3) 沮溺 長沮와 桀溺의 두 사람. 春秋時代 사람들로 孔子가 亂世에 벼슬을 산다고 비난하고 통탄하면서 밭이나 갈고 벼슬을 아니 한 隱者들.
(4) 四皓 秦나라때 隱士. 漢高祖의 부인 呂后가 제일 공이 많은 韓信과 英布·彭越등에게 叛한다고 죄를 뒤집어씌워 죽였고 漢高祖의 後宮 夫人과 趙王 如意를 무참히 죽이는 등 자기 세력을 늘리기 위하여 혹독한 짖을 많이 하므로 이를 피해 商山에 隱居한 네 노인. 즉 東園公. 夏黃公. 綺里秀. 角里先生 네 老人이 南山에서 바둑이나 무고 閑日月 했는데, 鬚眉(수염과 눈썹)가 白色이므로 호라함.
(5) 箕山 潁水 箕山과 항水는 河南省 登 縣에 있는 山과 강의 이름. 堯代에 巢父와 許由가 名利를 피하여 隱居 한 곳.
(6) 許由 堯代의 高士. 堯가 천하를 禪讓하려 할 때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음. <高士傳> 「許由隱箕山 以手捧水飮之 人遺一 瓢 得比以取飮 飮訖於樹上 風吹歷歷作聲 尙以爲煩遂去之」
(7) 巢父 堯代의 高士. 堯가 천하를 禪讓하려 할 때 이를 받지 않았음. <高士傳> 「巢父者 堯時 隱人也 山居不管世利 而樹爲巢 以寢其上 時人曰 巢父」
(8) 滄浪歌 漁夫가 부르는 노래 <楚辭漁父辭>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濁吾足」
(9) 嚴陵灘 嚴子陵의 고기 낚던 여울 嚴陵瀨. 江省 桐盧縣 남쪽에 있음. 桐江七里灘이라고도 함. 嚴子陵의 이름은 光, 子陵은 字. 東漢餘조人. 幼時에 漢 光武皇帝와 同遊하고 光武 즉위후에 變姓名하여 은신하므로 帝가 物色으로 색출하여 諫議大夫를 除援하였으나 받지 않고 富春山에서 耕田하면서 은거하였음.
(10) 君平 姓이 嚴이요, 이름은 遵, 君平은 字. 漢人으로 成都市에서 占筮를 잘해서 예언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君平이 또한 세상을 버리고 점을 치다가 90이 넘도록 살았다함. 점을 쳐서 1백 냥을 벌면 족하다 하며 가게문을 닫고, 그 돈이 다 떨어지며 다시 문을 열고 점을 쳤다함. <列仙傳> 「君平 爲十府仙官」 <福州志> 「有道人嘗見老수 同室 歲餘告曰 君乃漢嚴君平 取一書援之而去」
(11) 黃山谷 이름은 庭堅, 字는 魯直, 號는 부翁 또는 山谷이라고도 함. 宋나라 哲宗 때 사람으로 詩에 특장이 있어 세상 사람이 蘇東坡의 다음 간다고 해서 蘇黃이라 하고 또한 草書와 해法에 유명함. 벼슬은 校書郞舍人을 歷任하고 知太平州를 하다가 宣 州로 귀양가서 죽었음 . 여기서도 사람의 이름을 地名에 비유해서 혼용하였음.
(12) 竹林七賢 晋이 阮籍. 혜康, 山濤, 向秀,劉伶,王戎,阮咸 일곱 사람이 막역한 親友로서 항상 죽림에 놀았으므로 세상사람들 이 竹林七賢이라 한다. 그런데 이 일곱 사람은 蜀漢의 遺臣으로 晋나라 司馬炎을 섬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竹林에서 놀았으나 뒤에 무서운 박해와 살해를 당하고 오직 늘 취해 있던 劉伶만이 제 명에 죽었다.
(13) 녕戚 周 나라 春秋때 齊 桓公의 賢臣. 徵賤時에 소를 타고 뿔을 두드리며 <白石歌>를 부르니 桓公이 듣고 隱者인 줄 알고 데려다가 大夫를 삼았음.
(14) 孟浩然 唐 襄陽人. 젊을 때부터 節義에 대하여 꿋꿋한 志기가 있어 오랫동안 鹿門山에 은거하여 있다가 나이 40이넘은후에 처음으로 京師에 와서 大學館에서 詩를 지으니 滿座가 탄복하였다 함. 著書로는 <詩集> 4卷이 있음.
(15) 呂洞賓 唐나라 사람으로 本名은 암. 終南山에서 修道한 八仙의 하나.
(16) 杜牧之 姓은 杜, 이름은 牧, 字는 牧之. 벼슬이 中書舍人에 이름. 문장이 뛰어나고 얼굴이 冠玉같고 風采가 豪邁하므로 世人이 小杜라 일컬으며, 杜甫의 老杜와 비교하였음. 저서로는 <樊川集>이 있음.
(17) 白樂天(川)邊 唐代의 대표적인 詩人. 772∼846. 姓은 白, 이름은 居易, 樂天은 字. 여기서도 白樂天을 川邊으로 고쳐 노래 부른 것이다. 이는 李白이 죽은지 10년, 杜甫가 간지 2년, 韓愈(退之)가 다섯 살 때인 772년에 洛陽동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음. 號를 香山居士라 하고 비교적 순탄한 관리 생활을 하고, 刑部尙書로 은퇴함. 대중적 작품. <長恨歌> <琵琶行> 등은 文士와 서민들간에 널리 愛誦되었음. 平易·流麗한 시풍임. 詩文集 <白氏文集>이 있음.
(18) 張騫 중국 전한때의 외교가. 西方 旅行家. 字는 子文. 漢中郡 成固사람. 武帝 때에 匈奴를 制하기 위하여 西方의 大月氏와의 同盟을 촉진하고자 西域으로 가다가 도중 匈奴에게 잡히어 1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나서, 大원·康居를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년만에 돌아옴. 印度通路를 개척하고 東西의 교통과 문화 교류의 길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함.
(19) 乘 떼를 탔단는 말. 즉 張騫의 八月차라고 하는 仙책를 말함.
(20) 孟東野 唐 武原人. 이름은 郊, 자는 東野. 貞元中에 進士하고 벼슬은 漂陽尉이에 이르고 唐의 유명한 詩人으로 韓愈와 相善하였음.
(21) 臥龍崗 襄陽縣 南陽에 있는 山 이름. 諸葛亮고이 微時에 은거하던곳.
(22) 鶴창衣 鶴의 털로 만든 털옷. 빛이 희고 소배가 낣고 변두리를 黑色으로 꾸민 웃옷.
(23) 八陣圖 행군하는 陣法. 太古風后의 八陣法은 「天·地·風·雲·龍·虎·鳥·蛇」 諸葛亮 八陣法의 陣形은「洞當 中黃 龍騰 鳥翔 連衡 미奇 虎翼 折추」 <환宇記> 「기州奉節縣 本漢 魚腹縣 八陣圖 左縣西南七里 聚細石爲之 各高五尺 廣十圍 凡六十四
聚 又陜西汚縣 定軍山下 赤有 八陣圖遺跡」
聚 又陜西汚縣 定軍山下 赤有 八陣圖遺跡」
(24) 縮地法 術家에서 땅을 주름잡는법. 즉 먼 것을 가까이 하는법. <神仙傳> 「費長房 有神術 能縮地脈 千里在目前원然 放之 復舒如舊」
(25) 胸藏萬甲 가슴 속에 만 가지 둔갑술을 지니고 있다는 말. 즉 遁甲藏身과 같다. 둔갑은 術數의 일종. 易緯乾盤에 起하여 太乙을 지나 九宮法을 행하는 것이며, 이것이 南北朝때에 성행하였다. 이 術이 처음 黃帝風后와 九天玄女에서 나왔다고함. <後漢書> 方術傳註 「推六甲之陰而隱遁」 藏身은 術로써 몸을 감추는 것.
(26) 大夢詩 諸葛亮이 지은 詩.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27) 伊川 姓은 程, 이름은 이, 字는 正叔, 號는 윤川. 明道先生의 동생. 道學君子이므로 형제를 兩程이라 이름. 이것도 윤川을 강물로 혼용하였음.
(28) 明道 姓은 程, 이름은 顥, 字는 伯淳, 號는 明道. 河南人. 宋 神宗 때 大賢人으로 벼슬이 宗正寺丞에 이르렀고 <定性書>를
지어 우주의 본성과 사람의 性이 꼭 같은 仁임을 주장하였음. 文廟配享됨.
지어 우주의 본성과 사람의 性이 꼭 같은 仁임을 주장하였음. 文廟配享됨.
(29) 염溪 宋 道州人. 性은 周, 이름은 敦이, 茂叔은 字, 號는 염溪. 盧山 蓮花峰下에 살면서 <太極圖說>과 <通書>를 지었으며, 性理學의 初祖로서 二程(程明道, 程伊川)이 모두 그의 제자이며 <愛蓮說>을 지었음.
(30) 晦庵 姓은 朱, 이름은 喜, 자는 元晦, 號는 晦庵. 南宋 大儒로서 그 학문은 居敬窮理를 위주로 하였고 <四書集註> 외에 수십종의 저서가 있음.
(31) 性理大全 周염溪通書 二程全書 초康節皇極經世 張橫渠正蒙 朱子啓蒙篇을 聚合한 것이며 明의 胡廣등이 奉勅하여 宋儒의 一百二十家를 뽑아서 十三目으로 나누었고 理氣說의 祖宗임.
(32) 家禮 朱文公이 편찬한 冠·婚·喪·祭 四種의 禮書.
(33) 四書三經 四書는 <大學> <中庸> <論語> <孟子> 三經은 <詩傳> <書傳> <周易> 을 말함.
(34) 禮記 漢儒 戴德이 214편의 번거롭고 중복된 것을 간추려 85편으로 합해 기록했으며 이것을 <大戴記>라 하고 그 아우 聖이 또한 46편으로 줄여 그것을 <小戴記>라 하였음. 漢末에 馬融이 다시 19편으로 줄여 한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전하여 오는 <禮記>이다.
(35) 春秋 孔子가 修正筆削한 魯史. 周平王부터 威烈王에 이르기 까지 242년간의 일을 기술한 역사책
(36) 集註 古書의 문귀를 풀이하여 後人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 것.
(37) 金聲玉振 음률. 처음에 金聲을 내고 마지막에 玉聲으로 그치는 것을 말함. 즉 始終이란 뜻. <論語> 「金聲始條理也 玉振終條理也」
4. 불수빈(不 須 嚬)
어화 청춘 소년니머네 장부가(丈夫歌)를 들어보소. 국내 청년 모아다가 교육계에 넣어 두고 각종 학문 교수(敎授)하여 인재 양성하는 것도 장부의 사업이요 천리준총(千里駿총)바삐 몰아 칠척 장검손에 들고 백만 대병 지휘하여 통일 천하하는 것도 장부의 사업이라.
장부가로 노래하니 뜻이 깊고 애가 타서 가슴이 답답목마르다. 뒷동산 지는 꽃은 명년삼월 다시 피되 우리 인생 늙어지면 다시 청춘 어려워라.
개벽(開闢)후에 내린 사적(史蹟)역력히 들어보소.
요순(堯舜)(1) 우탕(禹湯)(2) 문무(文武)(3) 주공(周公)(4) 공맹안증정주자(孔孟顔曾程朱子)는(5) 도덕이 관천(貫天)하사 만고 성현(萬古聖賢)일렀건만 미미한 인생들이 저 어이 알아보리. 강태공(姜太公)과(6) 황석공(黃石公)과(7) 사마양저(司馬穰菹)(8) 손빈(孫빈)(9) 오기(吳起)(10)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 는 만고 명장일렀건만 한번 죽음 못 면했네.
멱라수(멱羅水)(11) 맑은 물은 굴삼려(屈三閭)의(12) 충혼이요 상강수(湘江水) 성긴 비는 오자서(伍子胥)의(14) 정령(精靈)이라.
채미(採薇)하던 백이 숙제(伯夷叔薺)(15) 천추명절(千秋名節)일렀건만 수양산(首陽山)에 아사(餓死)하고,말 잘하는 소진(蘇秦)(16) 장의(張儀)(17) 열국제왕(列國諸王) 다 달래도 염라왕(閻羅王)은(18) 못 달래어 춘풍세우두견성(春風細雨杜鵑聲)에 슬픈 혼백되었도다.
맹상군(孟嘗君)의 계명구폐(鷄鳴狗吠)(19), 신릉군(信陵君)의 절부구조(竊符救趙)(20) 만고호걸일렀건만 한산세우미초중(漢山細雨微草中)에 일부토(一부土)만 가련하다.
통일천하 진시황(秦始皇)도(21) 아방궁(阿房宮)을(22) 높이 짖고 만리장성(萬里長城)(23) 쌓은후에 육국 제후(六國諸侯) 조공받고 삼천궁녀 시위할 제 동남동녀(童男童女)(24) 오백인을 삼신산(三神山)(25)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고 보낸후에 소식조차 돈절(頓絶)하고, 사구평대(砂丘平臺)(26) 저문날에 여산(驪山)(27) 황초(荒草)뿐이로다.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도(28)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추不逝)라(29) 우미인(虞美人)의(30) 손목잡고 눈물뿌려 이별할 제 오강(烏江)(31) 풍랑(風浪) 중에 칠십삼전(七十三戰) 가소롭다.
동남제풍(東南祭風)(32) 목우유마(木牛流馬)(33)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전무후무(前無後無) 제갈공명(諸葛孔明)(34) 난세간웅(亂世奸雄) 위왕(魏王) 조조(曹操)(35) 모연추초(暮烟秋草) 처량하고 사마천(司馬遷)과(36) 한퇴지(韓退之)(37)와 이태백(李太白)과(38) 두목지(杜牧之)는(39) 시부중(詩賦中)에 문장(文章)이요 월서시(越西施)와(40) 우미인과 왕소군(王昭君)과(41) 양귀비(楊貴妃)는 만고 절색일렀건만 황량고총(荒凉孤塚) 되어있고 팔백장수(八百長壽) 팽조수(彭組壽)며(42)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도(43) 차일시(此一時)며 피일시라. 안기생(安期生)(44) 적송자(赤松子)는(45) 동해상의 신선이라 일렀건만 말만 듣고 못보았네. 아서라 풍백(風伯)에(46) 붙인 몸이 아니 놀고 무엇하리.
【解 說】
이 <불수빈(不須嚬)> 은 <장부가(丈夫歌)>라고도 한다. 불수빈이라 함은 웃지말라는 뜻으로, 젊었다 자랑말고 백발을 비웃지말라는 것이다. 종래에는 「여보아라 소년들아, 이내 말을 들어 보소.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그 아니 가련한가」 라고 하던 것을 오위장(五衛將) 신재효(申在孝)가 첫머리를 고쳤다고, 남도 명창 박동진(朴東鎭) 이 말했다.
중국의 역대 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요순우탕(堯舜우湯)으로부터 시작하여 성현(聖賢)·군자(君子)·문장·재사(才士)·명장·충신·열사·협객·호걸·미희(美姬)·미인 들을 총망라한 멋진 노래인데, 결국 인생 무상을 그린 단가이다.
註 (1) 堯舜 堯는 옛 帝王 陶唐氏. 姓은 伊祈, 이름은 放勛. 帝곡의 아들. <十八史略> 「其仁如天 其和如如神 就之如日 望之如雲」舜은 옛 帝王 有虞氏. 姓은 姚, 이름은 重華. 帝堯의 王位를 이어받은 聖君임. 그의 부친 고수가 後妻에 반하여 小子 象만을 사랑하고 舜을 늘 죽이려고 하였으나 舜은 효성을 다하여 아들된 도리를 닦아 萬古大孝라 일러온다. 舜은 五鉉琴을 彈하여 南風詩를 읊었으니 그 노래에 이르되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厚也)吾民材兮」이라 하였음.
(2) 禹湯 禹는 옛 帝王. 堯舜時代에 대규모의 治水工事에 성공하고 舜임금으로부터 임금자리를 물려받아 夏王朝의 始祖가 되었다 함. 治水說話·地德象徵說話등의 主人公임.
湯은 姓은 子, 이름은 履 또는 天乙. 堯臣 契의 後孫임. 夏王 桀이 無道하므로 정벌하여 南巢로 추방하니 諸侯가 湯을 받들어 天子로 삼았고, 殷의 創業主가 되었으며, 武功을 이루었다 하여 成湯이라 일컬음.
(3) 文武 文은 文王을 말함. 姓은 姬, 이름은 昌. 稷의 후손. 聖德으로 天下諸侯를 감화시켜 周나라 創業과 기초를 이루었음.
武는 武王을 말함. 姓은 희, 이름은 發, 周文王의 아들. 堯臣의 稷의 후손. 殷王 紂가 포학하므로 정벌하여 牧野에서 大破하니 대는 자살하였다. 武王은 周의 創業主가 되었다.
(4) 周公 이름은 旦. 周文王의 子, 武王의 弟, 成王의 叔父. 武王을 도와 죽을 멸하고 武王이 崩하였을 때 成王이 年幼하여 周公이 攝政하여 武庚 殺管叔 放蔡叔하고 制度와 禮樂을 정하여 天下를 다스렀다. 諡는 元 또는 文이라함. (5) 孔孟曾程朱子 孔은 孔子를 말함. 존칭해서 孔夫子라고 한다. 道德과 文章에 정통한 大聖人 이고 儒敎의 祖宗임 春秋때 魯國人. 이름은 丘, 字는 仲尼. 처음 魯에서 벼슬이 司寇에 이르렀으며, 그 후 사방을 周遊하다가 魯에 돌아와 詩.書.禮.樂.易.春秋의 六經을 닦았으며 弟子가 3천명이고, 그중 六藝에 능통한 자가 72명임. 周敬王 41년에 73세로 逝함. 唐에서 文宣王을 追封하고 元에서 大成至聖文宣王으로 追尊하였음.
孟은 孟子를 말함. 중국 戰國時代사람. 이름은 軻, 字는 子輿. 子思의 門下에서 배웠고 뒤에 諸國을 歷遊하여 王道와 覇道의 優劣 義와 利의 善惡을 역설였으나 여의치 못하고 門人 萬章등과 孔子의 道를 전하고 <孟子> 7篇을 냄.
顔은 顔자, 즉 顔淵을 말함. 이름은 回, 字는 子淵. 孔子의 門人으로 德行에 탁월하여 亞聖이라 칭함.
曾은 曾子를 말함. 이름은 參, 字는 子연. 孔子의 門人으로 그 德行의 宗統을 전하였고 <大學>과 <孝經>을 지음.
程은 程明道를 말함. 이름은 顥, 字는 伯淳, 號는 明道. 河南人. 宋 神宗 때의 大賢人으로 벼슬이 宗正寺丞에 이르렀고, <定性書>를 지어 宇宙의 本性과 사람의 性이 꼭 같은 仁임을 주장하였음.
朱는 朱子를 가리킴. 이름은 喜, 字는 元晦, 號는 晦庵. 南宋 大儒로서 그 학문은 居敬窮理를 위주로 하였고, <四書集註> 이외에 많은 저서가 있음.
(6) 姜太公 姓은 姜, 字는 子牙, 이름은 尙. 周文王때 賢臣. 渭水 磻溪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周文王이 보고 그를 스승으로 삼고 先君 太公이 바라고 있던 人物이라 하여 太公望이라 불렀음. 그 뒤 武王을 도와서 紂를 칠 때 伯夷. 叔齊가 말을 붙들고 諫하매 좌우에서 죽이려 하므로 太公이 「義士也」라 하고 그냥 돌려보내게 하였음.
(7) 黃石公 秦나라 때의 隱君子. 비椿上 (楚人以橋爲비)에서 素書를 張良에게 주어 말하기를 「이 책을 읽으면 능히 王者의 스승의 될 것이다. 18년 후에 나를 濟北 穀城山下에서 다시 볼것이니 그때 黃石이 즉 나인 줄 알라」고 하였으므로 世稱 黃石公 이라함.
(8) 司馬穰저 春秋때 齊나라 名將. 本姓은 田 大司馬가 된 때문에 司馬穰초라 하였음. <史記> 「景公時 爲將軍 한燕晋之師 申明約束 監軍莊賈 後至 斬以徇 燕晋聞之皆退」
(9) 孫빈 戰國때 齊의 名將. 鬼谷先生의 제자. 魏人 涓과 의형제를 맺었다가 그 뒤 涓이 魏將이 됨을 알고 찾아가려고 先生에게 下直하니 鬼谷先生이 賓字를 빈字로 改名하라 하였다. 龐涓이 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魏王에게 참소하여 膝蓋骨을 잘라서 병신이 되었다. 빈字는 곧 骨이란 글자임.
(10) 吳起 戰國때 名將. 衛國人. 曾子의 제자였으나 母喪을 당하고도 奔喪을 안하므로 曾子는 師弟의 誼를 끊었다. 魯에서 吳起를 등용하려 했으나 齊女와 결혼한 것을 렴疑하여 채용치 않았다. 그러자 그 아내를 죽이고 魯將이 되었다. <吳子兵書> 一券六篇을 지음. 世稱 孫吳兵法이라 함.
(11) 汨羅水 중국 湖南省에 있는 水名. 屈原이 빠져 죽은곳.
(12) 屈三閭 이름은 平, 字는 原. 楚의 王族으로 屈. 景. 蔿 3王族을 맡아보는 三閭大夫가 되었다가 小人의 참소로 추방되어 <離騷經>과 <漁父辭> 등을 짖고 5월 5일 汨羅水에 빠져 죽었음.
(13) 湘江 廣西省에서 發源하여 洞庭湖를 흘러드는 강 이름.
(14) 伍子胥 姓은 伍, 字는 子수,이름은 員. 楚平王이 小人의 참소를 듣고 그 아버지 奢와 兄 尙을 罪없이 죽였다. 子胥는 吳로 亡命, 將師가 되어 吳兵을 거느리고 楚의 수도 언鄧에 돌아오니 이미 平王은 죽었는지라 그 墓를 파내어 시체를 매질하여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고 吳國이 覇權을 잡게 하였다. 그 뒤 夫差가 吳王이 되면서 子胥의 諫함을 듣지 않고 촉鏤劍이란 칼을 주어 自殺케 하였다. 伍子胥는 분함을 못이기어 두 눈을 빼어 東門에다 걸고 吳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이 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연 伍子胥가 죽은지 9년만에 吳나라는 越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15) 伯夷 叔齊 殷나라 孤竹君의 公子로서 伯夷는 兄, 叔齊는 아우였다. 孤竹君이 國統의 계승을 叔齊에게 명령했더니 叔齊는 그 형 伯夷가 繼承함이 正義이라 하고, 伯夷는 父命이니 어길 수 없다 하여 서로 사양하다가 결국 둘 다 도망하니 國人이 孤竹君의 仲子로 國統을 잇게 하였다.
周武王이 商나라 紂를 칠 때 伯夷. 叔齊가 말을 붙들고 「以臣君伐은 不可하다」 하고 諫하였으나 듣지 않고 殷을 멸망시켰으므로 두 사람은 周栗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고 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결국은 굶어 죽었는데, 이 두 사람의 忠節은 만고에 길이 빛나는 바이다.
(16) 蘇秦 戰國時代의 말 잘하는 好辯客으로 鬼谷先生의 제자이다.
처음 秦 惠王에게 청하였으나 등용치 않으므로 다시 楚. 燕. 齊. 韓. 魏. 趙 등 六國을 遊說한 결과, 合從하여 同盟拒秦케 하고 蘇秦은 合從의 長이 되었다.
(17) 張儀 戰國時代의 辯士. 秦 惠王 때 宰相이 되어 連衡의 策으로 六國을 遊說하니 六國은 從約을 배반하고 秦을 섬겼다. 秦 惠王이 죽은 뒤에 六國이 다시 合從의 策을 쓰니 秦에서 물러나와 魏의 相이 되었다가 죽었다.
(18) 閻羅王 佛家語에 「閻魔王也라 하였으니 地獄을 맡은 神인 閻羅王. 또 十王 중의 하나, 다섯째가 閻羅하고 혹은 元位가 十八王 위에 있다 함. <法苑珠林> 「閻羅王者 昔爲沙毘國王 常與維陀如生王 戰 兵力不敵 因立誓願爲地獄主 臣左十八人 同誓曰 後當 奉助 治比罪人 十八人 卽 主領十八地獄也」 梵語 에 함羅는 雙王이라는 뜻. <佛經> 「昔有兄及妹 皆作地獄主 男治男事 말治女事 故曰雙王」
(19) 孟當君의 鷄嗚狗吠 孟當君의 姓은 田, 이름은 文. 齊 威王 때 사람. 齊의 王族으로 宰相이 되었다. 薛을 봉하고 食客이 언제나 3천명이었다. 秦王의 초청으로 秦에 들어가니 秦王이 歸國을 不許하고, 軟禁하므로 그 從者 중에 개 짖는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이 있어 孤白구를 훔쳤고, 또 닭울음을 잘 내는 자가 있어 函谷關을 무사히 탈출하였다.
(20) 信陵君의 竊符救趙 信陵의 이름은 無忌. 魏國公子. 秦이 趙의 首都 邯鄲를 침공할 때 趙公子 平原君勝이 魏公子 信陵君에게 간곡히 구원을 청하였다. 魏王은 秦을 두려워하여 不應하므로 義憤心에 불타는 信陵君은 王의 寵姬와 결탁하여 寢室안에 두었던 晉鄙印符를 훔치어 力士 朱亥를 데리고 晉鄙陣營에 나가서 軍兵의 교대를 정한즉, 晉노가 의심하고 듣지 않으므로, 朱亥를 시켜 晉도를 椎殺하고 信陵君은 그 軍士를 거느리고 趙를 구하였다.
(21) 秦始皇 姓은 영, 이름은 政. 戰國 때의 諸侯를 倂合하여 천하를 통일하고 始皇帝라고 자칭하였다. 阿房宮을 짖고 萬里長城을 쌓고 焚詩書 抗儒生한 無道한 임금이다.
(22) 阿房宮 秦始皇이 지은 宮. 꾸부려 지었기 때문에 阿房宮이라고 부른다. 그 규모가 宏大하여 驪山陵까지 三百里 覆道라 한다. <痛鑑> 「乃營作朝宮 渭南上林苑中 先作前殿 阿房東西 五百步 上可以坐萬人 下可以建五丈旗」
(23)萬里長城 秦始皇이 쌓은 城 臨조에서 遼東까지 이름. 지금은 서쪽으로 甘肅省 安西縣 布隆古爾城으로부터 동쪽으로 直隸省 楡縣의 山海關지 이르러 있음. <痛鑑> 「始皇 乃遺蒙恬 發兵三十萬人 北伐匈奴 收河南地 爲四十四縣 築長城 起臨조 至遼東 延무萬餘里 威振匈奴」
(24) 童男童女 나이 어린 男女兒를 말함. <痛鑑> 「方士徐市等 上書 請得與 童男女 人海 求三神山不死樂」
(25) 三神山 海中에 있는 想像의 仙山. 우리나라에서는 金剛山. 智異山. 漢羅山 등에 蓬萊. 方丈. 영洲라는 別名을 붙여 三神山으로 일컬음. <史記> 「蓬萊 方丈 영洲 比三神山者 諸仙人 及不死藥 在焉而 黃金 白銀 爲宮關」
(26) 砂丘平臺 直隸省 平鄕縣 동쪽에 있는 地名. 秦始皇이 죽은 곳. <痛鑑> 「七月丙寅始皇 崩於沙丘平臺」
(27) 驪山 陜西省에 있는 山 이름. 秦始皇의 墓가 있음.
(28) 楚覇王 項羽를 말함. 이름은 籍. 江東人. 힘이 능히 山을 뽑을 만하였다 함. 秦을 멸한 뒤에 國名을 楚라하고 자칭 覇王이라 했음.
(29) 時不利兮추不逝 때가 이롭지 않아 烏추馬가 가지 않는다는 말.
(30) 우美人 項羽의 愛姬. 姓이 오 또는 이름이 오라고도 한다. 항상 項羽를 隨從하더니 羽가 垓下에서 포위당했을 때 自殺하였다. <項羽本記> (歌曰) 「力拔山兮 氣蓋世 時不利兮 추不逝 추不逝兮 可奈何 우兮우兮 奈若何」
(31) 烏江 安취성에 있는 江. 項羽가 自殺한 곳. <痛鑑> 「項羽 至烏江 亭長 艤船待 謂項羽曰 江東이小 地方千里 赤是王也 願王 急渡」
(32) 東南祭風 三國時代 諸葛亮이 赤壁大戰때에 南屛山에 올라 七星壇을 모으고 동남풍을 빌어서 曹操의 軍을 大敗시켰음.
(33) 木牛流馬 諸葛亮이 北伐中原할 때 牛馬를 나무로 만들어서 車를 끌게 하고, 軍糧을 운반하였음 <蜀誌> 「亮長於巧想 損益連弩 木牛流馬 皆出其意」
(34) 諸葛孔明 姓은 諸葛, 字는 孔明, 이름은 亮. 本 荊야 陽都人. 父의 이름은 珪이며 秦山郡丞으로 있다가 早卒하고, 亮은 그 뒤 叔父 玄을 쫓아 荊洲로 와서 살다가 襄陽城 밖 20리 되는 隆中에 집을 정하여 그 아우 均과 南陽에 躬耕하였다. 孔明이 살고 있던 곳에 臥龍岡이 있었으므로 自號를 臥龍先生이라 하였다.
(35) 魏王曹操 姓은 曹, 幼時의 이름은 阿瞞(一名 吉利), 이름은 操, 字는 孟德. 沛國초郡人. 父 崇의 本姓은 夏侯氏 였으나 中常侍 曹崇의 養子가 되었으므로 姓을 曹로 하였다. 幼時부터遊영과 歌舞를 좋아하고 權謀와 機變이 많았다. 눈이 작고 수염이 길었다 함. 뒤에 魏王이 되었다.
(36) 司馬遷 姓은 司馬, 이름은 遷, 字는 子長. 西漢 武宰때 사람. 스물에 南遊江准고 벼슬이 太史令에 이름. 李陵이 匈奴에게 항복하니 霧堤가 화내므로 遷이 陵의 평소의 忠誠과 우월한 將略을 말하고, 그 본뜻이 아님을 변명하다가 腐刑(고환을 베는 刑)에 처하게 되었음. <史記> 三百篇을 지음.
(37) 韓退之 이름은 愈, 退之는 字, 號는 昌黍. 唐 鄧州人. 唐代 大文章으로 벼슬이 中書舍人에 이름. 謚는 文. 宋 元豊年間에 昌위伯을 追崇하였음.
(38) 李太白 중국 唐나라 중엽의 詩人. 이름은 白, 字는 太白, 號는 靑蓮居士. 蜀나라 사람, 또는 롱西 사람이라고도 함. 天性이 豪放하고 술을 좋아하여 흥이 나면 곧 詩를 쓸 수 있는 天才 詩人으로 六朝風의 詩를 물리치고 漢.魏의 豪放함을 본떠 自由奔放한 감정을 발휘시켰음. 杜甫와 아울러 중국 최대의 詩人으로 詩仙이라함. 작품으로는 <李太白集> 39卷이 있음.
(39) 杜牧之 姓은 杜요, 이름은 牧, 字는 牧之이다. 문장이 뛰어나고 얼굴이 冠玉 같고 풍채가 豪邁하므로 세상 사람들이 小杜라 일컬으며, 杜甫의 老杜와 비유하였다. 著書는 <樊川集>이 있다. 杜牧之의 풍채는 어찌나 좋았던지 「醉過陽州橘滿車」라 하여 杜牧之가 취해서 楊州의 酒肆거리를 지날 때 酒樓의 美女들이 杜牧之가 타고가는 수레에다 귤을 던져 수레안에 가득했다 한다.
(40) 越西施 姓은 施. 春秋때 越나라 苧蘿山 밑 西村에서 산다 하여 西施라 함. 才色이 絶美하여 越王 句踐이 美人計로 西施를 吳王 夫差에게 보내서 吳王을 惑하게 하고, 吳가 망한뒤 西施는 范이와 같이 扁舟를 타고 五湖로 갔다 함.
(41) 王昭君 姓은 王, 昭君은 字, 이름은 장. 西漢 元漢의 宮女. 呼韓邪單干가 入朝하여 漢에 請婚을 하여 閼氏(單干의 妃를 삼으려 할 때 元帝는 많은 宮女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畵工 毛延壽에게 肖像을 그려 을리게 하였다. 모든 宮女들은 서로 다투어 畵工에게 뇌물을 주었으나 昭君은 저의 姿色만 믿고 뇌물을 주지 않았더니 화상이 초상에 흠점을 찍어 바쳤으므로 元帝는 昭君을 單干에게 허락하였다. 그 뒤 帝가 이것을 악고 畵工을 死刑에 처하였다.
(42) 彭祖 姓은 錢, 이름은 징. 陵絡氏의 第三子. 전頊의 玄孫. 母는 勝潰氏 彭城에 封하므로 일조라 함. 堯 때로부터 夏. 殷. 周를 지나니 壽가 8백이요, 49妻를 死別하고 54子를 두었음. <正義> 「老彭 卽 將子所謂祖也」
(43) 東方朔 姓은 東方, 字는 曼천. 漢武帝時人. 그 시어머니가 죽고 이웃집 부인이 기르려 할 때 동쪽이 훤하게 밝았다 하여 東方을 姓으로 하였음. 3천년 만에 한번 익는 天上의 蟠桃를 세번이나 훔쳐 먹은자라함. 일찍이 武帝에게 말하기를 「朱儒飽欲死 方朔飢欲死」라 하였음.
(44) 安期生 秦 낭야人. 海上에서 賣藥하다가 河上丈人에게 受學함. 당시 사람들이 모두 千歲翁이라 일컬었고, 秦始皇이 東遊하다가 청해서 3일 밤을 같이 이야기하고 金壁을 내리니 다버리고 阜鄕亭을 나갔다함. <漢書> 괴通傳 「有齊人安期生 興通善 嘗干 項羽 羽不能用其策 安期生 卒不受羽封」
(45) 赤松子 옛 仙人의 이름. <列仙傳> 「神農氏雨師 服水玉以敎神農 能人火不火燒 往往至崑崙山上 常止西王母石室中 隨風雨上下 炎帝少女追之 赤得仙 至高辛時復位雨師 」<史記> 張良傳
(46) 風伯 바람을 맞은 神. <韓非子> 「風伯進掃 雨師濾道」
5. 雲淡風輕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1) 소거(小車)에 술을 싣고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2) 십리사정(十里沙汀) 내려가니 넘노나니 황봉백접(黃峰白蝶) 쭈루루 풍덩 옥파창랑(玉波滄浪) 떠오나니 도화(挑禍)로다. 붉은 꽃 푸른 잎은 산용수세(山容水勢)를 그림하고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 춘흥(春光春興)을 자랑한다.
