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沙里에서-소상팔경도-서안나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백일홍 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어질게 내려앉는 쇠기러기의 눈을
그리고 사내는 칼날처럼 엎드려 울었다
전생 근처에 숨어 산다는 기러기 눈빛은 찬밥 같은 서늘함 사내의 울음이 화선지 위의 젖은 강줄기를 몇 번 흔들었다
누군가 밟으면 어둠 속으로 서랍처럼 닫히는 강 종이배를 불태워 강물에 놓아 보내면 떠나간 사람이 두 다리를 지우고 따
뜻한 꿈을 꿀 것이다
불빛이 찢어 놓은 평사의 밤 고요의 속살은 왜 적막한가 아홉 번 덖은 풀잎 차로 사내의 더운 눈과 간을 식히면 눈과 귀와
콧구멍이 뚫려 강물 안쪽이 푸르다
종일 모래밭에 낚시를 드리우는 사내 흰 뼈를 꺼내어 섬진강에 씻는다 사내가 평사리 들판으로 낚싯줄을 던지면 아미산
문암송(文岩松) 돌을 열어 저승으로 젖은 가지를 뻗는다
*박경리의 소설『토지』중에서
<감상>
시인의 눈은 다면체의 층위를 이룬 접안렌즈라 할 수 있다. 미세한 떨림조차 감지해내는 곤충의 눈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풍성한 화폭을 보여준다. 쇠기러기의 눈을 그리는 사내, 화룡점정을 찍어내듯 서안나 시인이 그려낸 「소상팔경도」가 그렇
다.
평사마을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기도 한데 소상팔경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같다 하여 평사리라 칭
하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고졸(古拙)한 필치로 평사리를 그려낸 시인의 「소상팔경도」는 순수한 감상화의 대표적인 주
제라 할 수 있는 정서가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 속에 배치된 사내의 서사는 풍경 속에 접목되어 수려한 입체성
을 보여준다.
‘아홉 번 덖은 풀잎 차로 사내의 더운 눈과 간을 식히면 눈과 귀와 콧구멍이 뚫려 강물 안쪽이 푸르다’ 한 폭의 아름다운 절
경을 그려내기 위해 외로움을 찬밥처럼 삼키는 사내의 절절한 울음이 거기 어디쯤 기러기 울음으로 내려앉아 있을 것 같다.
‘고요의 속살’을 더듬는 손끝에서 시인의 울음을 듣는다. 그 울음 속에 봄기운에 싸인 산촌 풍경, 해질녘 산사에 울려 퍼지
는 종소리, 어촌에 깃드는 석양, 먼 포구로 돌아오는 배,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 달, 모래톱에 내려앉
은 기러기, 해질녘 산야에 내리는 눈, 여덟 폭 화폭에 그려진 고즈넉한 획이 죽음이라도 낚아 올릴 듯 파닥인다.
-강영은(시인)
【박경리 문학관에 실린 시】
원장현은 전남 담양 월산면 태생으로 30대 후반에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발표한다. 일찍 기량이 만개해서라기 보다는 달리 이름 붙일 유파의 스승이 모호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승은 어둠을 밝혀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넘어 서기에는 벅찬 태산이기도 하다. 이렇다 할 스승이 없는 것이 그의 대금인생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연주하고 있는 곡(고향가는 길, 날개, 소쇄원)은 그의 창작곡이다. ▲ 담양 소쇄원(瀟灑園) (사적 제304호) 중종代의 처사 양산보(1503~57)라는 사람이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낙향하여 은거지로 꾸민 정원이라고 한다. 소쇄원의 ‘소쇄’는 중국 송나라 사람 공치규가 쓴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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