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화진포와 역사의 세 인물 별장
화진포 호수
화진포는 군청 소재지인 간성읍에서 7호선 국도를 따라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가는 중간에 있다
강물에 실려온 모래가 바닷물에 부딪히면서 길게 모래톱을 형성하여 생긴 자연호수로서, 면적 72만평 둘레가 16㎞나 되는 동해안 최대 호수이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이름 붙여진 화진포는 ‘꽃 피는 나루’라는 뜻으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동해안의 모래는 빛깔이 눈같이 희고 사람이나 말이 밟으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쟁쟁하여 마치 쇳소리와 같다. 특히 간성과 고성 지방이 더 그렇다’라고 쓰여 있다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아하여 주옥같은 백사장이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이루고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의 뒷쪽 화진포 호수는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 옛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 전 대통령별장과 이기붕 전 부통령별장, 북한 김일성 별장이 안보전시관으로 남아있다.
모래톱을 사이에 두고 호수와 해수욕장이 나누어져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에서 내려다본 화진포호수
1997년 고성군문화원에서 발행한 고성지역의 기층문화에 의하면
화진포에는 팔경(八景)이 있는데
제1경은 원당리 마을 앞에 호수에 비친 반달 그림자와 누런 가을곡식,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 '월안풍림(月安楓林)',
제2경은 화포리 찻골에서 저녘 밥을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과 같다하여 '차동취연(次洞炊煙)'
제3경은 호수 주변 모래밭에 피는 빨간색 해당화가 봄에 피는 모습이 영롱하여 '평사해당(平沙海棠)',
제4경은 호수동편에 있는 장평부근에 찾아오는 많은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청명하여 '장평낙안(長坪落雁)',
제5경은 화진포 앞바다에 떠있는 금구도(金龜島)의 모습이 한가로워 '금구농파(金龜弄波)',
제6경은 화진포 호수의 물이 바다로 빠지면서 바닷물과 부딪치며 물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용(龍)이 물을 차는 듯하여 '구용치수(龜龍治水)',
제7경은 풍암별장에서 보이는 돛단배가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이 정겨워 '풍암귀범(楓岩歸帆)',
제8경은 모화정리(茅花亭里:지금의 죽정1리)의 호수변의 모래밭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모화정각(茅花亭閣)'이라고 하며
조선시대의 풍류시인인 김삿갓이 화진포에 머무르는 동안 이를 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고 무성했던 갈대가 쓰러지면 황금벌판과도 같아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서울부자에게 큰 평야라고 속여 이 호수를 팔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화진포는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는 세 명의 옛 정치인의 별장이 있다.
화진포 호수의 둘레를 따라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이기붕 별장. 김일성 별장이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우리니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은 바다를 등지고 화진포호가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별장은 1954년에 신축된 뒤 1961년에 폐허가 되었다가 1999년 전시관으로 복원되었다.
외벽이 자연석으로 꾸며진 89m²(약 27평)의 단층 건물로 별장답지 않게 아담하고 소박하며 약간은 허름하게 보인다.
내부는 침실과 집무실로 쓰이던 방 두개와 거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유족들에게 기증 받은 물품들로 전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옛 별장 터에 원형대로 신축, 복원한 이승만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청소년 시절부터 해외 독립운동 전개시기, 초대 대통령 취임이래 6.25전쟁을 치르고 퇴임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기까지 관련 역사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육성과 활동상을 담은 기록필름이 멀티비전으로 상시 상영될 뿐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침대와 서재, 두루마기, 석사와 박사 학위증서, 친필휘호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이 놓여 있어 그의 애국심과 검소한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대통령 부부가 사용했던 침대, 낚시도구, 안경, 장갑, 여권, 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이 전시돼 있다.
단출한 가구와 소박한 물건들 그리고 생전의 사진들로 그 당시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승만대통령 별장
이승만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영부인
이승만대통령 기념관
이 대통령은 1910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선교사를 만나러 화진포에 왔다가 풍광에 반했는데 6·25전쟁 이후 이 지역을 되찾자 선교사 집이 있던 자리에 별장을 지었다.
이 별장은 1954년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단층 27평으로 신축, 이 전 대통령에게 헌사했고 이 전 대통령 부부는 수시로 이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용하지 않아 건물이 낡아 크게 훼손되어 1961년 철거되었다가 1999년 육군이 바로 위쪽 언덕에 58평 규모로 복원해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별장 건물은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별장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한데 어우러진 화진포의 두개의 호수가 한눈에 보여 화진포의 세 별장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國富兵强 永世自由(국부병강 영세자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면 영원히 자유를 누리리라
기념관 내부의 모습
집무실
침실
유품
이승만대통령의 자작 한시
김일성별장
화진포는 38선 이북 지역이기 때문에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다.