어디메로 가잤어라. 한곳을 점점(漸漸) 내려가니 언덕위에 초동(樵童)이요 석벽하(石壁下)에 어옹(漁翁)이라. 새벽별 가을 달빛 강심(江心)에 거꾸러져 수중산천(水中山川)을 그렸는데 편편(翩翩)(3) 나는 저 백구(白鷗)는 한가(閑暇)함을 자랑한다. 은린옥척(銀鱗玉尺)(4) 펄펄뛰고 쌍쌍원앙(雙雙鴛鴦)이 높이 떠 청풍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종일위지소여(縱一葦之所如)하여 능만경지망연(凌萬頃之茫然)이라(5). 살과 같이 가는 배는 양진(陽津) 포진(浦津) 배회(徘徊)로다.
남해팔경(南海八景) 소상동정(瀟湘洞庭) 청풍적벽(淸風赤壁)이 이 아니냐. 풍월강산(風月江山) 구경하고 동해로 건너갈 제 아동방(我東方) 금수강산 동금강(東金剛)(6) 서구월(西九月)(7) 남지리(南智異)(8) 북향산(北香山)(9) 가야산(伽倻山)(10) 속리산(俗離山)을 편답(遍踏)하고 삼각산(三角山)을(11) 올라가니 금부용(金芙蓉) 만장봉에 서색(瑞色)은 반공(蟠空)이요 남산송백(南山松柏)은 울울창창(鬱鬱蒼蒼) 한강유수(漢江流水) 호호양양(浩浩洋洋) 춘대일월(春臺日月)(12) 태평기색(太平氣色) 만만세지금탕(萬萬歲之金湯)이로구나.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자.
【解 說】
이 단가는 첫머리에 운담풍경(雲淡風輕)을 붙이고 다음부터는 다른 사설(辭說)을 부른다. 단가의 대부분은 중국의 풍경이나 인물 등을 나열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우리 나라 풍경을 노래하였고, 중국의 지명은 약간 들어갔다. 다른 단가처럼 인생의 하무함을 한탄하는 것은 전혀 없고 오직 풍경에만 치중한 서경시(敍景詩)라고 할 수 있다.
註(1) 雲淡風輕近午天 구름이 맑고 바람 가벼운 午天이 가까운 때 즉 봄의 화창한 날씨를 말함.
(2) 訪花隨柳過前川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앞내를 지나가니, 宋나라 大性理學者 程顥(明道) 詩 「雲淡風輕近午天訪花隨柳過前川 傍人不識余心樂 將謂偸閒學少年」
(3) 翩翩 가볍게 나부끼거나 훨훨나는 모양. 풍채가 風流스럽고 좋은 모양.
(4) 銀鱗玉尺 비늘이 은빛처럼 번쩍번쩍하고 모양이 좋은 큰 물고기.
(5) 縱一葦之所如하여 凌萬頃之茫然 一葦는 小舟. <詩傳> 河廣篇 「誰謂河廣 一葦杭之」 조그마한 배를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 萬頃蒼波 茫茫한 물에 거침없이 돌아다닌다는 뜻. 蘇軾 <赤壁賦>의 한 귀절.
(6) 東金剛 동쪽에 金剛山이란 뜻.
(7) 西九月 서쪽에는 九月山이라는 뜻.
(8) 南智異 남쪽에 智異山이라는 뜻.
(9) 北香山 북쪽에는 妙香山이라는 뜻.
(10) 伽倻山 慶尙北道 星州郡과 慶尙南道 陝川郡 사이에 위치한 山. 紅流洞·海印
寺·黃溪瀑
寺·黃溪瀑
布·崔孤雲의 遺跡 등 명승 고적이 많음.
(11) 三角山 서울 牛耳洞에 있는 北漢山을 三角山이라고 한다.
(12) 春臺日月 春景이 融和하여 臺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마음이 넓고 快暢하다는
뜻인데, 이 말을 盛世에 비유한 것. <老子>「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
6. 鴻門宴歌
천하가 태평하면 언무숭문(偃武崇文)하려니와(1) 시절이 분요(紛擾)하면(2) 포연탄우(砲煙彈雨)(3) 만날 줄을 사람마다 아는 바라. 진(秦)나라 모진 정사(政事) 맹호독사(猛虎毒蛇) 심하더니 사슴조차(4) 잃단 말가. 초야에 묻힌 영웅 질족자(疾足者)(5) 뜻을 두고 곳곳이 일어날 제 강동(江東)의 성낸 범과(6) 패택(沛澤)에 잠긴 용이(7) 각기 기병(起兵) 힘을 모아 진나라를 멸할 적에 선입정(先入定) 관중자(關中者)면(8) 왕(王)하리라. 깊은 언약이 어젠 듯 오늘인 듯 어찌타 초패왕(楚覇王)은(9) 당시 세력 힘만 믿고 배은망의(背恩忘義)하단(10) 말가.
무죄한 패공(沛公)을 아무리 살해코저 홍문(鴻門)에다(11) 설연(設宴)한들 하늘이 내신 사람 천붕우출(天崩又出)이라(12) 벗어날 길 없을소냐. 유능제강(柔能制剛)(13) 옛 말씀을 이로 보아 알리로다. 위의(威儀)를(14)살펴보니 백모(白矛) 황월(黃鉞)(15) 장창(長槍) 대
검(大劍) 청도(靑刀) 금고(金鼓) 대기치(大旗幟)며 영기(令旗) 방패(防牌) 숙정패(肅靜覇)(16) 주장(朱杖)(17) 능장(稜杖)(18) 사모창(蛇矛槍)을(19) 좌우로 늘어 세우고 중군(中軍)의 수자기(帥字旗)를(20) 반공중(半空中) 높이 치켜 달고 좌상에 앉은 영웅 누구누구 앉았던고 녹포홍대(綠袍紅帶)(21) 호수염(虎鬚髥)(22) 팔척 장검(長劍) 비꼈으니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라. 당시 호걸 초패왕(楚覇王)은 제일 좌상(座上)에 앉으시고 흑포윤건(黑袍綸巾)에다(23) 옥결(玉결)을(24) 차시고 창안학발(蒼顔鶴髮)에(25) 표연히 앉았으니 가빈칠십호기계(家貧七十好奇計)의 신기묘산(神奇妙算) 자부하던 범증(范增)이가(26) 분명(分明)쿠나.
홍수남대흑전립(紅袖藍帶黑戰笠)에 얼굴은 관옥(冠玉)이요(27) 풍채는 반악(潘岳)이라(28) 직결(直潔)에다가 뜻을 두고 육출기계(六出奇計)를(29) 흉중(胸中)에 품었으니 진평(陳平)이가(30) 그 아닌가. 동벽(東壁)의 황금전포(黃金戰袍) 황금(黃金) 투구 조대(조帶) 띠고 좌수(左手)에 홀(笏)을(31) 들고 우수(右手)에 칠성검(七星劍)(32) 뚜렷이 비꼈으니 의리 있고 사정(私情)없는 항백(項伯)이가(33) 이 아니냐.
서편(西便)에 앉은 영재(英才) 정신이 호매(豪邁)하여 장검을 어루만져 기회를 기다리던 홍포은갑(紅袍銀甲) 저 장수는 항장(項莊)일시(34) 분명쿠나. 위엄이 늠름, 살기가 등등하니 이름이 모두 다 잔치라 할망정 어느 누가 두려워할거나. 대장부 평생사업(平生事業) 할 일을 하며 지내 보자.
【解 說】
이 <홍문연가(鴻門宴歌)>는 진(秦)나라 말년, 초나라와 한나라 초기에 있던 사적(史蹟)을 엮은 노래이다.
홍문(鴻門)은 홍구(鴻溝)를 말하는데,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홍구의 군문(軍門)에서 항우(項羽)와 패공(覇公)이 연회(宴會)를 베푼 곳이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진나라의 혹독한 정치에 시달리어 백성이 도탄(塗炭)에 빠져 허덕일 때 강동(江東)에서 항우가 일어나고 패택(覇澤)에서 유방(劉邦)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결의 형제를 하고 진나라를 쳐들어갈 때 관중(關中)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왕이 되기로 굳게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다. 항우는 제 힘만 믿고 자기가 먼저 갈 줄 알았으나 유방이 먼저 들어 왔다. 항우는 분이 치밀어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당시 세력을 믿고 스스로 서초(西楚) 패왕(覇王)이 되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 패공은 한왕(漢王)을 봉하여 한중(漢中)으로 쫓아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범증이 패공(沛公)을 살려 두는 것은 후환을 기르는 것이라 하여, 아주 없애 버리려고 홍문에다 잔치를 열고 검무(劍舞)을 잘 추는 항장(項莊)으로 하여금 패공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미리 안 장자방(張字房)이 항우의 삼촌 항백(項伯)에게 은밀히 부탁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홍문연가>는 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몸차림을 낱낱이 엮었는데, 잔치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 든든한 무장을 해서 그야말로 살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잔치의 주빈인 패공의 몸차림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 자못 아쉽다. 패공은 항백에 의하여 항장의 칼날은 피했으나 사실상 번쾌(樊쾌)의 공이 더 크다. 번쾌는 패공의 아장(牙將)으로, 패공과는 동서지간(同서之間)이다. 홍문연 잔치에 수행했는데, 분위기가 살벌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걱정하다가 협기를 일으켜 좌중(座中)으로 쑥 들어갔다.
번쾌의 행동은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를 더 한층 놀라게 했다. 번쾌의 형상을 보면 머리털이 다 위로 솟고 눈매가 찢어진 것이 그야말로 무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술을 청해서 잔을 주니까 뿌리치고는 술 항아리째 그대로 입에 대고 순식간에 들이켜 버렸다. 안주(按酒)를 주니까, 역시 뿌리치고 돼지 앞다리를 통째로 들고 뜯었다. 이것을 치주체견(치酒체肩)이라고 한다. 이것을 본 초패왕은 그만 위압(威壓)이 되고 말았다. 그는 옛일이 생각났다. 항우가 아직 힘이 덜 났을 무렵인 진시황 때에 만리장성 축성(築城) 공사에 나갔다. 항우도 본래 장사라 남보다 몇 곱절씩 돌을 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곳에 이르러 보니 어떤 사람이 돌을 짊어 놓았는데, 자기 것보다도 배나 되는 돌을 짊어 놓지 않았는가. 항우는 크게 놀라 곁사람에게 몰래 그를 물어 보았더니 그가 바로 번쾌였던 것이다. 항우는 그만 옛날이 생각나서 패공을 번쾌에게 빼앗겨 놓치고 말았다. <홍문연가>는 이 대문을 엮지 않고 단순히 항장무(項莊舞)에 대한 것만 엮었다.
註 (1) 偃武崇文 武를 그만두고 文을 숭상한다는 뜻. 즉 無事를 끝마치고 文化를 숭상한다는 말임.
(2) 紛擾 紛亂. 즉 어수선하고 떠들썩함.
(3) 砲煙彈雨 자욱한 銃砲의 연기와 비오는 듯하는 탄환. 곧 銃砲의 사격이 몹시 심한 전투를 이르는 말
(4) 사슴 指鹿爲馬를 이르는 말. 즉 秦나라 丞相 趙高가 秦 二世 皇帝의 권력을 농락해 보려고, 일부러 사슴을 말이라고 속이어 바친 옛일에서 나온 말. 사슴 한 마리를 바치고 皇帝에게「좋은 名馬가 있어 비치겠습니다」하니 2世가 웃으며「丞相이 그릇 알았나?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느냐」하고 諸臣에게 물으매 혹은 말이라 하고 혹은 사슴이라 하니, 趙高가 사슴이라고 하는 자는 暗裡에 죽이고 말이라고 한 자는 대우하였음. 그래서 웃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이르는 말. 또는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이려는 것을 이르는 말.
(5) 疾足者 疾은 빠르다는 뜻. 즉 빠른 사람이라는 말.「부轍曰 秦失其鹿 高材疾足者 先得焉」
(6) 江東의 성낸 범 江東은 揚子江의 東岸. 楚의 項羽가 起兵한 곳. 성낸 범이란 項羽를 말함.
(7) 沛澤에 잠긴 龍 沛는 중국 江西省 徐州縣에 있는 地名. 龍은 漢高祖 劉邦을 말 함.
(8) 先入定 關中者 楚懷王이 項羽와 劉邦을 나누어 보내면서「먼저 關中(奏의 서울)에 들어가는 者가 王이 되리라」고 약속한 말.
(9) 楚覇王 項羽를 말함. 이름은 籍. 江東人. 힘이 능히 山을 뽑을 만하였다 함. 秦을 멸한뒤에 國名을 楚라 하고 自稱 覇王이라 함.
(10) 背恩忘義 은혜를 배반하고 義를 잊는 것.
(11) 鴻門 鴻門은 鴻溝를 말함. 陝西省 臨潼縣 동쪽에 있는 地名. 鴻溝의 軍門에서 項羽와 沛公이 宴會한 곳.
(12) 天崩又出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수 있다는 뜻.
(13) 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억센 것을 制禦한다는 뜻. <三略>「柔能制剛 弱能制强」
(14) 威儀 위엄이 있는 儀容. 엄숙한 차림새. 禮法에 맞는 몸가짐. 戒律을 달리 이르는 말.
(15) 白矛 黃鉞 흰 槍과 누른 도끼를 말함. <傳> 「鉞斧也 以黃金爲飾」<書經>「王 左杖黃鉞右秉白矛 以麾」
(16) 肅靜覇 肅靜 두 字를 써서 세우던 나무패. 朝鮮時代 軍令으로 死刑을 집행할 때 떠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했음.
(17) 朱杖 붉은 칠을 한 몽둥이. 주릿대 따위를 말함. 신문할 때에 매질하는 몽둥이나 武器로 썼음.
(18) 稜杖 대궐 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대궐 문에 서로 어긋나게 가로지르는 둥근 나무. 길이는 240㎝쯤 되고, 중간 허리의 직경은 26㎝, 양끝의 직경은 20㎝가량 됨. 밤에 巡察을 돌 때에 쓰는 기구. 길이 150㎝되는 나무의 끝에 물미를 끼우고 위에 소리 나는 쇠두겁을 씌우고 둘 혹은 셋의 비녀장을 가로 꿰고 각 비녀장의 양편으로 둥근 쇳조각을 서너 개씩 끼우고 양끝에는 두셋의 고리를 잇달아 매달았음.
(19) 蛇矛槍 세모로 된 槍. <晋書>「陳安 左手 奮七尺大刀 右手 執丈八蛇矛」
(20) 帥字旗 陣中이나 營門의 뜰에 세우던 大將에게 딸린 旗. 열 두 폭으로 되었는데 , 빛은 드림을 비롯하여 모두 누르며 帥자를 검은 빛으로 썼음. 혹은 붉은 바탕에 흰 자를 쓰기도함.
(21) 綠袍紅帶 푸른 戰袍와 붉은 띠.
(22) 虎鬚髥 호랑이 수염. 뻗친 수염을 말함.
(23) 黑袍綸巾 검은 道袍와 靑綠綬로 만든 巾.
(24) 玉결 차는 玉. <史記>「范增欲殺沛公 數目項羽 擧所佩玉결 示之者三」
(25) 蒼顔鶴髮 창백한 얼굴에 흰 머리.
(26) 范增 소人. 나이 70에 好奇計하여 項羽의 謀士가 되니 項羽가 亞父라 일컬었다. 范增이 鴻門宴에서 沛公을 죽이도록 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음.
(27) 冠玉 잘난 남자의 얼굴을 이르는 말. 冠玉은 冠 앞쪽을 장식하는 玉.
(28) 潘岳 성은 潘, 이름은 岳, 字는 安仁. 晋 때 中牟人. 文詞가 絶麗하고 얼굴이 아름다워서 洛陽을 지나면 女人들이 길을 가로막고 과일을 던졌다 한다.
(29) 六出奇計 楚漢 때 陳平이 劉邦을 도와 여섯 번 奇計를 낸 옛일.
(30) 陳平 漢 陽武人. 젊을 때 가난하되 글읽기를 좋아하였고 얼굴이 冠玉과 같았으며, 漢高祖를 섬기어 누차 奇策을 내어서 漢의 功臣이 되어 曲逆侯를 봉하고 左丞相이 되었다.
(31) 笏 옛날 君臣이 가지는 手版인데 상아 또는 나무로 만든 것으로 지금의 手帖用으로 그때 그 때의 일을 적음.
(32) 칠성검 伍子胥가 차던 名劍. <吳越春秋>「劒中有七星 價値百金」
(33) 項伯 項羽의 叔父. 鴻門宴會 때 項莊이 劒을 추어 沛公을 죽이려 할 때 項伯이 또한 劒舞를 추어 沛公을 막아 주었으므로 項莊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음.
(34) 項莊 項羽의 從弟로 劒舞의 名手이다. 鴻門宴에서 沛公을 殺害코자 하였으나 項伯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史記> 項羽記「張良至軍門見樊쾌曰 今者項莊拔劒舞 其意常在沛
公也」
7. 丈 夫 恨
대장부 허랑(虛浪)하여 부귀 공명을 하직하고 삼척동(三尺童) 일필려(一匹驢)로 승지강산(勝地江山) 유람할 제 진시황(1) 고국지(古國趾)와 만리장성(2) 아방궁(阿房宮)과(3) 봉황대(鳳凰臺)(4) 황금대(黃金臺)며(5) 한무제(漢武帝) 천추유적(千秋遺跡) 선인장(仙人掌) 승로반(承露盤)과(6) 오수당월노채송(吳隨唐越魯蔡宋) 도읍터를 다 본 후에 강산이 기진하되 호흥(豪興)이 상존(尙存)하여 옥란간(玉欄干)에 높이 올라 인호상이자작(引壺觴而自酌)(7) 후 한단침(邯鄲枕)(8) 돋우 베고 장주호접(莊周蝴蝶)(9) 잠깐 되니 꿈이 또한 생시같이 우수(右手)를 높이 들어 소상반죽(瀟湘斑竹) 둘러 짚고 녹수청산(綠水靑山) 들어가니 산용수세(山容水勢)도 좋거니와 초목 무성 아름답다. 층층한 절벽상에 낙화로 자리하고 고금영웅 문장 열사 은일호탕(隱逸豪蕩) 절대가인(絶代佳人) 훤화(喧화)하여 앉았는데 좌상(座上)에 계신 손님 누구누구 모였던고.
천하 장상 풍운영무(風雲英武) 사군무양(事君無讓) 고요직설(皐陶稷契)(10) 만고충신 용방(龍방)(11) 비간(比干)(12) 제일 총명(聰明) 사광(師曠)이며(13) 용병여신(用兵如神)(14) 사마양저(司馬穰저)(15) 지절(志節) 높은 백이 숙제(伯夷叔齊)(16) 효친양지(孝親養志) 증자
(曾子)(17) 맹종(孟宗)(18) 검무일수(劍舞一手) 항장(項莊)이며(19) 추풍강동(秋風江東) 장한(張翰)이며(20) 오호범주(五湖泛舟)(21) 범상공(范相公)과(22) 기주(嗜酒)하던 유영(劉伶)이며(23) 애월(愛月)하던 이태백(李太白)이(24) 첩첩이구(첩첩利口)(25) 소진(蘇秦)(26) 장의(張儀)(27) 일변(一邊)에 앉았는데 영웅 호걸 모인 곳에 일등 미색 둘러 있네 매희(妹姬)(28) 달기(달己)(29) 하희(夏姬)(30) 서시(西施)(31) 포사(褒사)(32) 당명황(唐明皇)의(33) 양귀비(楊貴妃)(34) 식부인(息夫人)(35) 채문희(蔡文姬)(36) 오강낙루(烏江落淚) 우미인(虞美人)(37) 경국경성(傾國傾城) 영웅 절색(英雄絶色)이 모인 곳에 경치 무궁 기이하다.
수천장(數千丈) 걸린 폭포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何落九天)이요(38) 백만 길 높은 봉은 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이라(39) 백로(白鷺) 백구(白鷗) 부안(鳧雁)들은 도화유수(桃花流水)에 떠서 놀고 난봉(鸞鳳) 공작(孔雀) 청학(靑鶴) 백학(白鶴) 두견(杜鵑) 앵무(鸚鵡)는 만학천봉에 왕래한다. 춘주(春酒)나 먹으리라. 백옥반(白玉盤) 경골준(鯨骨樽)에 제일 산채(山菜) 불로초(不老草)며 일등 해물(海物) 설리어(雪鯉魚)를 가득히 담아놓고 좌상에 앉은 손께 순배(巡杯)없이 권할 적에 전계어부(前溪漁夫) 애내성(애乃聲)에(40) 남가일몽(南柯一夢)(41) 흩어지니 어화 애닯도다 대장부 평생 뜻을 꿈에도 못 이루어 긴한숨 짧은 탄식 어느 때나 그쳐 볼까나.
【解 說】
이 <장부한(丈夫恨)>이란 단가는 다른 것에 비해 조금 이채롭다.
이것은 명승과 고적을 두루 돌고 또 고금(古今)의 영웅·열사·은일(隱逸)·문장·장상(將相)·충신·효자(孝子)·미색(美色)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경치 또한 아름다운 곳이어서 제일 좋은 산나물과 산해진미로 한잔 먹고 즐기다가 깨어 보니 꿈이어서 장부의 한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단가(短歌)는 같은 말이 되풀이되어 나오는데 <장부한> 역시 만리장성이며, 아방궁·백이숙제·사마양저(司馬穰저)·항장(項莊)·범상공(范相公) 등등 여러번 설명한 사람이나 사물들이 반복된다. 여기 처음으로 나오는 달기(달己)·포사(褒사) 같은 여인은 얼굴은 비록 미모였으나 마음씨가 곱지 못한 요화(妖花)들이다. 이렇게 인물들을 재치 있게 나열하여 꾸며진 노래이다.
註 (1) 秦始皇 <不須嚬> 註 (21) 참조.
(2) 萬里長城 <不須嚬> 註 (23) 참조.
(3) 阿房宮 <不須嚬> 註 (22) 참조.
(4) 鳳凰臺 중국 湖南省에 있는 名臺. 李白 詩「鳳凰臺上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5) 黃金臺 戰國時代 燕 昭王이 易水東南에 臺를 쌓아서 그 위에 千金을 두고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맞이하였으므로 이름을 黃金臺라 하였음. 後人이 또한 그곳에 築臺하여 京師八景의 하나로서 즉 金臺夕照가 되었다.
(6) 仙人掌 承露盤 漢 武帝가 仙藥을 구하여 仙人掌으로 盤을 들고 甘露를 받기 위하여 銅으로 만든 그릇. <史記> 武帝紀「作相梁 銅柱 承露 仙人掌之屬」註「仙人 以手掌 擎盤 承甘露也」張衡賦「立修莖之仙掌 承雲表之淸露」
(7) 引壺觴而自酌 술을 부어 주는 사람 없이 혼자 따라 마신다는 뜻. <陶淵明歸去來辭>「引壺觴而自酌 眄庭柯而怡顔」
(8) 邯鄲 地名. 列國 때 趙國의 首都. 現 直隸省임. 唐 開元 19년에 道士 呂翁이 邯鄲 邸舍中에서 소년 盧生을 만나니, 盧生이 자신의 곤궁함을 탄식하여서 道士가 주머니 속에서 베개를 내어 주며,「이것을 베면 榮貴를 뜻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때 舍主는 누런 좁쌀로 밥을 짖고 있었는데 盧生이 그 베개를 베고 꿈을 꾸니 貴家 崔氏의 딸에게 장가 들어 高位에 올라 영화롭기 비할 데 없었다. 늙어서 고향으로 가고 싶었으나 不許하여 官職에서 죽게 되는 순간, 꿈을 깨니 밥이 덜 익었고 옹이 웃으며「人生事는 이 꿈과 같은 것이라」하였다. 이 꿈을 黃梁夢이라고도 함. 蘇軾 詩「一杯歸誦之 萬事 邯鄲枕」
(9) 莊周 蝴蝶 莊周는 列國 때의 蒙古地方人. 성은 莊, 이름은 周, 字는 子休. 梁 惠王 때 漆園吏가 되었으나 벼슬하는 것이 오히려 비천하다 생각하고 벼슬을 그만두었다. 楚 威王은 百金, 齊 宣王은 千金 幣帛 등으로 그를 맞아 政丞을 삼으려 하였으나 사양하여 벼슬하지 않았다. <南華經>을 지음. 蝴蝶은 莊周가 꿈에 蝴蝶이 되었다가 꿈을 깬 뒤에는 莊周가 되었으니 莊周가 蝴蝶이 되었던가 蝴蝶이 莊周가 되었던가 깨닫지 못한다는 말. <莊子> 齊物論「昔者莊周 夢爲蝴蝶 허허然蝴蝶也 俄然覺則 거거然周也 不知 周之夢 爲蝴蝶與 蝴蝶之夢 爲周與」
(10) 皐陶稷契 堯代 네 사람의 賢臣.
(11) 龍방 夏 桀의 臣下. 姓은 關. 걸에게 直諫하다가 被殺됨. <韓詩外傳>「夏之賢臣 夏桀無道 爲酒池糟丘 龍방極諫 桀囚而殺之」
(12) 比干 殷 紂의 諸父. 紂의 暴虐함을 諫하니 紂가 比干을 미워하여 聖人의 마음에는 七竅 가 있다는데 과연 있나 보자며 比干의 心臟을 꺼내어 죽였음.
(13) 師曠 春秋 때 晋國의 樂師. 耳聽이 뛰어난 자이며, 남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능히 吉凶을 점쳤다고 함. <左傳>「晋人聞有楚師 師曠曰 不害 吾驟歌北風 又歌南風 南風不競 多死聲 楚必無功」<孟子>「師曠之聰」
(14) 用兵如神 軍兵을 통솔함에 규율이 엄숙하고 작전에 임하여 神計妙策으로 百戰百勝을 말함.
(15) 司馬穰저 <不須嚬> 註 (8) 참조.
(16) 伯夷 叔齊 <不須嚬> 註 (15) 참조.
(17) 曾子 <不須嚬> 註 (5) 참조.
(18) 孟宗 三國時代 吳의 江夏人. 性이 至孝하였음. 겨울에 老母가 竹筍을 원하여서 孟宗이 竹林에 들어가 슬피 우니 땅 속에서 죽순이 솟아나서 이 죽순을 老母에게 드렸음. <三國誌>「左臺御史孟宗有孝 母性嗜筍 及母亡 冬節 宗 入林哀泣 而筍生 得以供祭祀」
(19) 項莊 <鴻門宴歌> 註 (34) 참조.
(20) 張翰 張使君이라고도 함. 이름은 翰, 字는 季鷹. 吳人. 晋 惠帝 때 사람. 齊王 경(경)이 淸才가 있음을 알고 大司馬 東曹椽을 삼았다. 翰은 秋風이 불어올 때 江東의 菰菜 蓴羹 노魚膾를 뜻깊이 생각하고 탄식하여 말하기를「人生이란 자기 마음에 맞는 생활을 하고 싶지. 뜻아닌 榮名에 구구히 얽매일 필요가 없다」하니 或人이「公은 어찌 一時의 기분만 차리고 身後의 이름은 생각지 않느냐」고 물었다. 翰은「身後의 名譽는 즉시 一杯酒만 못하다」고 대답하고 벼슬을 버리고 江東으로 떠나 갔다 함. 唐詩「張翰江東去 正値秋風時」
(21) 五湖 격·조·射·貴·大湖 등 다섯 湖水를 말함. 또한 太湖의 別名이기도 함.
(22) 范相公 이름은 려, 字는 少伯. 楚 宛三戶人. 越王 句踐을 도와 吳를 멸하였음. 그 뒤 大名之下에는 오래 살기 어렵다 하며 세상을 피하여 배에 西施를 태워 西湖로 떠나가서 스스로 치夷子라 일컫고 父子가 致財하였다가 그 財物을 散盡하고 또 陶에 가서 號를 陶朱公이라 일컫고, 다시 巨萬金을 致財하여 大富豪가 되었다. 王이 工人에게 명하여 金으로 그 像을 새기게 하여 朝禮하였다고 함. <吳越春秋>「苧蘿山若耶溪傍 有東施家 西施家 西施色美 范려獻 之吳王 其後吳滅 려復取西施乘扁舟 遊西湖而不返」
(23) 劉伶 字는 伯倫. 晋 沛國人. 벼슬은 建威將軍. 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 늘 술을 사랑하여 酒德頌을 짖고 언제나 下人에게 삽을 메고 따라 다니게 하고「언제 어느 곳에서 죽을는지 모르니 죽은 곳에 묻히기 위함이라」하였다. (荷삽隨之)
(24) 李太白 <不須嚬> 註 (38) 참조.
(25) 첩첩利口 나불나불 지껄이는 입.
(26) 蘇秦 <不須嚬> 註 (16) 참조.
(27) 張儀 <不須嚬> 註 (17) 참조.
(28) 妹姬 桀의 妃. 一名 末喜. 有施氏의 딸로 아름다웠으나 本性이 간사하였으며, 桀이 총애하여 그의 奸言을 좇으니 결국 나라는 망하고 桀과 같이 南巢에서 죽었음.
(29) 달己 殷나라 마지막 임금인 紂의 寵姬. 간사하여 酷刑을 가하여 賢臣을 학살케하고 酒池肉林을 만들게 하고 極度의 豪奢를 일삼다가 周 武王에게 討伐되었으며,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
(30) 夏姬 春秋 때 鄭國의 美女. 夏徵舒의 母.
(31) 西施 <不須嚬> 註 (40) 참조.
(32) 褒사 周 幽王의 寵姬. 평소에 잘 웃지 않아서 王은 웃기려고 갖은 애를 썼다.褒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해서 깁비단을 수없이 찢게 해 그 뜻을 맞추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戰亂이 없는데도 공연히 烽火를 들어 諸侯가 놀라 모여들게 하였을 때 비로소 크게웃었다 한다. 그 뒤 犬戎의 侵犯 때 烽火를 올려도 諸侯가 모이지 않아 王과 褒사는 마침내 잡혀 죽었다. [史記]「周幽王之寵姬 不好笑 王悅之萬方 故不笑 乃擧烽燧 以徵諸侯 諸侯至而 無寇 褒사乃大笑後 申侯 與犬戎 攻周幽王 擧烽燧而諸侯不至遂被殺」
(33) 唐明皇 唐 玄宗을 말함. 唐나라 제6대 황제. 초기에는 賢臣을 써서 開元의 治라고 컬어지는 당나라의 隆盛時代를 이루었으나, 晩年에는 奸臣에게 정치를 맡기고 楊貴妃에 빠져 정치를 어지럽혔음.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자 蜀나라로 피하고, 아들 肅宗에게 자리를 물렸음. [685-762, 在位 712-756].
(34) 楊貴妃 성은 楊, 이름은 太眞. 唐 玄宗의 貴妃. 楊國忠의 從妹.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 玄宗과 같이 달아나다가 馬嵬驛에서 죽었음.
(35) 息夫人 春秋時代 息侯의 夫人. 姓은 규. 楚가 息國을 멸하고 息규를 楚王의 妾으로 삼으니 息규가 두 아들을 낳고서도 말을 하지 않으므로 楚王이 그 이유를 물은즉「一夫人이 二夫를 섬기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어찌 말을 하오리까」라고 대답하였다고 함. 唐詩「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
(36) 蔡文姬 이름은 琰, 字는 文姬. 漢 蔡邕의 딸. 經史에 능통하고, 또 音律을 잘하였다. 일찌기 衛道介의 妻였는데, 北胡에 잡혀 갔다가 在胡 20년에 두 아이를 낳고 胡가 十八拍을 지었다. 그 胡가 소리가 中原에 들려오니 曹操가 듣고 불쌍히 여겨 千金으로 맞바꾸어 歸漢시켜서 董紀와 함께 藍田에 살게 하였음.
(37) 虞美人 <不須嚬> 註 (30) 참조.
(38) 疑是銀河落九天 瀑布의 장려함이 銀河水가 九萬里長天에서 쏟아지는 듯하다는 비유. 李白<廬山瀑布詩>「日照香려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39) 靑天削出金芙蓉 <鎭國名山> 註 (2) 참조.
(40) 애乃聲 船人이 배를 저을 때「어기여차」하고 부르는 노래 소리. 唐詩「漁翁夜傍西岩宿 曉汲淸湘燃楚竹 烟消日出不見人 애乃一聲山水綠」
(41) 南柯一夢 南柯는 郡名인데 渟于분의 故事에서 나온 것이며, 한때의 헛된 富貴를 이르는 말. <異聞集>「淳于분家居廣陵 宅南有古槐樹 醉臥其下 夢 二使者曰 槐安國王 奉邀 분 隨使入穴中 見榜曰大槐安國 其王曰 吾 南柯郡政事不理 屈卿爲守理之 분至郡 凡二十載 使분歸 遂覺因尋古槐下穴 洞然明朗 可容一榻 有一大蟻 乃王也 又尋一穴 直上南柯卽분所守之郡也」
8. 歷 代 歌
천지광탕(天地廣蕩)하여 고금에 역려(逆旅)되고(1) 광음(光陰)은 거래하여 백대의 과객(過客)이라. 적적한 저 청산(靑山)은 말이 없이 높아 있고 왕왕(汪汪)한 벽강수(碧江水)는 무심히 흘러가니 천고 흥망사(千古興亡史)를 어디가 물어 보리. 하수신후천재명(何須身後
千載名)은(2) 이청련(李靑蓮)(3) 탄식(歎息)이요 불여안전일배주(不如眼前一盃酒)는 장사군(張使君)의(4) 글귀로다. 역대사(歷代事)를 생각하니 거려일몽(거廬一夢)(5) 가소롭다. 반고씨(盤古氏)(6) 그 뉘신고, 천지인(天地人) 삼황시절(三皇時節)(7) 사만 오천 육백년을 덧없이 지냈구나.
