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숲은 떨어진 낙엽들로 아늑하다. | ⓒ 전라도닷컴 |
| | ▲ 가을빛으로 물든 서어나무숲. 울룩불룩 자라난 70여 그루의 고목이 자연의 원시성을 보여준 다. | ⓒ 전라도닷컴 |
쏟아지는 가을빛에 마음 어수선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두둥실 산천을 찾아 헤맨다. 어느 곳을 가든 즐겁지 않으랴. 가을은 어느새 발치까지 와 있다. 저만의 빛깔로 냄새로 하늘이 높고 푸르다. 숲 찾아간다. 깊고 깊은 산속이 아니라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숲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간다. 이맘때 가면 불어오는 바람이, 바람에 쓸리는 낙엽이 마음을 읽어낸다 했다. 작지만 한번 들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숲이라 했다. 들판 가로질러 고개 넘어 남원 운봉 서어나무숲 간다.
| ⓒ 전라도닷컴 | '근육나무'란 별명이 붙은 이유 운봉으로 가는 여원치는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고개다. 여원치는 추풍령과 함께 백두대간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부분에 꼽힌다. 상대적으로 넘기 수월해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치열한 전투의 대부분이 이 고개에서 펼쳐졌다. 임진왜란, 갑오농민전쟁 등 전쟁과 민란이 일어났을 때마다 항상 쟁탈의 대상이 되었다. 여원치라는 이름도 고려 이성계가 황산싸움에서 적장 아지발도를 물리치며 생겨난 이름이다. 그러나 해발 477m. 운봉은 아래 남원보다 가을걷이가 한발 빠르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먼저 깃든다. 운봉은 고원이다. 고리봉 세걸산 아래 넓은 들이 아늑하다. 천석꾼이 여럿 있었고 조선 팔도가 다 아는 만석꾼이 있었다.
행정마을은 운봉읍에서 조금 가면 있다. 지리산 정령치로 가는 길이다. 마을 뒤로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아쉽다가 불긋하게 물오른 빛깔에 발걸음이 급하다. 다가갈수록 숲은 몸을 부풀려 햇살을 맘껏 받아내고 있다. 끝 가지에서부터 가을이 내려오고 있다. 숲 앞에 서면 정작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우람한 고목들이 높게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도시공원이 가지지 못한 자연의 원시성으로 숲은 숨 쉬고 있다. 서어나무 줄기를 올려다보면 자연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울룩불룩 휘감듯 뻗어 있다. 서어나무에 `근육나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서어나무는 삼림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나무다. `극상림’을 구성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극상림은 숲이 가장 안정된 최상의 상태를 말한다. 산불이 나 숲이 파괴되었을 때 가장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 숲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나무가 서어나무다. 또한 서어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생겨나 세계로 뻗어나간 나무다. 화석을 분석해 보면 서어나무는 아시아에서 출현했고 그 분포의 중심에 우리나라가 있다. `저기 저것 무엇이냐. 저 건너 화림 속에 알른알른 보이는 게 선녀가 아니면 정녕 귀신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춘향이가 그네를 타는 장면이다. `추천 줄에 올라 제비같이 몸을 차고, 나비같이 날개 벌려 높으락낮으락 왔다갔다’ 했다.
| | ▲ 서어나무 줄기를 올려다보면 자연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 ⓒ 전라도닷컴 |
| | ▲ 처마끝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감.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이다. | ⓒ 전라도닷컴 |
'아름다운 마을숲 전국대회' 대상 숲은 떨어진 낙엽들로 아늑하다. 숲길은 마을로 논으로 밭으로 뻗어 있다. 행정마을 사람 대부분은 이 숲에서 뛰어 놀며 자랐다. 아침에 옆 강가에서 올라온 물안개로 휩싸인 숲을 지나 들로 나간다. 일하다 새참을 먹으러 이 숲에 든다. 한가한 농번기에는 이집저집에서 먹을 것을 들고 와 도회로 나간 자식들 얘기를 하며 논다. 행정마을이 생겨나면서 서어나무숲도 생겼다. 나무 수령이 180여 년 됐다. 그러나 숲이 생긴 연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여러 가지다. 조규근(71), 김형순(76), 김종열(65)씨 말이 다 다르다.
“동네 재산이 빠져나간다고. 울타리를 쳐야 가난한 사람 안 생기고 다 잘 사니까 나무를 심은 거여.” “여가 배형국이여. 냇물이 양쪽으로 흘러내려. 운봉 있는 데가 뱃머리, 저 높은 산이 고리봉인디 배를 매어둘 쇠고리가 있는 데여. 그럼 저 숲은 뭐냐. 배가 자꾸 떠내려갈라고 한게 못 떠내려가게 막은 것이여.” “풍수지리로 말하믄 배형국은 맞는디, 배를 못 떠내려가게 막은 것이 아녀. 거가 배 돛자리여. 나무를 심어 배 돛을 달아준 거여. 근디 딴 얘기도 있어. 마을에 병이 돌았는디 마을을 지나가는 스님이 사람 살 터가 아니라고 북쪽이 허(虛)한게 그런 거라고. 북쪽에 돌성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야 한단게 그리 했다는 거여.”
| | ▲ 들판을 굽어보고 있는 듯한 삼산마을의 소나무. | ⓒ 전라도닷컴 |
| | ▲ 덕치마을에는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 있다. | ⓒ 전라도닷컴 |
옥신각신 논쟁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숲 자랑은 더 한다. “저 숲이 우리 마을 사람들 전체꺼여. 공동소유. 살기 어려운게 벌목해갖고 팔 수도 있었을 것인디 그리 안했어.” “겨울에 북풍 딱 막아주고 있는게 아무래도 마을이 덜 춥제.” “요 숲이 영판 신기해. 봄 돼갖고 싹 나올 때가 되믄 다른 데는 푸르스름 올라온디 저 숲은 불그스름해. 순이 빨갛게 올라와.” “우리 동네로 치믄 쩌가 물레방앗간이여. 동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겄다, 캄캄한디 누가 들어가 있는지 알겄어.”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은 지난 2013년 산림청과 생명의숲가꾸기국민운동이 연 `제1회 아름다운 마을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행정마을은 돌담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돌다 보면 곶감을 만들려는 감이 처마 끝에 줄줄이 매달려 있고 고추, 콩, 상수리 등이 널려 있어 가을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 행정리 맞은편 삼산마을의 소나무숲도 들러볼 만한 곳이다. 굽고 뒤틀린 온갖 모양새로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가는 길: 남장수 나들목-남원 방향-24번국도-여원치-운봉읍-정령치 방향-삼산마을-행정마을. 여행쪽지: 행정마을에서 조금 더 가면 덕치마을이 나온다. 덕치마을에는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이 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물매(지붕의 경사도)가 가파른데 그 형태가 초가와 사뭇 다르다. 들러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