김일성 별장은 화진포콘도 오른쪽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바다와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50년까지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하계휴양지로 화진포를 찾았다고 한다. 48년 8월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한다
해수욕장에서 본 화진포의 성(오른쪽 숲속 흰 건물)
김일성별장, 일명 화진포의 성
1937년 일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원산의 휴양촌을 비행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그들에게 제공한 장소가 이곳 화진포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캐나다 선교의사 셔우드 홀이 1938년 히틀러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건축가 베버에게 화진포 암벽 위에 별장을 짓게 했다.
회색 돌로 지은 작은 원통형의 집인데 그 모습이 ‘독일의 성’을 닮아 ‘화진포의 성’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1948년 김일성과 그의 가족이 별장으로 사용하면서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졌다.
6·25전쟁 때 훼손된 것을 고성군이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한 것으로 6·25전쟁과 북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내부 전시물
건물의 옥상
이기붕 부통령 별장
화진포 사구의 숲 속에는 이승만 대통령 당시 부통령을 지냈던 이기붕의 별장이 있다.
1920년대에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선교사의 주거 공간이었고, 해방 이후에 북한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 후에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 박마리아는 생전에 인근 고성군 대진읍에 대진교회를 세우고 자주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정면
후면
정원
1964년에는 육군사령부의 휴양소로 운영되다가 1999년 7월 전시관으로 개수하여 운영되고 있다.
각진 일자형의 평면은 단순하게 구간을 나누어 집무실과 응접실 등을 갖추어 놓았으며, 주전자, 촛대, 문갑 등이 보관돼 있다
집무실
접견실
침실
공교롭게도 한시대를 풍미했던 남과 북의 지도자가 화진포라는 동일한 장소에 별장을 두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주변에는 해양박물관, 생태박물관, 고인돌유적지 등이 화진포 주변에 모여 있다. 생태박물관은 지상 3층 규모로 수백 종의 박제와 화석류, 영상, 실물 모형 등이 전시돼 있으며, 해양박물관은 1500종 4만여 점의 패류를 비롯해 길이 10여 m의 해저터널 수족관, 동해 물고기 전시장 등이 있다.
화진포의 입장료는 어른 2천원이며 생태박물관,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김일성의 별장 화진포의 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금구도(金龜島)
화진포의 절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마주 보이는 바위섬으로 화진포 해변에서 4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1,000여평 면적의 금구도(金龜島)이다.
거북 모양을 닮아 일명 거북섬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해초, 전복 등을 따며 해수욕을 즐기고 겨울철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를 비롯한 철새가 군무를 펼치기도 한다.
또한 이곳은 신라시대 수군의 기지로 사용해 해안을 지키던 곳으로, 2000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한 <문화유적지표 조사보고서>에는 이 거북섬을 금구도성지(高城金龜島城址)로 표시하고 있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초도고성(草島古城)'으로도 명기되어 있다고 한다
섬의 정상부인 약 45m 높이의 고지를 중심에 두고 해안선의 자연 지형을 따라 화강암을 이용 석축으로 축조하고, 성벽 상단은 흙을 깎아내고 길을 낸 흔적이 200여m 가량 뚜렷이 남아 있다
북쪽의 암석 저지대는 잔돌끼움 쌓기의 협축법으로 석축한 외성이 3개 구간에 남아 있는 현재 남아있는 석축의 길이는 약 60m, 높이 170~230㎝, 협축 벽간 거리 약 350㎝이라고 한다
해송 군락이 있는 부근에서 확인된 건물지(建物址)는 대나무가 우거져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나, 건물의 주초석(50cm× 50cm)과 기와편, 토기편들이 확인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고성 화진포 해양박물관과 속초에서 자연사박물관을 운영중인 한광일 대표가 이 섬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으며 안내문이 세워져 있으나 좀 더 학계의 연구가 필요하리라 본다
통일전망대에선 금강산이 손에 잡힐 듯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뒷쪽 희미한 부분)
왼쪽의 도로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안
DMZ박물관
화진포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통일전망대가 있다.
통일전망대에서는 북녘의 금강산과 해금강을 볼 수 있으며, 맑은 날이면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집선봉 등 금강산의 절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들어온다.
통일전망대 인근에는 강원도가 운영하는 DMZ(비무장지대)박물관이 있다. 2009년 8월 개관한 DMZ박물관은 고고역사, 전쟁군사, 자연생태, 생활문화 관련 62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전후의 모습을 엿보고 휴전선의 역사적 의미 등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진포 안내도
화진포의 전설
화진이라는 이름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화진포호 자리는 옛날 이화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자의 땅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그의 집에 와서 시주를 청한다. 그러자 이화진은 시주 대신 똥을 퍼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쌀을 퍼다 주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이곳에 있으면 화를 입을 것이니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다.
스님을 따르던 며느리가 송정리의 고청고개에서 뒤 돌아보니 자신이 살던 집과 그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스님은 온데간데없었다. 절망한 며느리는 그곳에서 목을 매었다.
그렇게 생긴 호수는 이화진의 이름을 따 화진호가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바람이 자고 물결이 일지 않을 때는 물속에 담과 집이 보인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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