유소씨(有巢氏)(8) 지은 집에 수인씨(燧人氏)(9) 화식(火食) 먹고 복희씨(伏羲氏)(10) 맺은 그물 전천(前川)에 고기잡기 신농씨(神農氏)(11) 만든 따부(12) 상평전(上坪田) 갈아 보세. 헌원씨(軒轅氏)(13) 습용간과(習用干戈) 치우(蚩尤)를(14) 잡은 후에 동정장악(洞庭張樂)(15)큰 놀음을 제 뉘라 보았던가. 요(堯)임금의(16) 대장풍류(大章風流)(17) 평장백성(平章百姓) 하올(18)적에 강구(康衢)의(19) 아희(兒희) 노래 노인의 격양가(擊壤歌)라(20). 순(舜)임금(21) 오현금(五絃琴) 남훈전(南薰殿)(22) 달 밝은데 백공가(百工歌)(23) 화답하니 태평가 이 아닌가. 하우씨(夏禹氏)(24) 높은 공덕 구년 홍수 다스릴 제 구용산(九容山)(25) 운화부인(雲和夫人)(26) 금간옥첩(金簡玉牒)(27) 주시거다. 지평천성(地平天成) 도산 도수(導山導水) 고궐성공(告厥成功) 거룩할사 무쌍(無雙)한 걸(桀)의(28) 포학 경궁요대(瓊宮瑤臺)(29) 무슨일고. 매희(妹姬)의(30) 요얼(妖얼)로(31) 초학초재(招虐招災)하단 말가.
탕(湯) 임금의(32) 지덕(至德)으로 하대록(夏臺獄)을(33) 벗어나서 칠년 대한(大旱) 비를 빌 제 상림(桑林)의(34) 신영백모(身영 白茅)(35) 태갑(太甲)이(36) 개과(改過)하고 무정(武丁)에(37) 와 중흥터니 불초손(不肖孫) 주(紂)가(38) 나고 달기(달己)가 생기어서 포락지형(포烙之刑)(39) 남은 앙화(殃禍) 목야(牧野)에(40) 타죽었다. 기산(岐山)에(41) 봉(鳳)이 우니 문왕(文王)(42) 무왕(武王)(43) 나 계시네 예악이 빈빈(斌斌)하고 문물이 욱욱(郁郁)하니 목왕(穆王)(44) 팔준마(八駿馬)(45) 요지연(瑤池宴)에(46) 즐겨 논다. 깁비단 찢는 소리 서산(西山)에 봉화드니 포사(褒사)의(47) 한 번 웃음 왕실이 망하거다. 춘추전국(春秋戰國)(48) 오패(五覇)(49) 사업 다 어찌 형언하리 팔백년 동서주(東西周)가 백예산하(伯예山河)되단(50)말가.
여가자(呂家子)(51) 진황정(秦皇政)이 황제(皇帝)라(52) 자칭하고 만리장성(53) 왼담 안에 아방궁(阿房宮)이(54) 솟았구나. 호시탐탐 높이 앉아 천하를 호령하여 삼신산(三神山)(55) 채약(採藥)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56) 보냈더니 불사약(不死藥)은 아니 오고 사구평대(砂丘平臺)(57) 허황하다. 형산(荊山)의(58) 범이 울고 패택(沛澤)의 용(龍)이(59) 나니 팔년 풍진(風塵) 초한전쟁(楚漢戰爭) 사슴을 뉘 얻은고.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은(60) 신세도 가련하다.
해영(垓營)의(61) 미인이별(美人離別)(62) 오강(烏江)(63) 낙일(落日) 할일 없네. 융준용안(隆準龍顔)(64) 한천자(漢天子)의 사백년 기업(基業)이라. 남궁연(南宮宴)(65) 대풍가(大風歌)에(66) 삼걸(三傑)을(67) 자랑한다. 음학(淫虐)한 여태후(呂太后)야(68) 척부인(戚夫人)이(69) 무슨 죄고 무황제(武皇帝)의(70) 위엄으로 수항성(受降城)(71) 선우대(單于臺)를(72) 다 다녀 돌아오서 백량대(柏梁臺)(73) 승로반(承露盤)이(74)그림 밖에 높았구나.
칠월 칠일 승화전(承華殿)에(75) 서왕모(西王母)(76) 맞아들여 장생술(長生術) 못 배우고 분수(汾水)에 가을 바람 무릉(茂陵)(77) 송백(松栢) 처량(悽凉)하다. 왕망(王莽)의(78) 간흉(姦凶)으로 한실(漢室)이 거의거의 춘릉(79)가기(春陵佳氣) 울울총총(鬱鬱叢叢) 백수진인(白水眞人)(80) 나시겠다. 명장(明章)은(81) 황홀하고 환령(桓靈)의(82) 혼용(昏庸)이라 난세간웅(亂世奸雄) 조아만(曹阿瞞)과(83) 벽안자염(碧眼紫髥) 손중모(孫仲謀)(84) 각거일방(各據一方) 쟁웅(爭雄)할 제 방면대이(方面大耳) 유황숙(劉皇叔)이(85) 관장(關張)과(86) 도원결의(桃園結義)(87) 남양초당(南陽草堂)(88) 찾아가서 제갈선생(諸葛先生)(89) 어수환정(魚水환 情)(90) 삼분천하(三分天下) 겨우 하고 백제성(白帝城)(91) 영안궁(永安宮)에(92) 만사(萬事)
가 창황(蒼黃)이라.
출사표(出師表)(93) 이훈(伊訓) 열명(說命)(94) 만고 영웅 눈물이라. 진대의관(晋代衣冠)(95) 육조(96) 기려(六朝奇麗) 낙화유수(落花流水) 분분하다. 동혼후(東昏侯)(97) 반숙비(潘淑妃)는 보보금련(步步金蓮)(98) 어디 가며 진후주(陳後主)의(99) 장려화(張麗華)는(100) 경양정(景陽井)의(101) 원혼(寃魂)이라 용봉지자(龍鳳之姿) 천일지표(天日之表) 당태종(唐太宗)이(102) 아니신가.
정관지치(貞觀之治)(103) 장(壯)커니와 누덕(累德)을(104) 어이할꼬. 삼십년 측천 황제(則天皇帝)(105) 제재동궁(帝在東宮) 한심(寒心)하다. 풍류천자(風流天子) 이삼랑(李三郞)(106) 해어화(解語花) 양태진(楊太眞)(107) 삼생(三生)의 중한 언약 어찌 서로 만났는가. 부용장(芙蓉帳) 무궁행락(無窮行樂) 장생전(長生殿)(108) 깊은 맹서(盟誓) 어양풍우(漁陽風雨)(109) 북소리에 우의무(羽衣舞)를(110) 파하거든 마외역(馬嵬驛)(111) 생리사별(生離死別) 천지가 망망쿠나. 촉도란(蜀道難)(112) 험한 길에 청노새 또박또박 수록산청(水綠山靑) 조제화락(鳥啼花落) 어찌 아니 슬플소냐.
그리구러 대당천지(大唐天地) 오계풍우(五季風雨)(113) 침침(沈沈)하다. 천도(天道)가 순환하여 송태조(宋太祖)(114) 나시거다. 성자신손(聖子神孫) 태평성치(太平盛治) 화석망(花石網)이(115) 무슨 일꼬 오국성(五國城)(116) 찬바람에 이제(二帝)의(117) 행색(行色)이라 좋을씨고. 서호풍경(西湖風景)(118) 중원(中原)을 잃단 말가. 남송(南宋)이 중흥(中興)하니 훌훌(숙숙)한 백년이라 호원(胡元)의(119) 세계되어 재이(災異)도 분분(紛紛)터니 금화성(金華星)이(120) 하강하사 대명(大明) 태조(太祖)(121) 나시거다.
삼백년 천하태평 요순지치(堯舜之治) 장하더니 어느덧 번복(飜覆)하여 이 세상이 뉘 세상고 열사(烈士)의 탄식이요. 사군자(士君子)의 눈물이라. 아동방(我東邦)(122) 예악 문물 천하에 유명하다. 묘향산(妙香山)(123) 단목(檀木) 아래 단군(檀君)이 나리시고, 기자(箕子)가 동출(東出)하사 교민팔조(敎民八條)하시거다(124). 제일 강산 평양 도읍(平壤都邑) 덕화(德化) 지금 남았구나.
요란한 삼조(三朝) 시절 고구려 백제로다. 신라에 와 통일터니 고려의 왕실기업(王室基業) 송악산(松嶽山)만 남은지라. 아태조(我太祖)(125) 성신문무(聖神文武) 성진(腥塵)을(126) 소탕하고 한양 도읍(漢陽都邑)하시거다. 삼각산(三角山) 숫돌 되고 한강수(漢江水)가 띠
같도록 열성조(列聖朝)의 지인(至仁) 지덕(至德) 곳곳마다 강구연월(康衢烟月)(127) 대대(代代)로 명왕(明王) 성주(聖主) 고기직설(皐夔稷契)(128) 만조정(滿朝廷)에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만만세지무궁(萬萬世之無窮)이라.
【解 說】
이 <역대가(歷代歌)>는 단가로서 종래에 있던 것을 <창악대강(唱樂大綱)>의 저자인 기산(岐山) 박 헌봉(朴憲鳳)에 의해 고쳐지고, 뒤에 우리 나라 역대 제왕(帝王)이 실린 것이다. 또한 <창악대강>의 사설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천지 개벽(天地開闢) 이후 역사가
생긴 것을 낱낱이 섬겼다.
처음에 반고씨(盤古氏)로부터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비롯하여 요(堯)·순(舜)·우(禹)·탕(湯)·주(周)·한(漢)·당(唐)·송(宋)·원(元)·명(明)·청(淸)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골고루 들고 끝에 단군(檀君)·기자(箕子),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들었는데, 결국 인생 무상을 절실히 엮은 노래이다.
註 (1) 逆旅 旅館의 뜻. 李白 <春夜宴桃李園序>「天地者 萬物之逆旅」<莊子>「陽子之宋 宿於逆旅」
(2) 何須身後千載名 지금 먹고 노는 것이 제일이지, 죽은 뒤에는 모두 쓸데없다 뜻. 李白詩「何須身後千載名 不如生前一杯酒」
(3) 李靑蓮 李太白을 말함. 이름은 白, 字는 太白, 號는 靑蓮居士. 唐 玄宗 때의 大詩人. 謫仙이라고 함은 天上에서 罪를 짓고 人間으로 귀양 왔다는 뜻인데, 賀季眞이 白의 仙風道骨이 謫仙人이었다고 한 데서 유래. 또 騎鯨이라고 하는 것은 李白의 死去를 말함이니, 물에 빠져 죽은 것을 고래를 타고 神仙이 되어 올라갔다고 하는 것임. 秦少游 詩「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閒多年」
(4) 張使君 張翰을 말함. <丈夫恨> 註 (2) 참조.
(5) 거廬一夢 거廬는 旅舍라는 뜻. 거廬一夢은 즉 旅舍에서의 허황한 한 꿈. <莊子>「仁義先王之거廬也」
(6) 盤古氏 天地開闢 초에 세상에 제일 먼저 생긴 자. <述異記>「盤古氏 天地萬物之祖也 然則 生物始於 盤古」
(7) 三皇 天皇氏·地皇氏·人皇氏 또는 伏羲氏·神農氏·軒轅氏를 말함.
(8) 有巢氏 上古 때 처음으로 집을 지어 백성에게 거처하는 법을 가르친 帝王. <史要>「構本爲巢 食木實」
(9) 燧人氏 古代의 帝王으로 불을 내어 백성에게 火食함을 가르침. <史要>「始鑽燧 敎人食」
(10) 伏羲氏 중국 古代의 임금 이름. 성은 風. 蛇身人首였고 八卦를 그리고 書契를 만들었음. <十八史略>「始劃八卦 造書契以代結繩之政」
(11) 神農氏 姓은 姜. 人身牛頭며 炎帝라고 일컬음. 伏羲氏 뒤를 이어 뇌거를 창?하고 百草를 맛보아서 醫藥을 마련하고 日中에 設市하여 商去來 賣買法을 이루고 나라를 8?년간 傳承하였음.
(12) 따부 農耕의 道具. 쟁기와 같이 땅과 흙을 파 젖히는 것.
(13) 軒轅氏 성은 公孫 또는 姬姓. 軒轅의 언덕에서 낳았으므로 軒轅氏라 하고, 有態에 國都를 정한 까닭으로 有態氏라 일컬음. 舟車를 創造하매 교통을 편의하게 하였으?, 당시 蚩尤를 쳐서 平定하니 諸侯가 天子로 받드며 神農氏 뒤를 잇게 되었음. 또한 土德의 瑞氣가 있다고 하며, 黃帝로 일컬었음.
(14) 蚩尤 姓은 姜, 炎帝의 後孫. 銅頂鐵額으로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刀劒과 大弩를 만들어 暴虐作亂하므로 黃帝가 指南車를 만들어 탁鹿의 벌판에서 싸우다가 이를 사로잡아 죽였다.
(15) 洞庭張樂 軒轅氏가 洞庭湖에서 風流놀이한 것을 말함. <莊子>「黃帝張樂於 洞庭之上」
(16) 堯임금 <不須嚬> 註 (1) 참조.
(17) 大章 堯大의 樂章名. <通鑑>「堯作大章 一夔足矣」<白虎通>「堯樂日大章 大明天地人之道也」
(18) 平章百姓 平章은 평화와 같은 뜻이니, 백성을 평화로이 살게 한다는 말. <書傳> 「平章百姓」
(19) 康衢 번화한 큰 거리. 堯 임금이 微服으로 民情을 보살피려고 康衢에 나왔을 때 童謠와 老人의 擊壤歌를 들은 옛일. <列子> 仲尼篇「堯 治天下 五十年不識不知 天下治歟 乃微服 遊於康衢 聞童謠元 粒我蒸民 莫非爾極 順帝之則」
(20) 擊壤歌 農夫가 太平을 노래하는 것. <十八史略>「堯乃微服 遊於康衢 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 歌曰」日出而作「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於我哉」
(21) 순임금 <不須嚬> 註 (1) 참조.
(22) 南薰殿 舜임금의 殿閣을 일컬음. 舜:琴操「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가 있으므로 南薰殿이라 이름하였음.
(23) 百工歌 工은 官을 말함. 즉 百官이 和樂하게 부르는 노래. <十八史略>「百工相和而 歌曰 卿雲爛兮 禮漫漫兮 日月光華 旦復旦兮」<書經>「允釐百工」
(24) 夏禹氏 禹는 夏 開國之君이며, 舜을 繼承하였음. 堯代에 治水의 大功을 이루었고, 寅月로 歲首를 하였음.
(25) 九容山 山名. 夏禹氏가 九容山에서 雲和夫人을 만나 玉牒과 金簡을 받아서 治山治水에 成功하였음. <史要>「九容山 遇雲和夫人 乞得 玉牒七讖 蒼水使者 授 金簡玉牒 平水錫玄圭 刻曰 延喜受德 天賜佩 受禪於舜 金德王 都安邑 謂之松桂」
(26) 雲和夫人 仙女의 이름. 前項의 九容山 참조.
(27) 金簡玉牒 夏禹氏가 導山導水 때에 雲和夫人에게서 받은 治山治水의 秘法.
(28) 桀 夏의 末王. 이름은 履癸. 諡號를 桀이라 함은 暴君이란 뜻. 嬖妃 妹姬의 말을 좇아 瓊宮瑤臺 肉山脯林 酒池의 사치를 누리다가 殷湯에게 격멸당하여 南巢에서 죽었음.
(29) 瓊宮瑤臺 玉으로 장식한 宮과 臺. 즉 호화로운 궁궐을 말함. <十八史略>「爲瓊宮瑤臺탄民財」
(30) 妹姬 <丈夫恨> 註 (28) 참조.
(31) 妖蘖 계집이 요망하여 온갖 災禍를 일으킨다는 뜻.
(32) 湯 <不須嚬> 註 (2) 참조.
(33) 夏臺獄 夏國의 獄名. <史記>「桀召湯 囚夏臺 己而得釋」
(34) 桑林 들 이름. 七年大旱 때에 湯이 祈雨하던 곳. <十八史略>「遂齊戒 剪爪斷髮 身영白茅 以身爲犧牲 禱于桑林之野 以六事 自責 言未己 大雨方數千里」
(35) 身영白茅 몸을 白茅에 싼다는 뜻. 成湯이 祈雨祭를 지낼 때 자기가 직접 희생이 도어 하늘에 祭祀하였다 함. (前項 참조)
(36) 太甲 成湯의 孫. 太丁의 子. 卽位 후 너무 不明하여 政事를 잘못하므로 臣下 伊尹이 桐宮으로 추방하였다가 3년 만에 改過하므로 다시 王位에 復位하였다.
(37) 武丁 殷 高宗의 이름. 湯의 後孫. 賢臣 傳說을 얻어 殷을 中興시켰음.
(38) 紂 殷의 末王. 이름은 受, 紂는 그의 諡이며 暴君이라는 뜻. 寵姬 달己의 말을 좇아 象箸玉杯의 奢侈를 일삼고 포烙의 酷刑을 加하여 賢臣을 虐殺하므로 周 武王에게 討伐되었으며, 自焚死亡하였음. <周易>「惟婦言是聽」
(39) 포烙之刑 殷 紂의 酷刑. 숯불 가운데 기름을 바른 구리쇠 기둥을 세워 사람을 그 위에
오르게 하여 火中에 미끄러 떨어져 죽게 하는 刑罰. <史記> 註 引列女傳「膏銅柱 下加之암 令有罪者 行焉輒墮炭中 달己笑 名曰 포烙之刑」
(40) 牧野 陜西省 岐山縣에 있는 山. 周 武王이 伐紂 때에 宣誓하고 商을 멸한 곳. <書傳>「王 朝室 商郊牧野 力誓」
(41) 岐山 陜西省 岐山縣에 있는 山. 周 文王 때에 鳳凰이 와서 울었다 함.
(42) 文王 <不須嚬> 註 (3) 참조.
(43) 武王 <不須嚬> 註 (3) 참조.
(44) 穆王 昭王의 子. 이름은 滿. 나이 50이 지나 왕이 되어 卽位한 지 55년 만에 죽었음. 暮년에는 호탕하게 한평생을 보내고자 천하를 周行하였음.
(45) 八駿馬 周 穆王이 타던 八頭의 良馬. 古詩「八駿日行三萬里 穆王何事不重來」
(46) 瑤池宴 周 穆王이 西王母와 會遊하였다는 곳. 崑崙山에 있음. <集仙傳>「西王母所居宮闕 再龜山崑崙之圃 낭風之苑左帶瑤池 左環翠水」
(47) 褒사 <丈夫恨> 註 (32) 참조.
(48) 春秋戰國 <春秋>는 孔子가 修正削筆한 魯史. 周 平王부터 威烈王에 이르기까지 242년간의 일을 記述한 것. 戰國은 周 威烈王부터 秦始皇 統一天下까지 204년간을 말하는데 , 周 平王 이후에 周室이 衰微하고 諸侯가 强盛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았으므로 春秋戰國時代라 말함.
(49) 五覇 春秋 때의 齊 桓公, 晋 文公, 秦 穆公, 宋 襄王, 楚 莊王을 말함.
(50) 伯예山河 伯예는 伯益을 말함. 秦의 始祖. 伯예山河는 곧 秦나라를 말함.
(51) 呂家子 秦始皇을 말함. 陽翟大賈[大財閥의 商人] 呂不韋가 자기 妾 邯鄲美女가 임신하였음을 알고 秦 莊襄王에게 주었더니 8개월 만에 아들 政을 낳았다. 그러므로 始皇의 實姓은呂氏라고 함.
(52) 皇帝 秦皇 政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德이 三皇을 더불고 功이 五帝에 미친다 하여 皇제라 일컬음. 皇帝란 말은 秦始皇으로부터 시작되었음.
(53) 萬里長城 <不須嚬> 註 (23) 참조.
(54) 阿房宮 <不須嚬> 註 (22) 참조.
(55) 三神山 <不須嚬> 註 (25) 참조.
(56) 童男童女 <不須嚬> 註 (24) 참조.
(57) 砂丘平臺 <不須嚬> 註 (26) 참조.
(58) 荊山의 범 <鴻門宴歌> 註 (6) 참조.
(59) 沛澤의 龍 <鴻門宴歌> 註 (7) 참조.
(60) 楚覇王 <鴻門宴歌> 註 (9) 참조.
(61) 垓營 垓는 安徽省 靈壁縣內에 있는 地名. 漢 高祖가 項羽를 포위한 곳. 營은 ?영.
(62) 美人離別 <不須嚬> 註 (30) 참조.
(63) 烏江 <不須嚬> 註 (31) 참조.
(64) 隆準龍顔 우뚝한 코에 非凡하게 생긴 얼굴. <通監>「劉邦爲人 隆準龍顔 左股?有七十二黑子」
(65) 南宮宴 漢 宮名. 河南 洛陽縣 동쪽에 있음. 漢沛公이 天子가 된 뒤 고향에 돌아가서 父老를 불러 잔치를 베푼 곳.
(66) 大風歌 漢 沛公이 天子가 된 뒤 南宮에서 잔치를 베풀 때 부른 노래. <史記>「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 歸故鄕 安得猛士兮 守四方」
(67) 三傑 漢의 張良·蕭何·韓信.
(68) 呂太后 漢 高祖의 妃. 성은 呂, 이름은 雉.
(69) 戚夫人 漢 高祖의 貴妃. 趙王 如意의 母. 高祖가 죽은 뒤 呂后가 戚夫人의 手足을 끊고 「人체」라고 하였음.
(70) 武皇帝 前漢의 7代王. 儒敎를 國敎로 하여 思想統一을 꾀하고, 中央執權을 강화하였음. 諸侯를 억눌러, 貨幣鑄造權을 國有로 하고, 均輸法·半準法을 시행하는 한편 소금과 쇠의 專賣를 했음. 또 張騫을 중앙 아시아로 파견하여 東西交通路를 열고 匈奴를 구축하였으며, 베트남·衛滿을 멸망시키고 漢西郡을 설치하여 大帝國을 이루어 놓기는 하였으나, 그의 晩 年에는 長期에 걸친 外征의 결과 財政이 악화하고 社會不安이 더했음.
(71) 受降城 現 蒙古 烏喇特旗北에 있음. 漢 武帝가 將軍 公孫敖를 시켜 쌓은 城.
(72) 單于臺 匈奴의 酋長을 單于라 함. 臺는 綏遠縣 歸化城 서쪽에 있음. 당시 武帝가 軍士18만 騎를 움직여 單于臺에 올랐음.
(73) 栢梁臺 漢 武帝가 쌓은 臺. 椽木을 香栢으로 지었으므로 栢梁臺라 함.
(74) 承露盤 <丈夫恨> 註 (6) 참조.
(75) 承華殿 武帝가 西王母를 만나던 殿名.
(76) 西王母 仙女의 이름. 周 穆王과 瑤池에서 會遊하였고 7월 7일에 承華殿에서 武帝와 만나 蟠桃를 주었다고 함. <列女傳>「漢 元封元年 西王母 降武帝殿 進蟠桃七枚於帝」
(77) 茂陵 漢 武帝의 陵. 現 陜西省 與平縣에 있음.
(78) 王莽 성은 王, 이름은 莽. 漢室을 빼앗고 國號를 新이라 일컬었다가 漢 光武帝에게 멸망하였음.
(79) 春陵 湖南省에 있는 地名. 漢 光武帝가 난 곳.
(80) 白水眞人 漢 光武帝가 白水縣에서 起兵하였으므로 白水眞人이라 함. <通鑑>「新莽以劉字 因禁金刀 更鑄錢名曰貨泉 人以其字爲白水眞人 後光武帝竟從白水鄕起兵」
(81) 明章 明은 明帝, 章은 章帝. 漢 光武의 子孫.
(82) 桓靈 桓帝와 靈帝.
(83) 曹阿瞞 성은 曹, 이름은 操, 阿瞞은 小名, 字는 孟德, 漢末의 逆臣으로 魏太祖 武帝가 되었음.
(84) 孫仲謨 이름은 權, 仲謨는 字, 孫堅의 아들. 三國時代 東吳의 主.
(85) 劉皇叔 이름은 備, 字는 玄德. 漢獻帝의 叔行이였으므로 皇叔이라 함. 漢末 諸葛亮의 輔弼을 얻어 蜀을 建國.
(86) 關張 蜀의 명장. 關羽와 張飛.
(87) 桃園結義 劉備·關羽·張飛 3人이 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음.
(88) 南陽草堂 南陽은 舊襄陽의 地名. 現 河南 沁陽縣. 草堂은 諸葛亮의 居室.
(89) 諸葛先生 성은 諸葛, 이름은 亮, 字는 孔明, 諡는 武侯이다. 南陽에서 躬耕하여 八陣圖兵法을 熱達하였음. 劉備의 三顧한 誠意를 갚고자 세상에 나와서 三分天下의 大業을 이루었다. 赤壁戰에서 東南風을 빌고 中原討伐 때는 木牛流馬를 창조하였다.
(90) 魚水환情 君臣間에 서로 좋아함이 고기가 물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뜻. <蜀誌>「先主曰 孤之有孔明 如魚之有水」
(91) 白帝城 現 四川省 夔州府에 있는 城明. <元和郡國誌>「公孫述 至魚腹 有白虎 出井中 因號魚腹 爲白帝城」
(92) 永安宮 白帝城에 있는 宮. 蜀帝 昭烈皇帝가 죽은 곳.
(93) 出師表 諸葛亮의 蜀 昭烈皇帝의 아들인 後主 劉禪에게 魏를 征伐하려고 出師함을 이르는 글월. 萬古歷代에 爲國盡忠의 표본이 될 수 있는 前後表文의 二篇임.
(94) 伊訓說命 <書經>의 篇名. 伊訓은 伊尹이 太甲에게 가르친 것. 說命(열명)은 傅說(부열)이 武丁에게 명령한 것을 말함.
(95) 晋代衣冠 晋代의 仕族을 말함.
(96) 六朝 吳(孫權)·東晋(懷帝 江東에 遷都)·宋(劉祐)·齊(蕭道成)·梁(蕭衍)·陳(陳覇先) 등 六國. 혹은 南北朝時代라고도 함.
(97) 東昏侯 성은 蕭, 이름은 寶卷, 字는 智藏. 齊 明帝의 세째 아들. 在位 2년에 暴虐無道하므로 王位에서 쫓겨나 東昏侯가 되었음.
(98) 潘淑妃의 步步金蓮 潘淑妃는 齊 東昏侯의 妃. 金으로 蓮花를 만들어 놓고 淑妃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고, 이것을 步步生蓮花라 하였음.
(99) 陳後主 이름은 叔寶, 宣帝의 子. 荒淫無道하여 陽春 結綺 望山 등 세 개의 樓閣을 짓고 妃嬪·狎客들과 놀이하다가 隋 文帝에게 망하였음.
(100) 張麗花 陳 後主의 貴妃. 才色이 絶美하여 後主가 늘 무릎 위에 앉혀 놓고 國事를 같이 議決하였다. 陳이 망할 때 後主와 함께 景陽井으로 들어가니 隋軍이 잡아 내어 淸溪中에서 죽였음.
(101) 景陽井 陳後主 宮中에 있던 井名.
(102) 唐太宗 唐 高祖이 次子. 이름은 世民. 高祖를 도와서 唐을 創業하였음.
(103) 貞觀之治 貞觀은 唐 太宗의 年號. 治는 太宗이 善政하여 천하가 태평함을 말한 것. 太宗이 蝗災가 심함을 보고 蝗충[메뚜기]을 잡아먹으며 하는 말이「차라리 내 肝을 먹을지언정 백성들의 양식은 먹지 마라. 나의 얼굴은 야위어져도 天下와 萬百姓은 살찌리라」하였음.
(104) 累德 더러운 德(다음 항 則天 참조).
(105) 則天 성은 武, 이름은 , 諡는 則天. 唐 太宗의 才人. 太宗이 죽은 뒤 削髮하고 중이 되었다가 高宗 때에 다시 머리를 기르고 宮中에 들어가 高宗의 皇后가 되었다. 才色을 兼備했음. 高宗이 죽은 뒤에 中宗·睿宗을 폐하고 690년 스스로 帝位에 올라 國號를 周로 고침. 佛敎를 보호했으며, 옛 周나라의 制度를 따르는 則天文字를 만들어 쓰게 했음. 中國史上 단 한사람의 女帝였으며, 후에 宰相 張柬之 등에 의하여 廢位됨. 則天武后.
(106) 李三郞 唐 玄宗이 中宗의 셋째 아들이므로 三郞이라 함.
(107) 解語花 楊太眞 楊은 성, 太眞은 이름. 唐 玄宗의 貴妃. 姿色이 꽃과 같으므로 玄宗이 모란을 보는 자리에서 貴妃를 가리켜 이는 나의 말하는 꽃이라 하였음.
(108) 長生殿 唐 淸華宮中에 있는 殿名. 白樂天 <長恨歌>「七月七夕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109) 漁陽風雨 漁陽은 地名. 直隸省 계縣 平谷 등지. 風雨는 兵亂을 말함. 즉 安祿山이 唐 玄宗의 寵愛를 받는 楊貴妃와 密通하고 范陽에서 亂을 일으켜 漁陽과 호응하고 洛陽을 함락하여 長安으로 침입할 때 玄宗은 西蜀으로 피난하였음.
(110) 羽衣舞 神仙의 춤. 唐 開元 中秋夜에 羅公遠이 玄宗을 모시고 宮中에서 翫月하다가 公遠이 지팡이를 공중으로 던지니 이 지팡이가 큰 다리로 변하며 그 色이 銀과 같았다. 玄宗이 함께 올라 數里를 가니 精光이 앞에 어리고 寒氣가 침입하였으며, 大城闕에 이르니 수백명의 仙女가 흰띠와 구슬소매로 黃庭에서 춤을 추었다. 玄宗이 물으니 公遠이「이곳은 ?宮이며 춤이름은 霓裳羽衣舞」라 대답하였다. 玄宗이 돌아와 이를 宮女에게 가르쳤다고 함.
(111) 馬嵬驛 陜西省 興平縣 서쪽 25리에 있음. 一名 馬嵬鎭 또는 馬嵬堡라고도 함. 明皇이 安祿山의 亂을 피하여 蜀으로 가는 도중 六軍이 떠나지 않고 楊貴妃 죽이기를 强請하므로 부득이 貴妃를 죽인 곳.
(112) 蜀道難 西蜀은 山이 높고 험하며 棧道가 없이는 통행할 수 없으므로 험한 산길을 말할 때 蜀道難이라 함. 李白 詩「噫우噫危乎高哉 蜀道之難 難於上靑天」
(113) 五季風雨 唐 후에 일어난 後梁·後唐·後晋·後漢·後周 등 五國의 戰亂 때를 말함. <宋史>「唐室旣衰 五季迭興 五十餘年 更易八姓」
(114) 宋太祖 姓은 趙, 이름은 匡胤. 宋의 創業主.
(115) 花石網 宋 徽宗이 珍奇한 물건을 좋아하며 특히 奇花와 怪石을 偏愛하므로 蔡京이 徽宗의 뜻을 맞추려고 浙中珍異를 구하며, 축로[배]에 싣고 淮水 변水에 연달아 운반하였으므로 그 光景을 花石網이라 불렀고, 그 花石網의 弊風은 당시 큰 소란을 일으켰음.
(116) 五國城 現 吉林省 동북부 依蘭臨江 부근에 있는 城名. 宋 徽宗의 죽은 곳. 遼 때 이 地方이 다섯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으므로 五國이라 하였음. 一說에 의하면 五國城은 雲頭山城을 말하며 咸鏡北道 會寧 서쪽, 지금 吉林城 延吉縣 지방임. 城外에 徽宗의 무덤이 있음.
(117) 二帝 宋의 徽宗과 欽宗을 말함. 金人에게 포로가 되어 金에서 죽었음.
(118) 西湖 安徽省 蘇州에 있는 湖名. 또 杭州 錢塘湖도 西湖라 함. 兩湖風景이 다 天下第一이라고 함.
(119) 胡元 蒙古國을 말함. 始祖는 각特氏. 宋 寧宗 때 鐵木眞이 幹難河上에서 帝라 自稱하여 號를 成吉思汗이라 하였고, 그 아들 忽必烈이 國號를 元이라 일컬었고 宋을 멸하여 中國을 통일하고 燕京에 도읍하였다. 그때 疆域이 東으로 東海, 南으로 安南, 北으로 西伯利亞. 西北에는 歐洲까지 이르러 境域의 광대함이 歷代에 제일이었음.
(120) 金華星 金星을 말함. <朱子 註>「啓明長庚星 皆金星也」
(121) 大明太祖 明은 國號. 太祖의 성은 朱, 이름은 元璋임.
(122) 我東邦 우리 나라를 말함. 즉 中國의 동쪽에 있다는 뜻.
(123) 妙香山 平安北道 寧邊郡에 있는 山 이름. 이 山에 들어가면 묘한 香氣가 난다고 하여 妙香山이라 함.
(124) 敎民八條 古朝鮮 때에 社會의 安寧秩序를 유지하는 不文禁約이 행하여졌는데, 이것을 箕子의 八條敎라 함. 八條의 全文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다만 그 가운데 三條만이 <漢書地理志>에 傳記되어 있음.
其一「相殺 以當時償殺」
其二「相傷 以穀償」
其三「相盜者 男沒入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五十萬」
(125) 我太祖 朝鮮을 開國한 創業主. 이름은 成桂. 뒤에 旦으로 改名하였음.
(126) 腥塵 세상은 어지럽고 殺戮이 심하며 피비린내 나는 티끌과 같다는 뜻.
(127) 康衢烟月 태평한 시대의 번화한 거리의 평화스러운 모습.
(128) 皐夔稷契 堯代 네 사람의 賢臣. 우리 나라 朝臣의 착실함이 堯代 賢臣과 같다는 비유.
