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 * 好 * 樂

[스크랩] 적벽부도

餘香堂 2015. 5. 9. 08:25

玄洞子 傳 安堅 赤壁賦圖 [현동자 전 안견 적벽부도]. 비단에 담채. 161.3 x 102.3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속에서 세 남자가 배 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술을 마시며 달을 감상하고 있다.

화면은 온통 산과 강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왼쪽 아래에 배가 버들잎처럼 작게 떠 있다.

행여 달빛을 감상하는 손님들의 운치가 깨어질까 봐 사공은 조심스레 노를 젓는다.

맑은 바람은 조용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는다.

주인은 술을 들어 벗들에게 권하며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읊는다.

달이 동쪽 산위에 솟아 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고

흰 이슬은 강에 놓이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다.

 

한 잎 갈대 같은 배가 가는대로 맡겨 일만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 넓은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 모습이 마치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이 되어 오르는것 같다.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진 손님들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한 사람이 퉁소를 불고 노래를 따라 화답을 하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우는듯 하소연하는 듯 여운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용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에 홀어미를 울린다.

 

 

한 사람이 조조의 시를 읊으며 적벽에서 조조와 주유의 적벽대전을 얘기한다.

일세의 영웅들이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지금 그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없다.

영웅 호걸과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의 끝없음을 부러워 한다.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비쳐 보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술잔을 들고 얘기한다.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되 마침내 줄고 늘어나는 것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은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 하리오?

천지 사이에 있는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고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삼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드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고 금할 사람도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러자 또 한사람이 웃으며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른다.

안주가 이미 바닥이 나고 술잔과 쟁반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서로를 베개삼아 배 안에 누우니 동녘이 이미 밝아 오고 있는 것도 알 지 못한다.

 

 

이 글은 북송의 시인 소식이 지은 적벽부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식은 황주 유배시절에 적벽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지었다.

1082년 7월 16일과 10월 15일 두 번의 뱃놀이를 바탕으로 '전적벽부'와 '후적벽부'를 쓰게 되었다.

그 중에서 위의 글은 전적벽부의 내용이다.

 

이 글을 적벽시라 하지 않고 적벽부라 한 것은 부가 시와 산문의 요소들을 결합한

형식의 글이기 때문이다.

시처럼 운율이 살아 있고 리듬이 있지만 그 형식은 시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덜 제한적이어서

시와 산문의 중간쯤에 놓여 있는 글을 말한다. 

 

적벽도는 소식의 적벽부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화가들이 적벽부도를 많이 그리고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적벽이 상징하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관심과 배를 타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유배생활의 고통을 잊으려 했던 소식의 풍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잠시 동안 만이라도 유배중인 현실의 고통을 잊고

정신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것은 사대부들이 정치적 곤란을 겪으며 좌절속에 있을 때

자연 속에서 위안을 찾아 쉬고자 하는 도교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이런 그림은 단지 그림속의 내용을 충실히 그리는 수준을 벗어나

그림을 통해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시와 그림의 만남, 문학과 회화의 결합을 들 수 있다.

'소상팔경도'가 시로 읊어지고 그림으로 그려진 것과 같은 의미라 볼 수 있다.

멋진 시를 뛰어난 글씨로 쓰고 그림으로 그려 '시서화 삼절'이 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멋을 보여준다.

 

안견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적벽도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하루살이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한 알갱이 좁쌀알처럼 그려졌다.

안타깝게도 그림이 많이 상해서 원래의 감동은 덜하지만 화면의 무게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고

수평선과 대각선의 구도를 잘 활용하여 넒은 공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시팔경도'와 비슷하다.

 

소동파로 알려진 시인 소식은 후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소식의 적벽 유람을 흉내 내어 강가에 있는 멋진 벼랑이나 낭떠러지를 작벽이라 이름짓고

소식처럼 배를 타고 뱃놀이하는 것을 즐겼다.

굳이 중국에 있는 적벽까지 가지 않더라도 적벽만큼 멋있는 장소에서 뱃놀이를 하며

시를 지으면 그 사람은 소식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북송말에서 부터 청대까지 적벽부도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꾸준히 그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징, 조영석, 정선, 강세황, 김홍도, 이재관 등 많은 화가들이 적벽부도를 남기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의 형식은 '적벽부'의 내용 중에서 인상저인 장면만을 독립적으로 그리는 작가가 있는 반면

시간 순서에 따라 한 화면에 이야기를 전부 그려 넣는 서술적인 방법을 취하는 작가도 있다.

전 안견의 적벽도는 전자의 형식을 따랐고 후자의 형식에 따른 작품이 이징의 산수도 이다.

 

출처 : 화금산사랑회
글쓴이 : 화금 산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