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보름달.
이백의 '정야사'는 그 보름날의 정서를 절절하게 표현한 명시다.
이제 곧 추석이다. 이 중추가절(仲秋佳節)을 맞을 때면 곧 떠오르는 게 고향이자 가족이다. 객지에 멀리 떠도는 이 있으면 그는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먼저 고향과 부모님, 그리운 형제자매를 떠올린다. 고향에 머물지 못하면서 외지에 나가 떠도는 나그네의 심정을 가장 아리게 만드는 시절이 바로 한가위, 추석이다.
그래서 먼 객지의 나그네 몸으로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보며 고향을 그렸던 시를 적어본다. 당나라 최고의 가객, 이백(李白)이 지은 고요한 밤의 생각, 즉 ‘정야사(靜夜思)’다. 이 시는 중고교 시절에 배운 기억이 있다. 아울러 시구가 평이해 암송이 쉬워 친근하다.
床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이 시는 사실 판본(版本)이 여럿이다. 이백이 활동했던 연대와 비교적 가까운 송대(宋代)의 판본이 위에 적은 내용이다. 그 뒤에 정리 과정을 거쳐 정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번역이 문제다. 맥락이 같아 뒤의 판본만을 풀자면 이렇다.
床(상) 앞(前)에 밝은 달(明月) 빛(光)/
땅위(地上)의 서리(霜)로 보인다(疑是)//
머리 들어(擧頭) 밝은 달(明月) 바라보고(望)/
고개 숙여(低頭) 고향(故鄕)을 생각한다(思).
먼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로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한 가닥.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바닥에 깔린 훤한 달빛, 그리고 이어지는 찬 서리의 이미지. 고개 들어 바라보는 달, 다시 숙여 생각하는 고향-. 아주 평이한 흐름이지만, 객지에서 고향 생각하는 그리움의 정서가 절절하다.
그래서 명시(名詩)다. 쉽고 간결하며, 뜻이 깊어 곧 음미(吟味)의 지경에 푹 빠지니 그렇다. 그러나 床(상)의 풀이에는 논란이 따른다. 보통은 이를 ‘침대’ ‘침상’의 床(상)으로 풀었다. 우리는 보통 이 풀이를 따른다. 그러나 원래의 뜻은 우물 주변에 치는 난간(欄干)이 맞을 듯하다.
銀床(은상)이라고 해서, 고대 우물 주변에 설치했던 난간을 가리키는 단어도 있다. 아울러 이백이 살았던 당나라 때는 이 글자가 ‘침대’를 가리켰는지 불확실하다. 당나라 때는 지금의 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이불 등을 깔고 자는 게 보통이었다. 아울러 당시에는 ‘침대’라기보다 접을 수 있는 간이의자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는 그저 ‘침대’ ‘침상’으로 풀 수가 없다. 시를 지은 이백의 상황도 실내라기보다는 실외에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발아래 깔린 달빛을 보고 ‘서리 아닐까(疑是地上霜)’ 여기는 낌새가 그렇다. 침대나 침상 아래에 서리 내릴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서 床(상)은 우물 주변에 두른 난간 정도로 보는 게 적절하지 싶다.
그러나 글자 풀이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자. 이 시가 지니는 고향과 가족의 의미가 살갑게 와 닿는다. 고향과 가족은 뭔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뿌리다. 뿌리는 또한 ‘중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즘 그런 ‘중심’을 놓치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올해 한가위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에 더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이 뭔지를 잘 생각하자.
우리가 이루는 사회 공동체가 저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고 원만하면 오죽 좋을까.
즐겁고 보람 있는 한가위 맞으시길~!
靜夜思는 이백의 작품이고, 시대가 당나라 임에 비해
雨夜는 정철의 작품이고, 시대가 조선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대를 뛰어넘어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시를 남기기도 한다.
寒雨는 夜鳴竹이요 / 찬비는 밤들어 대를 울리고
草蟲은 秋近床이라. / 풀벌레는 가을이라 침상에 가까이 드네
流年은 那可住오? / 흐르는 세월을 어찌 붙들어 매리?
白髮不禁長이라. / 백발이 자라는 것 금할 길 없다.
당대 당파 정치의 중심에 섰던 인물.
가사문학과 시조 등으로 우리 국문학사에서 최고의 인물로
추앙받지만, 정치적으로 기축옥사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 데 대해 비난받고 있기도 한 인물. [*당시 정철이 추국관이 되어
천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그가 雨夜 시를 쓴 것은 만년의 어느날 (아마도) 산사에서
갖가지 회한으로 잠 이루지 못한 끝에 나온 시가 아닐까.
이백의 정야사가 가을 어느날 밤에 휘영청 밝은 달을 보고
고향을 생각하는 시라면, 정철의 이 시는 비오는 밤에
인생무상을 깨달으며 쓴 시이다.
이백의 시의 색조가 달빛, 서리 등 흰 색이 주조라면
정철의 이 시 역시 빗발. 백발 등 흰색이 주조를 이룬다.
이백의 시가 제목에서 말하듯 시가 [고요] 그 자체를 말하고 있으나
정철은 소리를 가미시키고 있다. 빗소리. 대나무 스치는 소리. 풀벌레 소리.
마지막 연의 백발 자라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인생이란 얼마나 속절 없는것인가.
정철은 <失音>이란 시를 남기고 있기도 하다.
어느날 말을 못하는 병이 든 것이다. 당대 정치의 중심에서 수레바퀴처럼
잘도 돌아가던 입이 그만 닫혀버린 것이다.
언젠가 중국인이 정야사 시를 가지고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시 그런 중국인을 만나게 되기라도 한다면
'雨夜'시를 들려줄 수도 있으리라.
중국인치고 <정야사>를 모르는 사람이 드문데,
한국인치고 <우야>를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
참고
<失音 1> / 정철
天公厭我多言否아
하늘이 나의 말 많음을 싫어하심일까.
喉挾纏風響挾嘶라
목구멍에 풍이 끼어 목소리 그르렁거리네.
殆似寒蟬鳴暫歇하고
흡사 가을 매미 울다가 잠깐 쉬는 것 같고
還如病鵲舌初癡라.
병든 까치의 혀가 무뎌진 것 같아라.
是非正悔呶呶習하노니
시비 가리며 떠들던 그 버릇 정히 후회하노니
開闔方諳袞袞機를.
열고 닫음이 바야흐로 곤곤한 천기인 것을.
呼馬呼牛都不應하여
말아, 소야 불러도 모두다 대답이없어
臥看新月下山時라.
새 달이 산을 내릴 때까지 누워서 바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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