9. 釣魚換酒(1)
세상 공명(世上功名) 부운(浮雲)이라 강호어옹(江湖漁翁)되오리라. 일엽편주(一葉片舟)흘리저어 임기소지(任其所之)하올(2) 적에 만경창파(萬頃蒼波) 넓은 물에 호호탕탕(浩浩蕩蕩)떠나간다. 주경(舟輕)하니 산사주(山似走)요 파급(波急)하니 야여주(野如走)라. 은린옥척(銀鱗玉尺)(3) 펄펄 뛰고 백구편편(白鷗翩翩) 비꼈는데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좌우 산천 살펴보니 경개무궁(景槪無窮) 좋을씨고 격안전촌(隔岸前村) 양삼가(兩三家)에 저녁 연기 일어나고 반조입강번석벽(返照入江번石壁)에(4) 거울낯을 열었에라.
언덕 위에 초동(樵童)이요 석벽 아래 어옹(漁翁)이라 창랑곡(滄浪曲)(5) 반겨 듣고 소리쫓아 내려가니 엄릉탄(嚴陵灘)에 다다랐다. 경치 과연 장할씨고 천척단애(千尺斷崖) 높은 곳에 창송녹죽(蒼松綠竹) 푸르렀고 칠리청탄(七里淸灘) 고요한데 쌍쌍(雙雙) 오리 높이 떴다. 일간어옹(一간漁翁) 흘림낚시 거구세린(巨口細鱗) 낚아 내어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
케 먹고 맹서한다.
오호라 세상사 여몽(如夢)이라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하니(6) 호리건곤(壺裏乾坤) 되었구나(7). 도착접리(倒着接리)(8) 흥을 겨워 노를 저어 노래하니 구맥홍진(九陌紅塵)(9) 티끌 소식 범범창파(泛泛滄波) 내 알소냐. 일락황혼(日落黃昏) 해 저물어 월출동령(月出
東嶺) 솟아 온다. 봉창노저(봉窓蘆底)(10) 어디메뇨 배를 저어 돌아갈 제 선압수중(船壓水中) 천여월(天與月)하니(11) 어언간작(於焉間作) 천상인(天上人)은 무궁하다. 이내 흥취 세상 알까 두려하노라.
【解 說】
이 <조어환주(釣魚換酒)>는 당시(唐詩)에 있는「만경창파욕모천(萬頃滄波欲暮天)에 천어환주유교변(穿魚換酒柳橋邊)을 객래문아흥망사(客來問我興亡事)커늘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一船)이라」라는 글에서 딴 것이다.
이 단가는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서도 많이 나온다. 즉 청풍서래(淸風徐來)라든지 거포준이상속(擧匏樽以相屬)이란 대문도 <적벽부(赤壁賦)>의 글이다. 그리고 단가 <운담풍경(雲淡風輕)>에서도 더러 인용한 것이 엿보인다.
여러 가지 단가에서 멋진 대문만 조금씩 떼다가 만든 흔적이 보이는데, 경치를 읊고 또한 세상을 원망하고 허무함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 나오는 사설에는 <죽장망혜(竹杖芒鞋)>서도 발췌(拔萃)한 것이 엿보인다.
註 (1) 釣魚換酒 고기를 낚아 술과 바꾸어 먹는다는 말. 唐詩「萬頃滄波欲暮天 穿魚換酒柳 邊」
(2) 任其所之 배가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는 말.
(3) 銀鱗玉尺 <雲淡風輕> 註 (4) 참조.
(4) 返照入江번石壁 물에 비친 햇빛이 石壁에 反照되었다는 뜻. 杜甫 詩「返照入江번石壁 歸雲擁樹失山村」
(5) 滄浪曲 <竹杖芒鞋> 註 (8) 참조.
(6) 擧匏樽以相屬 표주박으로 술을 떠서 서로 권하는 것. <前赤壁賦>「駕一葉之扁舟 擧匏樽以相屬」
(7) 壺裏乾坤 술에 취하여 세상을 다 잊어버리고 다만 술 항아리 속에 한 세계를 이룬다는 뜻. <柴桑賦>「忘世間之甲子 醉壺裏之乾坤」
(8) 倒着接리 倒着은 비스듬히 쓰는 것, 接리는 흰 모자. 즉 모자를 비스듬히 쓴다는 뜻. 李白의 <裏陽歌>「落日欲沒峴山西 倒着接리 花下迷」
(9) 九陌紅塵 九陌은 漢의 長安城中에 있던 九條의 大路, 紅塵은 대로에서 이는 티끌. 즉 번화하고 시끄러운 세상 일을 말함.
(10) 봉窓 배의 창문. 떼를 베어서 배의 비를 가리고 창구멍을 낸 것.
(11) 船壓水中天與月 달이 비치는 물 위에 배가 뜬 광경을 말함. 賈島 詩「탁穿波底月 船壓水中天」
10. 探 景 歌
천생아재(天生我才) 쓸 곳 없다. 세상 공명 하직하니 인간 영화 몽중사(夢中事)라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백이숙제(伯夷叔齊)(1) 보려 하고 수양산(首陽山)(2) 들어갈 제 운무심이 출수(雲無心而出峀)하고(3) 조권비이지환(鳥倦飛而知還)이라 벽산(碧山)이 무어(無語)하니 뉘더러 물어 볼까.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이언만 운심부지처(雲深不知處)라(4) 산형(山形)를 둘러 보니 경개 절승하여 충암 절벽은 반공(半空)에 솟았는데 낙락 장송은 임자 없이 푸르렀다.
단단명월(團團明月)은 반공에 걸려 있고 반야청풍(半夜淸風) 쇄옥성(碎玉聲)은 나의 흥을 돋우는 듯 적막 산중 화작작(花灼灼) 너 홀로 한가하다. 좌수(左手)에 삼절죽장(三節竹杖) 우수(右手)에 두견화로 만취송정(晩翠松亭) 홀로 앉아 손흥공(孫興公)의(5) 산수부(山水賦)를 장단귀(長短句)로 읊은 후에 굴원(屈原)을(6) 생각하며 강호(江湖)로 내려가니, 멱라수심(汨羅水深)이요 해당화(海棠花) 반개(半開)로다. 송천강수(松川江水) 흐르나니 물결이요 뛰노느니 은린(銀鱗)이라. 도연명(陶淵明)(7) 오류촌(五柳村)과(8) 육처사(陸處士)(9) 버들가지 교태 내는 저 황앵(黃鶯)아 삼촌(三春)이 옮겨 가니 사월지청화(四月之淸和)로다.
구십춘광(九十春光)(10) 과거(過去) 후에 사월팔일(四月八日) 자랑 마라. 추풍(秋風)에 기러기는 소상동정(瀟湘洞庭)(11) 모여들고 적벽강(赤壁江)(12) 추야월(秋夜月)은 소자첨(蘇子瞻)이(13) 놀았어라. 강태공(姜太公)(14) 낚던 낚대 엄자릉(嚴子陵)의(15) 긴줄 매어 범려선(范려船)(16) 빌어 타고 장한(張翰)(17) 찾아 강동(江東) 가니 요지일월(堯之日月) 밝아 있고 순지건곤(舜之乾坤)(18) 흘러간다. 왕발(王勃)이(19) 조사(早死)하고 소동파(蘇東坡)(20) 늙어죽고 동방삭(東方朔)(21) 장생(長生)하니 명지장단(命之長短) 천부(天賦)로다.
고왕금래 빈부귀(貧富貴)와 성쇠흥망(盛衰興亡)이 아니냐 천태산(天台山)(22) 마고선녀(麻姑仙女)(23) 금강초(金剛草) 구하려고 옥폭동(玉瀑洞) 들어갈 제 어디서 옥소성(玉簫聲)이유의(有意)하게 들려온가. 고조(古調)를 수자애(誰自愛)나 금인(今人)이 다불탄(多不彈)을 옛사람의 높은 곡조 이제 전혀 알 리 없네. 남양(南陽)의 밭갈기와(24) 검은 송아지 채치기는 고인군자(古人君子) 할 바이요 착정음(鑿井飮) 경전식(耕田食)할(25) 제 산도미(산도미) 밥을 짖고 낚은 고기 회(膾)를 쳐 인호상이자작(引壺觴而自酌)하니(26) 오늘 나의 흥취로다. 아마도 우리인생 일장춘몽인가 하노라.
【解 說】
이 <탐경가(探景歌)>는 일명 <일장춘몽>이라고도 하는 단가이다. 종래의 단가 사설에다 조금 더 추가했을 뿐 별로 다른 것이 나오지 않는다. 역시 은일(隱逸)을 숭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위주로 하는 형식을 버리지 못한다. 이것도 천생아재(天生我才) 쓸 데 없어 세상 공명 하직하니 인간 영화 꿈 같다 하고 경치 따라 탐경(探景)하는 투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손흥공(孫興公)의 <산수부(山水賦)>등의 글귀도 나오며 육처사(陸處士)·소자첨(蘇子瞻)·강태공(姜太公)·동방삭 등의 인물들을 나열했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무런 지향과 목표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는 비유의 뜻이다. 아무리 부귀 영화를 누려 봐도 결국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註
(1) 伯夷叔齊 <不須嚬> 註 (15) 참조.
(2) 首陽山 山西省에 있는 山名. 伯夷·叔齊가 義를 지켜 餓死한 곳. 一名 首山·雷首山.
(3) 雲無心而出峀 구름은 아무 생각없이 山 돌구멍에서 나온다는 말. 사람이 어떤 指向과 목표 없이 出世하였다는 비유의 뜻. 陶潛 <歸去來辭>「雲無心而出峀 鳥倦飛而知還」
(4)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반드시 이 山 속에 있겠지마는 구름이 깊어서 간 곳을 알지 못하겠다는 뜻. 당시 <訪隱者不遇>「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5) 孫興公 이름은 綽. 그가 지은 <山水賦>를 范榮期가 보고「땅에 던지면 金石聲이 난다」고 칭찬하였다.
(6) 屈原 <不須嚬> 註 (12) 참조.
(7) 陶淵明 字는 元亮, 諡는 靖節. 晋 심陽人. 侃의 曾孫. 詩文에 능함. 晋이 망하려 할 때 벼슬을 버리고 鄕里에 은퇴하여 그 문앞에 五柳를 심어서 自號五柳라 하고 東籬下에 菊花를 심어 사랑하였다. 晋이 망하매「潛」으로 改名하였음.
(8) 五柳村 陶淵明이 문앞에 五柳를 심으매 그 마을을 五柳村이라 함.
(9) 陸處士 이름은 龜蒙, 字는 魯望. 松江東里에 살아서 號를 江湖散人이라 하고 天隨子 甫里先生이라고도 함. 唐詩人. 나라에서 高士로 대우하며, 불러도 가지 않고 언제나 茶조 筆床釣具 등을 배에 싣고 江湖에 왕래하며 皮日休와 羅隱으로 더불어 매일 벗을 삼았다. 著書에는 <杞菊賦>가 있음.
(10) 九十春光 봄 석달(正·二·三月)이 90일이므로 九十春光이라 함.
(11) 瀟湘洞庭 瀟湘江과 洞庭湖를 말함.
(12) 赤壁江 赤壁은 山名. 赤壁江은 曺操의 百萬大軍이 周瑜에게 패한 곳. 원래 赤壁의 뜻은 세 가지가 있으며, 다 湖北省에 있음. 그 하나는 嘉魚縣 東北江邊에 있음. <水經?> 「江水石逕赤壁山」즉 이곳이 赤壁의 激戰地. 그 둘은 黃岡城 밖에 있으며 赤壁磯라고도 함. 일찍이蘇軾이 이곳에서 놀았으며, 一義의 赤壁을 상상하여 <前後赤壁賦>를 지었다. 그 셋은 武昌縣 70리에 있는 赤磯 또는 赤圻라는 곳임.
(13) 蘇子瞻 이름은 軾, 字는 子瞻, 號는 東坡, 諡는 文忠, 宋 哲宗 때 益州에서 났으며, 詩 文으로 유명하고 經史에 博通하여 韓退之 이후 文章大家의 一人者임. <東坡全集> 150卷이 있으며, 특히 前後 赤壁賦는 널리 전하여 있음.
(14) 姜太公 <不須嚬> 註 (6) 참조.
(15) 嚴子陵 <竹杖芒鞋> 註 (9) 참조.
(16) 范려船 <丈夫恨> 註 (22) 참조.
(17) 張翰 <丈夫恨> 註 (20) 참조.
(18) 堯之日月 舜之乾坤 <不須嚬> 註 (1) 참조.
(19) 王勃 唐의 詩人, 字는 子安. 初唐四傑 중의 한 사람. <騰王閣序>를 지었음. 29세에 죽었음.
(20) 蘇東坡 註 (13) 참조.
(21) 東方朔 <不須嚬> 註 (43) 참조.
(22) 天台山 浙江省 臺州 天臺縣에 있는 山. 一名 桐栢山이라 함. <道書>「是山 上應台星 周圍八百里 高 三萬八千丈 上有 瓊樹玉闕 碧水泉 仙物 畢具」
(23) 麻姑仙女 仙女의 이름. <神仙傳>「麻姑手爪 不如人爪形 皆似鳥爪」<蔡心經> 중 私言「若背大痒時 得此以爬背 當佳也」李白 詩「麻姑搔背指爪輕」
(24) 南陽의 밭 <歷代歌> 註 (101) 참조.
(25) 鑿井飮 耕田食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는다는 말.
(26) 引壺觴而自酌 <丈夫恨> 註 (7) 참조.
11. 瀟湘八景
산악(山嶽)이 잠형(潛形)하고(1)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하니 수면에 듣는 소리 천병만마(千兵萬馬) 서로 맞아 철기도창(鐵騎刀槍)이었는(2) 듯 처마 끝에 급한 형세 백절폭포(百折瀑布) 쏘아 있고 대수풀 흩뿌릴 제 황영(皇英)의(3) 깊은 한(恨)을 잎잎이 호소하니 소상야우(瀟湘夜雨)라(4) 하는 데요.
칠백평호(七百平湖)(5) 맑은 물은 상하천광(上下天光) 푸르렀다. 얼음바퀴(6) 문득 솟아 중천에 배회하니 계궁(桂宮)(7) 항아(姮娥)(8) 단청(丹靑)하고 새 거울을 열었는데 적막한 어룡(魚龍)들은 세(勢)를 얻어 출몰하고 풍림(楓林)에 귀아(歸鴉)들은 빛을 놀라 사라지니, 동정추월(洞庭秋月)(9) 이 아니냐.
연파만경(烟波萬頃)은 하늘에 닿았는데 오고 가는 상고선(商賈船)은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 감는 소리 보아 알든 못하여도 다만 앞에 섰던 산이 문득 뒤로 옮아가니 원포귀범(遠浦歸帆)(10) 이 아니냐.
수벽사명양안태(水碧沙明兩岸苔)에 불승청원각비래(不勝淸怨却飛來)라(11) 날아오는 저 기러기 갈순(葛筍) 하나 입에 물고(12) 일점이점(一點二點) 점점마다 행렬지어 떨어지니 평사낙안(平沙落雁)(13) 이 아니냐, 격안전촌(隔岸前村) 양삼가(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일고 파조귀래(罷釣歸來)(14) 배를 매고 유교변(柳橋邊)에 술을 산 후 애내성(애乃聲)(15) 부르면서 흥을 겨워 비겼으니 소림(疎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설워 울고 벽파(碧波)에 뛰는 고기 비낀 볕 맞아 노니 어촌낙조(漁村落照)(16) 이 아니냐.
천지 자욱하여 분분비비(紛紛비비) 나리는 양 분접(紛蝶)이 다투는 듯 유서(柳絮)(17) 전광(顚狂)한(18) 듯 위곡(委曲)한(19) 늙은 가지 옥룡(玉龍)이(20) 서리었고 기괴한 성낸 바위염호(鹽虎)(21) 엎쳤는 듯 강산이 변화하여 은세계(銀世界)를 이뤘으니 강천모설(江天暮雪)(22) 아니냐.
산천에 싸인 안개 무르녹아 빚어 내니 청담(淸淡)한 새 얼굴은 가는 구름 속에 있고 진천(秦川)에(23) 고운 계집 깁비단 씻어 건듯 발 밖에 기음저서 취적적(翠滴滴) 전비비(轉비비)하니 산시청람(山市晴嵐)을(24) 구경하고. 만리청산(萬里靑山)이요 일편고성(一片孤城)이라 달 떨어지자 가마귀 까욱까욱 서리 가득한 하늘에 난데없는 쇠북 소리 객선(客船)에 뎅뎅 떨어지니 한사만종(寒寺晩鍾)(25) 이 아니냐.
【解 說】
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의 유명한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쪽 언덕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모이는 곳에 있는 여덟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즉, 소상야우(瀟湘夜雨)·동정추월(洞庭秋月)·원포귀범(遠浦歸帆)·평사낙안(平沙落雁)·어촌낙조(漁村落照)·강천모설(江天暮雪)·산시청람(山市晴嵐)·한사만종(寒寺晩鍾)의 팔경(八景)이다.
그런데 이는 문서마다 각각 달라 황릉애연(黃陵哀然)을 넣은 데도 있다. 즉 한사만종 대신에「상수(湘水)로 울고 가니 수운(愁雲)이 적막하고, 황릉으로 울고 가니 옛 사당이 황량하다. 남순황제(南巡皇帝) 혼이라도 응당히 서르려든 새소리 눈물지니 황릉애연(黃陵哀然)이 아니냐」라고 한 것 등이다.
註
(1) 山嶽이 潛形 山嶽이 雲霧중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는 뜻. 范仲淹 <岳陽樓記>「陰風怒號 濁浪排空 日星隱耀 山嶽潛形」
(2) 鐵騎刀槍 鐵甲·車馬·칼·창을 말함. 고요한 밤에 暴雨 쏟아지는 소리의 形容을 묘사한 말. 白樂天 <琵琶行>「銀甁乍破水漿병 鐵騎突出刀槍嗚」
(3) 皇英 堯의 두 딸, 舜의 二妃 娥皇·女英을 말함. 舜帝가 南巡狩하다가 蒼梧에서 죽으니 그 二妃 娥皇·女英이 슬피 울어 뿌린 눈물이 湘竹에 떨어져 斑點의 대가 되었다 함. 李白 詩「蒼梧山崩湘水絶 竹上之淚乃可滅」
(4) 瀟湘夜雨 瀟湘八景의 하나.
(5) 七百平湖 洞庭湖를 말함. 湖南省內에 있는 湖水名. 杜甫 詩「昔聞洞庭水 今?岳陽樓」
(6) 얼음바퀴 달이 얼음같이 맑고 바퀴같이 둥글다는 뜻. 蘇軾. 詩「雪峰缺處涌??」
(7) 桂宮 달 안에 있는 宮名. 그 안에는 桂樹가 들어 있다 함.
(8) 姮娥 嫦娥라고도 함. 夏代 諸侯 有窮後예의 妻. 不死藥을 훔쳐 月宮으로 도주하여 月精이 되었다 함. <淮南子>「예請不死之藥於西王母 姮娥竊之奔月宮」
(9) 洞庭秋月 瀟湘八景의 하나.
(10) 遠浦歸帆 瀟湘八景의 하나.
(11) 水碧沙明兩岸苔 不勝淸怨却飛來 錢起歸雁詩의 한 귀절. 물은 푸르고 모래는 밝은데 江 양언덕에는 이끼가 끼어 있고 기러기는 淸怨을 못 이겨 문득 날아온다는 뜻. <錢起歸雁詩>「瀟湘何事等閑回 水碧沙明兩岸苔 二十五絃彈夜月 不勝淸怨却飛來」
(12) 갈순 하나 입에 물고 기러기가 날을 때에 갈대를 입에 무는 것을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미리 방비하는 것임. <周易>「鴻鳴水國 飛必舍蘆」
(13) 平沙落雁 瀟湘八景의 하나.
(14) 罷釣歸來 고기낚기를 그만두고 돌아온다는 뜻. 唐詩「罷釣歸來不繫船 江村月落正堪眠 縱然一夜風吹去 只在蘆花淺水邊」
(15) 애乃聲 <丈夫恨> 註 (40) 참조.
(16) 漁村落照 瀟湘八景의 하나.
(17) 柳絮 버들강아지. <世說> 晋謝太傳 寒雪日內集日「撒鹽公中差可擬」(兄女道蘊曰)「未若柳絮因風起」
(18) 顚狂 미친 듯이 아무 질정이 없다는 말. 唐 杜子美 詩「顚狂柳絮隨風舞 輕薄桃花逐水流」
(19) 委曲 꼬불꼬불한 모양
(20) 玉龍 눈이 쌓인 나뭇가지를 말함. 唐澄雪 詩「雪松偃蹇玉龍寒」
(21) 鹽虎 바위에 눈이 덮여서 흰 호랑이와 같다는 뜻. 宋 韓琦雪 詩「危石盖深鹽虎伏 老枝更重玉龍寒」
(22) 江天暮雪 瀟湘八景의 하나.
(23) 秦川 陜西·甘肅 兩省 안에 있는 地名. 李白 詩「機中織錦秦川女 碧沙如烟隔窓語 情思초怨憶遠人 獨宿空房淚如雨」
(24) 山市晴嵐 瀟湘八景의 하나.
(25) 寒寺晩鍾 瀟湘八景의 하나. 寒山寺의 늦게 치는 쇠북 소리. 江蘇省 吳縣 서쪽 10리에 있음. 唐張繼 <楓橋夜泊詩>「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12. 月 齡 歌(달거리)
하사월(夏四月) 초파일(初八日)(1) 남풍지훈혜(南風之薰兮)하고 해오민지온혜(解吾民之온兮)로다(2). 삼각산 제일봉에 봉황 앉아 춤을 추고 한강수 깊은 물에 하도용마(河圖龍馬)(3) 나단 말가. 백공상화(百工相和) 경성가(景星歌)를(4) 오늘이야 알리로다.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태평성대 이 아닌가. 만사(萬事) 인간 저문 날에 소년행락(少年行樂) 얼마하리. 타기황앵(打起黃鶯) 아희들아 막교지상(莫敎之上)(5) 원치 마라. 황금 갑옷(6) 떨쳐 입고 세류영(細柳營)(7) 넘어들어 환우성(喚友聲)하는(8) 소리 겨우 든 잠 깨어 보니 장안만호(長安萬戶) 등(燈)을 달아 산호만세(山呼萬歲)부르는데, 그달 그믐 다 보내고.
오월 단오일(9)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요 일지지(日遲遲) 창외(窓外)하여 창창(蒼蒼)한 수풀 속에 백설(百舌)이(10) 자랐구나. 시재시재(時哉時哉) 성언(聖言)이요, 산량자치(山梁雌雉)(11) 나는구나. 광풍제월(光風霽月)(12) 넓은 천지 연비어약(鳶飛魚躍)(13) 노는구나. 백구(白鷗)야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성상(聖上)이 버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강상(江上)에 터를 닦아 구목위소(構木爲巢)한 연후에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할까. 일촌간장(一寸肝腸)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뿐이로다. 옥창앵도(玉窓櫻桃)(14) 붉었으니 원정부지(怨征夫之) 이별이라 송백수양(松栢垂楊) 푸른 가지 높다랗게 그네 매고 녹의홍상(綠衣紅裳) 미인들은 오락가락 추천(추韆)을(15)하는데 우리 벗님은 어듸로 가고 단오 시절을 모르는가. 그달 그믐 다 지내고.
유월이라 유두(流頭)날(16) 건곤(乾坤)은 유의(有意)하고 양신(良辰)이(17) 생겼에라. 홍로유금(烘爐流金)되었으니(18) 나도 미리 피서(避暑)하여 어디로 가잔 말가. 도연명(陶淵明) 천추(千秋) 후에 만고 강산 묻혔에라. 죽장 짚고 망혜(芒鞋) 신어 천리 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다.
여산(廬山)이(19) 여기로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은 옛말로 들었더니 의시은하낙구천(疑是銀河落九天)은 과연 헛말 아니로다. 기산(箕山)을(20) 넘어 영수(潁水)로 내려가니 허유(許由)는 어찌하여 팔걷고 귀를 씻고 소부(巢父)는(21) 무삼 일로 소고삐를 거스렸노. 창랑일곡(滄浪一曲) 반겨 듣고 소리 좇아 내려가니 엄릉탄(嚴陵灘)(22) 여울물에 고기 낚는 어옹(漁翁) 하나 양구(羊구)는(23) 무삼 일로 벗을 줄을 모르는고. 세인(世人) 기군평(棄君平)하니 미재(美哉)라 군평(君平) 역기세(亦棄世)라 홍산곡(黃山谷)(24) 돌아드니 죽림칠현(竹林七賢)(25) 모였에라.
영척(영戚)은 소를 타고, 맹호연(孟浩然)(26) 나귀 타고 두목지(杜牧之)(27) 본 연후 백낙천(白樂天) 찾아가니 여동빈(呂洞賓)은 사슴타고 장건(張騫)은 승사(乘사)로다(28). 와룡강상(臥龍崗上)(29) 초당중(草堂中)에 백우선(白羽扇)(30) 손에 쥐고 학창의(鶴창衣) 흑대(黑帶)로다. 팔진도(八陣圖) 축지법(縮地法)과(31) 손오병서(孫吳兵書)를(32) 흉중에 감추우고 초당(草堂)에 조을며 대몽시(大夢詩)를(33) 읊는구나. 물외협경(物外狹逕)(34) 다 버리고 탄탄대로(坦坦大路)로 내려가 문수(汶水)의(35) 배를 타고 이천(伊川)으로 흘러저어 명도(明道)께(36) 길을 물어 염계(염溪)로 내려가서 회암(晦菴)에(36) 들어서니 성리대전(性理大全)(37) 가례책(家禮冊)을(38) 좌우에 늘어 놓고 사서삼경(四書三經)(38) 예기춘추(禮記春秋)(39) 집주(集註)를(39) 내시니 호걸지풍(豪傑之風)이요 성현지학(聖賢之學)이로다.
고래천지(古來天地) 기천년(幾千年)고 금성옥진(金聲玉振)이(39) 여기로다. 강상풍경(江上風景) 매양 보니 풍월(風月)이나 하여 보자. 음영완보(吟영緩步)로 석양천(夕陽天)에 촌려(村廬)로 돌아오니 청풍(淸風)은 서래(徐來)하고 명월(明月)은 만정(滿庭)이라 강상풍경(江上風景) 이러하듯 금지할 이 뉘 있으랴. 빈천을 한(恨)치 마라, 그 달을 다 보내고.
칠월칠석일(40) 금풍삽이석기(金風颯而夕起)하고 옥우곽이쟁영(玉宇廓而쟁嶸)이라(41).유종원(柳宗元)의(42) 걸교문(乞巧文)은(43) 몰득탐정(沒得貪情) 송교래(送巧來)요, 주문공(朱文公)의 칠석부(七夕賦)는(44) 유승인간(猶勝人間) 거불회(去不回)라.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은 왕발(王勃)의(45) 문장(文章)이요, 계자천향운외표(桂子天香雲外飄)는(46) 송지문(宋之問)의(47) 유서(遺書)로다. 아미산월반륜추(峨嵋山月半輪秋)는(48) 이적선(李謫仙)의 청흥(淸興)이요, 청풍명월적벽부(淸風明月赤壁賦)는 소동파지승유(蘇東坡之勝遊)로다. 추우오동엽락시(秋雨梧桐葉落時)는(49) 백낙천(白樂天)의 즉흥(卽興)이요 추풍흘억송강로(秋風忽憶松江로)는 장사군(50) 지귀사(張使君之歸思)로다. 초충명어사벽(草蟲鳴於四壁)하니 오작산어천진(嗚作散於天津)이라(51) 그 달을 다 보내고.
팔월이라 추석일(52) 백곡이 풍등(豊登)하니 낙엽에 추성(秋聲)이라 무정한 절서(節序)들은 해마다 돌아오네. 여기저기 곳곳마다 벌초향화(伐草香火)하는구나(53). 도서산지석조(倒西山之夕照)하고(54) 단층송지점점(但層松之點點)이라(55) 불승감창일국루(不勝感愴一국淚)를(56) 쇄백양지(灑白楊之) 한가지라(57) 그 달을 다 보내고.
구월이라 중구일(重九日)에(58) 천봉(千峯)이 엽탈(葉脫)하니 산 빛이 판이(判異)하다. 만학(萬壑)에 단풍 드니 꽃이 핀 듯 반가워라. 시유구월(時維九月) 이때련가 서속삼추(序屬三秋) 가절(佳節)이라 지팡막대 자주 놀려 절피남산(節彼南山)(59) 올라가니 지세(地勢)도 좋거니와 풍경도 기이(奇異)하다. 천고지형(天高地逈)하니 각우주지(覺宇宙之)는 무궁이오. 동으로 머리 들어 관동(關東)을(60) 바라보니 금강산(金剛山) 만이천봉(萬二千峯)은 청룡방(靑龍方) 둘러있고 응천상지(應天上之) 삼광(三光)하니 계명성(啓明星)이(61) 되어 있고 남으로 영남(嶺南)을 바라보니 지리산(智異山) 천황봉(天皇峯)은 주작방(朱雀方)에(62) 둘러 있고 서으로 해서(海西)를 바라보니 구월산(九月山) 천추봉(千秋峯)은 백호방(白虎方)에 둘러 있어 용반호거(龍盤虎踞)로(63) 북극(北極)에 고여 있고 북으로 관북산천(關北山川)(64) 바라보니 백두산(白頭山) 조종봉(祖宗峯)은 현무방(玄武方)에(65) 둘러 있어 태극성(太極星)이 되었는데 묻노라 고왕금래(古往今來) 인걸지령(人傑地靈)(66) 몇몇인고. 산간이 적막하고 소식이 영절(永絶)하니 황계백주(黃鷄白酒) 있었으나 만행루수(萬行淚水) 한심하다. 그 달을 다 지나고.
시월(十月)이라 천마일(天馬日)에(67) 증일월지(曾日月之) 기하(幾何)요 이상견빙(履霜堅氷)되었에라(68). 청천(靑天)에 울고 가는 저 홍안(鴻雁) 행여 소식 바랐더니 창망(蒼茫)한 구름 밖에 처량한 빈 댓소리뿐이로다. 한월잔등(寒月殘燈) 상대하니 베개 위에 눈물이라. 그 달을 다 지나고.
십일월이라 동지일에 만물이 미생(未生)하니 일양(一陽)이 초동(初動)이라(69). 왕상(王祥)의(70) 한빙이어(寒氷鯉魚) 지성감(至誠感)이요 맹종(孟宗)의 설상죽순(雪上竹筍)(71) 신명의 도움이라 언념급사(言念及斯) 생각하니 통곡망극(慟哭罔極) 새로와라. 그 달을 다 지나고.
십이월이라 제석일(除夕日)에(72) 홀세어모(忽歲於暮) 인간(人間)하니 가련금일(可憐今日)뿐이로다. 암하처이종거(暗何處而從去)며 명하처이종래(明何處而從來)런고(73). 사친절어차시(思親切於此時)하니 감년로지여상(感年老之如像)이라(74). 반한등이욕면(伴寒燈而欲眠)하니 야초초이경심(夜超超而更深)이라(75). 계환신어동창(溪喚晨於東窓)하니 경일년지춘광(驚一年之春光)이라(76).
【解 說】
이 <달거리>는 서울에서 성창(盛唱)하는 <달거리>와는 다르다. 서울의 달거리는 정월부터 3월까지만 하고 다른 소리로 바뀌는데 , 이 <달거리>는 4월부터 시작하여 4월 관등절(觀燈節), 5월 단오절(端午節), 6월 유두절(流頭節), 7월 칠석절(七夕節), 8월 추석절(秋夕節), 9월 중양절(重陽節), 10월, 동지절, 섣달의 순서로 재치있게 엮었다.
註 (1) 四月初八日 釋迦如來의 誕日. 佛前에 燈을 달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 풍속은 高麗中葉에서 朝鮮에 걸쳐 내려오는데, 原始光明崇拜의 餘流와 인도·중국 傳來의 燃燈功德에 대한 관념에 의한 것임. 觀燈節이라고도 함.
(2) 南風之薰兮하고 解吾民之온兮 南風이 훈훈하므로 豊年과 太平을 만나 우리 백성의 불평을 풀어 준다는 말.
(3) 河圖龍馬 옛날 중국 伏羲의 世에 黃河로부터 龍馬가 背上에 그림을 지고 출현하였으니 此圖가 周易八卦의 근본이 되었다. 그 내용은 一六居下하고 二七居上하고 三八居左 하고 四九居右하고 五十居中이다. <宋靑符瑞志>「禹觀於河 長人魚身 出日吾河精也 授禹河圖 言治水地事 乃退入于淵」
(4) 景星歌 景星은 瑞星. 또는 백성들이 서로 德星의 노래를 和答한다는 뜻.
(5) 打起黃鶯兒 莫敎枝上 가지 위에서 우는 꾀꼬리를 울지 못하게 쫓아 버리라는 뜻. 唐詩「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6) 황금 갑옷 꾀꼬리의 色이 황금 갑옷을 입은 것과 같다는 말.
(7) 細柳營 細柳는 지금 陜西省 咸陽縣 서남쪽에 있는 지명. 또한 이곳에 細柳倉이 있으며, 西漢 周亞夫의 屯兵處인고로 細柳營이라 하였음. 꾀꼬리가 버드나무에 앉기를 늘 좋아하므로 비유한 말. <漢書>「細柳聚」<元和志>「細柳原」
(8) 喚友聲 꾀꼬리 우는 소리가 동무를 부른다는 뜻. <詩傳>「相彼鳥矣 猶求友聲」
(9) 端午 端은 初라는 뜻. 午는 五와 통용하는 字이므로 端午는 곧 初五日임. 또한 夏正이 建寅하여 五日은 五月이며, 또한 五日을 午日이라 稱하므로 重午라 함. <風土記>「仲夏端午 端 始也 謂五月初五日也 亦謂之重午」五月端午를 天中節이라 한다.
(10) 百舌 새 이름. 伯勞의 한가지. 一名 反舌이라고도 함. 부리[喙]가 심히 날카롭고 色은 黃黑이 相雜하고 우는 소리가 부드러워 사람들이 많이 기르고 있다.
