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이 만든 명승지-청송 신성계곡 ‘백석탄(白石灘)’
청송은 산이 높고 골이 길어 깨끗한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청송'하면 제일 먼저 주왕산을 떠올리고 다음으로 '주산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청송의 8경으로 제일 먼저 꼽는 1경은 바로 백석탄(白石灘)과 방호정이 있는 신성계곡이다.
방호정에서 부터 시작되어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신성계곡은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명승지로 그동안 도로 사정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곳이다.
신성계곡과 나란히 도로가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으며 틈틈이 계곡으로 내려가 자연과 함께 즐기기도 좋다. 선 굵은 암벽 앞으로 그리 깊지 않은 계곡수가 흘러 가고, 차고 맑은 물 속엔 꺽지와 다슬기 등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성계곡을 찾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약 4km의 빼어난 절경과 맑은 물, 그리고 빽빽한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신성계곡은 하절기 가족단위의 피서지로서, 직장인들의 단체 회합장소로서 더없이 좋은 곳이다.
신성계곡의 절정은 백석탄이다. 말 그대로 '하얀 돌이 반짝거리는 내'다. 냇가엔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깎고 다듬은 흰 바위들이 널려 있는 독특한 형태의 계곡으로 희다 못해 푸른 빛이 감도는 돌들이 즐비하다.
멀리서 보면 계곡에 흰 눈이 덮힌 것처럼 하얗게 보이고 가까이 가보면 잔잔한 물줄기가 그 거친 바위를 보드랍게 다듬어놓은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롭기만 하다.
이 곳은 약 7000만년 전에 이뤄진 화산활동의 결과물로, 용암이 빠르게 흐르다 이처럼 이채로운 모양새로 굳었다고 한다. 백석탄은 지질학적으로 보면 '포트홀'(pot hole)이다. 우리 말로는 돌개구멍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로 인해 바위가 침식되어 하천 암반에 생긴 깊은 원형 혹은 타원형의 구멍을 일컫는 용어다.
7천만 년 전부터 오늘까지, 긴 시간동안 이 바위를 휩쓸고 지나간 물줄기가 바위에 상처를 냈고 상처의 벌어진 틈으로 들어간 모래와 자갈들이 물살에 의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면서 만들어낸 포트 홀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오랜 세월의 풍파가 거친 바위를 보드랍게 다듬어놓은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롭기만 하다
부백(府伯) 윤형지(尹顯지)가 고종 8년에 각자한 세심대(洗心臺)라는 글씨
백석정(白石停)과 백석탄 입구
정자와 편액
백석탄을 보려면 도로가에 차를 세워 놓고 백석탄 이정표와 정자가 있는 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 길은 김태중씨의 사유지이지만 기꺼이 길을 내주어 백탄석까지 갈 수 있다. 옆에 있는 정자도 개인소유이므로 정자 위에서 취사나 소란행위를 하지 않는 등의 예의는 지키는 것이 좋다.
이 백석탄 주면은 옛부터 명소로 이름이 알려진 계곡이어서 곳곳에 별칭이 붙은 곳들이 많다.
장군대, 약어대, 가사대 등이 있는데, 장군대는 입향조(入鄕祖)인 김한룡(金漢龍)이 조선 인조때 이곳에 우거할 때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그의 부친인 대양 김몽화(金夢化) 장수의 갑옷과 투구를 이 곳에 묻었으므로 후인들이 그 곳을 장군대로 부른다고 하며, 약어대는 옛날부터 낚시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약어대 밑의 가사연은 이곳에 있으면 절로 시심이 일어난다는 곳이다.
장군대라고 불려지는 암벽
백석탄이 있는고와리(高臥里)라는 지명은 이곳 풍경을 두고 '와 이리 고운가.'라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경주 사람 송탄 김한룡(松灘 金漢龍)이 조선 인조때 고와마을을 개척하여 시냇물이 맑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고계(高溪)라 칭한 바 있고, 선조 26년(1593)에는 고두곡(高斗谷)이란 장수가 왜군(倭軍)에게 부하를 잃고 백석탄을 지나다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동안 이 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달랜 후로 고와동이라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도 한다.
조어대(釣魚臺) 밑으로는 가사연(歌詞淵)이 있어 옛 시인들이 이 곳에서 고기를 낚으면서 산자수명함을 노래했다고 하며 백석탄을 팔경(八景)으로 낮추어 영탄한 한시(漢詩)는 지금도 애송되고 있는 바,
금강비폭(金剛飛瀑) - 가히 금강의 폭포요
부석징담(浮石燈漂) - 부석의 연못이로다
청탄세이(淸灘洗耳) - 맑은 여울에 귀를 씻고
필봉구숙(筆蜂鳴宿) - 붓같은 필봉 위에는 물새들이 잠을 자네
자하동천(彩畵倒扇) - 가히 자하동 바위골짝 하늘이요(-자화동 : 신선이 살았다고 하는 중국의 골짜기)
금화석실(白石枕臺) - 금화산 석실이로다.
(하얀 돌을 향해 양아 일어나라 라고 외치니돌이 양으로 변했다는 황초평의 설화)
장군석단(將軍石壇) - 장군은 석단에 잠들고
화전접무(花田葉無) - 꽃밭에선 나비들이 춤을 추네
백탄석 바위틈에 핀 붓꽃
이곳에서 방호정 쪽으로 약 500m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 백석탄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또다른 흰바위군상들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곳의 백석탄
붉은 덤
바위가 붉어 '적벽(적벽)', 또는 '붉은 덤'이라고 부르는 바위
(아랫 왼쪽 건물은 다슬기를 인공배양하여 계곡에 방사하는 곳이다)
청송의 제1경인 신성계곡은 신성천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안동 길안천으로 합해지는 낙동강의 상류다.
