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枕中記(침중기)와 邯鄲之夢(한단지몽)

餘香堂 2015. 4. 28. 13:49

  침중기(枕中記)》는

중국 대의 풍자소설로 작자는 심기제(沈旣濟)이다.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는 가난한 서생이

한 도사(道士)가 준 베개로 인해

일생 동안의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모습을 보나,

깨고 보니

그것이 잠깐 동안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고,

명리(名利)를 찾는 자신의 하찮은 모습을 깨닫는다.

 

파란만장의 일생을 일순의 꿈에 응축시킨 소설수법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황량일취몽(黃梁一炊夢)'의 고사(故事)로서

후자에 전해지고 있다.

당대(唐代)의 실리적 풍조에 대한 작가의 풍자가 담겨져 있다.

 

한단지몽(邯鄲之夢)은

당(唐)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라는

전기소설(傳奇小說)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에서 나온 어휘로

덧없는 일생을 비유한 말이다.

 

줄거리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 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노생은

자신의 생이 고단하다고 하며

부귀영화를 원한다고 대화를 나누다 졸음이 왔다.

그때 주막 주인은 메조를 씻어 솥에 넣고 밥을 지으려 했다.



도사가 청자(靑瓷)로 된 베개를 주니

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자며

꿈속에서

최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원이 되고

수도 장관으로 승진하여 장안으로 부임했고,

다시 절도사가 되어 큰 공을 세우고 재상까지 되었는데

그때 간신의 모함을 받아 잡혀갈 처지에 놓였다.

자살을 하려다 아내가 말려 못 했다.

다행히 사형을 면하고 무죄임이 밝혀져 다시 재상이 되고

다섯 아들에 손자가 열 명이었고

이렇게 50여 년 부귀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떴다.

 

노생은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는데

여관 주인이 아직도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메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의미

덧없는 일생을 비유하여 한단지몽이라 하게 되었고

한단몽(邯鄲夢), 황량지몽(黃粱之夢), 황량몽(黃粱夢), 여옹침(呂翁枕),

노생지몽(盧生之夢), 황량일취지몽(黃粱一炊之夢), 일취지몽(一炊之夢)이니 하는 말로 쓴다.

‘황량’은 메조(거친 기장)이다.

‘一炊’는 밥 한 번 하는 시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

  한단지몽은 《침중기》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이다.

작가 심기제(沈旣濟)는 중국 중당(中唐)의 전기작가(傳奇作家)로,

당대(唐代)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를 저술하여,

명나라 탕현조(湯顯祖)의 희곡 《한단기》(邯鄲記)의 바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단에서 꾼 한바탕 꿈

혹은 인생의 덧없음을 꿈에 비유한 말로 한단지몽이라고 했다는 것으로

한단은 전국시대 강대국 가운데 하나인 조나라의 수도였다.

당시 초강대국 진(秦)은

서쪽 변방에 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으로는 중심이 아니었다.

반면에 조나라 수도 한단은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도시 가운데 한 곳이었다.

그래서 화려한 도시 한단에서 꾼 한바탕 꿈이란 의미에서 이런 표현이 생겨났다.

번화한 도시에서 꾼 꿈은

깨고 나면 더욱 허탈할 느낌이었으니

한단이 얼마나 유명한 도시였는지를 알 수 있다.

 

조나라 수도 한단에 관련하여 나온 고사성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단지보(邯鄲之步)는

한단의 걸음걸이로

연나라의 한 청년이 한단에 가서 그 곳 걸음걸이를 배우려 했으나

오히려 본래의 걸음걸이도 잊어버려 기어서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함부로 자기의 본분을 버리고

남을 무조건 흉내내면

두 가지 모두 잃는다는 것을 조롱해서 하는 말이다.

당시 전국시대 유행의 첨단 도시인 한단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출처 : 한자 문화 뜨락
글쓴이 : 시너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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