(11) 時哉時哉 山梁雌雉 時哉時哉는 때를 만났다는 뜻. 山梁雌雉는 산비탈의 암꿩. 즉 산비탈의 암꿩이 제때를 만나 흥겨움을 이름. <論語>「山梁雌雉 時哉時哉」
(12) 光風霽月 빛난 바람과 갠 달빛. 周濂溪「光風霽月 與自意思 一般」
(13) 鳶飛魚躍 솔개가 높이 날고 고기는 깊은 물에서 뛴다는 말. <詩傳> 旱麓篇「鳶飛戾天 魚躍于淵」
(14) 玉窓櫻桃 玉窓 앞에 앵도가 붉다. 唐詩 怨征夫「玉窓五見櫻桃花」
(15) 추韆 그네. <宋史>「高麗顯宗 派使 郭元 所言 端午 最추韆之戱」<古今藝術圖> 元「本 山戎之戱 齊桓 北伐 此戱始傳中國 漢唐以來 宮中多用」<唐開天遺事>「本作千秋字 乃漢宮 祝壽詞後倒讀爲 秋千 又 轉爲 추韆耳 唐玄宗 謂半仙戱」<辛禑傳>「禑 巡行街頭 遂如壽昌宮 與林치等爲추韆戱」<五雜俎>「南方 好傀儡 北方 好추韆 皆胡戱也」
(16) 流頭 陰曆 6월 15일을 流頭라 한다. 新羅古俗에 이 날은 東流水에 머리를 씻어서 不祥을 떨어 버리고 이어 잔치를 베풀고 놀았는데, 이것을 流頭宴이라 하고 여기서 流頭節이 由來했음.
(17) 良辰 좋은 날.
(18) 烘爐流金 三伏철은 더위가 심하여 화로에 금이 녹을 듯이 덥다는 말. <莊子> 「大旱金石流土山 焦而不熱」<雜記>「暑甚 天地 如在大烘爐 又元 盛夏 可以流金」
(19) 廬山 江西省 九江府에 있는 山名. 이 山의 廬山瀑布가 유명함.
(20) 箕山 穎水 <竹杖芒鞋> 註 (5) 참조.
(21) 許由·巢父 <竹杖芒鞋> 註 (6)(7) 참조.
(22) 嚴陵灘 <竹杖芒鞋> 註 (9) 참조.
(23) 羊구 羊털로 만든 옷.
(24) 君平·黃山谷 <竹杖芒鞋> 註 (10)(11) 참조.
(25) 竹林七賢 <竹杖芒鞋> 註 (12) 참조.
(26) 영戚·孟浩然 <竹杖芒鞋> 註 (13)(14) 참조.
(27) 杜牧之 <竹杖芒鞋> 註 (15) 참조.
(28) 呂洞賓·張騫은 乘사 <竹杖芒鞋> 註 (17)∼(19) 참조.
(29) 臥龍岡·鶴창衣 <竹杖芒鞋> 註 (21)(22) 참조.
(30) 白羽扇 흰 깃으로 만든 부채. <語林>「諸葛武侯 以白羽扇 指揮三軍」蘇軾 詩 「聖朝若用 西凉簿 白羽猶能效一揮」
(31) 八陣圖·縮地法 <竹杖芒鞋> 註 (23)(24) 참조.
(32) 孫吳兵書 孫武와 吳起가 지은 兵書. 孫武는 齊人으로 吳王 闔閭의 장수가 되어 諸侯를 물리치고 吳國을 覇케 하였음. <孫子> 13篇을 지어 兵家의 祖가 됨. 吳起는 <不須嚬> 註 (10) 참조.
(33) 大夢詩 諸葛亮의 詩. <竹杖芒鞋> 註 (26) 참조.
(34) 物外狹逕 塵世 밖의 좁은 길을 말함. 즉, 聖人의 道가 아닌 外道, 異端이란 뜻.
(35) 汶水 山東省에 있는 江名.
(36) 明道·晦庵 <竹杖芒鞋> 註 (28)(30) 참조.
(37) 性理大全 周濂溪 <通書>·<二程全書>, 邵康節 <皇極經世>, 張橫渠, 朱子<啓蒙 篇>을 聚合한 것이며, 明 胡廣 등이 奉勅하여 宋儒의 一百二十家를 뽑아서 13目으로 나누었고, 理氣說의 祖宗임.
(38) 家禮·四書三經 <竹杖芒鞋> 註 (32)(33) 참조.
(39) 禮記春秋 集註 金聲玉振 <竹杖芒鞋> 註 (34)~(37) 참조.
(40) 七夕 七夕은 음력 7월 7일. 漢代 이후로 전설에 天帝女인 織女와 그 郞君인 牽牛가 1年에 한번 七夕날에 烏鵲橋를 건너 天漢上에서 만난다고 함. <天官書>「牽牛 在南斗建星之北」宋 朱文公 詩「牽牛織女複扇開 年年一度渡河來 莫道天上稀相見 猶勝人間去不回」張文潛 <七夕歌> 極言 牛女 惜別之事 其落句云「猶勝姮娥不嫁人 夜夜孤眠廣寒殿」
(41) 金風颯而夕起 玉字廓而쟁嶸 가을 바람이 저녁때 쌀쌀히 불고 가을 하늘이 맑게 넓고 높다는 뜻.
(42) 柳宗元 河東人. 字는 子厚. 唐 順宗 때 사람. 벼슬이 監察御史에 이르고 문장이 뛰어나서 世稱 韓柳라 함.
(43) 乞巧文 칠석날 밤에 여자들이 針線品과 蔬果를 盤 위에 올려 놓고 절하고 祈禱하여서 거 미가 줄을 치면 巧를 얻는다 함. 柳宗元은 乞巧文을 지어 그때의 巧宦者를 譏弄하였는데, 그 글에「柳子夜歸 自外庭 最設祠者 蔬果之羅 且拜且祈 怪而問焉女隸進曰 今玆孟秋七夕 天女之孫 將嬪於河鼓 邀而祠者 幸而與之巧 爲是禱也」라 하였다.
(44) 朱文公의 七夕賦 위 七夕 참조.
(45) 王勃 <探景歌> 註 (19) 참조.
(46) 桂子天香雲外飄 桂花 꽃의 향기가 구름 밖에까지 뻗쳐 나부낀다는 뜻. <唐宋詩話> 宋之 問作首句「樓觀滄海日 門對浙江潮」<駱賓王 作次句>「桂子月中落 天香雲外飄」
(47) 宋之問 唐 武后 때 사람. 汾洲에 살았음. 字는 延淸. <明河篇>을 지었음.
(48) 峨嵋山月半輪秋 峨嵋山의 가을 달은 절반이나 둥그렇다는 말. 峨嵋山은 泗川省 峨嵋縣 서 남쪽에 있음. 두 산이 마치 눈썹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음. 李白 詩「峨嵋山月半輪秋 影入平差」江水流 夜發淸 溪상三峽 思君不見下협洲」
(49) 秋雨梧桐落葉時 가을비에 오동잎이 뚝뚝 떨어질 때를 말함. 白藥天 <長恨歌>
「春風桃李花開夜 秋雨梧桐落葉詩」
(50) 張使君 <丈夫恨> 註(20)참조
(51) 烏鵲散於天津 <淮南子>에 나오는 글. 七夕에 烏鵲이 上天하여 銀河水에 다리를 놓아 織女와 牽牛를 서로 만나게 하고, 七夕 밤이 다 새어 갈 무렵 烏鵲들은 모두
하늘 밖으로 흩어지고 견우.직녀가 이별한다는 뜻. 天津은 銀河水를 말함.
(52) 秋夕 陰曆 8월15일. 가위[嘉俳] 또는 추석이라 하여 정월15일과 함께 농촌의 큰 두 명절임. 더위는 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百석蔬果가 풍성한 좋은 철이다. 옛
날 新羅에서는 女功을 장려하기 위하여 宮中에서 여자를 두 편으로 나누어 7월15일
부터 베짜기를 다투게 하여 만 한 달 되는 추석에 승부를 결정하고, 못 이긴 편은 이
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내게 하여 온갖 노래와 춤으로 즐기는 풍습이 유래하였음.
(53) 伐草香火 조상의 무덤에 풀을 베고 향불을 피워 제사를 지내는 것임.
(54) 倒西山之夕초 서산에 해가 진다는 뜻.
(55) 但層松之點點 아무것도 없고 다만 푸근 소나무만 우뚝 서 있다는 말.
(56) 不勝感愴一국淚 너무 처량하고 섭섭하여 한 웅큼이나 눈물을 흘린다는 뜻.
(57) 새白楊之 한가지 백양에 뿌린다는 뜻. 옛날에는 무덤가에 백양을 둘러 심었다.
당시「漠漠野田草 草中牛羊道 古居無子孫 百楊不得老」
(58) 重九 陰曆 9월9일을 重陽이라고도 한다. 漢魏이후로 무엇보다도 賞菊 賞風의 節을 삼았으며, 新羅 이래의 文獻을 참고하여 보면 臨海殿 혹은 月上樓에서 君臣唱和가 예설되었고, 고려로 내려와서는 중양의 향연이 완전히 國典化되었음.
(59) 節彼南山 깎아 세운 듯한 저 南山이란 말. <詩傳> 節彼南山篇「節彼南山 維石巖巖」
(60) 關東 江原道를 말함.
(61) 啓明星 金星의 別名. 明星 또는 太白星이라고도 한다. <詩傳> 爾雅「明星 謂之
啓明(註) 太白星也 辰見東方 爲啓明 昏見西方 爲太白」
(62) 朱雀 南方을 맡은 星名. 또는 朱鳥라 함. <禮記>「前朱鳥 而後玄武」
(63) 龍盤虎踞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걸터앉았다는 말.
(64) 關北 咸鏡道를 말함.
(65) 玄武 北方을 맡은 星明.
(66) 人傑地靈 人傑은 地理의 靈氣를 받아 타고난다는 뜻. 王고<勝王閣序>「人傑地靈 徐濡下陳番之榻」
(67) 天馬日 10월을 俗稱「상달」이라 하여 햇곡식. 햇과일로써 祖先에 祭祀하고
귀신에 향함이 한 遺風으로 되어 있다. 午日 특히 戊午日을 天馬日이라 하고, 이 날은
吉日로서 馬廐神에 제를 지냈음.
(68) 履霜堅永 서리를 밟다가 다시 굳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즉 가을이 차차
깊어 겨울이 되었다는 말. <周易>「履霜堅永至」
(69) 一陽初動 동짓날 밤중에 땅 속에서 雷가 動하여 一陽이 始生한다고 함.<易經>
에서 나온 말임. 朱子 詩「一陽初動處 萬物未生時」
(70) 王祥 字는 休徵. 普 臨沂人. 魏에서 벼슬하여 太尉에 이르고 普에 들어가서 太
保가 되었다. 그 성품이 至孝하여 계모가 한겨울에 生魚를 원하니 祥이 강으로 가서 옷을 벗고 얼음을 깨어 生魚를 잡으려 할 때 얼음이 자연히 풀리고, 두 마리의 鯉魚가
뛰어나와서 이를 잡아다 드렸다 함.
(71) 孟宗의 雪上竹筍 <丈夫恨> 註 (18) 참조.
(72) 除夕日 음력 12월 그믐날은 그 해를 除하는 날 밤이라 하여 除夕이라 한다.그날은 동리의 친척과 長老들을 찾아다니며 묵은 歲拜를 하는 것이 한 풍습이다. <風士記>「除夕達日不眠 謂之守歲」
(73) 暗何處而從法 明何處而從來 어두운 것은 어디로 가 버리며, 밝은 것은 어디로
부터 오느뇨라는 말. 唐時의 귀절.
(74) 感年老之如傷 점점 늙어 가는 것이 기막히다는 뜻.
(75) 伴寒燈而欲眠 夜超超而更深 찬 등잔을 짝하여 자려고 하니 밤이 길고 길어 다
시 깊었다는 말.
(76) 鷄喚晨於東窓 驚一年之春光 닭이 울어 동창이 훤하니 벌써 1년의 새 봄빛을
맞이한다는 말.
13.廣 大 歌(1)
고금(古今)에 호걸문장(豪傑文章) 절창(絶唱)으로 지어내여 후세에 유전하나 모두 다 허사로다.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2)와 조자건(曹子建)(3) 낙신부(洛神賦)(4)는 그 말이 정녕한지 뉘 눈으로 보았으며 와룡선생(臥龍先生)(5) 양보음(梁甫吟)은(6) 삼장사(三壯士)의(7) 탄식(歎息)이요 정절선생(靖節先生)(8) 귀거래사(歸去來辭)(9) 처사(處士)의 한정(閑情)이라.
이청련(李靑蓮)의(10) 원별리(遠別籬)와 백낙천(白樂天)의(11) 장한가(長恨歌)며(12) 원진(元진)의(13) 연창궁사(連昌宮詞)(14) 이교(李嶠)(15)의 분음행(汾陰行)(16)이 다 쓸어 허황사설(虛荒辭說) 차마 듣겠느냐. 인간의 부귀영화 일장춘몽 가소롭고 유유한 생리사별(生籬死別) 위 아니 한탄하리. 거려(17) 천지(거廬天地) 우리 행락(行樂) 광대 행세 좋을씨고.
그러나 광대 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人物致禮) 둘째는 사설치례(辭說致禮) 그 지차(至次)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세라.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象) 위선위귀(爲仙爲鬼)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風流豪傑)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하고 울게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 득음(得音)이라 하는 것은 오음(五音)을(19) 분별하고 육률(六律)(20)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21)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22) 칠보단장(七寶丹粧)(23)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24) 밝은 달이구름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거니와 원원(遠遠)한 이 속관이 소리하는 법례(法禮)로다. 영산초장(靈山初章)(25) 다스림이 은은(隱隱)한 청계수(淸溪水)가 얼음 밑에 흐르는 듯 끌어 올려내는 목이 순풍(順風)에 배 노는 듯 차차(次次)로 들리는 목 봉회노전(烽廻路轉) 기이하고 돋우어 올리는 목 만장봉(萬丈峰)이 솟구는 듯 툭툭 굴러 내리는 목 폭포수가 쏟치는 듯 장단고저(長短高低) 변화무궁(變化無窮) 이리 농락 저리 농락. 아니리짜는 말은 아리따운 제비 말과 공교(工巧)로운 앵무(鸚鵡)소리 중몰이 중허리며(26) 허성(虛聲)이며 진양조(27)를 달아두고 놓아 두고 걸리다가 들치다가 청청(淸淸)하게 도는 목이 단산(丹山)의 봉(鳳)의(28) 울음. 청원(淸遠)하게 뜨는 목은 청전(靑田)의 학(鶴)(29)의 울음 애원성(哀怨聲) 흐르는 목 황영(皇英)(30)의 비파(琵琶)소리 무수(無數)히 농락 변화 불시에 튀는 목이 벽력(霹靂)이 부딪친 듯 음아질타(音啞叱咤)(31) 호령소리 태산(泰山)이 흔드는 듯 변화하여 낙목한천(落木寒天) 찬바람 소슬하게 부는 소리 왕소군(王昭君)의 출새곡(出塞曲)과(32) 척부인(戚夫人)의(33) 황곡가(黃鵠歌)(34)라. 좌상(座上)이 실색(失色)하고 구경군에 낙루(落淚)하니 이러한 광대 놀음 그 아니 어려우냐.
우리나라 명창 광대 자고로 많건마는 기왕은 물론하고 근래 명창 누구누구 명성이 자자하여 사람마다 칭찬하니 이러한 명창들은 문장으로 비길진대 송선달 흥록(興祿)이는(35)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和蘭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36) 모동지(牟同知) 홍갑(興甲)이는 관산만리(關山萬里) 초목추성(草木秋聲) 청천만리(靑天萬里) 학 울음 시중성인(詩中聖人) 두자미(杜子美)(38) 권생원(權生員) 사인씨(士仁氏)(39) 천층절벽(千層絶壁) 불쑥 솟아 만장폭포(萬丈瀑布) 울렁출렁 문기팔대(文起八代)(40) 한퇴지(韓退之)(41) 신선달(申先達) 만엽(萬葉)이는(42) 구천은하(九天銀河) 떨어진다. 명월백로(明月白露) 맑은 기운 취과 양주(醉過楊州)(43) 두목지(杜牧之)라.
황동지(黃同知) 해청(海靑)이는(44) 적막공산 밝은 달에 다정하게 웅창자화(雄唱雌和) 두우제월(杜宇啼月)(45) 맹동야(孟東野) 고동지(高同知) 수관(秀寬)이는(46) 동아부자(同我婦子) 엽피남묘(엽彼南묘)(47) 은근 문답하는 거동 권과농상(勸課農桑)(48) 백낙천(白樂天) 김선달(金先達) 제철(齊哲)이는(49) 담탕(淡蕩)한 산천영기 명랑한 산하영자(山河影子) 천운영월(川雲嶺月) 구양수(歐陽修)(50) 주랑청(朱郞聽) 덕기(德基)는(51) 둔갑장신(遁甲藏身)(52) 무수변화(無數變化) 농락하던 그 수단이 변화불측(變化不測) 소동파(蘇東坡)(53) 이러한 광대(廣大)들이 다 각기(各其) 소장(所長)으로 일세천명(一世擅名)하였으나 각색 구비 명창 광대 어디 가 얻어 보리 이속을 알건마는 알고도 못 행하니 어찌 아니 답답하랴.
【解 說】
이<광대가(廣大歌)>는 신재효(申在孝) 작으로서 다른 단가보다 특수하게 엮어졌다.고금의 호걸 문장(豪傑文章)들이 절창(絶唱)으로 지어낸 글이 후세에 전하나 모두 다 허사라 하고, 광대들의 입을 통하여 옛것을 본 듯이 멋지게 부르는 것을 재치 있게 엮었는데, 광대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첫째조건은 인물이 좋아야 하지만, 천성으로 타고난 얼굴이야 고칠수 없고, 둘째는 사설(辭說)을 잘 엮어야 하며, 셋째는 득음(得音)이요, 그 다음이 너름새다. 노래를 담만 잘해도 너름새가 좋지 못하면 들을 맛이 없다. 목을 잘 써서 경각(頃刻)에 천태만상으로 신선도 되고 귀신도 되어, 그야말로 천변만화(天變萬化)해서 남녀노소 할 것없이 비감(悲感)하여 스스로 울게도 하고, 또는 희열(喜悅)에 넘쳐 흥을 돋구어 주는 등 임기응변으로써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좌석의 분위기를 맞추는 것이 또한 광대의 재주라고 하겠다.
그리고 명창들의 노래 잘하는 것을 문장에다 비유했는데, 송 흥록(宋興祿)은 이태백에다 비유하고, 모 흥갑(牟興甲)은 두자미에다 비유하고, 권 사인(權士仁)은 한퇴지, 신 만엽(申萬葉)은 두목지에다, 황 해청(黃海靑)은 맹동야(孟東野), 김 제철(金齊哲)은 구양수(歐陽修), 주 덕기(朱德基)는 소동파에다 각각 비유하였다.
종래의 광대는 천시당했고 특권 계급층의 완농물(玩弄物)로서 대우받아 왔으나, 이네들의 구전(口傳)에 의하여 우리의 고귀한 무형문화재가 소멸되지 않고 명맥(命脈)이나마 잇게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국가에서 인정해 주게 되어 앞으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註 (1) 廣大 聖人이 作藥하사 性情을 기르고 人才를 길러서 神祗를 事하고 上下를 和케 하니 그 體用功效가 廣大深切하다는 뜻으로 樂人들을 廣大라 한 것이다. 이상은 <書經舞曲> 命章註에 나온 것.
(2) 宋玉의 高唐賦 송옥은 전국시대 초인. 屈原의 弟子. 楚 大夫가 되어서 原이 放에 九歌를 짓고 율羅水에 익사하매 옥은 九辯을 짓고 그 뜻을 슬퍼하고 <神女> <高唐> 二武를 지으니 다 寓言托興의 作이다. 李義山 詩 「一自高唐賦成後 楚天雲雨盡堪疑」
(3) 曹子建 성은 曹, 字는 子建 이름은 植. 曹操의 셋째 아들 陳王을 封하였고 諡는 사이므로 陳思王이라고도 일컫음. <中國人名大辭典> 「十歲善屬文 援筆立成 其爲操所 愛 文帝손忌其才欲害之 令作詩 限七步 植應聲曰 豆燃豆其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 煎何太急」謝靈運 진言 「天下文章 只一石 子建獨得八斗」
(4) 洛神賦 本 宓儀氏의 女가 洛水에 익사하여 洛神이 되었다고함. 曹植이 洛水上에서 진后를 생각하여 <感진賦>를 지었는데 그 뒤 明帝가 보고 <洛神賦>라고 하였음.
<洛神賦> 「편若驚鴻 원若遊龍 (又) 淸波徵步 羅襪生廛」<謝靈運賦> 「招魂定情 洛神
淸思 람경日之부陳 盡古來之姸媚」
(5) 臥龍先生 諸葛亮을 말함. 徵時에 南陽 臥龍罔에 隱居하였으므로 臥龍先生이라함. <歷代歌> 註(89) 참조
(6) 梁甫吟 <樂府楚調> 중 한 곡명. 梁甫는 泰山의 한 산줄기의 山東 新泰縣에 있는
山名. 또 諸葛亮이 지은 詩 (梁父를 梁甫하고도 함). 「步出齊城門 遙望蕩陰里 里中有
三境 첩첩正相似 問是誰家塚 田彊古治氏 力能批南山 又能絶地理 一朝被급言 二桃
殺三士 誰能爲此謀 相國齊晏子」
(7) 三壯士 公孫捷 田開彊 古治子의 세 장사. 春秋때 齊 景公의 신하로 능히 범을
잡는勇力이었다고함.
(8) 靖節先生 <探景歌> 註 (7) 참조.
(9) 歸去來辭 陶淵明이 彭澤令을 사임하고 돌아와서 지은 글.
(10) 李靑蓮 李太白을 일컫는 말. <不須頻> 註(38)참조.
(11) 白樂天 <竹杖芒鞋> 주(17)참조
(12) 長恨歌 白樂天이 지은 長篇古詩. 唐 明皇과 楊貴妃의 艶情을 영영한 것.. 「漢
皇重色思傾國 御宇多年求不得 楊家有女初長成 養在深閨人未識」
(13) 元진 성은 元, 이름은 진, 字는 衛之. 벼슬인 尙書佐丞에 이른 당대의 유명한
시인. 白樂天과 齊名하여 世人이 元白이라 일컬음. 西廂記의 張이 곧 元의 안身임.
(14) 連昌宮詞 連昌宮은 河南省 宣陽懸 서쪽에 있으며 唐 高宗때 新築한 것. <連昌
宮詞>는 元진이 지었음. 「連昌宮中滿宮竹 歲久無人森似束 又有墻頭千葉桃 風動落葉紅 賴賴…..舞사기의基尙存 文窓窈窕紗猶綠」
(15) 이교 唐 趙郡人 혹은 成紀人이라 함. 諡는 文 . 벼슬이 中書舍人에 이름.
(16) 汾陰行 汾陰은 山西省內에 있는 지명. 漢 武帝가 寶鼎을 얻은 곳. 西行은 곡의 한가지임. 行에 「君不見昔日西京全盛 汾陰后士親祭祀 齊宮宿寢說齊供 撞鍾鳴鼓 樹羽旗」이 사는 명황의 제탁의 사를 諷刺한 것.
(17) 거廬 <歷代歌> 註(5) 참조
(18) 得音 노래 소리가 퍽 아름다운 境地에 이름을 말함.
(19) 五音 宮·商·角·徵·羽의 五音階를 말함.
(20) 六律 黃鐘·太簇·姑洗·악보· 夷則· 應鍾을 말함.
(21) 五臟 脾·肺·肝·心·腎臟을 말함.
(22) 錦上添花 비단 위에 꽃을 더했다는 말. 즉 더욱 좋다는 뜻.
(23) 七寶丹粧 金·銀·溜璃·차거 ·瑪瑙· 眞珠·매괴 의 일곱가지 보물로 믐을 아름답게 꾸민 것.
(24) 三五夜 음력 보름날 밤.
(25) 靈山初章 靈山會相 樂曲의 제1장을 말함. 靈山會相은 택迦如來가 在世하여 隨弟子 1천2백명을 데리고 說法度生하던 당시를 가르킴. 靈山 會相 또는 靈山 當時
라고도 함. 朝鮮 世祖때에 靈山會相 佛菩산代數 萬世歌라 하였고 中宗 26년 大提學
南亮은 <靈山會相 萬年詞>를 지었다.
(26) 중허리 風流曲調의 한가지. 平時調로 시작하여 중간에서 曲調를 잠깐 변화시켜 부름.
(27) 진양조 唱樂 판소리의 한 調名. 주로 哀怨을 나타냄. 느린 박의 24박으로 친다.
(28) 丹山의 鳳 丹山은 丹之山을 말함. 이 산에 鳳凰이 살았다 함. <哀山松宣都記>「有丹山 山間時有赤氣龍盖 林嶺如丹色 因以名山」張粟之 詩 「靑田白鶴 丹山鳳」
(29) 靑田의 鶴 靑田은 浙江省內에 있는 地名. 이곳에 학이 살았다 함. 楊동 「樓臺
橫紫極城闕俯靑田」鶴 捿集地.
(30) 皇英 舜妃 娥皇 女英을 말함. <瀟湘八景> 註 (3) 참조.
(31) 음啞叱타 음啞는 怒氣를 품은 것, 叱타는 怒氣를 發하는 소리. <史記> 淮陰傳
「項王음啞叱타 千人自廢」
(32) 出塞曲 王昭君이 漢宮을 이별하고 胡地로 떠나면서 가슴에 가득찬 원한을 견디지 못하여 말위에서 琵琶를 타며 그 恨을 푼 것이 즉 王昭君의 出塞曲임. 唐詩 「漢道方全盛 朝廷足武臣何須薄命妾 辛苦事和親」
(33) 戚夫人 <歷代歌> 註(69) 참조.
(34) 黃鵠歌 黃鵠은 기러기와 같으나 색이 흰 까닭으로 白鳥라고도 하고 長頭嘴根에 瘤가 있고 색이 黃赤인 까닭으로 黃鵠이라 함. <西京雜記> 「始元年 黃鵠下大液池 上 爲歌曰 黃鵠飛兮 下建章 羽衣 繡兮 行창창」戚夫人이 지은 노래를 해석한다면 「이 몸이 黃鵠되어 날아 가려 한건마는 施無翼이 어이 할꼬」또 <樂府五聲歌曲>에 <黃鵠曲>이 있음. <烈女傳> 「魯陶영 少募 紡續養功孤 魯人或將求빙 乃作歌 明己之不更二庭也 魯人不敢復求 按黃鵠 本漢橫吹曲名」
(35) 宋先達 興祿 朝鮮 純祖때의 명창. 全北人. 唱調 중 正音. 正聲. 法統의 創始者.
(36) 李太白 <不須톤> 註 (38) 참조.
(37) 牟同知 興甲 朝鮮 純祖때의 名唱. 京畿人. 特長은 <春香歌> 중 <離別歌>와 <赤壁歌>였음.
(38) 杜子美 성은 杜, 이름은 甫 子美는 字, 號는 小陵. 襄陽人. 唐 玄宗때 벼슬이
工部員外郞에 이르고 詩律에 精通하므로 李白과 아울러 李杜라 함.
(39) 權生員 士仁 이름은 三得. 全北 益山人. 朝鮮 英祖 때의 명창. 특장은 <홍보가>
중 세마치 <제비가>임.
(40) 文起八代 八代는 東漢.魏.晋.宋.齊.梁.陳.隋, 문장이 八代에 衰함을 興起시켰다
는 말. 蘇軾 <潮州韓文公廟碑>「文기八代之衰 道濟天下之溺」
(41) 韓退之 <不須톤> 註 (37)참조
(42) 申先達 萬葉 朝鮮 純祖때 명창. 全北 礪山人. 특장은 <魚수歌(水宮歌)>이며 聲
音이 軟美和淸하였음.
(43) 醉課楊州 杜牧之가 술이 醉해서 수레를 타고 楊州 주사를 지나니 妓生들이 杜牧 之의 風采에 혹하여 귤을 던져 수레에 가득찰 만큼 되었더라는 逸話를 말함.「醉過楊
州橘滿車」
(44) 黃同知 海靑 朝鮮 正.純祖때의 명창. 神妙한 雌雄聲에는 다른 명창이 따를 수
없는 특장이 있었음.
(45) 杜宇啼月 杜宇는 즉 杜鵑. 달밤에 우는 소리가 秋人에게는 더욱 처량하게 들린다는 말.
(46) 高同知 秀寬 朝鮮 純祖때의 명창. 忠南 海美人. 特長은 <春香歌> 중 <사랑가>이며 唱法에 능하였음.
(47) 同我婦子 엽彼南유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밭두둑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말. <詩傳> 치風七月章「四之日擧趾 同我婦子 엽彼南묘 田畯至喜」
(48)勸課農桑 농사짓고 누에 기르는 것을 권하고 奬勵시킨다는 말.
(49)金先達 齊哲 朝鮮 純祖때 명창. 忠淸道 公州人. 特長 <沈淸歌> 중 심청 탄생 대목.
(50)毆陽修 性은 毆陽, 修는 이름, 字는 永淑, 號는 六一居士, 諡는 文忠. 宋 廬州
人. 仁宗때 벼슬이 參知政事에 이르고 群書를 넓게 알아서 문장이 천하에 유명하였음.
(51)朱郞廳 德基 朝鮮 純祖때 鼓手, 명창. 全南 昌平人. 特長은 <적벽가> 중 활쏘는 대목.
(52)遁甲藏身 術數의 하나. 사람의 눈을 현혹케하여 자신의 몸을 감추게 되는 術. <
南史> 「明緯候 孤虛遁甲之術」 <黃庭經>「有遁甲緣身經 其學 盛於南北朝」
(53)蘇東坡 <深景歌> 註 (13)참조.
14. 짝 打 令
대현(大絃)은 농롱(농롱)하여(1) 노룡(老龍)의 울음이요 소현(小絃)은 쟁쟁(錚錚)하여(2) 청학(靑鶴)의 소리로다. 둥덩지덩 황성(荒城)에 허조벽산월(虛照碧山月)이요 고목은 진입(盡入) 창오운(蒼梧雲)이라(3) 하던 이태백으로 한작하고 삼년 적리(三年笛裏) 관산월(關山月)이요 만국병전(萬國兵煎) 초목풍(草木風)이라하던 두자미(杜子美)로 한짝하고 낙하(落霞)는 여(與) 고목제비(孤鶩齊飛)하고 추수(秋水)는 공(共) 장천일색(長天一色)이라(4) 하던 왕자안(王子安)으로(5) 웃짐 치고 백로(白露)는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은 접천(接天)이라 하던 소동파(蘇東坡)로 말 몰리고 좌무수이(坐撫樹而) 종일(終日) 하고 탁청천이(濯淸川而) 자결(自潔)이라 하던 한퇴지(韓退之)로 한짝하고 삼입낙양(三入洛陽) 인불식(人不識)하니 낭음비과(朗吟悲過) 동정호(洞定湖)라 하던 여동빈(呂洞賓)으로(8) 한짝하고 유상곡수에 혜풍(惠風)이 화창이라 하던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쳐서 부광(浮光)은 탁금(濯金)하고 정영(靜影)은 침벽(沈碧)이라하던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고 어양비고 (漁陽비鼓)동지래(動地來)하니 경파예상(驚罷霓裳) 우의곡(羽衣曲)이라 하던 백낙천(白樂天)으로(11) 한짝하고 분수탈상증(分手脫相贈)하니 평생일편심(平生一片心)이라하던 맹호연(孟浩然)으로(12) 한짝하고, 청산(靑山)은 수첩(數疊)이요 벽계(碧溪)는 일곡(一曲)이라 하던 도연명(陶淵明)으로(13) 웃짐쳐서, 통만고지(通萬古之) 득실(得失)하고 감백왕지(鑑百王之) 흥망(興亡)이라 하던 사마천(司馬遷)으로(14) 말 몰리고 위빈어부(渭濱漁夫)로서 주천하(周天下) 팔백기업(八百基業)을 창개(창開)하던 강태공(姜太公)으로 한짝하고 운주유악지중(運籌유幄之中)하여 결승천리지외(決勝千里之外)하던 장자방(張子房)으로(16) 한짝하고 대몽(大夢)을 수선각(誰先覺)고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하던 제갈량(諸葛亮)으로(17) 웃짐 쳐서 백일공사(百日公事)는 뇌양일조(뇌陽一朝)요 연환묘계(連環妙計)는 적벽(赤壁)의 수공(首功)이라 하던 방사원(龐士元)으로(18) 말 몰리고 용성오채(龍成五彩) 망기(望氣)하고 옥결(玉결)을 자주 들던 범아부(范亞父)로(19) 한짝하고 백등해위(白登解圍)하고, 육출기계(六出奇計)하던 진평(陳平)으로 한짝하고 팔십만 수륙대도독(水陸大都督) 적벽오병(赤壁오병)하던 주공근(周公瑾)으로(21) 웃짐 쳐서 강남(江南)에 개가(凱歌) 불러 금릉(金陵)으로 돌아오던 조빈(曹彬)으로(22) 말 몰리고 백수변정(白首邊庭)에 탕소요진(蕩掃妖塵)하던 마원(馬援)(23)으로 한짝하고 광초구군(광楚救君)하여(24) 망사보국(忘死報國)하던 기신(紀信)으로(25) 한짝하고, 미보국사(未報國思)하고 공사결의(空死決議)하던 장순(張巡)으로(26) 웃짐 쳐서 신사수절(身死守節)하여 충관백일(忠貫白日)하던 허원(許遠)으로(27) 말 몰리고 연백만지수(連百萬之帥)하여 전필승(戰必勝) 공필취(功必取)하던 한신(韓信)으로(28) 한짝하고 두발(頭髮)이 상지(上指)하고 목지진렬(目자盡裂)하던 번쾌(樊쾌)로(29) 한짝하고, 남궁운대(南宮雲臺) 중흥공신(中興功臣) 이십팔장(二十八將) 중 제일공신(第一功臣) 등우(鄧禹)로(30) 웃짐쳐서 충의정성(忠義精誠) 앙관백일(仰貫白日) 하던 곽자의(郭子儀)로(31) 말 몰리고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는 초패왕(楚覇王)의(32)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층(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33) 우희로다.
