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호미곶, 양동마을, 옥산서원

餘香堂 2015. 5. 6. 20:50
내연온천 숙소에서 송이버섯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미곶으로 향했습니
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에 있는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
서 일곱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 합니다.
이곳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한 등대박물관이 있습니다.
포항에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부부이야기가 설화로 남아 있느데 
이들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빛과 달이 빛을 잃었다 합니다.
이는 이들 부부가 일월의 정기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특히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이를 
더욱 강력히 뒷받침해 줍니다. 
신라에서는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를 귀비
고(貴妃庫)라 하였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떠나 영천방향으로 가서 안강에 있는 양동마을과 옥산서원을 들르기로 하였습니다. 양동마을은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로써 경주 중심 시가지에서 포항쪽으로 16km 떨어진 형산강의 중심에 있으며, 전에는 월성군에 포함되어 있어서 월성 양동 마을이라고 하였으나 경주에 편입되면서 경주 양동 마을이라고 합니다. 마을 내에는 국가 보물 3점이 있을 정도로(기타 문화재는 생략) 고풍스럽고 오 랜 역사가 깃든 마을로 경주에서 흐르는 형산강이 마을을 서남방향으로 휘둘러 안고 흐르는 형상이라 합니다.(한문의 勿자 형상) 이 마을은 약 520 년전 손소(孫昭)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 살던 장인 유복하의 상속자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종가를 지어 번창하였고, 또한 손씨의 딸은 여강이씨 번(蕃)에게 출가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을 정립시킨 이언적(李彦迪)을 낳은 곳으로 두 문중이 번창한 곳입니다. 현재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 남아 있다고 합니다. 손소의 아들 손중돈의 소유였던 관가정(보물 442호)과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재 직할 때 지은 향단(보물 412호), 여강이씨 이언적의 종가댁 일부인 사랑채 부속 건물인 무첨당(無添堂)(보물411호)이 그 중 빼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대표적인 두 군데만 들렸는데 우선 서백당(書百堂). 중요 민속자료 2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가옥은 월성 손씨 종택으로 손소가 지 은 집입니다. 그의 아들 손중돈과 그의 외손자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고, 서백(書百)이란 하루 에 참을 인자 백번을 쓴다는 고서에 나온 말이라 한답니다. 서백당을 송첨(松詹;소나무 처마)이라고도 한다네요.

다음은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 간호를 하도록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 조선시대 중기 양반주택으로 두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興"자 모양을 이룬 독특한 구성을 하였습니다. 원래 99칸이었으나 현재 50여 칸으로 줄었고 대문의 위치도 무엇인가 공간배치 가 안된 것 같은 모습? 아마 줄일 때 변형을 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이한 가구(架構)의 모습



            부엌 옆에 있는 저장실(땅에 놓지 않고 이층 저장실에 보관)



            멀리서 바라본 향단



            멀리서 바라본 향단



            향단 건너 언덕에 있는 집


다음으로 독락당(獨樂堂). 옥산서원 찾는다고 지나쳐 가니 독락당이라는 집이 먼저 나타납니다. 독락당은 옥산서원 뒤편에 있으며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 아와 지은 사랑채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합니다. 담장에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대청에서 창살을 통해 계곡 물 을 보게 만들었습니다.이는 아주 특별한 공간 구성이며 뒤쪽에 있는 계정(溪 亭) 또한 자연에 융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독락당 계정 밑 개울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계정의 아름다움에 좀 취해 보았습 니다.
            독락당 안에서 계정을 향해



            독락당 안에서 계정을 향해



            독 락 당(옥 산 정 사)



            계 정(溪 亭)



            계 정(溪 亭)



            밖을 내다보게 만든 문살(계정 옆 담에 있느 것)


독락당을 나와 차를 돌려 옥산서원으로... 서원과 독락당은 계곡을 끼고 서로 반대편에 있는데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는 위치인 것을 모르고 지나쳤나 봅니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명종 때를 대표하는 성리학인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1574년 사액서원 이 되었습니다. 대원군의 사원철폐 때 훼손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입니다. 서원 중심부인 구인당 정면에 걸린 옥산서원의 편액은 원래 이산해의 글씨였으 나 1839년 불에 탄 구인당을 새로 지으며 김정희가 다시 썼다 합니다.
            옥 산 서 원 옆 모습



            옥 산 서 원 ㅁ자 내부



            이 언 적 신 도 비


서원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서원에 보관된 이언적의 수필고본이 보물 586호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본 9책이 보물 525호로, 기타 보물 2점이 더 있 으며, 독락정이 보물 4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원 안에 이언적신도비가 누각 안에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08년 9월 24일)

출처 : 야정(野停)
글쓴이 : 野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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