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우리 맏아들이 졸업한 한동대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외국에 있을 때 입학과 졸업을 했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포항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은퇴 후에도 포항은 KTX 경부선에서 살짝 비껴 앉아 있어서 부산과 달리 자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곳입니다. ?
그런데 지난 3월 31일 포항에서 KTX 개통식을 했더군요. 서울에서 포항까지 최소 소요시간이 2시간 15분이랍니다. 포항으로 가면 강릉보다 더 빨리 동해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지 않는 곳이 오지가 아니라 KTX가 연결되지 않는 곳이 오지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서울에 살면서 역세권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터라, 포항까지 KTX가 연결됐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며칠 앞두고 포항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물론 KTX를 타고 말이죠. ㅎ ?
KTX 포항역은 한동대학교가 있는 흥해읍에 만들어졌더군요. 포항의 명물인 죽도시장까지는 불과 6km 정도 떨어져 있답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시티투어도 운영한답니다. 서울에서 포항으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
그러나 포항에 1박 2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내연산 보경사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연산과 천령산 사이를 흐르는 내연산계곡의 12폭포입니다. ?
내연산계곡 또는 청하골계곡은 옛날부터 포항의 무릉도원으로 소문난 곳입니다. 진경산수로 유명한 겸재 정선(1676~1759)이 청하현감 시절에 그린 '내연삼용추도' 와 '고사의 송관란도' 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죠. 또한 영화 '남부군' 과 ‘가을로’ 그리고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을 촬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내연산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3년) 진나라에 불법을 구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온 지명 법사가 세운 절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큰 못이 있었으나 진나라에서 가져온 팔면보경과 함께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금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 이름이 "보배로운 거울을 묻었다." 는 뜻으로 보경사가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큰 사찰이 그렇듯이 보경사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듭하는데, 고려 고종 1년(1214년) 원진국사(1171~1221)가 승방 4동과 정문을 중수하였고, 범종과 법고도 완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경내에는 고종 11년(1224)에 세워진 원진국사비가 남아 있습니다. 보물 제252호입니다.
보경사에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습니다. 보물 제1868호인 적광전입니다. 적광전은 보경사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조선 속종 3년(1677년)에 중건한 것이며 그 후에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적광전의 주춧돌과 고막이돌은 신라시대에 옥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보경사의 역사가 신라시대에까지 이르는 것을 보여주는 물증입니다. 문설주 하단에 직각으로 끼어 넣은 신방목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귀엽게 보이지만 강아지가 아닙니다. ㅎ
적광전은 처마끝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는 공포가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놓인 다포집입니다. ?맞배지붕의 측면에까지 공포를 빽빽하게 넣은 것이 특이하게 보입니다.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금당탑이라고도 불리는 적광전 앞의 오층석탑입니다.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조성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층 몸돌에는 문짝과 자물쇠가 새겨져 있는데,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자물쇠 및 문고리(보물 제771호)와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합니다. 적광전 터가 신라시대에 금당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집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네요. 이제 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도에 나오는 폭포들을 보러 내연산계곡 트레킹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용추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로 밑의 깊은 웅덩이를 뜻하는 말입니다. 삼용추는 무풍폭포, 관음폭포 그리고 연산폭포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
그러나 그림처럼 세 개의 폭포가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작가가 대상을 분해하고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으니 일단 올라가보시죠. ㅎ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관개수로가 있더군요. 계곡물은 왼쪽에 흐르고 있습니다
여기가 관개수로의 입구입니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문이 있더군요. ?