봉금괘인(封金掛印)하고 독행천리(獨行千里)하던 관운장(關雲長)으로(34) 한짝하고 장판파변(長板破邊)에 퇴병백만(退兵百萬)하던 장익덕(張翼德)으로(35) 한짝하고 당양장판(當陽長板) 만군중(萬軍中)에 아두(阿斗)를 품에 품고 백만진중(百萬陣中) 횡행(橫行)하여 도시담(都是膽)이라 하던 조자룡(趙子龍)으로(36) 웃짐 쳐서 서량명장(西凉名將)으로 보전육장(步戰六將)하던 마맹기(馬孟起)로(37) 말 몰리고 오호(五湖)에 편주(扁舟) 타고 범소백(范少伯)을(38) 따라가던 서시(西施)로(39) 한짝하고 회두일소백미생(回頭一笑百媚生)하니 육궁분대무안색(六宮紛黛無顔色)이라 하던 양귀비(楊貴妃)로(40) 한짝하고 월궁옥장하(月宮玉帳下)에 추파(秋波)에 눈물 짓던 우미인(虞美人)으로(41) 웃짐 쳐서 영웅의 친근지의(親近之義) 일조(一朝)에 이간(離間)하던 초선(貂嬋)으로(42) 말 몰리고 사마상여(司馬相如)(43) 봉구황(鳳求凰)에 깨달아서 들어가던 정경패(鄭瓊貝)로(44) 한짝하고 태산궁액(泰山宮掖) 백화번(百花繁)한데 영작(靈鵲)이 보래(報來) 희미연(喜美緣)하던 이소화(李簫和)로(45) 한짝하고 안소부대(雁疎不帶) 남비거(南飛去)하니 삼오성희(三五星稀) 월재동(月在東)이라하던 진채봉(秦彩鳳)으로(46) 웃짐 쳐서, 위주충심(爲主忠心)은 보보상수(步步相隨) 부잠사(不暫捨)라 위선위귀(爲仙爲鬼)하던 가춘운(賈春雲)으로(47) 말 몰리고 월중단계(月中丹桂) 수선절(誰仙折)고 금대문장(今代文章)이 자유인(自有人)이라 하던 계섬월(桂蟾月)로(47) 한짝하고 하북명창(河北名唱)으로 삼절색(三絶色) 현명(顯名)하던 적경홍(狄驚鴻)으로(47) 한짝하고 복파영중(伏波營中)에 월영(月影)이 적막(寂寞)하고 옥문관외(玉門關外)에 춘색(春色)이 의희(依稀)라 하던 심요연(沈요烟)으로(47) 웃짐 쳐서 청수담(淸水潭)에 수절(守節)하여 음곡(陰谷)에 생춘(生春)이라 하던 백룡파(白綾波)로(47) 말 몰릴까 하노라.
【解 說】
이 <짝타령>은 어떤 인물과 인물을 서로 짝을 짓게 하고 다른 한사람을 웃짐으로 치고 또 한 사람으로 말을 몰리게 하는데, 역대 문장들의 명귀(名句)만을 골라서 떼다 붙이고 그 다음에 사람의 이름을 갖다 댔다. 말하자면, 이태백과 두자미(杜子美)로 짝을 짓고 왕발(王勃)로 웃짐을 치고 소동파(蘇東波)로 말을 몰려 이것이 한틀이 된다. 이렇게 하여 한퇴지(韓退之)와 여동빈(呂洞賓)으로 짝을 짓고 왕희지(王羲之)로 웃짐 치고 범중엄(范仲淹)으로 말 몰리는 것이 한틀이 된다.
백낙천(白樂天)과 맹호연(孟浩然), 도연명(陶淵明), 사마천(司馬遷)으로 한틀을 짓고 강태공과 장자방(張子房)으로 짝을 하고 공명(孔明)으로 웃짐 쳐서 방통(龐統)으로 말을 몰려 한틀을 한다.
범증(范增)과 진평(陳平)으로 짝을 짓고 주유(周瑜)와 조빈(曹彬)으로 한틀을 하고, 마원(馬援)과 기신(紀信)으로 짝을 짓고 장순(張巡), 허원(許遠)으로 한틀, 한신(韓信)과 번쾌(樊쾌)로 짝을 짓고 등우(鄧禹), 곽자(郭子儀)의로 한틀, 항우(項羽)와 오자서(伍子胥)로 한짝을 짓는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로 한짝, 조운(趙雲)과 마초(馬超)로 한틀을 하고, 서시(西施)와 양귀비(楊貴妃)로 한짝, 우미인(虞美人)과 초선(貂嬋)으로 한틀하고 정경패와 이소화(李簫和)로 한짝하고 진채봉(秦彩鳳)과 가춘운(賈春雲)으로 한틀을 삼는다.
계섬월(계섬월), 적경홍(적경홍)으로 한짝하고, 심요연(심요연)과 백능파(백능파)로 한틀을 짓는다.이러한 식으로 미사여구(미사여구)로 짝을 지어 멋스럽게 엮었다.
註 (1) 大絃은 농롱 큰 줄은 농롱하다는 말. 농롱은 새가 읊조린다는 뜻인데, 여기에서
농롱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굵은 줄 소리는 중후하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데 왜 농롱이라 했는지 의문스럽다.
농롱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굵은 줄 소리는 중후하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데 왜 농롱이라 했는지 의문스럽다.
(2)小絃은 錚錚 작은 줄은 錚錚하다. 즉 玉이나 금속이 울리는 소리같이 쨍쨍하다는 말. 大絃은 老龍의 울음이라 하고 小絃은 靑鶴의 울음이라고 하는 표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3)虛照碧山月이요 古木은 盡入蒼梧雲 이글의 原文은 荒城이 위에 있다. 荒城은 비었는데碧山月만이 비치고 古木은 蒼梧의 구름에 쌓였더라. 唐 李白 詩 「荒城虛照碧山月 古木盡入蒼梧雲」
(4)洛霞與孤鶩齊飛하고 秋水共長天一色 꺼져가는 안개는 한 마리 따오기와 더불어
날아오르고 가을빛을 띤 강물과 끝없이 긴 하늘은 다 같이 푸른빛을 띠었다.
(5)王子安 이름은 勃, 字는 子安. 唐나라 前期의 詩人. 早達한 천재시인으로 劍南으
로 가서 都督 閻伯嶼를 위하여 쓴 <騰王閣序>와 詩는 유명하다. 그러나 29세에 南海
를 건너가다 물에 빠져죽었다. 그는 문장을 짓게 되면 먼저 먹을 풍부히 갈아놓고 술
을 마시고 이불을 둘러쓰고 한숨 잔 후에 잠을 깨어 일어나면 곧 붓을 들어 줄줄 문장
을 써 내려가는데 한 글자도 고치는 일이 없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腹藁라고 하
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一筆揮之로 문자를 만들어 내곤 하였던 재사이다.
(6)蘇東坡 北宋의 詩人. 이름은 軾, 字는 子膽. 號는 東坡이다. 아버지 狗와 아우
轍과 더불어 三蘇라고 불림.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王安石과 대립하여 左遷되었으나
후에 哲宗에게 重用되어 舊法派를 대표했으며, 文人으로서 宋大第一人者임. 특히
<赤壁賦>는 유명하며 書畵에도 능했음. 著書로는 <東坡全集>이 있음.
<赤壁賦>는 유명하며 書畵에도 능했음. 著書로는 <東坡全集>이 있음.
(7)韓退之 <不須嚬> 註 (37) 참조
(8)呂洞寶 <중장망혜> 註 (15) 참조.
(9)王羲之 字는 逸少, 이름은 羲之. 東晋 때의 書家. 그의 楷書· 行書· 草書의 전아
하고 힘차며 品位있는 書風은 일찍부터 書聖로서 안팎의 존경을 받았음. 대표적인 <蘭
亭序> <聖敎序>등이 있음.
(10)范仲淹 北宋때의 名臣. 字는 希文. 蘇州 吳縣 사람. 仁宗 때 參政知事가 되어
개혁해야 할 政治上의 10個條를 上疏하였으나 反對派의 공격을 받아 실패함. 당시 文
武를 통하여 으뜸인물로 존경을 받았음. 著書로는 <范文正公集>이 있음.
(11)白樂天 <竹杖芒鞋> 註(17)참조.
(12)孟浩然 <竹杖芒鞋> 註(14)참조.
(13)陶淵明 <探景歌> 註(7) 참조.
(14)司馬天 <不須嚬> 註(36) 참조
(15)姜太公 <不須嚬> 註(6) 참조.
(16)張子房 姓은 張, 이름은 良, 字는 子房. 韓人. 韓이 秦에게 망한뒤 韓을 위해
원수를 갚고자 滄海力士를 구하여 博浪沙中에서 秦始皇의 수레를 鐵椎로 저격하였고
뒤에 漢沛公을 도와 楚覇王을 멸하고 漢의 開國功臣이 되어 留侯를 봉하였음. 그러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安期生 赤松子를 따라간 뒤 종적을 감추었다.
(17)諸葛亮 <不須嚬> 註(34) 참조.
(18)龐士元 성은 龐, 이름은 統, 字는 士元. 號는 鳳雛 蜀漢人. 劉備를 도와 治中從
事가 되었고 諸葛亮과함께 伏龍鳳雛이라 일컬음.
(19)范亞父 이름은 增, 居巢人. 나이70세에 項羽의 謀士가 되어 諸侯를 굴복시켰으
므로 亞父라 일컬었다. 項羽가 范增의 計策을 듣지 아니하자 통분하여 벼슬을 사임하
고 돌아가다가 등창이 나서 죽었다.
(20)陳平 漢 陽武人. 젊을 때에는 비록 가난하였으나 글읽기에 힘을 기울여 뒤에 한
고조의 신하로서 여섯 가지 奇策의 공을 세워 曲逆侯의 封함을 받았다. 六出奇計는 다
음과 같다.
①黃金 4만 兵으로 楚 陣中의 將帥들을 매수하여 項羽의 謀士范增이 漢과 內通하고
있다는 虛僞 풍문을 流布하여 不信케 하였고
② 楚나라 使臣이 僞造 편지를 훔쳐 가게 하여 范增의 計策을 不用케 하였고
③ 榮陽城이 楚軍에게 포위되었을 때 밤에 여자 2천명을 내보냄으로써 포위를 解除
시켜 漢沛公을 탈출케 하였고
④ 韓信을 齊王에 封하게 하여 齊에게 속히 回軍하여 楚軍과 對戰케 하였으며
⑤ 沛公이 帝位에 오른 후 雲夢으로 狩獵을 간다고 핑계하고서 韓信을 사로잡게 만
들고
⑥ 白登城의 危境을 벗어나게 하였다.
(21)周公瑾 중국 三國時代 吳나라 將軍. 자는 公瑾, 이름은 瑜이다. 安徵省 사람.
文武에 능했음. 처음 吳나라의 孫策을 섬기고 策이 죽은 뒤에는 그의 아우 權을 도왔
음. 吳나라 사람들은 周郞이라 부름. 劉備와 협력하여 赤壁에서 曹操軍을 크게 쳐부수
었음.
(22)曹彬 宋나라 靈壽人. 字는 國華, 이름은 彬. 成德軍節度使로 江南에서 전쟁에
이기고 全陵으로 돌아온 名將이다. 당시 第一良將이었다. 죽은 뒤 濟陽君王을 追封.
諡號는 武惠.
(23)馬援 後漢의 勇壯. 字는 文淵, 諡號는 忠成. 茂陵人. 光武帝때 濁을 쳐서 伏波
將軍이 되고 交趾를 쳐서 新息候에 封해짐. 武陵의 五溪충을 정복할 때 戰死함. 馬伏
波.
(24)광楚救君 楚에 거짓 항복을 하여 자기 인군을 구함을 말함.
(25)紀信 漢 高祖의 忠臣. 項羽가 漢 高祖를 榮陽에서 포위했을 때 高祖를 대신해서
죽었음.
(26)張巡 唐나라 南陽人. 群書에 博通하여 戰陣法에 밝았음. 開元중 進士에 擢進되
었다. 安祿山의 亂이 일어나자 起兵하여 이를 토벌했다. 그러나 賊將 尹子琦가 10만
大兵으로 공격해왔다. 巡은 士兵들과 固守하고 하루에 20회나 싸웠다. 그래도 救援兵
이 오지않으므로 먹을 것이 없어 자기 愛妾을 죽여 士兵를 먹였다는 名將.
(27)許遠 陽太守로 張巡과 더불어 죽음으로써 守節하던 충성스런 名臣.
(28)韓信 漢나라 功臣. 准陰人. 劉邦을 도와 項羽를 멸하고 天下를 통일하여 추陰侯
에 封하였다. 젊을 때 가난하여 城下에서 낚시질을 할 때 飢饉이 심함을 보고 漂母가
밥을 주었다. 韓信이 「뒷날 두터이 갚으리라」한즉 漂母가 「내, 王孫을 사랑하여 밥
을 준 것이지 어찌 갚기를 바라리요」하였다. 그 뒤 韓信이 帝王이 되어 千金으로 漂
母에게 은혜를 갚았다 함. <史記> 「韓信至國 召從食漂母 賜千金」
(29)樊쾌 漢나라 初期의 武將. 高祖 劉邦을 섬겨 싸움터에서 공을 세웠으며 조門의
會에서 沛公의 危急을 救하여 그가 즉위한 후에 舞陽侯에 封해짐. 諡號는 武侯.
(30)鄧禹 後漢때 新野人. 後漢 光武帝 卽位時 大司馬를 排하다. 때의 나이 24세였
다. 赤眉討伐의 一等功臣으로 高密侯에 封함. 明帝 때에 太傳가 되어 永平年間에 卒하
다. 諡號는 元.
(31)郭子儀 字는 子儀. 唐나라의 名將. 河南省 鄭縣 사람. 玄宗때 朔方節度使가 되
어 安祿山의 亂을 토벌하여 河北의10餘君을 恢復하였고 제宗 ·代宗때에 吐審을 쳐서
많은공을 세우고 司徒 中書令에 이어 汾陽王으로 封함을 받음. 諡號는 忠武. 世稱 郭 汾陽이라함.
많은공을 세우고 司徒 中書令에 이어 汾陽王으로 封함을 받음. 諡號는 忠武. 世稱 郭 汾陽이라함.
(32)楚覇王 <不須嚬> 註(28) 참조
(33)伍子胥 <不須嚬> 註914) 참조.
(34)關雲長 關은 姓 雲長은 字, 이름은 羽. 처음에는 字를 壽長이라하다가 雲長으로
고쳤음. 河東 解良人(現 山西地方). 키가 9尺 수염길이가 2尺, 낯은 대추빛 같고 입
술은 연지를 바른 것 같고 鳳의 눈에 누에 눈썹으로 위풍이 늠름하였다 한다.
(35)張翼德 성은 張, 翼德은 字 이름은 飛. 탁郡사람. 키가 8尺. 豹頭에 고리눈과
제비턱에 범의 수엽을 가졌고 소리는 큰 雷聲과 같았다 한다.
(36)趙子龍 이름은 雲 字는 子龍. 상산 眞定人으로 三國時代 濁漢의 名將. 身長이 8
尺. 濃眉大眼 활面重이로 위풍이 늠름하였다.
(37)馬孟起 三國時代 탁漢 五虎大將의 한 사람. 이름은 超. 字는 孟起. 扶風 茂陵人.
諡號는 威. 탁漢의 先主(劉玄德)을 도와 騎馬將軍이 됨.
(38)范少伯 <丈夫恨> 註(22) 참조.
(39)西施 <不須嚬> 註 (40) 참조.
(40)楊貴妃 <丈夫恨> 註(34) 참조.
(41)虞美人 <不須嚬> 註(30) 참조.
(42)貂嬋 後漢때 王允의 歌姬. 王允이 董卓을 타도하기 위하여 美人計를 쓰는데 이
용하였다 함.
(43)司馬相如 중국의 前漢의 文人. 字는 長향, 泗川출신. 景帝 때 벼슬에서 물러나
後梁에 가서 <子虛之賦>를 지어 이름을 떨침. 그의 辭賦는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後
六朝의 문인들이 이것을 많이 모방하였음.
(44)鄭瓊貝 고대소설<九雲夢>에 나오는 선녀의 이름.
(45)李蕭和 <九雲夢>에 나오는 인물
(46)秦彩鳳 <九雲夢>의 인물.
(47)賈春雲·桂蟾月·狄驚鴻·沈요烟·白凌波 모두 <九雲夢>에 나오는 八仙女이다.
15. 夢遊歌
이 몸이 한가(閒暇)하여 세상사(世上事)를 소제(掃除)하고 초당(草堂)에 누워 세상 풍경(世上風景)을 생각하니 창외(窓外)에 달이 밝고 청풍(淸風)이 서래(徐來)커늘 학슬침(鶴膝枕)(1) 돋우베고 겨우 한잠 들었더니, 호접(蝴蝶)이 장주(莊周)되고(2) 장주 호접 되어 통천하(通天下)를 두루 돌아 태고삼황(太古三皇)(3) 뵈은 후에 인간 만물(人間萬物) 알리로다.
공맹안증(孔孟顔曾)(4) 찾아뵈니 칠십제자(七十弟子)(5) 모였구나. 강태공(姜太公)을(6) 만나보니 응양지재(鷹揚之才)(7) 가득하다. 이태백(李太白)(8) 만나보고 강남풍월(江南風月) 어떻던고, 주중천자(酒中天子) 사해문장(四海文章)아니런가. 만고필법(萬古筆法) 왕희지(王羲之)와(9) 백낙천(白樂天)의(10) 장한가(長恨歌)와(11) 도연명(陶淵明)의(12) 귀거래사(歸去來辭)(13) 분명하다. 창오산(蒼梧山)(14) 구름 속에 순(舜)임금을 뵈러 가니 오현금(五絃琴)(15) 비껴안고 남풍가(南風歌)를(16) 부르신다.
검각령(劒閣嶺)(17) 찾아가니 어양태수(漁陽太守)(18) 안록산(安綠山)이 양귀비(楊貴妃)를 앗으려고 당명황(唐明皇)을 쫓아내니 명황(明皇)이 할일 없어 마외역(馬嵬驛) 진흙 속에 양태진(楊太眞)을 버히도다. 명황(明皇)의 피눈물이 아미산(峨嵋山)에(21) 뿌렸에라.
항우(項羽)의(22) 어린 소견(所見) 아방궁(阿房宮)에(23) 불지르니 종묘사직(宗廟社稷)(24) 한심하다. 애닲을사 초패왕(楚覇王)은 우미인(虞美人)을(25) 이별할제 눈물이 피가 되고 정장(亭長)의 말을 분(憤)히 여겨 오강(烏江)을(26) 못 건넜고, 수양산(首陽山)(27) 들어가니 백이숙제(伯夷叔齊)(23) 고사리를 캐어 먹고 주(周)나라를 근심한다.
고소성(姑蘇城)을(29) 지나서 멱라수변(멱羅水邊)(30) 다다르니 오자서(伍子胥)(31)와 굴삼려(屈三閭)는(32) 위국충혼(爲國忠魂) 깊은 뜻에 애애(哀哀) 호호(呼呼) 슬피운다. 요지선경 (瑤池仙境)구경하러 백옥산(白玉山)을 올라가니 선관선녀(仙官仙女) 모였구나, 신선풍류(神仙風流) 좋을씨고. 층층루상(層層樓上) 올라가니 월궁항아(月宮姮娥)(33) 반수(班首)로다. 만반진수(滿盤珍羞)(34) 차려 놓고 상아저(象牙箸)로 맛을 보니, 불로초(不老草)로 소채(蔬菜)하고 용두산적(龍頭散炙) 봉미탕(鳳尾湯)에 벽통주(碧筒酒) 천일주(天日酒)에 불사약(不死藥)이 안주로다.
견우 직녀(牽牛織女) 찾아보니 하동하서(河東河西) 나놔 있어 칠월 칠일 눈물짓고 오작으(烏鵲)로 다리놓아 은하수를 건너가서 서로 만나보단 말가. 황하수(黃河水)에 목욕하고 산채점심(山菜點心) 한 연후에 팔경(八景)구경하러 소상강(瀟湘江) 찾아들어 동정호(洞定湖)로 내려가니, 장한(張翰) 이 강동거(江東去)하니 청천일난(靑天日暖)에 수심(愁心)을 도도는 듯, 홍문연(鴻門宴)을(36) 들어가니 제왕제장(諸王諸將) 늘어앉아 풍류소리 질탕(跌蕩)한데 목자진렬(目자盡裂) 저 번쾌(樊쾌)의(38) 치주체견(치酒체肩) 장(壯)할씨고. 오강(烏江)에 우는 말은 항우(項羽)터던 오추마(烏추馬)요, 기산(箕山)에 섰는 소는 소부(巢父)의 소 분명하고 추월망야(秋月望夜) 우는 닭은 맹상군(孟嘗君)의 닭이로다.
이화정(梨花亭)의 짖는 개는 마고(麻姑)할미 삽사리요 오류촌(五柳村) 들어가니 도연명(陶淵明)의 정자(亭子)로다. 여포(呂布)(39) 타던 일행천리 적토마(赤토馬)를(40) 조맹덕(曹孟德)이 앗아 타고 관운장(關雲長)께(41) 드렸으니 화용도(華容道)(42) 좁은길에 조조(曹操)를 항복받고 늠름한 대장부요. 노장익당(老壯益當) 황한승(黃漢升)은(43) 칠십 당년 늙었으되 한 말 밥과 열근 고기를 마상에서 받아먹고 팔만대병 큰 싸움에 임의로 횡행(橫行)하여 있고 편작(扁鵲)의(44) 고명수단(高明手段) 만병(萬病)을 통치(通治)하고 맹호연(孟浩然)의(45) 저는 나귀 백낙천(白樂天)이 고쳐내어 연엽주(蓮葉酒)를 실어 타고 도연명(陶淵明)을 찾다가고 유령(劉伶)이를(46) 찾아가니 장취불성(長醉不醒)하여 있어 천수만한(千愁萬恨) 다 버리고 장진주(將進酒)로 노래한다.
춘산화류(春山花柳) 노는 명사(明士) 멱라궁(멱羅宮)의 영영(英英)이라 서시(西施)(47) 경대(瓊대)(48) 다왔으니 일색(一色) 구경하고 숙랑자(淑娘子)의(49) 고운 얼굴 오늘이야 보리로다. 남해용궁(南海龍宮) 들어가니 여서문(余書文)의 상량문(上樑文)에 광리왕(廣利王)이(50) 칭찬하니 글귀마다 문장이라 부상홍일(扶桑紅일)(51) 높았는데 서역국(西域國)을(52) 들어가니 아미타불(阿彌陀佛)(53) 석가여래(釋迦如來)(54) 관음보살(觀音菩薩)(55) 지장보살(地藏菩薩)(56) 십이보살(十二菩薩) 오백나한(五百羅漢)(57) 송경(誦經)소리 유랑(유랑)하다. 그리로서 돌아나와 고소대상(姑蘇臺上)(59) 월단단(月團團)이요 고소대하(姑蘇臺下) 수잔잔(水潺潺)이라. 읊어 내니 취흥(醉興)이 한가(閒暇)하다.
왕발(王勃)의(60) 등왕각서(등王閣序) 처량할손 삼척미명(三尺微明) 네 글자라, 삼신산(三神山) 돌아들어 백운(白雲)으로 일산(日傘)삼고 청풍(淸風)으로 부채삼아 좌우 산천 구경하고 호중천지(湖中天地) 바라보니 석양천(夕陽天)이 거의로다. 낚싯대를 둘러메고 조대(釣臺)로 내려가니 서산낙조(西山落照) 비꼈는데 은린옥천(銀鱗玉尺) 낚아 내어 버들끝에 꿰어 들고 망혜완보로(芒鞋緩步) 어부사(漁父辭)(61) 외우면서 행화촌(杏花村) 찾아가니,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醉)하여 돌아오니 청한담백(淸閑澹白)(62) 이내 몸이 세상공명(世上功名) 비할소냐. 구승갈포(九升葛布) 입었으니 금의(錦衣)를 부러하며 산채맥반(山菜麥飯)으로 적구충장(適口充腸)하였으니(63) 고량진미(膏粱珍味)(64) 무용(無用)이라. 세상사 정녕 이러하구나, 아니 놀고 무엇하리.
【解 說】
이 <몽유가(夢遊歌)>는 꿈 속에서 본 것을 생시와 같이 엮은 것이다. 다른 단가도 그렇듯이 너무 허황(虛荒)된 말이 많고 비슷비슷한 구절이 연속되어 같은 말이 반복되므로 흥미가 적다.
부귀영화(富貴榮華)도, 금의옥식(錦衣玉食)도 모두 다 귀찮다는 것으로 끝을 맺을 맺는데 고사(故事)에 얽힌 옛일들을 화려한 문장으로 수식하여 읽을수록 진미가 있다.
註(1) 鶴膝枕 鶴膝은 鶴의 무릎이란 뜻이다. 鶴膝眼鏡이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안경다리를 말하는것이다. 이 鶴膝로 베개를 만들 수는 도저히 없다고 본다. 短歌 <丈
夫恨>에는 邯군枕
(2) 莊周蝴蝶 <丈夫恨> 주 (9) 참조
(3) 太古三皇 太古란 아주 오랜 옛날 上古를 말한다. 三皇은 <歷代歌> 註 (7) 참조.
(4) 孔孟顔曾 <不須嚬> 註(5) 참조
(5) 七十弟子 제자의 弟子3천명 중 특히 六藝에 정통한 70명을 말함.
(6) 姜太公 <不須嚬> 註 (6) 참조
(7) 鷹揚之才 매가 하늘을 날 듯, 즉 위엄과 武力을 만천항 당당히 떨칠 수 있는 재
주를 말한다.
(8) 李太白 <不須嚬> 註(38) 참조
(9) 王羲之 <짝타령> 註 (9) 참조
(10) 白樂天 <竹杖芒鞋> 註(17) 참조
(11) 長恨歌 唐나라때의 白樂天이 지은 서사시. 806-807년에 지음. 唐 玄宗이 楊
貴妃를 잃은 원한의 情이 날로 더해가는 줄거리를 漢나라의 皇帝에 비유하여 暗示的으
로 읊은 것임. 後세의 小說이나 戱曲에 좋은 소재로 쓰임.全篇 七言에 60句로 됨
(12) 陶淵明 <探景歌> 註(7)참조.
(13) 歸去來辭 晋나라의 陶淵明이 彭澤의 縣令이 되었을 때 郡의 長官이 「束帶하고
拜謁하라」고 함에 분개하여 「내 五斗米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鄕里의 小人에
게 절을 해야하는냐」고 그날로 辭職하고 歸鄕한 것을 적은 글. 六朝 제일의 名文이라
일컬어짐.
(14) 蒼梧山 湖南省 寧遠縣에 있는 산. 九疑山이라고도 하며 舜이 崩逝한 곳.. <史
記> 「舜南巡狩 崩干蒼梧之野」
(15) 五絃琴 舜임금이 타던 다섯 줄로 된 거문고.
(16) 南風歌 舜임금이 부르던 노래를 말함. 舜: 琴操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온兮」
(17) 劍閣嶺 중국 長安에서 탁으로 가는길인 大劒 小劒의 두山 要害 ,劒門, 險峻한 嶺.
(18) 漁陽太守 漁陽은 地名. 直隷省 蘇縣 平谷등지. 安祿山의 范陽에서 亂을 일으켜
漁陽과 호응하여 洛陽을 함락하여 長安으로 침입한 故事. 安祿山이 漁陽太守는 아니었음
(19) 唐明皇 唐 玄宗을 말함. <丈夫恨> 註(33) 참조.
(20) 楊太眞 楊貴妃를 말함. <丈夫恨> 註 (34) 참조.
(21) 峨嵋山 중국 四川省 서부에 있는 山. 중국 四大名山의 하나임. 佛敎道의 靈地
임. 牛心 伏處 萬年등 접명한 事蹟이있으며 피서지로적당함. 높이 3380m
(22) 項羽 <不須嚬> 註(28) 참조
(23) 阿房宮 <不須嚬> 註(22) 참조
(24) 宗廟社稷 王室과 나라를 아울러 이르는 말. 宗祖는 王室 帝王을 모신 祠堂이며
사직은 나라에서 백성의 福을 위해 제사하는 土地의 神인 社와 곡식의 神인 稷 . 즉
國家나 朝廷을 이르는 말
(25) 虞美人 <不須嚬> 註(30) 참조.
(26) 烏江 <不須嚬> 註(31)참조.
(27) 首陽山 중국 山西省의 서남쪽에 있는 산. 옛날 伯夷와 叔齊가 여기서 굶어 죽
었다고 함.
(28) 伯夷叔齊 <不須嚬> 註 (31) 참조.
(29) 姑蘇城 江蘇城 吳懸의 姑蘇山에 있는 성. 唐詩 張繼 楓橋夜백 「月落鳥啼霜滿
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30) 율羅水 <不須嚬> 註(11) 참조.
(31) 伍子胥 <不須嚬> 註(14) 참조
(32) 屈三閭 <不須嚬> 註(12) 참조
(33) 月宮姮娥 姮娥는 승의 妻. 예가 西王母에게서 얻어 온 仙樂을 훔쳐 달로 도망
했다 함. 상세한 것은 <연湘八景>註(8) 참조.
(34) 滿盤珍羞 소반이나 상 위에 가득히 차린 별스럽고 맛있는 음식.
(35) 張翰 <丈夫恨> 註 (20) 참조.
(36)鴻門宴 <鴻門宴歌> 참조
(37)目자盡裂 눈꼬리가 다 찢어질 정도로 사납게 흘겨보는 모양.
(38)樊쾌 <짝타령> 註(29) 참조.
(39)呂布 後漢 九原사람. 字는 奉先. 활을 잘 쏘고 말을 잘탐. 용맹하나 無謀하고
변덕이 심함. 처음에는 丁原에게 뒤에 董卓에게 붙어 벼슬을 하더니 다시 董卓을 죽이
고 애術의 부하가 됨.
(40) 赤토馬 온몸이 마치 불꽃같이 純赤色으로 얼룩 한 점 없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의 길이가 한길이나 되고 발에서 목까지의 높이가 8尺이나 되어 渡水登山 때 평지와
같이 달려서 赤토馬라고 이름을 지었음. 처음에 呂布가 탔던 것을 曹操가 빼앗아 關雲
長에게 주어 평생을 같이 하다가 雲長이 被殺된 뒤에 이 말도 먹지 않고 自死하였음.
(41)關雲長 <짝타령> 註(34)참조.
(42)華容道 曹操가 赤壁江에서 敗走하다 關羽를 만나 死境을 모면한 곳.
(43)黃漢升 三國時代 탁의 五虎大將중의 한 사람. 이름은 忠, 字는 漢升. 南陽人으
로 關內後가 되었음. 늙도록 싸움터에 나가 戰功을 세운 名將.
(44)扁鵲 중국 戰國時代의 醫學者. 名醫로서 傳說的인 名聲을 남겼으며 그의 著書라
고하는 醫書類가 많음. 시기를 받아 음殺되었다 함. 印度의 名醫
(45)孟浩然 <竹杖芒鞋> 註(14) 참조
(46)劉伶 <丈夫恨> 註(23) 참조.
(47)西施 <不須嚬> 註(40) 참조.
(48)瓊貝 <九雲夢>에 나오는 八仙女의 하나인 鄭瓊貝임.
(49)淑娘子 이름은 淑香. 宋未人으로 才色이 絶美하였음. 그의 父는 金鈴, 母는 張
氏. 金人의 亂이 위급하여 부모가 딸을 데리고 갈 형편이 못되어서 진주 2顆와 生年
月日을 써서 품안에 넣어 두고 도피하였다. 淑香은 곧 靑鳥의 안내로 사슴등에 업혀서
산으로 갔다. 그 후 張丞相의 집에 의탁되었다가 다시 火德眞君의 보호를 받아 天台山
麻姑를 만나 梨花亭에 머물러 繡를 일삼았다. 그鸞鳳의 繡가 市場에 나오니 당시 尙
書의 子 李仙이 보고 繡놓은 主人을 극력히 찾다가 마침내 淑香을 만나 둘이서 부부가
되었다. 李仙은 文科壯元에 兵部尙書를 지내고 皇太后의 병환에 功이 많아 楚王을 封
하니 淑香의 부부는 행락을 많이 누리게 되었다고 함. <淑香傳> 引用.
(50)廣利王 唐 天寶 10年 正月에 임금이 昭明하여 南海神 祝融을 廣利王으로 封하
였다.
(51)扶桑紅日 扶桑은 해가 돋는 동쪽 바다. 中國傳說에서 동쪽 바다속의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想像의 나무 이름. 또는 그곳. 즉 붉은 해가 동쪽 바다에서 뜬다는 말.
(52)西域國 印度를 말함.
(53)阿彌陀佛 西方淨土에 있다고 하는 부처의 이름. 無量佛 또는 無量光佛이라고도
함. 이 부처를 念하면 죽은 뒤에 극락 세계에 간다고 함.
(54)釋迦如來 석가모니를 높이어 이르는 말. 석가모니 佛敎의 開祖. 세계 四聖의 한
사람. 城主 淨飯王과 王妃 麾耶의 아들로 태어남. 처음 이름은 悉澾多로 29세에 生死
解脫의 法을 구하러 집을 나와 35세에 正覺을 얻어 부처가 됨. 갠지즈강에 있는 鹿野
苑에서 四諦 十二因綠 八正道의 법을 가르치고 이후 45년 동안 인고 각지를 다니며
布敎하다가 기원전 486년 2월15일 80세로 拘尸那羅의 娑羅雙樹아래에서 入滅함.
(55)觀音菩薩 觀世音菩薩을 말함이니 大慈大悲의 상징으로서 가장 널리 尊崇되는 보
살. 중생이 괴로울 대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그 음성을 듣고 곷 구제한다고함.
극락 淨土에서 아미타불의 脇侍로서 부처의 敎化를 돕는다 함. 그 형상을 여러가지로
달리함에 따라서 千手觀音 十一面觀音 魚藍觀音 如意輪觀音 白衣觀音 馬頭觀音등의 이름이 있음. 觀自在菩薩, 대비 관음.
(56)支裝菩薩 釋迦佛의 부탁을 받고 배일 아침 禪定에 들어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며
석가가 入滅한 뒤 미륵불의 出世까지 부처 없는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六道의 중생
을 교한다는 보살. 天官을 쓰고 袈裟를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에는 寶珠를
든 형상이라 함.
(57)五百羅漢 석가의 佛滅후에 그의 貴校結集을 위하여 모였던 5백명의 阿羅漢. 五
百 應眞 五百阿羅漢.
