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피리소리 멈춰 버린 <취적봉>과 <덕우8경>

餘香堂 2015. 1. 14. 20:44

 

언   제 : 2012년  9월 29일(토), 맑음

누구와 : 마누라

어데에 : 정선의 취적봉과 덕우팔경(3.5시간)

고산준령이 첩첩이 늘어선 정선에는 화암팔경과 함께 덕우팔경이 있다. 덕우팔경이 에워싸고 있는 취적봉은 연산군의 네 세자가 버드내(유천리)에 유배되어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고, 피리를 불며 고향 생각을 달래다가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여 취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취적봉 주위에는 빼어난 경치를 노래한 동계12경 또는 덕우8경이 있다.

취적봉 산행 들머리인 정선의 덕우삼거리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 명바위가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다시 덕우삼거리로 돌아온다. 명바위는 청풍호반의 금월봉처럼 흙속에 묻혀 있는 바위를 흙을 파내서 드러난 바위군락으로 금월봉만은 못하지만 그 생김이 수려하다.

<명바위>

 

 

<옥순봉>

명바위 맞은편으로 피리부는 산, 취적봉(728.3m)이 오똑하고 취적봉 아래로 죽순을 닮았다 하는 옥순봉이 뾰족하게 서 있다. 옥순봉은 덕우리 대촌마을 강변에 상투를 틀어 올린 듯한 석봉으로 이 봉우리를 옛날 마고할멈이 신을 삼아 신었다는 전설이 있다.          <취적봉▼>

덕우삼거리 앞으로 야생화공원과 팬션이 있고 석공예단지와 조형물이 서 있다. 조형물 옆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하돌목교를 건너면 맑은 물이 흐르는 왼쪽으로 취적대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남쪽 제방을 조금 걷다보면 취적산 산행안내판이 서 있다. 밭 사이로 나 있는 들머리로 들어서면 울창한 송림으로 들어서게 된다.

 

<석공예단지.조형물>

 

 

<취적대>

 

취적대는 덕우리 유천마을 강변에 있는 석벽이다. 연산군의 네 세자가 유배되어 감자로 연명하며 슬프게 피리를 불던 곳, 지금은 피리소리는 들리지 않고 취적대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수목을 흔들어 대는 가을 바람소리만이 스산하게 들려온다. 

<들머리>

밭을 지나 송림으로 파고 들면 묘지군락이 나온다. 이 능선은 취적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낙맥이 길쭉하게 이어져 나오다 동대천으로 여맥을 가라 앉히며 음습한 협곡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망(亡)자의 안식처인 무덤, 풍수지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명지를 찾는 뜻에는 망(亡) 자의 안락보다 산자의 욕심과 이기가 더 큰 듯하다. 묘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무덤군락>

 

 

묘지를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잠시 오르니 흡사 군사 방호벽처럼 산줄기를 파 놓은 곳이 나온다. 이곳 명당에 인재가 날 것이 두려워 일제가 바위를 깨고 흙을 퍼낸 만행의 흔적이 아직도 또렷하다. 오르면 오를수록 되돌아 보이는 동대천이 또아리를 틀며 사행하는 뱀처럼 굽이굽이 반도를 만들어 놓아 동강을 바라보는 백운산의 조망과도 흡사하다.  

사모바위(시계바우)

 

전망대를 지나면 사모바우(시계바우)가 오똑하게 능선을 가로 막는다. 사모바위 암벽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른다. 사모바우는 덕우리에서 올려다보면 모자처럼 생겼는데 이 바위에 바위 그림자가 없어지면 정각 12시가 된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이 바위가 정오를 알려주어 시계바우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백오담 마을>

 

 

지금은 없어져 복원할 계획이라는 백오담은 덕우리 유천마을 중앙에 있는 연못자리로 엣날 연못에 흰 까마귀가 서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욕심 많은 이가 명당이라 탐욕하여 이 연못을 메우고 그 터에 집을 지은 후 가세가 기울었고, 그후 아니 지금도 그집으로 이사가는 사람마다 집안이 패가 망신한다고 한다. 지금도 문짝이 떨어져 나간 폐가만 남아 있다고 한다. 운금장은 덕우리 2반 유천마을 남향에 있는 산으로 구름이 산봉우리 위로 피어 오르는 모습이 황홀하다고 한다.