개울물이 참 맑습니다. 개울을 보니 물 반 고기 반이더군요. ㅎ
내연산 12폭포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다룬 영화 '가을로' 의 촬영지 중 한 곳입니다. 촬영 당시에 이 길에는 계단이 없었답니다. 계단이 없었던 이 길이 훨씬 낭만적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낭만보다는 안전이 제일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여주인공이 사고를 당한 뒤 홀로 남은 약혼자는 상실감에 젖어 살게 되죠. 10년이 지난 어느날 남자에게 여자의 다이어리가 전달됩니다. 그리고 사고 나기 전 둘이 신혼여행갈 곳을 적은 것을 보게 되죠. 남자는 여자의 마지막 선물인 그 다이어리를 따라 가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슬픈 얘기입니다.? ㅠ
내연산 계곡 또는 청학골 계곡
??내연산계곡의 첫 번째 폭포인 상생폭포입니다. 옛날에는 쌍동이 폭포란 뜻으로 쌍폭 또는 사자쌍폭이라 불렀답니다.
오랜 가뭄으로 한 쪽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더군요. 사자의 얼굴을 닮긴 닮았습니다. ^^
상생폭포의 용추
절벽 뒤에 두 번째 폭포인 보현폭포가 있다는데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 폭포도 마찬가지입니다. ㅠ
계단이 많다는 것은 경사로가 급하다는 얘기도 됩니다. ㅠ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로 내려온 뒤 이곳에 올랐다가 선경에 취하여 내려오지 않았다." 는 전설이 있는 선일대입니다.
네 번째 폭포인 잠룡폭포입니다. 폭포 아래는 거대한 암봉인 선일대를 낀 협곡이 있습니다. 용이 숨어 살다가 선일대를 휘감으면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등산로에서는 안타깝게도 폭포의 뒷목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만, 이 폭포 아래에서 1990년 상영된 영화 남부군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 폭포인 무풍폭포입니다. 문자 그대로 바람을 맞지 않을 정도로 작은 폭포입니다. 위에 있는 관음폭포나 아래에 있는 잠룡폭포에 비해 폭포의 규모가 작아 폭포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무풍계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답니다.
"신선이 선일대로 올라가기 전 학을 타고 내려왔다." 는 전설이 있는 비하대입니다. 오늘쪽 아래에 관음폭포가 숨어 있습니다.
여섯 번째 폭포인 관음폭포와 학소대입니다.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것 같다'" 는 뜻으로 관음폭포라고 한답니다.
관음폭포 위에는 연산폭포로 올라가는 구름다리가 있습니다. 학소대는 비하대로 신선을 태우고 내려온 학이 둥지를 틀고 머문 곳이라고 합니다.
관음폭포 앞 커다란 바위 뒤에는 이곳을 다녀간 양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양심이 있어서 안 보이는 곳에 이름을 새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맨 아래에 경주 기생 이름이 살짝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난삼아 이름을 새기고 가신 것 같습니다. 기생 이름을 같이 올리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셨던 모양입니다. ㅋ
연산폭포로 가는 구름다리입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연산폭포가 숨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폭포이자 내연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산폭포입니다. 내연산에서 '내' 를 뺀 명칭을 쓸 정도로 내연산 계곡의 대표 격인 폭포입니다. 이곳은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 을 촬영한 곳입니다.
겸재 정선의 내연삼용추도 외에 정시한이라는 분이 쓴 산중일기에도 내연산의 12폭포 얘기가 나온답니다. 산중일기에는 상생폭포를 1폭포 또는 하폭, 관음폭포를 2폭포 또는 중폭, 연산폭포를 3폭포 또는 상폭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오늘 내연산계곡 트레킹을 해본 결과 다섯 번째 폭포인 무풍폭포는 사실 폭포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작습니다. 크기만으로 폭포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자면, 다른 폭포들도 크게 내세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러나 암봉들 사이를 흐르는 폭포가 없었다면, 비하대에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지에서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는 이과수폭포보다 우리나라 폭포가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ㅎ
보경사에서 연산폭포까지는 2.7km라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등산이라고 보경사로 돌아오니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보경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는 지친 몸을 달래 줄 음식점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죠. ?
그 중에서 춘원식당의 나무그늘이 시원해 보이더군요.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이곳의 명물인 늙은호박전과 칼국수 한 그릇을 들이키니 선일대로 올라간 신선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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