(58)유량 樂器의 소리가 거침없이 맑게 울리며 또렷또렷함.[영中白雲曲 最
(59)姑蘇臺 姑蘇는 春秋戰國時代 吳나라의 都邑. 지금의 江蘇省 蘇州府. 이곳의 山
이 姑蘇山이고 그 위에 臺가 姑蘇臺이다. 이는 吳王 夫差가 築造한 것이다.
(60)王勃 <짝타령> 註(5) 참조.
(61)漁父辭 漁父는 漁父를 말함. 屈原이 너무도 淸廉潔白한 때문에 誣告에 걸려 江
畔으로 추방당하였다. 그가 憂愁에 잠겨 헤매고 있을때에 漁父 老人을 만났다. 漁父
는 屈原에게 세상에 순응할 것을 일러 주었으나 屈原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漁
父는 <滄浪之水>의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 버렸다는 내용인데 屈原의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그 對照로 漁父를 내세웠다.
(62)淸閑澹泊 淸閑은 속된 일을 떠나서 조용함. 남을 높이어 그의 한가함을 이르는
말. 澹泊은 욕심이 없이 마음이 깨끗함.
(63)適口充腸 음식의 맛이 입에 맞아 창자를 채운다. 즉 배불리 먹는다는 말.
(64)膏粱珍味 기름지고 살찐 고기와 좋은 음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16. 湖南歌(1)
함평(2) 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光州)(3) 고향을 보려 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4) 빌어 타고 해남(海南)으로(5) 건너갈제 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性)에(6)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 안개 영암(靈岩)을(7) 둘러있다. 태인(泰人) 하신(8)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의(9)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의(10) 진안군(鎭安郡)이라.(11) 고창성(高창城)에(12) 홀로 앉아 나주 풍경(羅州風景)(13)바라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은 높이 솟아 충충한 익산(益山)이요(14), 백리담양(百里潭陽)(15)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만경(萬頃)인데(16)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능주(綾州)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금산(錦山)인가.
남원(南原)에(17) 봄이 들어 각색 화초무장(武將)하니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18)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풍속은 화순(和順)이요(19) 인심은 함열(咸悅)인데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20)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21)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世上) 무안(務安)을(22) 일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23)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 동복(同福)이라. 강진(康津)의(24) 상고선(商賈船)은 진도(珍島)로(25) 건너갈 제 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아노니 김제(金堤)로다.(26)
농사하는 옥구(27)백성(沃溝百姓) 임피사의(臨陂사衣) 둘러입고 정읍(井邑)의(28) 정전법(井田法)은(29)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淳昌)이요(30) 고부청청양류색(古阜靑靑楊柳色)은 광양(31) 춘색(光陽春色)이 새로왔다. 곡성(谷城)의(32) 숨은 선비 구례(求禮)도(33) 하려니와 홍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34) 제가(齊家)이 아니냐.
우리 호남의 굳은 법성(法聖)(35) 전주(36) 백성(全州百姓) 거느리고 장성(長城)을(37) 멀리 쌓고 장수(長水)로(38)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대장부(大丈夫)의 할 일이 이 외에 또 있는가.
【解 說】
이 <湖南歌>는 이 서구(李書九)의 작이라고 한다. 호남이라 하면 지금의 전라 남북도를 말한다. 이는 고장 이름을 따서 문장식으로 멋지게 엮은 노래인데 호남의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다.
첫머리가 함평(咸平)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주(濟州)로 넘어가는데 예전에는 제주도가 전라도에 속했던 까닭이다.
광주(光州)·나주(羅州)·해남(海南)·보성(寶城)·흥양(興陽)·고산(高山)·영암(靈岩) 태인(泰仁)·고창(高창)·순천(順天)·진안(鎭安)·운봉(雲峰)·익산(益山)·담양(潭陽)·만경(萬頃)·용담(龍潭)·용안(龍安)·능주(綾州)·금산(錦山)·남원(南原)·임실(任實)·옥과(玉果)·화순(和順)·무장(茂長)·함열(咸悅)·무주(茂朱)·영광(靈光)·창평(昌平)·무안(務安)·낙안(樂安)·동복(同福)·강진(康津)·진도(珍島)·금구(金溝)·김제(金提)·임피(臨陂)·정읍(井邑)·순창(淳昌)·광양(光陽)·곡성(谷城)·구례(求禮)·흥덕(興德)·부안(扶安)·법성(法聖)·전주(全州)·장성(長城)·장수(長水)·여산(礪山)·남원(南原) 등 무려 49개의 각 고을을 풍경이나 사적(史蹟)을 들추어 문장으로 멋지게 엮은 노래로 퍽 재미있다.
註 (1) 湖南 全羅南北道를 말함
(2) 咸平 全羅南道 서부에 위치한 郡. 원래의 咸豊 牟平을 합친 것임. 咸豊縣은 百
濟의 屈門縣인데 新羅때 咸豊으로 고치고 高麗初에 靈光에 예속됨. 牟平縣은 百濟의
多只縣인데 新羅때 多岐로 고치고 高麗때 牟平으로 고쳐서 靈光에 예속됨. 朝鮮 3代
太宗9년(1409년)에 咸豊 牟平 두縣의 이름을 합해 咸平으로 고쳐 오늘에 이름. 명승
고적으로는 龍華寺·箕山潁水 躍馬嶝 酒浦해수욕장등이 있음.
(3)光州 全羅南道 중앙부에 위치한 市로서 도청소재지. 1896년 13道로 개편할 때
도청소재지가 되고 1949년 7월 4일에 地方自治團體령 공포에 따라 市로 승격됨. 古
來로 百濟의 武珍州, 新羅의 武州, 甄萱의 後百濟의 도읍지로서 全州와 더불어 湖南의
政治 軍事의 중심지이다. 명승고적으로는 無等山·今勿梯池·光州城·石屎亭·喜慶樓·
開龍寺·元曉寺·證心寺등이 있음.
(4)濟州漁船 濟州는 원래 全羅南道에 예속되었던 관계로 濟州의 고기잡이배를 넣은
것이다.
(5)海南 全羅南道의 남서부에 위치하는 한 郡. 원래 百濟의 塞琴縣인데 新羅때 浸溟
으로, 高麗때 海南으로 고쳐서 靈岩郡에 예속시킴. 조선시대에는 水軍全羅左水營을 두
어 남쪽 해상방비의 要地로 삼았으며 1895년에 郡이 됨. 명승고적으로는 達磨山·碧波
津 於蘭津 李舞臣大捷괴 採石江·白房山등이 있음.
(6)寶城 全羅南道의 중남부에 자리잡은 한 郡. 원래 伏忽군인데 新羅 35代 景德王
때 寶城郡으로 고침. 1914년 長興郡의 會泉·態峙 두 面을 합쳤음. 栗浦 關防 劍嚴등
의 명승고적이 있음.
(7)靈岩 全羅南道 남서부에 위치한 한 郡. 東南郡界에 月出山(808m)이 솟아 그 줄기
가 東半部에 중첩해서 병陵을 이루고 특히 榮山江 유역에는 상당히 넓은 低地가 있음.
바다에 임한 지대는 대체로 傾斜地耕地로서 이용, 동북으로 흐르는 長成川, 서쪽에 犢
川 和所川 동북쪽에 龍頭川 북쪽에 新元津등의 하천은 灌漑의 利는 없으나 舟運에는
小流이므로 부적당함. 원래 百濟의 月奈郡 新羅때 靈岩郡으로 개명. 993년 朗州 安南
都護府 1018년 다시 靈岩郡. 12906∼15년 인접의 郡과 面의 廢合이 있었음. 명승고적
으로는 道岬寺·鳩林·會社亭등이 있다.
(8)泰仁 全羅北道에 있는 지명. 百濟때 大尸山郡이며 新羅 때는 太山 또는 武城이라
하다가 朝鮮 太宗때에 泰仁이라 改稱하였다. 또 君王의 聖德을 지명과 합하여 말함.
龍藏寺·慕忠祠등의 고적이 있음.
(9)三台六卿 三政丞 六判書
(10)方伯守令 方伯은 監司 守令은 郡守와 縣令을 말함.
(11)鎭安 전라북도의 동부에 위치한 郡. 원래 百濟의 難珍阿縣인데 新羅 35代 景
德王때 鎭安縣으로 고치고 朝鮮朝 3代 太宗때에는 縣監을 두었다가 1895년에 郡이 됨.
1914년에 龍潭郡의 일부를 합했음. 명승고적으로는 馬耳山·金塘寺·龍潭耶馬溪·天皇寺·
甑淵등이 있음.
(12)高敞 全羅北道 西南端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毛良夫里縣이었는데 1906
년에 郡으로 되고 1914년 茂長郡일부와 興德郡의 일부를 병합함. 명승고적으로는 해
수욕장과 아率山이 있고 興德堤 神雲寺·文징寺등이 있음.
(13)羅州 全羅南道 중앙부에 위치한 郡. 원래 百濟의 發羅郡인데, 新羅때 錦山郡, 후
에 高麗때에는 羅州등으로 되었다가 朝鮮朝 世祖때에는 鎭을 두어 관할했음. 錦城山城· 多寶寺등의 명승고적이 많음.
(14)益山 全羅北道의 한 郡. 이 道의 북쪽에 있음. 본래 馬韓의 영토였으며 百濟의
시조 溫祚王때에 金馬渚라 하였고 新羅 神文王때에 金馬郡으로 高麗때에는 全州에 예
속되었고 28代 忠惠王5년(1343년)에는 益州로 고쳤다가 朝鮮朝3代 太宗14년에는
이 이름으로고쳤음. 명승고적으로는 雙陵 箕準城址·石橋洞·將軍峯이 있음.
(15)潭陽 全羅南道 북부에 위치한 한 郡. 원래는 百濟의 秋子兮郡. 高麗 成宗14년
(995년)에 潭州都團練使를 두었다가 潭陽으로 고치고 羅州에 예속시킴. 開仙寺址·金
城山址·龍淵·龍興寺·石燈·石刀·官防堤등 명승고적이 많음.
(16)萬頃 全羅北道 金堤郡 萬頃里의 옛 이름. 원래 百濟의 豆乃山縣인데, 朝鮮朝 26
代 高宗32년(1895년) 郡이 되었다가 1914년에 金堤와 합했음.
(17)南原 全羅北道 東南端에 위치한 한 郡. 百濟 때 古龍郡, 新羅 景德王때에는 南
原 小京, 朝鮮朝 太宗14년(1413)에는 都護府, 世祖때에 鎭을 두는 한편 1都護府·1郡·9
縣이 있었음. 1895년 南原府로 했다가 이듬해 南原郡이 됨. 春香祠·實相寺·烏鵲橋·南
原城址·廣寒樓·源川포布등의 명승고적이 많음.
(18)任實 全羅北道의 남동에 위치한 郡. 百濟때부터 任實郡으로 新羅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으며 高麗때에 南原府에 딸렸다가 1895년 郡으로 되어 오늘에 이름. 명
승고적으로는 新興寺·四仙臺·光明燈·元寂寺·靈驚山·白蓮寺등이 있음.
(19)和順 全羅南道의 중앙에 위치한 한 郡. 원래 和順·綾州·同福의 3郡을 합친것임.
和順은 百濟의 仍利阿縣인데, 新羅때 汝湄로 고치고, 高麗 때에 和順으로 고치면서 羅州에 예속됨. 朝鮮朝에 여러 차례 변현을 거쳐 1895년에 郡이 되고 1914년에는 綾州·同
福의 兩郡을 합침. 명승고적으로는 無等山·多塔峯·寶山赤壁·金驚山城등이 있음.
(20)茂朱 全羅北道 東北端에 위치한 한 郡. 원래의 茂豊·朱溪 두 縣을 합친 것인데
朝鮮朝3代 太宗 14년91414년)에 茂朱라 고쳐 縣監을 두었다가 26代 高宗 32년
(1895) 郡으로 됨. 德裕山·塞風樓·高境寺·佛頭寺·九天洞등 명승고적이 있음.
(21)靈光 全羅南道의 北西端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武尸伊郡이었으나, 高麗에
와서 靈光으로 고치고 현재까지 君名이 존속하고 있음. 명승고적으로는 佛甲寺·海佛庵
餞日庵·佛影臺·修道庵·隱仙庵·靈光八怪이 있음.
(22)務安 全羅南道 서남부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勿奈兮郡인데 신라35代 景
德王때 務安郡으로 고쳤음. 그후 변천을 거쳐 朝鮮朝26代 高宗32년(1895)에 郡이 되
었다가 한일합방후 木浦에 예속되어 1914년 木浦·智島郡의 일부를 합쳐 새로이 郡을
설치하였음. 黑山島·烽臺山·遊山亭·鼎足浦등 명승고적이 많음.
(23)士農工商 선비·농부·工匠·상인 등 모든 계급의 백성을 이르는 말. 봉건시대의
계급관념을 차례대로 이르는 말.
(24)康津 全羅南道 남서해안에 위치한 한 郡. 본래의 道康縣과 耽津縣을 1417년에
합쳐 康津으로 고치고 1985년에 郡으로 승격 1914년에 加牛島를 합침. 특히 古今島의
경치가 좋으며 천연기념물로 大口面의 개팽나무 兵營面의 개비나무가 있음.
(25)珍島 全羅南道 南西端 서해상에 위치한 한 郡. 가장 큰 珍島와 그 부근 島嶼有
人島 49개, 無人島88개로 구성된. 百濟때의 因珍島部인데 新羅 35代 景德王때 珍島郡
으로 고쳐 茂安郡 연현이 되었다가 朝鮮朝 26代 高宗32년(1895)에 郡이 됨. 1914년
都草面을 務安郡에 편입시킴. 명승고적으로는 鳴梁海峽·鴨鷗亭·竹林寺·碧波亭·僞王城
金甲鎭·雙溪寺·尖祭峯烽燧臺등이 있음. 특히 진돗개가 유명함.
(26)金堤 全羅北道 서쪽 끝에 위치한 한 郡. 金堤는 본디 百濟의 壁骨郡이었는데, 신
라때 金堤로 바뀌었고 1914년에는 金溝와 萬頃을 합쳤음. 명승고적으로는 金山寺·萬
頃平野·石蓮臺·碧骨堤·七星閣·石鏡등이 있음.
(27)沃溝 全羅北道의 北西端에 위치한 郡. 沃溝는 百濟의 馬西良縣으로 新羅때 沃溝
라 고치고 高麗때 臨陂郡에 예속되었다가 1895년에 郡이 되고 1914년에는 臨陂와합침. 명승고적으로는 古郡山島·仙遊島등이 있음.
(28)井邑 全羅北道의 남서부에 자리잡은 한 郡. 百濟때의 井村縣인데, 新羅 35代 경
덕왕때 井邑縣으로 고치고 朝鮮朝에는 縣監을 두었다가 高宗32년(1895년) 郡이 됨.
1914년 泰仁·古卓 두 郡을 일부 병합하여 井邑郡으로 됨. 東學革命의 先驅者인 全琫
準이 東學徒를 모아 斗升山위에 烽火를 올려 봉기한 곳이 바로 이곳임. 명승고적으로
는 宋尤庵의 節義를 傳하는 遺墟碑·披香亭·內藏山·斗升山·笠岩山城址·民樂亭·洛城亭
龍藏寺·靈隱寺등이 있다.
(29)井田法 중국 殷·周 때에 田野]를 농민에 분배하되 井字모양으로 구획하여 1井을
8家가 각각 1區 百畝씩 私有로 하고 그 중앙에 있는 百畝는 公田으로하여 8家가 公
田 百畝를 공동 경작하여 國稅로 바치는 法.
(30)淳昌 全羅北道의 最南端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道實郡이던 것을 高麗 27
代 忠소王1년(1314)에 郡으로 승격. 명승고적으로는 적성진 경천 대모산성 귀래정등
이 있음.
(31)光陽 全羅南道 동부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馬老縣이었는데, 高麗때 光陽
으로고쳐 監務를 두었다가 朝鮮朝 26代 高宗32년(1895)郡으로됨. 명승고적으로는
白雲山과 龍門瀑布·中興山城의 三層石塔·閑麗水道 등임.
(32)谷城 全羅南道 동북부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欲乃郡인데, 新羅35代 景德
王이 谷城으로 고치고, 高麗初에 昇平郡에 딸렸다가 朝鮮朝 26代 高宗32년(1895) 郡으
로 승격. 觀音寺·金銅觀世音苦薩坐像등의 고적이 있음.
(33)求禮 全羅南道 북동부에 위치힌 한 郡. 원래 百濟의 仇次禮縣인데, 新羅 35代
景德王때 求禮로 고쳐져서 谷城郡 領縣이 되도 高麗初에는 南原府에 딸렸다가 朝鮮朝
에 縣이 됨. 명승고적으로는 華嚴寺·泉隱寺·鰲山寺·龍虎寺·老姑壇등이 있으며 천연기념
물로는 華嚴寺의 올벚나무·원달리의 山葉萸가 있음.
물로는 華嚴寺의 올벚나무·원달리의 山葉萸가 있음.
(34) 扶安 全羅北道의 남서쪽에 위치한 한 郡. 朝鮮朝 3代 太宗16년(1416년)에 원
래의 扶寧縣과 保安縣과 합쳐 扶安으로 고침. 26代 高宗32년(1895)에 郡으로 승격하
는 한편 1908년에 古阜郡의 白山面·巨麻面·德林面을 합침. 頓地·開巖寺·樓雲庵·來蘇
寺·直沼瀑布·月明庵·實相寺·彩石江등의 명승고적이 많음.
(35)法聖 法聖布. 全羅南道 靈光郡 북서해안에 있는 浦口. 灣內의 갯펄을 간척하여
논과 監田으로 이용되며 특히 조기가 많이 남.
(36)全州 全羅北道의 도청소재지인 市. 원래 百濟의 完山으로 百濟가 新羅에게 멸망
한 뒤 35대 景德王 16년(757)에 全州로 고침. 19895년 郡이 되고 1935년 府로 승격
되었다가 1949년 시로 됨. 古色이 짙은 교육도시로서 完州郡에 둘러 싸여있고 萬頃江
의 상류인 全州川 연안에 자리잡아 북서쪽으로는 內浦平野로 향하고 남동쪽으로는 병
陵과 험한 산으로 둘러싸였음.朝鮮朝 發祥의 故地로서 慶基殿·梧木臺·寒碧樓·德津池·
南固山城址등이 있음.
(37)長城 全羅南道의 北端에 위치한 한 郡. 본래는 百濟의 古尸伊縣이던 것을 高麗
初에 長城郡으로 고침. 朝鮮朝 17代 孝宗6년(1655) 府로 승격. 高宗32년(1895)郡이
됨. 명승고적으로는 內藏山·白羊寺·笠巖山城·筆巖書院등이 있음.
(38)長水 全羅北道의 동부에 위치한 한 郡. 원래 百濟의 右坪縣인데, 新羅 85代 景
德王때 高澤縣으로 되었다가 高麗初에 長水縣이라 고치고, 朝鮮朝 26代 高宗 32년
(1895)에 郡이 됨. 명승고적으로는 白雲山·雲岾山·釋天寺·墮淚碑·論介碑·龍湫·戀思
樓·白華山·水分峴 따위가 있음.
樓·白華山·水分峴 따위가 있음.
17. 片時春
아서라 세상사(世上事) 가소롭다. 군불견(君不見) 동원도리편시춘(東園桃李片時春)(1) 창가소부(娼家小婦)야 웃들마라. 대장부 평생 사업 건연(건然)히 지나가니 동류수(東流水) 굽이굽이 물결은 바삐바삐 백천(百川)이 동도해(東到海)라 하시(何時)에 부서귀(復西歸)아(2). 우산(牛山)에(3) 지는 해는 제 경공(齊景公)의 눈물이요(4) 분수(汾水) 추풍곡(秋風曲)은(5) 한 무제(漢武帝)의 설움이라.
피 죽죽 저 두견(杜鵑)안 성성제혈(聲聲啼血) 한을 마라. 기천년(幾千年) 미귀혼(未歸魂)이너도 또한 슬프련만 천고상심(千古傷心) 우리 인생 봄마다 수심이라. 낙양성동(洛陽城東) 낙화(洛花)소식 공자 왕손(公子王孫)처량하구나. 천춘 꿈을 놀라 깨니 백발(白髮) 설움 더욱깊다. 오릉금시(五陵金市)(6) 은안백마(銀鞍白馬)(7) 당시행락(當時行樂) 내련마는 장안청루(長安靑樓) 소년들은 저 혼잔 듯 자랑한다.
창강(滄江)에 배를 띄어 풍월(風月)을 가득 싣고 범범중류(泛泛中流) 내려가니 백구비거(白鷗飛去)뿐이로다. 어디서 비파(琵琶) 소리 곡종(曲終) 인불견(人不見]) 수봉청(數峯靑)하니(8) 소상고적(瀟湘古蹟)이 방불(彷彿)하구나. 음풍(陰風)이 노호(怒號)하여 탁랑(濁浪)이 배공(排공)이라(10) 잔나비 우는 곳에 만속상사(萬古常事) 꿈을 깨니 동정호(洞庭湖)(11) 저기로다.
저 건너 성낸 조수(潮水) 절강일시(浙江一時) 분명하구나 은은한 옛 사당은 상산사(湘山祠)(12) 형적(形跡)인가. 일호주(一壺酒) 진(盡)토록 만고사(萬古事)가 암암(暗暗)이라. 유영(劉영)이(13) 기주(嗜酒)한들 분상토(墳上土)에 술이 오랴. 아마도 우리 인생 춘몽(春夢)과 같으오니 한잔 먹고 즐겨보세.
【解 說】
이 <편시춘(片時春)>은 가장 성창되는 단가 중의 하나다. 전에는 사설(辭說)이 분명치 않고 오자(誤字)와 낙서(落書)가 많아서 부르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가사를 정리하여 올바르게 고쳐놓았다.
이 노래의 내용은 세월이 덧없음을 비관(悲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군불견 동원도리 편시춘(君不見 東園桃李片時春)」이 주제이다.
인생의 젊음이라 허황(虛荒)하여 어느 겨를에 백발이 되고 만다는 한탄조(恨歎調)의 소재로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이다.
註
(1) 君不見 東園桃李片時春 그대는 東園의 桃李花가 잠시 피었다가 헛되게 짐을
보지 못하였는가 하는 뜻으로 이말은 인생의 젊음이 허망하여 잠시 동안에 사라진다는
뜻. 王勃 時 「娼家少婦不須嚬 東園桃李片時春」
(2) 百川東到海 何時復西歸 온갖 냇물은 모두 동쪽 바다로 쏟는 듯이 흘러가니 언제
나 다시 서쪽으로 돌아오랴 하는 말로서 唐詩의 한 句節이다.
(3) 牛山 중국 山東省 臨淄縣 남쪽에 있음. 齊 景公이 놀던 곳. <晏子春秋> 「齊景
公 遊於牛山 北臨其國城而流涕」
(4)齊景公의 눈물 이름은 杵臼 , 景은 諡號. 姜太公의 후손. 齊 景公이 일찍이 牛
山에 올라지는 해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여 「세월이 빠름이여 어찌 인생으로
하여금 죽음의 길을 재촉하는고」한즉 從者 3명 중 2명은 따라 울었으나 오직 晏子만
은 웃으며 하는 말이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는 것은 天理의 定則이온데, 역
리를 하려 함은 不仁한 처사이며 불인한 임금을 따라 아첨하는 신하들이 운다는 것이
어찌 우습지 않으리요」하였다 함.
(5)汾水秋風曲 漢 武帝가 汾水에서 뱃놀이하면서 지은 가사인 <秋風辭>를 秋風曲이
라고도 함. <休齊> 云 「時變而爲騷 騷變而爲辭 皆可歌也 漢武帝 因祀后土於汾陰 作
秋風辭一章 風三易韻 其節短 其聲哀」<秋風辭> 「秋風起兮 白雲飛 草木黃落兮 雁南歸 蘭有秀兮 菊有芳 懷佳人兮 不能忘 泛數船兮 濟汾河 橫中流兮 揚小波 簫鼓鳴兮 發棹歌 歡極樂兮 哀情多 小壯幾時兮 奈老何」
(6)五陵金市 五陵은 漢 高祖 이하 五帝의 무덤이 長安에 있으므로 五陵이라 함. 즉
長陵(高帝) 安陵(惠帝). 陽陵(景帝). 茂陵(武帝) 平陵(昭帝), 金市는 金陵市를 말함
(7)銀鞍白馬 鞍裝을 銀으로 장식한 흰말. 李白 詩 <少年行> 「五陵少年金市東 銀鞍
白馬度春風 洛花踏盡遊何處 笑入胡姬酒肆中」
(8)曲終人不見 數峯靑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않고 두 산봉우리만 푸르다는 뜻. 唐 錢
起 詩 「曲終人不見 江上數峯靑」
(9) 瀟湘古蹟 瀟湘八景을 말함. 즉 瀟湘夜雨·洞庭秋月·遠浦歸帆·平沙落雁·漁村落照·
江天暮雪·山市晴嵐·寒寺晩鍾.
(10)濁浪이 排공 탁한 물결이 공중에 솟아 오른다는 말.
(11)洞庭湖 湖南省內에 있는 호수의 이름. 杜甫 詩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12)湘山祠 湖西省 岳陽縣 西南 洞庭湖중에 있으며 舜의 二妃 娥皇·女英을 모신 祠
堂. 湘山을 일명 君山이라 함. <水經註> 「是山 湘君之所遊處 故曰 湘君 舜 二妃也
君山 有湘妃廟」
(13)劉伶 字는 伯倫. 晋나라 沛國人. 벼슬은 建威將軍. 竹林七賢 중의 한사람. 늘 술
을 사랑하여 <酒德頌>을 짓고 언제나 하인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고 「언제 어
느 곳에서 죽을 지 모르니 죽는 곳에 파묻기 위함이라」하였다. 즉 「荷揷隨之」
18. 楚漢歌
원문(轅門)에 월흑(月黑)하니 수운(愁雲)이 적막(寂寞)하다. 초패왕(楚覇王)은 초(楚)를 장차 잃단 말가. 역발산(力拔山)도 쓸데없고 기개세(氣蓋世)도 할일 없다. 칼 짚고 일어나니 사면(四面)이 초가(楚歌)로다. 우혜우혜(虞兮虞兮) 내약하(奈若何)오. 낸들 너를 어이하리, 삼보(三步)에 주저(躊躇)하고 오보(五步)에 체읍(涕泣)하니 삼군(三軍)이 흩어지고 마음이 산란(散亂)하다. 평생(平生)에 원(願)하기를 금고(金鼓)를울리면서 강동(江東)으로 가쟀더니 불의에 패망하니 어찌 낯을 들고 부모님을 다시 뵈며 초강백성(楚江百姓) 어이보리.
백대 영웅 호걸(百代英雄豪傑)들아, 초한승부(楚漢勝負)들어보소. 절인지용(絶人之勇) 부질없고 순민심(順民心)이 으뜸이라. 한패공(漢沛公)의(1) 백만대병 구리산하(九里山下)(2) 십면매복(十面埋伏) 대진(大陳)을 둘러치고 초패왕(楚覇王)을(3) 잡으렬 제, 천하 병마 도원수(都元帥)는 걸식표모(乞食漂母) 한신(韓信)이라(4), 대장단(大將壇) 높이 올라 천하 제후 호령할 제 형양성고(滎陽成皐)(5) 험한 길과 팽성도(彭城道)(6) 오백리에 거리거리 복병이요, 두루두루 매복(埋伏)이라. 모계(謀計) 많은 이좌거(李左車)는(7) 초패왕(楚覇王)을 유인(誘引)하고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8) 계명산(鷄鳴山)(9) 추야월(秋夜月)에 옥통소(玉洞簫)를 슬피 불어 팔천 제자(八千弟子)흩을 적에 그 노래에 하였으되,
구추삼경(九秋三更)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이 밝다. 청천(靑天)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객의 수심(愁心)을 돋우는 듯, 변방만리(邊方萬里) 사지(死地)중에 정벌(정伐)하는 저 군사야, 너의 패왕(覇王) 세곤(勢困)하여 전쟁하면 죽을테라 철갑(鐵甲)을 굳이 입고 날랜 칼에 빼어드니 천금같이 중한 몸이 전장검혼(戰場劍魂)이 되겠구나. 호생오사(好生惡死)하는 마음 사람마다 있건마는 너희들은 어찌하여 죽기를 저리 즐기느냐.
너의 당상(堂上) 학발양친(鶴髮兩親) 어느 누구라 위로하며 홍안처자(紅顔妻子)들은 한산낙엽(寒山落葉) 찬 바람에 새옷 지어 넣어두고 오늘이나 소식올까 내일이나 편지 올까, 옥같이 고운 얼굴 망부(望夫)하는 깊은 간장(肝臟) 썩은 눈물 밤낮으로 흘리면서 이마위에 손을 얹고 나가던 길 바라보며 망부석(望夫石)이 되단 말가. 남산하(南山下)의 좋은 밭은 어느 장부 갈아주며, 태호정(太湖亭) 빚은 술은 뉘로하여 맛을 보리. 어린 자식 철없이 젖 달라 짖어울고 철 안 자식 애비 불러 밤낮없이 슬피우니 어미 간장 다 녹는다. 우리 낭군 떠날 적에 중문(中門)에서 손을 잡고 눈물짓고 이른 말이 청춘홍안(靑春紅顔)두고 가니 명년 구월 돌아오마. 금석(金石)같이 맺은 언약 방촌간(方寸間)에 깊이 새겨 잊지마자 했건마는 원앙금(鴛鴦衿) 앵무침(鸚鵡枕)에 전전반측(輾轉反側) 생각할 제 팔년풍진(八年風塵) 다 지나고 죽었는가 살았는가 적막사창(寂寞紗窓) 빈 방(房)안에 너의 부모 장탄식(長歎息)을 뉘로 하여 위로(慰勞)하리. 부모같이 중한이는 천지간(天地間)에 없건마는 낭군(郞君) 그려 설운마음 차마 진정(眞情) 못할지라, 오작교상(烏鵲橋上) 견우직녀(牽牛織女) 일년 일도(一年一度) 보건마는 우리는 무슨 죄(罪)로 좋은 연분(緣分) 그리는고 초진중(楚陳中)에 저대토록 있었느냐. 천명귀어(天命歸於) 한왕(漢王)하니 가련(可憐)하다, 초패왕(楚覇王)은 어디로 가단말가. 팔년 풍진 대공업(大功業)이 속절(俗節)없이 되리로다.
【解 說】
이 <楚漢歌>는 항우(項羽) 초패왕(楚覇王)과 유방(劉邦) 한패공(漢沛公)이 서로 싸워 항우가 지고 유방이 한 고조(漢高祖)가 되어 4백년 한(漢) 나라의 기초를 세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
항우는 힘은 세었으나 인심을 잃었고 유방은 민심을 순하게 하여 마침내는 초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패왕(覇王)은 대패하여 끝내는 오강(烏江)에서 자문(自刎)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파초대원수(破楚大元帥) 한신(韓信)과 천하재사 장자방(張子房)의 공이 컸다.
<초한가>는 서도창(西道唱)에서 자세하게 해설했으므로 세부적인 것은 그곳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註 (1) 漢沛公 성은 劉 이름은 邦 字는 李. 沛농 中陽人, 漢나라 創業主. 처음 沛에
서 起兵했기 때문에 沛公이라 일컫는다. 천하를 평정한뒤에는 高祖皇帝가 되었음.
(2) 九里山 중국 江蘇省 銅山縣北 五里에 있는 산 이름. 九疑山이라 한다. 劉邦과
項羽가 싸우던 곳이라 전함.
(3) 楚覇王 項羽를 말함. 이름은 籍. 江東人. 힘이 능히 山을 뽑을 만하였다 함.秦나
라를 멸한 뒤에 國名을 楚라한고 자칭 覇王이라함.
라를 멸한 뒤에 國名을 楚라한고 자칭 覇王이라함.
(4) 乞食漂母 韓信 韓信은 漢나라 功臣. 進陰人. 劉邦을 도와 項羽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進陰候에 封함을 받음. 젊을 때 가난하여 城下에서 낚시질을 할 때 飢饉이
심함을 보고 漂母가 밥을 주었더니 韓信이 「뒷날 두터이 갚으리라」한즉, 漂母가 말
하기를 「내가 王孫을 사랑하여 밥을 준 것이지 어찌 갚기를 바라리요」하였다. 그뒤
에 韓信이 齊王이 되어 千金으로 漂母에게 당시의 은혜를 갚았다고함. <史記>
「韓信至國召所從食漂母 暘千金」
「韓信至國召所從食漂母 暘千金」
(5) 滎陽成고 중국 河南省에 있는 지명. 漢沛公이 項羽에게 大敗한 곳.
(6) 彭城 江蘇省 銅山縣에 있는 지명.
(7) 李左車 처음에 趙나라에 봉사하여 廣武君을 封하였고 그 뒤에 趙가 망한 다음
韓信을 보좌하여 項羽를 垓下로 유인하여 大破하였다함.
(8) 張子房 성은 張, 이름은 良, 字는 子房. 韓人. 韓이 秦에게 망한뒤 韓을 위해 원
수를 갚고자 滄海力士를 구하여 博浪沙中에서 始皇의 수레를 鐵槌로 저격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뒤에는 漢沛公을 도와 楚覇王을 멸하고 漢의 開國功臣이 되어 留候를 封하였음.
(9) 鷄鳴山 江蘇省에 있는 산 이름. 일명 鷄龍山이라고도 함.
(10) 太湖亭 江蘇省 浙江省 兩省 사이에 있는 太瑚上의 정자. 水石이 절승하여 천연의
畵幅과 같은 名亭.
畵幅과 같은 名亭.
19. 江上風月
강상에 둥둥 떴는 배 풍월 실러 가는 밴가. 동강칠리탄(桐江七里灘) 엄자릉(嚴子陵)의(1) 낚싯밴가. 십리장강벽파상(十里長江碧波上) 왕래하던 거래선(去來船) 야박진회근주가(夜泊秦淮近酒家) 술 사 싣고 가는 밴가. 오호상연월야(五湖上烟月夜)(2) 범상공(范相公)(3) 가는 밴가. 이배 저배 다 버리고 한송정(寒松亭)(4) 들어가 길고 긴 솔을 배어 조그마하게 배무어 타고 술렁술렁 배 띄어라.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로 달맞이 가자. 대인난(待人難) 대인난은 촉도지난(蜀道之難)이(5) 대인난이요 출문망(出門望) 출문망은 월상오동(月上梧桐) 상상지(上上枝)라. 자라 등에 달을 실어 우리 고향을 어서 가세. 그 달을 다 지나고 오월 단오일(端午日)은(6)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요 일지지(日遲遲) 창외(窓外)라. 창창(蒼蒼)한 수풀 속에 백설(百舌)이(7) 자랐구나.시재시재(時哉時哉)(8) 성언(聖言)이요 산양자치(山梁雌雉)(8) 나는구나.
