謙齋 鄭敾 孤山放鶴圖 [겸재 정선 고산방학도] 견본담채. 29.2 x 23.5 cm. 독일 성오틀리엔수도원 소장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는 설산을 배경으로 곁에 시동을 둔 처사(處士)가
막 꽃이 피어나는 매화나무에 기대어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백학을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북송대 항주의 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西湖)의 고산에서 은거했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런 그림을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라 한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孤山放鶴 謙齋 [고산방학 겸재]라 적혀있고
좌측 화제는 이렇다.
鳴似聞之, 香似播之, 曷若無聲無臭 [명사문지, 향사파지, 갈약무성무치]
울음이 들리는 듯하고, 향기가 퍼지는 듯하지만,
어찌 들어도 소리 없고, 맡아도 냄새 없는 것 같겠는가.
화제에 적힌 그대로 임포가 은거했던 고산의 서호에서 처(매화)의 등에 기대 자식(학)을 바라보는
임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인물과 학에만 하얀 호분을 칠했고 복건과 학창의의 푸르스럼한 색은 임포의 고고함을 나타내는 듯 눈이 시리다.
정선의 작품 속에는 만족스럽게 인생을 보낸 자의 기품과 여유가 들어 있다.
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 즉, 맑고 깨끗한 임포의 모습,
매화와 학 등의 생물들, 배경을 이룬 서호의 고산 등은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는데, 동양의 선비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투영시키곤 하였다.
존경받았던 임포(林逋, 967~1028) 등의 선인들이 거처했던 장소는 서로 연결되어 이상지가 되었으며,
아울러 생물의 자연적인 특성에 부여된 상징성을 지닌 매화 등은 그들의 고결한 삶의 이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동양 선비들이 그림에 무엇을 담아 표현하고자했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삶은 무엇이었는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주인공 임포는 항주에서 활동했는데,
세속에서 물러나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서옥을 짓고 평생 청빈하게 살았기에
고산처사(孤山處士)라 불렸다.
그는 고산에 매화를 심어놓고 은거하면서 학과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술을 사러 보냈고 손님이 오면
공중에서 학이 울어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집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화를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하여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부인으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임포 등 명사들과 서호 일대 승경들지들은 서로 연결되어 문학 등에 지속적으로 애호되다가
점차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으며 점차 일정한 유형을 이루었고
그림의 주제로도 즐겨 다루어지게 되었다.
이 그림의 배경을 이룬 눈 쌓인 산은 속세를 떠나 은거하고자 하는
문인들의 고아한 뜻을 드러내는데 즐겨 사용되었다.
속세의 더러움이 하얀 눈 속에 감추어질 수 있었고
눈 덮힌 적막함은 은일처사의 쓸쓸한 정감을 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 추운 눈속에서 꽃을 피워 지조를 상징하는 군자의 꽃인 매화는
주인공 임포와 관련해 군자의 의미 이외에 은일의 의미가 부가되었다.
특히 임포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중
衆芳搖落獨暄姸 [중방요락독훤연] 모든 꽃들 다 졌는데 홀로 아름다워
占盡風情向小園 [점진풍정향소원] 풍정을 독점하고 정원을 향하였네
疎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황혼 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
유명한 이 매화 시구는 많은 선비들에게 회자되었기에
은일처사와 어울리는 고결한 의미가 매화의 뜻에 부가되고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장수를 상징했던 신선의 새인 학 역시 임포의 고사로 인해 청빈한 은자의 벗이 되었다.
이렇듯 '고산방학도'는 임포라는 명사와 서호라는 장소 그리고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 등이
한 화면에 결합하여 은일처사의 고아한 삶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얽힌 사연
1925년, 흑백무성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촬영을 위해 조선에 왔던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아파스(수도원장).
그는 금강산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화상(畵商)들로부터 흥미로운 그림 몇 점을 입수하게 된다.
그리고 귀국.
가져간 그림들은 화첩으로 만들어졌고, 그후 쭉 수도원 박물관 한편에 전시됐다.
그곳을 지나간 몇 명 한국인들을 비롯,
1976년 당시 유학생이던 유준영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그 존재를 한국에 알릴 때까지도
수도원은 그 화첩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
바로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그림 21점을 모은 화첩이었다.
이후 수도원은 아무렇게 전시돼 있던 화첩을 거둬들여 수도원 깊은 곳에 꽁꽁 숨겼다.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는 50억원의 가치를 매기고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수도원 측은 화첩을 고이 간직해오다 베네딕도 수도회 한국 진출 100년을 맞아
2006년 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왜관수도원에서는 화첩 원본을 같은 크기에 같은 재질로 모사,
100주년 기념행사 기간 중 오틸리엔 수도원측에 모사본을 증정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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