<정상 오름길>

 

 

사모바위를 지나 능선을 따라 발길을 옮기니 다시 석벽이 길을 막는다. 오른편으로 석벽을 끼고 사면으로 나아가니 낙엽이 수북한 된비알이다. 관목을 휘어잡고 오르니 취적봉 정상이다. 고산준령이 첩첩이 늘어서 있는 정선에서 728m 높이의 취적봉은 가볍게 올라설 수 있었다. 암릉 위로 올라서니 조망이 시원하다. 멀리 정선읍과 가리왕산은 물론이고 앞으로 박달봉의 산불감시초소가 건너편에 있다. 동대천이 골골 샅샅이 누비는 장관은 동강의 백운산 조망에 비하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취적봉 정상>

 

 

<취적봉 등산지도>

 

 

<덕산기 계곡>

 

 

<전망대>

 

 

하산은 북서쪽 제월대가 있는 능선으로 한다. 오른쪽 덕산기계곡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희미하나 덕산기 계곡까지 돌아 보기에는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다. 부드러운 능선을 걷다가 양쪽이 절벽인 위태로운 급경사를 내려서니 상장바위산과 고양산이 멀리 시야에 들고, 발 아래로 낙모암과 구운병이 수려하게 보이고,  옛날 진을 쳤다는 구진베리 협곡이 실낱같이 발 아래 가물거린다.

<낙모암>

 

 

<구운병>

 

 

<백평마을>

 

 

깍아지른 천길 단애 제월대 능선을 따라 강으로 내려선다. 강을 건너면 구진베리 약수가 나온다. 구진베리 약수는 30년 전에는 눈병과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이 찾았으나, 요즘은 온천개발로 찾는 사람이 없는 청정 샘물이다. 구진베리 약수에 들리지 않고 백평마을로 강을 건너려니 물이 제법 깊고 물살이 거세다.

<제월대 끝머리-산행 날머리>

 

 

<제월대>

 

 

<낙모암>

낙모암은 나라안에서 오지의 청청계곡으로 남아 있는 덕산기 계곡과 합류하는 덕우리1반 백평마을 삼합수 강변에 모자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고, 제월대는 덕우리1반 백평마을 강변에 암봉 사이로 달이 건너다니는 깎아지른 석봉을 이룬 곳이다. 구운병은 덕우리1반 대촌마을 강변에 아홉 폭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기암으로 덕우8경의 백미를 이루는 곳이다. 

 <제월대 강변>

 

 

깎아 세운 듯 줄지어선 석벽의 경치가 으뜸인 제월대 거친 암벽에는 들국화(구절초)가 달라 붙어 청초하게 꽃을 피워 가을을 말하고 있다.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과 갈대와 버드나무가 엉켜있어 험로인 제월대 암벽밑을 길게 걸어 겨우 구운병 맞은편 농지로 올라섰다. 

경운기 한대가 서 있는 농지에서 구운병 옆으로 나 있는 동대천 징검다리를 건너 강물이 빙빙 돌며 퇴적평야를 만들어진 백평마을로 들어 선다. 백평마을 외딴집은 전씨 농가다. 마당을 지나자 강아지 몇마리가 악을 쓰고 짖어대고, 시끄러운 듯 촌노가 내다보고는 어쩌다 찾아드는 산객이 반가운 듯 웃어준다.

반선정은 덕우리 대촌마을 강변에 있는 정자터로 주변을 경치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약 120여 년 전 일제 때 의병 이해남이 반선정을 헐고 그 자리에 자기 조상의 묘를 이장하니 대촌마을 사람들은 그의 서슬에 눌려 이를 제지하지 못하였다. 그후 대촌마을의 개들이 밤마다 반선정을 바라보며 짖어대니 기와집 9동이 불에 타고 이해남 일가도 패가망신 하였다고 전한다. 

<반선정>

 

 

<구운병>

 

백평마을 제방끝까지 돌아보니 길이 끊어졌다. 할 수 없이 바지를 걷고 마누라를 둘러 없고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 제방길을 따라 걷다 415번 국도로 올라선다. 오랫동안 산행을 같이 하면서 마누라를 업어 준 기억이 없는데, 생각보다 돌덩이를 진 것처럼 무지무지하게 무겁다....ㅠㅠ, 국도에 올라서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덕우삼거리로 회귀하며 산행을 마친다. 

정선에서 화암8경은 유명하지만 덕우8경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안내판도 부실하다. 그러나 결코 화암8경에 못지 않는 수려한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취적봉 산행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여름철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청정지대인 덕산기계곡 트레킹과 함께 정선 5일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취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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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행유정(山行有情)
글쓴이 : 바위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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