광풍제월(光風霽月)(9) 넓은 천지 연비어약(鳶飛魚躍)(10) 노는구나. 백구(白鷗)야, 날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성산(聖山)이 버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강상(江上)에 터를 닦아 구목위소(構木爲巢)한(11) 연후에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할까.
일촌간장(一寸肝腸)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뿐이로다. 옥창앵도(玉窓櫻桃)(12) 붉었으니 원정부지(怨征夫之) 이별이라 송백수양(松栢垂楊) 푸른 가지 높다랗게 그네 매고 綠衣紅裳 미인들은 오락가락 추천(추韆)을 하는데 우리 벗님은 어디를 가고 단오 시절(端午時節)을 모르는가. 거드렁거리고 지내 보자.
【해 설】
이 <강상풍월(江山風月)>은 가사(歌詞) 길지 않으므로 흔히 많이 부른다. 그러나 <달거리>나 <만고강산>의 가사가 더러 눈에 띈다.
<달거리>의 5월 단오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이 특징이다.
註 (1) 嚴子陵 <竹杖芒鞋> 註 (9) 참조.
(2) 五湖上烟月夜 <丈夫恨> 註 (21)참조.
(3) 范相公 <丈夫恨> 註 (22) 참조.
(4) 寒松亭 옛날 江陵에 있는 정자인데, 그 둘레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였고, 鏡浦臺와 거리가 가깝다. <高麗史樂志> 寒松亭歌에「世傳比歌 書於琴底 流至江南 江南人 未解基詞 光宗朝 國人張普公奉仕江南 問之普公 作詩解之曰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鷗」
(5) 蜀道之難 蜀. 즉, 泗川省으로 통하는 험난할 길이란 뜻으로, 人情과 世路의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6) 端牛 <달거리> 註 (9)참조.
(7) 百舌 <달거리> 註 (10)참조.
(8) 時哉時哉 山梁雌雉 <달거리> 註 (11)참조.
(9) 光風霽月 <달거리> 註 (12)참조.
(10) 鳶飛魚躍 <달거리> 註 (13)참조.
(11) 構木爲巢 나무로 얽어 집을 짓는다는 말. 上古때 有巢氏가 처음으로 집을 지어 백성에게 거처하는 법을 가르쳤다 함.<史要>「構木爲巢 食木實」
(12) 玉窓櫻桃 <달거리> 註 (14)참조.
(13) 추천 <달거리> 註 (15)참조.
20.풍월강산
대장부(大丈夫) 공성신퇴지후(功成身退之後)로 할 일이 바이없어 죽장망혜(竹杖芒鞋)로 풍월(風月)찾아 대관강산(大觀江山)하여 보세. 봉래산(蓬萊山)(1) 가자 한들 약수(弱水)가(2) 둘러 있고 곤륜산(崑崙山)(3) 바라보니 낙포운(洛浦雲)이(4) 멀었구나. 위으로 천상선경(天上仙境) 앙망불급(仰望不及) 무가내하(無可奈何), 인간의 만고경치(萬古景致) 차례차례 찾아갈 제 봉황대(鳳凰臺)에(5) 봉(鳳)이 갔으니 강 물결만 흘러 있고 황학루(黃鶴樓)에(6) 학(鶴)이 없으니 백운(白雲)만 유유(悠悠)하다.
등왕각(등王閣)(7) 비 갠후에 하목(霞鶩)이 날단 말가. 관와궁중 미록유(館娃宮中미鹿遊)요(8) 월왕대(鉞王臺)에 자고(자고)로구나(9). 멱라수(汨羅水)(10) 건너갈제 굴삼려(屈三閭)를(11) 조상(吊喪)하고 절강(浙江)의(12) 급한 조수(潮水) 서산사(西山寺) 처량하다. 이적선(李謫仙)의 기경(騎鯨)후에(13) 채석강(采石江)이(14) 임자없고, 소동파(蘇東坡)(15) 임술(壬戌)놀음 적벽강(赤壁江)만(16) 남았구나.
일락장사(日落長沙) 추색원(秋色遠) 가태부(賈太傅)의(17) 설움이요 풍엽적화(楓葉荻花) 심양강(심陽江)의(18) 백향산(白香山)(19) 어디 갔나. 파릉(20) 승상중(巴陵勝狀中)의 동정호(洞庭湖)(21) 제일(第一)이라. 악양루(岳陽樓) 올라앉아 팔경(八景)을 둘러보니 소소(簫簫)한 밤비 소리 반죽(班竹)이(22) 다 젖는다. 아롱아롱 피 흔적이 새 눈물로 뿌리는 듯 칠백리 넓은 물에 추월(秋月)이 돋아오니 부광(浮光)은 약금(躍金)이요 정영(靜影)은 침벽(沈壁)이라. 적막(寂寞)한 황릉묘(黃陵廟)에(23) 이십오현(二十五鉉) 타는 소리 창오산(蒼悟山)이 무너질 듯 상강수(湘江水)가(24) 끊어질 듯. 평사(平沙)의 저 기러기 청원(淸怨)을 못 이겨서 뚜루룩끼룩 소리하고 등한(等閑)히 날아간다.
원포귀범(遠浦歸帆) 상고선(商賈船)은 구름 밖에 지나가고 연사(烟寺)의 모종(暮鍾) 소리 바람결에 오는구나. 산시청람(山市晴嵐) 잠깐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어촌낙조(漁村落照) 유교변(柳橋邊)에 완보(緩步)로 내려와서 전당강(錢塘江)(25)에 배를 타고 유미강(幽湄崗)에 올라앉아 금릉(26) 물색(金陵物色)구경하고 오월강산(吳越江山) 다 본 후에 동해(東海)를 건너보니 아동방(我東方) 금수강산(錦繡江山) 동금강(東金剛) 서구월(西九月) 남지리(南智異) 북향산(北香山) 가야산(伽倻山) 속리산(俗籬山)과 백운산(白雲山) 상상봉(上上峯)을 편답(遍踏)하고 돌아와서 삼각산(三角山) 올라서니 금부용(金芙蓉)(27) 만장봉(萬丈峰)은 서색(瑞色)은 반공(蟠空)이라 남산송백(南山松栢) 울울창창(鬱鬱蒼蒼) 한강유수(漢江流水) 호호양양(浩浩洋洋) 춘대일월(春臺日月)(28) 태평기상(太平氣像) 만만세지(萬萬世之) 금탕(금탕)이라. 아마도 우리 인심 강구요(康衢謠) 격양가(擊壤歌)로(29) 성세태평(聖世太平) 즐겨보세.
【해 설】
이 <풍월강산(風月江山)>은 일명 <대관강산(大觀江山)>이라 하기도 한다. <풍월강산>은 <강상풍월(江山風月)>과 말이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우므로 <대관강산>이라 한 것 같다.
노래의 사설도 여기저기의 명승 고적을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처음에 봉래산(蓬萊山)을 비롯하여 곤륜산(崑崙山) 등지를 순력(巡歷)하는데, 무엇이 막혀서, 즉 장애물이 있어 못 간다는 억설을 늘어놓는 단가이다.
註
(1) 蓬萊山 三神山의 하나이며, 想像의 산. 또한 金剛山을 이르기도 함.
(2) 弱水 전설에 나오는 옛날 中國에 있었던 仙境의 江. 물의 淨力이 약하여 기러기털처럼 가벼운 물건도 가라앉는다 함. <十州記>「鳳麟州四面 弱水繞之 鴻毛不浮 不可越也」
(3) 崑崙山 중국의 傳說에 나오는 神聖한 山. 中國 서쪽에 있다고 함. 처음에는 하늘에 이르는 높은 산, 또는 아름다운 玉이 나는 산이라 알려졌으나 戰國時代 말기부터는 西王母가 살며, 不死의 물이 흐르는 神仙境이라고 믿어졌음. 현재의 崑崙山은 藏 新疆省界에 있음.
(4) 洛浦雲 洛浦는 洛水를 말함. 즉 洛水濱의 구름. 唐 宋之問 時「綠水泰京道 靑雲洛水橋」<張衛賦>「召洛浦之宓妃」
(5) 鳳凰臺 중국 湖南省에 있는 名臺. 唐 李白 <登金陵鳳凰臺時>로, 原文은 다음과 같다.
봉황대상봉황유(鳳凰臺上鳳凰遊)러니 봉거대공강자류(鳳去臺空江自流)라
오궁화초매유경(吳宮花草埋幽逕)이요 진대의관성고구(晋代衣冠成古邱)라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靑天外)어늘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州)로다
총위부운능폐일(總爲孚雲能蔽日)하니 장안불견사인수(長安不見使人愁)라
鳳凰臺 위에 鳳凰이 놀았다 하거니와, 鳳凰은 가고 臺만 비었는데, 그 아래로
강물만 흘러간다.
吳官 화초도 오솔길에 묻히고, 晋代 衣冠들도 언덕 위에 무덤을 이루었거니.
三山은 靑天 밖으로 반만 걸려 있고, 二水의 중간 갈림에 있는 것을 白鷺州란다.
이제 모든 것은 孚雲이 해를 가렸으며, 長安은 보이지 않고 나로 하여금 客愁만
깊게 하는구나.
唐 玄宗때 大文章 李太白이 玄宗의 물리침을 입어 客遊 도중 武昌에 가서 黃鶴樓에 올라 崔顥의 時에 감탄하여 붓을 내던지고, 다시 金陵에 놀면서 鳳凰臺에 올라 이 시를 짓고 黃鶴樓 시에 比擬했다 함. 懷古·旅情을 術懷하고 君側에 간사한 신하가 있
음을 慨嘆한 시다.
음을 慨嘆한 시다.
金陵은 江蘇省의 南京·六朝 宋의 王의이란 사람이 여기에 鳳凰이 떼지어 모인 것을 보고 臺를 지었다 한다. 鳳凰은 百鳥의 왕. 聖天子에 治世에 나타난다고 하는 瑞鳥이다.
이 시는 먼저 약 500년 지난 일을 추억한 것이고, 三山半落은 直景을 그리고 끝 귀절의 나라를 근심하는 것으로 구름을 奸臣 에 비유하여 지은 명작이다.
(6) 黃鶴樓 湖北省 武昌縣에 있는 名樓로 初唐 시인 崔顥의 시다. 原文은 다음과 같다.
석인(昔人)이 이승황학거(已乘黃鶴去)하니 차지(此地)에 공여황학루(空餘黃鶴樓)로다
황학(黃鶴)이 일거불부반(一去不復返)하니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라
청천(晴天)은 역력한양수(역력한양수)어늘 방초처처앵무주(芳草처처鸚鵡州)로다
일모향관(日暮鄕關)이 하처시(何處是)런고 연파강상(煙波江上)에 사인수(使人愁)로다옛 사람이 이미 黃鶴을 타고 가 버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부질없이 黃鶴樓라는 이름만남아서 지난날의 전설을 이어갈 뿐이 다.
黃鶴은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를 않고, 다만 白雲이 천년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을 따름이다.맑게 겐 저쪽에는 漢陽 街路樹木이 하나 뚜렷이 보이고
아름다운 풀이 무성한 저곳은 옛날 後漢의 名士 이衡이 죽음을 당한 곳으로, 그 사람의 <鸚鵡賦>라는 시의 제목을 따서 이름을 鸚鵡州라고 하는 곳이다.
해저무는 하늘의 그 어디쯤이 나의 고향인가를 바라고 있노라니,
저녁 안개가 波動하는 江上의 風越는 길손의 마음을 시름 속으로 끌어넣는다.
黃鶴樓는 武昌府城의 西南隅, 黃鶴磯上에 있으며, 揚子江에 임하였다. 蜀의 費褘가 仙人이 되어서 黃鶴을 타고 여기에 쉬어 갔다 하므로, 이런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환宇記>혹은 酒店 辛氏라는 사람에게 온 한 선생이 술 값 때문에 벽에다 鶴을 그렸다. 뒤에 그 벽에 그려진 黃鶴이 날아가 버렸으므로, 辛氏는 樓를 세우고 黃鶴樓라 하였다.<武昌誌> 또는 仙人이 子安이 黃鶴을 타고 여기를 지났다 한다. <薺諧誌> 李太白은 이 시를 보고 크게 감복하여 자기는 이 樓의 시를 짓진 않았으나, 여기에 匹敵할만한 七律을 지을 작정으로<登金陵鳳凰臺> 詩를 지었다.
<黃鶴樓>는 최초의 2句에 전설에 仙人에 대한 憧憬을 浮彫하고, 3·4句에는 그것이 다만 인간의 헛된 동경에 지나지 않음을 一 片의 白雲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一轉하여 맑게 겐 내와 勝景을 묘사하여 鸚鵡州에 얽힌 이衡의 죽음을 애도하였으며, 끝으로
저물어 가는 蒼茫한 江의 경정을 들어서 길손의 시름을 述懷하였다. 懷古·寫景·望鄕을 주로 해서 변화있는 餘情이 풍부하게 있는 시다.
저물어 가는 蒼茫한 江의 경정을 들어서 길손의 시름을 述懷하였다. 懷古·寫景·望鄕을 주로 해서 변화있는 餘情이 풍부하게 있는 시다.
(7) 등王閣 등王閣은 江西省 南昌府의 名勝樓閣이요, 등王閣詩는 王勃의 시다. 이 등王閣序에 대하여 설명하면, 우선 이 문장에는 재미있는 逸話가 있다. 唐나라 高祖 李淵의 아들 元罌의 江西省 南昌縣의 洪州刺使로 있을 때 이 殿閣을 지었는데, 그때 元罌은 등王에 封爵되었으므로 등王閣이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뒤 唐나라 高宗 成亭二年에 閣佰嶼가 洪州守護가 되었을 때 등王閣을 修繕하고, 9월 9일에 크게 貧客을 모아 宴會를 베풀었다.
閣佰嶼는 미리 그의 사위 吳子章에게 序文을 짓게 하여 놓고 當日 宴席에서 사위 자랑을 하려고 하였다. 마침내 그날이 되어 貧客이 모였으므로 伯嶼는 紙筆을 내어 등王閣 서문을 지으라고 座中의 貧客들에게 청하니, 누구도 快히 이를 지어내는 자가 없었다. 伯嶼의 계획은 생각대로 되어 갔다. 이때 王勃은 그의 아버지 王福時의 任所인 交趾에 가려고 長安에서 떠났다가 마침 이날 등王閣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다. 王勃은 座中貧客들 중에서 가장 年少한 자였다. 伯嶼가 낸 紙筆이 王勃의 손에 들어왔을 때 王勃은 이를 받아서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붓을 들었다. 伯嶼는 王勃이 어떤 글을 짓나 하고 手下의 관리를 시켜 문장이 작성되는 대로 보고케 하였다.
마침내「落霞興孤鶩薺飛 秋水共長天一色」이란 句에 이르러, 伯嶼는 책상을 치며 감탄하고, 이를 칭찬하여 천재라 하였으니, 그 전편을 이루도록 歡樂의 宴席을 끝내었다는 것이다.<등王閣序>는 다음과 같다.
등왕고각(등王高閣) 이 임강저(臨江渚)하여 패옥명란파가무(佩玉鳴란罷歌舞)라
화동조비남포운(畵棟朝飛南浦雲)이요 주렴모권서산우(珠簾暮捲西山雨)라
한운담영일유유(閑雲潭影日悠悠)하니 물환성이도기추(物換星而度幾秋)아
각중제자금하재(閣中帝子今何在)오 함외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라
勝王이 세운 高閣은 지금도 長江 기슭에 우뚝 서 있는데
佩玉 鳴란의 行次와 어여쁜 妓女들의 노래와 춤은 그치고 말았다.
다만 아침이면 丹靑한 기둥에 南浦의 구름이 흘러와서 머물다 가고
저녁이면 珠簾밖에 西山의 비가 저녁놀을 띠고 흩뿌려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무심한 구름과 못들의 그림자는 날과 함께 유유히 옛날의 모습 그대로인데
등王이 이 殿閣을 세운 이래 世事는 바뀌고 세월은 흘러 몇 春秋가 지나갔는가
등閣의 주인 등王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알 길이 없고
다만 난간 밖에 長江의 물만이 오늘도 옛 모습 그대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王勃은 나이 29세에 南海를 건너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8) 館娃宮中미鹿遊 館娃宮은 蘇州에 있음. 西施가 있던 곳이므로 吳人들이 미녀를 娃라 부른다. 宮이 폐허가 되어 사슴들만 뛰논다는 회고의 뜻. <蘇臺竹技曲>「館娃宮中塵鹿遊 西施去泛五湖丹 香魂玉骨歸何處 不及眞娘葬虎丘」
(9) 越王臺의 자고 越王臺는 浙江省에 있는 越王 句踐이 지은 臺. 그 臺에 자고만 날아든다는 말이니, 회고의 뜻. 唐時「傷心 欲聞前朝事 惟有江流去不回 日暮東風春草綠 자고飛上越王臺」
(10) 汨羅水 湖南省에 있는 水名. 屈原이 빠져 죽은 곳.
(11) 屈三閭 이름은 平, 字는 原. 楚의 왕족으로 屈·蔿·景 3王族을 맡아보는 三閭大夫가 되었다가 小人의 讒訴로 추방되어 <離 騷經>과 <漁父辭>를 짓고 5월 5일 汨羅水에 빠져 죽었음.
(12) 浙江 浙江省에 있는 江名.
(13) 李謫仙의 騎鯨 이름은 白, 字는 太白. 號는 靑蓮居士. 唐 玄宗때의 大時人. 謫仙은 天上에서 죄를 짓고 인간으로 귀양 왔다는 뜻인데, 賀李眞이 白의 仙風道骨이 謫仙人이었다고 말하였다. 騎鯨은 李白의 死去를 말함이니, 물에 빠져 죽은 것을 고래를
타고 神仙이 되어 갔다고 하는 것임. <秦少游>「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
타고 神仙이 되어 갔다고 하는 것임. <秦少游>「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
(14) 采石江 安徵省에 있는 江名. 李白이 놀던 곳이며, 강위 靑山이란 산에 李白의 무덤이 있음. 또 宋의 虞允文이 金軍을 이곳 에서 쳐부수었음.
(15) 蘇東坡 이름은 軾, 字는 子膽, 號는 東坡, 諡는 文忠. 宋 哲宗 때 益州에서 낳으며, 詩文으로 유명하고 經史에 博通하며 韓退之 이후 문장대가의 일인자임. <東坡全集> 150卷이 있으며, 특히 前後 <赤壁賦>는 널리 알려져 있음.
(16) 赤壁江 黃岡縣城 밖에 있으며, 赤鼻磯라고도 함. 蘇軾이 이곳에서 뱃놀이하면서 周瑜가 싸운 곳이라 잘못 생각하고 前後 <赤壁賦>를 지었음.
(17) 賈太傳 이름은 誼. 洛陽人. 漢 文帝 때 博士로부터 1년동안에 승급하여 벼슬이 太中大夫에 이름. 뒤에 降職하여 長沙王 太博가 되었다가 다시 梁王太博가 되어 治安策을 文帝에게 올렸음.
(18) 심陽江 중국 江西省 九江顯北에 있는 江名. 白樂天이 귀양갔던 곳임.
(19) 白香山 이름은 居易, 字는 藥天, 號는 香山居士. 太原人으로 晩唐 시인. 貞元때 進士로서 벼슬이 刑部尙書에 이름. 저서에는<白氏長慶集> 75卷이 있고, 특히 <長恨歌> <琵琶行>은 세상에 널리 전해진 유명한 詩篇이다.
(20) 巴陵 顯名. 淸代에 湖南省 岳州府. 현 湖南省 岳陽縣內에 속함.
(21) 洞庭湖 湖南省內에 있는 湖水名. 杜甫 詩「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22) 斑竹 斑點이 있는 대. 舜이 南巡狩하다가 蒼梧에서 죽으니 그 二妃 娥皇·女英이 슬퍼 울어 뿌린 눈물이 湘竹에 떨어져 斑點의 대가 되었다함. 李白 詩「蒼梧山崩湘水絶 竹上之淚乃可滅」
(23) 黃陵廟 瀟湘江邊에 있는 舜妃인 娥皇·女英을 모신 詞堂.
(24) 湘江 廣西省에서 발하여 洞庭湖로 흘러드는 江名.
(25) 錢塘江 浙江省에 있는 浙江의 下流.
(26) 金陵 江蘇省에 있는 縣名. 지금의 南京.
(27) 金芙蓉 <鎭國名山> 註 (2) 참조.
(28) 春臺日月 春景이 融和하여 臺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마음이 넓고 快暢하다는 뜻인데, 이 말은 盛世에 비유한 것.
(29) 康衢謠 擊壤歌 康衢는 번화한 거리. 堯임금이 臺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마음이 넓고 快暢하다는 뜻인데, 이 말을 盛世에 비유한 것. 擊壤歌는 농부가 태평을 노래하는 것. <十八史略> 「堯乃徵服 遊於康衢 有老人 含哺鼓腹 擊壤而 歌曰 日出而作 日
入而食 耕田而食 鑿井而飮帝力何有於我哉」
入而食 耕田而食 鑿井而飮帝力何有於我哉」
21. 역려가(逆旅歌)
역려(逆旅)(1) 천지간(天地間)의 과객(過客) 인생들아 백년이 그 얼마냐. 대몽(大夢)을(2) 뉘라 깰고. 만고역대(萬古歷代) 제왕(帝王) 성인(聖人) 군자(君子) 충신(忠臣) 열사(烈士)들아 영웅(英雄) 호걸(豪傑) 문장(文章) 재사(才士) 신선(神仙) 금불(金佛) 은처사(隱處士)며 협객(俠客) 변사(辯士) 부가옹(富家翁)과 공자(公子) 왕손(王孫) 미인(美人)들을 역력히 헤어 보니 한단일몽(邯鄲一夢)이 덧없구나.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씨(人皇氏)가 만팔천세(萬八千歲) 사다 하되 그 뉘라 보았으며 시획팔괘(始劃八卦) 복희씨(伏羲氏)도 여천동로(與天同老) 못하였고 치우(蚩尤) 잡던 헌원씨(軒轅氏)도 정호비룡(鼎湖飛龍) 속절없고, 상백초(嘗百草) 신농씨(神農氏)도 불사약(不死藥)을 못 먹었고, 요순(堯舜) 우탕(禹湯) 문무(文武) 주공(周公) 공맹(孔孟) 안증(顔曾) 정주자(程朱子)는 도덕(道德)이 관천(貫天)하여 만고성현(萬古聖賢) 일렀건만 미미한 인생들이 그 어이 알아보리.
강태공(姜太公) 황석공(黃石公)과 사마양저(司馬穰저) 손빈오기(孫빈吳起) 전필승(戰必勝) 공필취(攻必取)는 만고명장(萬古名將) 일렀건만 한번 죽음 못 면하고 멱라수(汨羅水) 맑은 물은 굴삼려(屈三閭)의 충혼(忠魂)이요 상강수(湘江水) 성긴 비는 오자서(伍子胥)의 정령(精靈)이라 채미(採薇)하던 백이숙제(伯夷叔齊) 천추명절(千秋名節) 일렀건만 수양산(首陽山)에 아사(餓死)하고 말 잘하는 소진(蘇秦) 장의(張儀) 열국제왕(列國諸王) 다달래도 염라왕은 못 달래어 춘풍세우(春風細雨) 두견성(杜鵑聲)에 슬픈 혼백뿐이로다.
맹상군(孟嘗君)의 계명구도(鷄鳴狗盜) 신릉군(信陵君)의 절부구조(竊符救趙) 만고 호걸 일렀건만 한산세우(寒山細雨) 미초중(薇草中)에 일부토(一부土)만 처량하다. 통일 천하 진시황(秦始皇)은 아방궁(阿房宮)을 높이 짓고 만리장성 쌓은 후에 육국제후(六國諸侯) 조공 받고 삼천 궁녀 시위할 제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인을 삼신산(三神山)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보낸 후에 소식조차 돈절(頓絶)하고 사구평대(砂丘平臺) 저문 날에 여산황초(驪山荒草)뿐이로다.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은 시불리혜(時不利兮) 추불서(추不逝)라 우미인(虞美人)의 손목잡고 눈물 뿌려 이별할 제 오강(烏江) 풍랑 중에 칠십삼전(七十三戰) 가소롭다.
동남제풍(東南祭風) 목우유마(木牛流馬)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전무후무(前無後無) 제갈공명(諸葛孔明) 난세간웅(亂世奸雄) 위왕조조(魏王曹操) 모연추초(暮烟秋草) 처량하고 사마천(司馬遷) 한퇴지(韓退之)와 이태백(李太白) 두목지(杜牧之)는 시부(詩賦) 중의 문장이요, 월서시(越西施) 왕소군(王昭君) 우미인은 만고 절색 일렀으되 황량고총(荒凉孤塚)이 되어 있고 팔백장수(八百長壽) 팽조수(彭祖壽)며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東方朔)도 차일시(此一時) 피일시(彼一時)라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는 동해상(東海上)의 신선(神仙)이라 일렀으되 말만 듣고 보든 못하였다. 아서라 풍백(風伯)에 붙인 몸이 아니 놀고 무엇하리.
【해설】
이<역려가(逆旅歌)>는 허두(虛頭)에 <역대가>의 일부 사설을 넣고, 그 다음 요순 우탕(堯舜禹湯)부터는 <불수빈>의 서설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역대가>와 <불수빈>에서 설명하였으므로 해설을 생략한다.
註
(1) 逆旅 <역대가> 註 (1) 참조.
(2) 大夢 哲人의 꿈이라는 뜻. 諸葛亮 詩「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 이하는 <歷代歌> <夢遊歌> <不須嚬>에 상세히 註解했기로 생략함.
22. 四時風景歌
동군(東君)이(1) 유정(有情)하여 춘풍이 화창하니 청명가절(淸明佳節)이 아니냐. 경치도 가려(佳麗)하다. 만첩산중(萬疊山中)은 취병(翠屛)을 둘렀는 듯 백화(白花)는 만발하여 광휘(光輝)도 찬란하다. 채필(彩筆)을 높이 들어 명화(名畵)를 그렸는 듯 층암절벽은 무심히도 개봉(開峯)이라 만산홍록(滿山紅綠)은 춘색(春色)을 띠어 있고 임하(林下)에 우는 새는 왕손(王孫)이 느끼는 듯 물색(物色)이 처연(悽然)하다.
창랑수(滄浪水) 맑은 곳에 꽃 그림자 구름 멘 듯 연년춘초(年年春草) 설워함이 많고 많다. 광풍(狂風)은 처처(凄凄)하여 낙하(落花)를 재촉는 듯 떨어지거니 피거니 난만(爛漫)코 어지럽다. 이화(梨花)는 눈날리듯 화엽(花葉)이 분분하여 어언간에 중춘색(仲春色)이로구나.
요요(2)삼색도(3)(夭夭三色桃)는 언제 왔다 돌아가나 춘풍도리(春風桃李)를 훌훌히 보낸 후에 화하승경(華夏勝景)을 목단(牧丹)으로 벗을 삼아 녹림(綠林)이 의의(依依)한데 화왕(花王)벗을 자랑한다. 천리향풍(千里香風) 애애(靄靄)하여(4) 화지(花枝)에 둘러 있고 앵가(鶯歌)는 영영(영영)하여 태평곡(太平曲)을 아뢰는 듯 쌍봉(雙蜂)은 노래하고 호접(蝴蝶)은 춤을 춘다. 무신(舞身)은 편편(翩翩)하여 향풍(香風)에 나부끼고 무가(舞歌)는 열열(咽咽)하여 화림(花林)에 얽혔에라. 옥계(玉階)의 해당화는 조로(朝露)를 머금어서 자약(自若)히 피었구나 부성(富盛)한 작약꽃은 향기를 자랑하고 향기는 울울(鬱鬱)하여 반공(半空)에 가득하다.
황앵(黃鶯)은 환우(喚友)하며 화초간(花草間)에 왕래하고 양류(楊柳)는 청청(靑靑)하여 바람을 못 이기어 유서(柳絮)를(5) 흩날린다. 연(蓮) 캐는 아희들아 창랑수(滄浪水) 맑은 곳에 부용일지(芙蓉一枝) 꺾어 내니 일진청풍(一陣淸風) 홍백(紅白)이 분명하다. 녹파(綠波)를 의지하여 옥배(玉盃)를 어루만져 연엽주(蓮葉酒) 마신 후에 채련곡(採蓮曲) 읊으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 생각하니 전원 어디메뇨. 동리국화(동리국화) 찾아볼까. 금풍(金風)이 소소(蕭蕭)하여 국화 난개(爛開)하니 은일처사(隱逸處士) 높은 절개 고연(高然)히 보았에라. 추천낙월(秋天落月)에 강풍(江風)은 처처(凄凄)하고 만산홍엽(滿山紅葉)은 금수장(錦繡帳)을 이루었는데 죽은 듯 잠을 이뤄 매죽(梅竹)을 꿈에 보니 엊그제 붉은 단풍 오륙일 설상(雪霜)위에 매화 향기 아름답다.
창창(蒼蒼) 송죽(松竹)은 납설(臘雪)을(6) 띠어 있고 의의녹주(依依綠竹)은 설상(雪霜)을 멸시하여 열사(烈士)의 후신(後身)인가 절개도 견고하고 적설(積雪)을 쓸고 취죽(翠竹)을 어루만져 세월이 신속함을 장탄(長歎)하고 물색(物色)의 변태(變態)함은 창연(창然)이라 외외(巍巍)한(7)암석하(岩石下)에 설풍(雪風)이 처량(悽凉)한데 옥수주렴(玉樹珠簾) 처처(處處)에 걸렸으니 소담한 설경(雪景) 중에 매향(梅香)이 무르녹고 열렬한풍(烈烈寒風)에 홍안성(鴻雁聲)이 처량하다. 어느덧 설경(雪景)을 지났구나 동풍(東風)이 담탕(淡蕩)하니 삼춘가절(三春佳節) 다시 온다. 허후 세상사 헛되도다. 인생이 부득항소년(不得恒少年)이니 아니 놀고 무엇하리.
【해설】
이 <사시풍경가(四時風景歌)>는 <달거리>와 같이 4월달부터 시작되지 않고 청명절(淸明節)부터 시작된다. 봄의 백화가 만발한 경치를 읊고, 여름철의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華時)의 좋은 경치를 엮고, 가을의 단풍진 경색(景色)을 재치 있게 엮었으며, 겨울의 설경(雪景)을 읊었다.
그런데 세월이 신속하여 어느덧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어느덧 가을이 되며 또한 겨울도 빨리 돌아오는 것이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인생도 늙어 간다고 하는 허무함을 엮은 노래이다.
註 (1) 東君 봄의 神 또는 태양. 봄을 東君이라 한다.
(2) 夭夭 ㉠나이가 젊고 용모가 아름답다. ㉡ 얼굴 표정이 부드럽다. ㉢가냘프고 아름답다.
(3) 三色桃 색색의 복숭아꽃.
(4) 靄靄 안개가 아지랑이 같은 것이 많이 끼어있는 모양.
(5) 柳絮 버들강아지.
(6) 臘雪 납일에 내리는 눈.
(7) 巍巍 ㉠ 뛰어나게 높고 우뚝 솟은 모양. 巍아·巍然 ㉡ 격이 높고 뛰어남.
23. 白首恨
광활남북(廣활南北) 좋은 천지 금수강산이 좋을씨고, 좋은 줄은 알지마는 생각사록 걱정 이라 걱정 끝에 한숨나고 한숨 끝에 말 못하니 유구무언(有口無言) 황천(黃泉)이(1) 멀다해도 이수분야(二水分野)가 거기 있고 청춘은 어디 가고 백발이 어찌 왔나 곱던 형용 추악하여 우주 과객(宇宙過客) 그릇되네. 원수로다 원수로다 한 손에는 망치 들고 한 손에 철퇴 들고 밀고 치고 격투를 하여도 무정 세월은 하는 수 없네.
검던 머리는 희어지고 이 조차 낙치(落齒)되어 음식 먹는 거동 보면 아래턱이 코를 차니 불성모양(不成貌樣) 참혹(慘酷)하다. 썼던 갓 벗으니 종일(終日) 수심(愁心) 분기(憤起)하고 행보조차 줄어지니 남은 것이 지팡이라 십리길이 백리되고 백리길이 천리되고 강상풍경(江上風景) 직하(直下)할 제 좌이대사(坐而待死) 뿐이로다(2). 거름 걷는 거동 보면 우렁 찍는 황새로다. 안이라고 들어가면 내외간에 별일 없고 사사(事事)에 무용처(無用處)라 밖으로 나가면 아희들게 훈장질, 쓸데없는 바둑판은 손때만 남는구나.
나를 보러온 소년들은 무슨 일이 조급한지 잠시 조심 바이 없네 동지장야(冬至長夜) 긴긴 밤에 홀로 누워 생각하니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쓸데없는 헛 국량(局量)만 한량없이 드는구나. 만권서(萬卷書)를 모아 가지고 하나님전 등장(登狀)가세. 무슨 연유로 등장가리 늙은 인간 쉬 죽지 말고 젊은 청춘 너무 늙지 말라고 그 말 연유(緣由)로 등장 가자. 세월아 가지 말아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 아서라 풍백(風伯)에 붙인 몸이니 풍월(風月)이나 하면서 지내보세.
【해설】
이 <백수한(白首恨)>은 모든 단가가 그렇듯이 인생의 무상함을 염불 외듯 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제목과 같이 백수(白首)를 한탄하는 노래이다.
청춘은 어느덧 가고 백발이 찾아오니 하느님전 등장(登狀)을 간다고 억지 소리를 터무니없이 한다.
이것으로 단가는 전부 끝을 맺는다.
註 (1) 黃泉 사람이 죽어간다는곳. 저승.
(2) 坐而待死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지가 몹시 궁박하여 어찌할 대책도 강구할 길이 없어 될 대로 돼
라는 태도로 기다림을 이르는 말.
라는 태도로 기다림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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