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담양10경

餘香堂 2015. 4. 10. 09:44

○●○ 담양10경 ○●○

 

 

 

 

1.가마골용소


담양군 용면 용연리 소재 용추산(해발 523m)을 중심으로 사방 4km 주변을 가마골이라고 부르는데,

 여러 개의 깊은 계곡과 폭포,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산강의 시원으로 유명한 용소가 있고 1986년부터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어 관광객을 위한 각종 볼거리, 편의시설, 운동시설, 등산로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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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추월산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14km쯤 가면 전남 5대 명산 중의 하나인 해발 731m의 추월산을 만나게 된다.

 담양읍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 있는 형상인데 각종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예로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의 추월산 난이 자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추월산 하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여름이면 가족을 동반한 관광객들에게 더없는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오를 수 없는 산능성으로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또한 경칩(2∼3월)을 전후해서 용면 분통 마을 주변에서 나는 두릅은 상큼한 향기와 특유한 맛으로 봄의 미각을 한껏 돋우어 준다.

 

 산 중부의 울창한 숲을 지나 추월산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산 아래에 널찍하게 펼쳐지는 담양호와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추월산과 담양호와 만나는 지점에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식당과 주차장 등 편익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등산 소요시간 : 2 ~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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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금성 산성


산성산은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 전라북도 순창군의 도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이가 605m이며

담양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광덕산을 포함한 일대의 산성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과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는데

 특히 주봉인 철마봉의 형세는 주위가 험준한 암석으로 둘러싸이고 중앙은 분지로 되어 있어

 예로부터 요새지로 이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유적이 금성산성이다.

 

금성산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전해오는데 산성의 둘레가 7,345m이고

 성 안에는 곡식 2만 3천 석이 해마다 비축되었다 한다.

특이한 점은 금성산성밖에는 높은 산이 없어 성문 안을 전혀 엿볼 수 없는 형세를 잘 살펴서 지은 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의 성문과 성벽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일단 산성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곳곳에 우물이나 절구통 같은 유물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산성의 동문 밖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강천사 등 관광명소와 바로 연결되는 길이 있어서

관광코스나 호반유원지로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사적 제353호) 금성산성 사적지 일주 등산소요시간 : 4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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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병풍산


담양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8km 지점에 있는 이 병풍산은 담양군 대전면, 수북면, 월산면 장성군 북하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담양군 수북면 소재지에서 병풍산을 바라보면 왜 이 산을 병풍산이라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투구봉에서 시작하여 우뚝 솟은 옥녀봉, 중봉, 천자봉을 거쳐 정상인 깃대봉과 신선대까지

 고르게 뻗은 산줄기는 한눈에 보아도 틀림없는 병풍이다.

 

병풍산은 높이가 822.2m로 노령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산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

 또한,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병풍산은 등줄기 양옆으로 무수히 많은 작은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 사이에 일궈진 골짜기가 99개에 이르는데

 이중 한 개 골짜기만 빼고 나머지의 골짜기는 항상 물이 흐르고 있다.

장성경계에서 깃봉까지 등산 소요시간 : 1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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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삼인산


병풍산 남쪽에 삼각추처럼 솟아 있는 삼인산은 삼정승이 태어날 길지로 손꼽힌다.

수북에서 바라보면 뾰족한 산의 형세가 마치 사람인(人)자 세 개를 겹쳐 놓은 모습이다.

 

산 북쪽에 있는 삼인동은 1750년경 무안에서 함양의 유학자 박해언이 산세 좋고 만물이 태생한다는 길지라서 정착했다고 한다.

 담양군과 노경호씨의 고증에 의하면 삼인산은 몽선암(夢仙庵)으로도 불려졌는데

이는 견훤 난 때 피난 온 여인들이 몽선암에서 몽골병졸들의 만행을 죽음으로 항쟁했기 때문이란다.

 

그 뒤 태조 이성계가 국태민안과 자신의 등극을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제사를 지내던 중 

꿈에 삼인산을 찾으라는 성몽(聖夢)때문이 이산에서 제를 올리고 기도하고 등극하게 되어 몽성산이라 했다.

또 풍수지리상 세 사람의 정승이 나온다는 길지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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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메타쉐쿼이아 가로수길


대나무숲 외에도 메타세쿼이아라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서 이국적이며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멀리서 보면 옹기종기 줄을 서서 모여 앉은 요정들 같기도 하고 장난감 나라의 꼬마열차 같기도 하다.

길 가운데에서 쳐다보면 영락없는 영국 근위병들이 사열하는 모습이다.

 질서정연하게 사열하면서 외지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메타세쿼이아( M e t a s e q u o i a ) 는 원래 중국이 그 산지이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개량이 되었고

 담양군에서는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의 시범가로로 지정되면서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지금은 하늘을 덮고 있는 울창한 가로수로 자라난 것이다.

 

2002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가다 보면 이국적인 풍경에 심취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도의 길목으로 빠져들고 만다.

