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바꿔야 할 우리의 음주문화(飮酒文化) |
술은 우리 인간과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술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이런 술에 대해서는 '백약(百藥)의 어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백독(百毒)의 우두머리'라는 완전히 상반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술은 적절히 마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마시어 자제력과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을 경우, 만악(萬惡)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극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언론 매체를 보면,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각종 사건 사고 소식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각 개인의 건강문제에서부터, 청소년의 음주, 가정주부의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음주 운전 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는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주폭(酒暴)’이라는 말까지 새로 생겨나, ‘주폭과의 전쟁’이 선포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그야말로 잘못된 술 문화가 만연된 ‘술 공화국’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젠 정말 우리의 잘못된 음주 문화를 고쳐야 할 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술을 아주 좋아하였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대체로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었다. 예전의 기록들을 보면 늘 술을 가까이에 두고 즐겼으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조롱하면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이 술에 대해서 마냥 너그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몹시 경계하였으며, 술을 깨고 난 뒤에는 술을 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다음의 글을 보면 이를 알 수가 있다. |
저는 젊어서부터 술을 아주 좋아하였으며, 중년에는 그 때문에 구설에 오른 적이 적지 않았는바, 제멋대로 술에 빠진 미치광이가 되어, 남들로부터 영원히 버려지는 것을 저 자신의 분수로 여겼습니다. 이에 몸은 외물(外物)에 끌려가고 마음은 육체에 부려졌으며, 정신은 지난 젊은 시절보다 절로 줄어들고, 도덕은 처음에 먹었던 마음과 날로 어긋났습니다. 그리하여 뜻하지 않게도 점점 부덕(不德)한 사람이 되고, 집안에서 함부로 술주정을 부려, 어머님께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수치를 크게 끼쳤습니다. 맹자(孟子)는 “장기와 바둑을 즐기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느라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불효(不孝)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술에 취하여 술주정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술이 깨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 보면, 그 죄가 3천 가지 죄 중의 으뜸이 되는 불효의 죄를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슨 마음으로 다시 술잔을 잡겠습니까. 이에 천지(天地)에 물어보고 육신(六神)을 참례하고 오심(吾心)에 맹세한 뒤에, 어머니께 “이제부터는 임금의 명이 아니면, 감히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략) 그동안에 어머니께서는 저를 기르면서 매양 술을 조심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저의 이 말을 들으시고는 기쁜 빛이 얼굴에 감돌았습니다. 그러니 술을 끊겠다는 저의 맹세를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僕自少酷好麴糵, 中歲遭齒舌不少, 肆爲酒狂, 自分永棄. 身爲物役, 心爲形使, 精神自耗於曩時, 道德日負於初心. 不意馴致不德, 肆酗於家, 大貽慈母之羞. 孟子以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爲不孝, 況於酗乎. 醒而自念則罪在三千之首, 何心復擧杯酒乎. 於是質之天地, 參之六神, 誓之吾心, 告諸慈堂, “自今以後, 非君父命不敢飮.” (中略) 慈母育子, 每戒省酒, 及聞此語, 喜動於色, 斷酒之誓, 庸可渝乎. - 남효온(南孝溫, 1454~1492),「동봉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東峯山人書]」,『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
▶ 신윤복(申潤福)의 그림으로 전하는 <대쾌도(大快圖)>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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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육신(生六臣) 중에 한 분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이 역시 생육신 중에 한 분인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에게 답한 편지 가운데 일부분이다. 남효온이 술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시습이 편지를 보내어 다시 술을 마시라고 권하자, 남효온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답한 것이다.
추강은 이 편지에서 먼저, 자신이 젊은 시절에 지나치게 술에 빠져 어머니께 걱정을 끼쳐드린 일에 대해 말하면서 ‘3천 가지 죄 중에 가장 큰 죄인 불효의 죄’를 저지른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천지신명을 두고 맹세하면서, ‘임금의 명이 아니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영원히 술을 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본디 음주 가무를 즐기는 탓에서인지는 몰라도, 술에 대한 인심은 아주 후하였고, 술 취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였다. 그 결과 잘못된 음주 문화를 반성하고 개선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어, 점점 더 나쁜 쪽으로만 흐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음주습관에 대해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아주 심하게 비판하였다.
연암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배가 너무 커서, 반드시 커다란 사발에 술을 따라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단숨에 들이킨다. 이는 무작정 술을 뱃속에 쏟아 붓는 것이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이어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 술에 취하면 반드시 술주정하고, 술주정하면 반드시 서로 싸움질을 하여,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을 남김없이 깨뜨려 버린다.”고 하였다. 박지원의 이 말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음주습관을 고스란히 설파한 것이다.
아무리 잘못된 음주 습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술을 마시는 처음에는 대부분 술의 긍정적 요인을 기대하고 술을 마신다.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풀고, 다른 사람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 잔 두 잔 거듭되다 보면, 마침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끝내는 자신을 망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람은 단연코 술을 끊어야 한다. 한마디로 술 마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문호(文豪)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술을 즐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권주가(勸酒歌)인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 무진 먹세그려.’로 시작되는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은 인물이다. 그런 송강이 46세 때 그 좋아하던 술을 끊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누가 내게 즐기던 술 왜 끊었냐 묻는다면, 問君何以已斷酒 술에 묘함 있는 줄을 몰라 끊었다고 하리. 酒中有妙吾不知 내가 어른 된 이후로 지금까지 삼십 년간, 自丙辰年至辛巳 아침 저녁 시시 때때 술잔 들어 마셨건만, 朝朝暮暮金屈巵 내 맘 속의 시름 아니 없어지고 그대로니, 至今未下心中城 술에 묘함 있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네. 酒中有妙吾不知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이 즐기는 술, 그 술의 긍정적인 면을 말한다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술의 부정적인 면을 말한다면, 역시 술의 긍정적인 면만큼이나 많다. 술을 적절히 마셔서 술의 좋은 점만을 취한다면, 우리의 생활을 더없이 윤택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마시어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다른 사람에게 폐해를 끼친다면, 술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
공자(孔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였다. 모든 일에 있어서 지나치면 반드시 폐해가 발생하는 법이다. 공자의 이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잘못된 음주 문화에 물들어 있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술을 마시는 모든 분이 공자의 이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술을 마셔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술주정뱅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술꾼’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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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