굽이굽이 비경으로 가득한 계곡으로 특히 방호정과 백안천의 중간쯤에서 만나는 거대한 절벽은 압도적인 또 하나의 경치다. 이 이름 없는 절벽을 사람들은 ‘적벽(赤璧)’ ‘붉은 병풍바위’ ‘붉은 덤’ 등으로 애칭 한다.
백석탄과 방호정 사이에 있으며 길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절벽의 꼭대기에 앉은 방호정
안덕면 신성리, 진골의 뒷산에서 뻗어 내린 바위 줄기가 길안천으로 뛰어든다. 뱀처럼 굽어져 돌아가는 물줄기 속으로 주저 없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절벽위에 큰 바위가 있다. 예전부터 방대(方臺)라고 불리던 곳으로 지형이 방자(方字)형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방호정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풍광이 아름다워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바위 위에 정자하나 앉아 있으니 바로 방호정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방호 조준도(趙遵道)가 조선 광해군 때 지은 정자로서 생모를 생각하여 마주 보이는 앞산 멀리에 어머니의 묘를 모시고 그곳을 바라보기 좋은 이곳 바위머리를 터로 삼고 정자를 지었다. 그래서 처음엔 사친당이라 했으나 나중에 자신의 호를 따서 방호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강을 건너서 가야했지만 지금은 철제 아치형의 다리가 놓여져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조순의 비석이 있는 곳과 방호정으로 갈 수 있다
방대강당
방호정을 암에서 본 모습
방호정
정문을 들어서면 방대강당(方臺講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있고 왼편에 방호정(方壺停)이라는 정자가 있다
정자 정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자 우측으로 담장을 따라 좁은 길이 있어 이 길을 따라 우측면을 따라 돌아가면 정자 정면 벼랑 끝으로 나가게 된다. 정자 앞은 공간이 매우 좁으며, 철제 난간으로 둘러처져 있다.
현판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방호정이라고만 판각이 되어 있다.
방호정은 정면 3칸 건물로 맨 우측의 1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좌측의 두칸은 모두 마루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각 칸의 4짝의 문은 겹문으로 모두 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름철 전면의 8짝의 문과 뒷면 마당 쪽의 8짝 문, 그리고 담장 쪽의 문을 모두 열면 삼면이 기둥만을 남기고 모두 개방되니 담장쪽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전면의 강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모두 맞을 수 있으니 시원하기는 말할 것도 없을 듯 하다.
산쪽으로는 방이 있으며, 마루와 방 사이의 문짝은 열기와 들기가 모두 가능한 형태이다.
마루의 삼면의 문을 모두 열고 방과 마루 사이의 문을 모두 들어올리면 방과 마루가 모두 개방되는 형태이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성현들의 제영현판이 걸려있다
이곳에서는 창석 이준, 동계 조형도, 풍애 권익, 방호 조준도, 하음 신즙 선생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겼다고 한다.
일찍이 이곳에 들렀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산골짝은 첩첩이 겹쳤는데 시냇물은 몇 굽이를 흐르느냐
외딴 마을은 골짝 어귀에 있고 높은 정자는 바위머리에 솟았다’고 노래했고 풍수당의 편액에 남아있다.
그러나 사실 학봉의 시는 안덕면 당저의 외가를 왕래하면서 방대에서 지은 것으로 방호정에 판각이 되어 걸려 있는 연유로 방호정을 읇은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강변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주민들
▶찾아가는 길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북영천 IC에서 내려 청송방향 35번 국도로 올라간다.
현서면에서 안동방향 68번 지방도로 가다가 신성, 방호정 이정표에서 좌회전한다. 1㎞ 정도 가면 오른쪽에 방호정이 있다. 방호정에서 2㎞ 정도 계속 상행하면 만안삼거리, 오른쪽 다리위에서 붉은 병풍바위가 잘 보인다. 삼거리에서 안동방향 930번 도로로 가면 고와리 버스정류장 가기 전 왼쪽에 안내판이 있는 백석탄 입구가 있다.
경주에서는 영천으로 가서 천지갑산쪽으로 들어가서 백석탄-적벽-방호정-주산지 또는 주왕산쪽으로 코스를 정하면 좋다.
가는 길에 뚜렷한 이정표가 없고 백석탄 입구에도 그럴듯한 표식판이 없어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송탄경주김공조기백석탄 입구'란 긴 팻말이 서있는 곳이 백석탄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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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영월 요선암 돌개구멍
영월 요선암 동개구명
요선암 돌개구멍(Pot Hole)은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에 있는 주천강(酒泉江) 하상(河床) 약 200m 구간에 침식(浸蝕)작용으로 생겨난 다양한 형태와 규모(지름 : 수십cm~1m, 깊이 : 수십cm~2m)의 구멍들로 화강암반(花崗巖盤) 위에 폭넓게 발달해 있다.
이러한 돌개구멍은 하천에 의한 침식과정과 이에 의한 지형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학술 가치가 크며, 여러 개의 돌개구멍이 복합적으로 발달한 지형 자체가 가지는 경관 가치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돌개구멍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의미로,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하천 바닥의 기반암에 들어가 유수의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 기반암을 마모시켜 발달하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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