초록빛 동굴을 통과하다 보면 이곳을 왜 ‘꿈의 드라이브코스’라 부르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무려 8.5 k m에 이르는 국도변 양쪽에 자리 잡은 10~20m에 이르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저마다 짙푸른 가지를 뻗치고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묶어둔다.

이 길은 푸른 녹음이 한껏 자태를 뽐내는 여름이 드라이브하기에 가장 좋다.

 잠깐 차를 세우고 걷노라면 메타세쿼이아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향기에 매료되어

꼭 삼림욕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너무나 매혹적인 길이라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쳐 버리기엔 왠지 아쉬움이 남는 길이다.

 자전거를 빌려서 하이킹을 한다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의 참모습을 누리기에 더없이 좋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고속도로 개발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이 도로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 적이 있지만

많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도로가 비켜날 만큼 세인들에게 중요한 곳으로 인식된 곳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영화 초반에 택시기사 민우(김상경)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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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죽녹원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녹원이 죽림욕장으로 인기다.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이 죽녹원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오르며 굳어 있던 몸을 풀고 나면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바람이 일상에 지쳐 있는 심신에 청량감을 불어 넣어준다.

또한,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순간 빽빽이 들어서 있는 대나무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자신이 보이고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기분 또한 신선하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로차 한 잔으로 목을 적시고 죽림욕을 즐기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대나무를 올려다보자.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매력 또한 가지고 있는 대나무와 댓잎이 풍기는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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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용훙사 계곡


용흥사 계곡은 담양읍에서 북으로 8㎞쯤 가다 바심재 왼쪽으로 용흥리 마을을 지나 2㎞쯤 올라가면

 용흥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담수하는 저수지가 있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구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용흥사 절이 있다.
속설에 의하면 조선 영조의 어머니인 창평인 최복순 여인이 이 절에서 기도를 하여 영조를 낳고

 이 절 이름을 용흥사라 하고 산 이름도 용구산에서 몽선산이라 고쳤다고 한다.

 

용흥사는 현 건물지의 규모로 보아 옛날에는 대규모의 사찰이었던 같으나

 임진왜란과 한 말 의병전쟁,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되었고 근래 대웅전과 요사채를 복원하였다.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용흥사 계곡은 단풍나무와 푸른 송림사이에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고

약 2㎞에 이르는 계곡은 물이 맑고 깨끗하여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담양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광주 등 다른 지역에서까지 많은 피서객이 몰려들어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용흥사 계곡 사이로 붉게 물든 가을 단풍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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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관방 제림


이 숲은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및 은단풍 등

여러 가지 낙엽성 활엽수들로 이루어졌으며,

 나무의 크기도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m 정도의 것부터 5.3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다.

 나무의 수령은 최고 300년이 된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은 조선 인조 26년(1648) 당시의 부사 성이성(府使 成以性)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철종 5년(1854)에는 부사 황종림(府使 黃鍾林)이 다시 이 제방을 축조하면서 그 위에 숲을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처럼 예로부터 산록이나 수변 또는 평야지대에 임야구역을 설치하고 보호하여 특이한 임상을 갖춘 곳을 임수(林藪)라 한다.

 

 임수의 종류를 나누어 보면 종교적 임수, 교육적 임수, 풍치적 임수, 보안적 임수, 농리적 임수 등

 그 임상과 입지조건 또는 설치의식에 따라 구분된다.

전남에는 완도 갈지리 임수, 곡성읍 읍내리 임수, 곡성 오곡면 외천 임수, 광양 인서리 임수,

광주 경양제 임수 등 몇 군데가 있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 담양 관방제 임수이다.

 

2004년에는 산림청이 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 (주)유한킴벌리 등과

공동 주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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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일동삼승지-환벽당

 

1972년 1월 29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 : 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며, 당호는 신잠(申潛)이 지었다.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林億齡)·조자이(趙子以)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는 광주광역시 충효리 태생으로, 호는 사촌(沙村)이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 후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다.

그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鄭徹)과 김성원(金成遠)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정철은 16세 때부터 27세에 관계에 나갈 때까지 환벽당에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하는 곳이다.

조부의 묘가 있는 고향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당시 14살의 정철이 순천에 사는

형을 만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 마리가 노는 것을 보았다.

꿈을 깨고서 용소로 내려가 보니 용모가 비범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김윤제는 소년을 데려다가 여러 가지 문답을 하는 사이에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순천에 가는 것을 만류하고 슬하에 두어 학문을 닦게 하였다.

정철은 이곳에서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 인근에 취가정, 독수정, 소쇄원이 있다.

환벽당은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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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일동삼승지-식영정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특이한 것은 한쪽 귀퉁이로 방을 몰아붙이고 전면과 측면을 마루로 두고 있다.
명종 15년(1560)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1525-1597)이 창건하여 장인(丈人)인

석천 임억령(石川 林憶齡, 1496-1568)에게 증여한 것이다.

 

식영정 바로 곁에 본인의 호를 서하당(棲霞堂)이란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고 하며 최근 복원하였다.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행장(行狀)을 보면「庚申公三十六歲 築棲霞堂于昌平之星山 爲終老計……」

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하당과 식영정이 1560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1533-1592),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등과 함께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의 처외재당숙으로 송강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으나

송강이 성산에 와 있을 때 같이 환벽당(環壁堂)에서 공부하던 동문이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식영정과 환벽당, 송강정(松江亭) 등 성산 일대의 미려한

자연경관을 벗삼으며『성산별곡』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또한, 송강은 이곳을 무대로 하여 면앙정 송순(俛仰亭 宋純), 하서 김인후(河西 金仁厚),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承) 등

당대의 명유들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제봉 고경명, 옥봉 백광훈(玉峰 百光勳),

귀봉 송익필(歸峰 宋翼弼) 등과 교우하면서 시문을 익혔다.

이곳은 식영정 외에도 풍광이 수려하여 유상지(遊賞地)로도 이름난 곳이 많은데

자미탄(紫薇灘), 노자암, 방초주(芳草州), 조대(釣臺), 부용당(芙蓉堂), 서석대(瑞石臺) 등이 있었으나

광주호가 생기면서 일부는 물에 잠기고 현재는 부용당만이 최근 새로 지었다.

 

식영정 옆에는 1973년 송강집(松江集)의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으며,

1972년에는 부속건물로 부용당, 성산별곡(星山別曲)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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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일동삼승지-소쇄원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주거와의 관계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후원(後園)이며, 공간구성과 기능면에서 볼 때에는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內堂)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되어 있다.

 

 전원(前園)은 대봉대(待鳳臺)와 상하지(上下池), 물레방아 그리고 애양단(愛陽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원(溪園)은 오곡문(五曲門) 곁의 담 아래에 뚫린 유입구로부터 오곡암,

폭포 그리고 계류를 중심으로 여기에 광풍각(光風閣)을 곁들이고 있다.

광풍각의 대하(臺下)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이 계류구역은 유락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내원(內園) 구역은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서 당(堂)과 오곡문(五曲門) 사이에는

 두 계단으로 된 매대(梅臺)가 있으며 여기에는 매화, 동백, 산수유 등의 나무와 기타 꽃나무가 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곡문(五曲門) 옆의 오암(鼇岩)은 자라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또 당 앞에는 빈 마당이 있고 광풍각 뒷편 언덕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진 도오(桃塢)가 있다.

당시에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국내 종으로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이고

 중국 종으로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등 13종

그리고 일본산의 철쭉, 인도산의 연꽃 등 모두 22종에 이르고 있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았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가적(道家的)인 색채도 풍겨나와 오암(鰲岩), 도오(桃塢), 대봉대(待鳳臺) 등 여러 명칭이 보인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게액되어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한다.

 

소쇄원은 1528년 처음 기사가 나온 것으로 보아 1530년 전후에 착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1528년 『소쇄정즉사(瀟灑亭卽事)』에는 간접적인 기사가 있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에는 자기가 태어나던 해(1536)에 소쇄원이 조영된 것이라 하였다.

1542년에는 송순이 양산보의 소쇄원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 개인이 꾸몄다기보다는 당나라 이덕유(李德裕)가 경영하던 평천장(平泉莊)과

이를 모방한 송순, 김인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1574년 고경명(高敬命)이 쓴 『유서석록(遊瑞石錄)』에는

소쇄원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어 당시 소쇄원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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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담양여행의 맛은 대나무다.

대나무에 고장이니만큼 대나무는 정말 담양여행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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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조상님에 멋진시조글중에는 대나무는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아닌것이라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담양여행중에 나무도 아니고 풀도아닌것에 대한 진정한 답을 얻을수나 있을런지......

대숲향이 멋진 담양여행.......

고 노무현대통령님도 다녀가셧다는 죽녹원이다.

이른아침, 죽녹원은 그야말로 신선들의 놀이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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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어르신이 윤선도님이셨던것같다... 도데체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라면 뭐란말인가!

죽녹원에 올라서 보면 앞강물너머 관방제림이 보이고, 멀리,흐릿하지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도 보인다.

세곳,보고싶은 명소들은 같이 모여있다.

참좋은 담양여행, 하루꼬박 날잡고 ... 아니, 당일여행도 담양여행은 정말 좋은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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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홍수,태풍을 막아보려고 심었다지..... 고목들,정말 대단한 향과 멋이 있는곳이다.

 

관방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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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정한 담양여행의 볼거리는 이곳 관방제림이다. 역사적으로 300년....

300년전에 심은 나무의 지나온세월을 한눈에 알아볼수 잇으니......

줄줄이 펼쳐지는 명소, 이번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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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곳이 이런곳도 있구나~!!

감탄에 감탄..... 역사는 몇십년이지만 이처럼 훌륭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또 있을까?

 

담양여행은 그 진수를 보여주는곳마다 데이트 장소다.

나처럼 혼자 는 너무 외롭고 슬프기까지하는 담양여행.....

그래도 나를 사랑해야지.....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법을 터득하며 살아야지.....

배가고프고 맛있는걸 먹고싶어진다.

인터넷 뒤적거릴때 봤던 새우요리....

나는 내 애마와 함께 그곳으로 최대한 빨리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