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예찬(禮讚)
다
내려놀 수 있어서
좋다.
하고 싶었던 일
남 부러웠던 일들
그리도 많았던 젊은 시절에는
할 수 없어서
이룰 수 없어서
마음 아프고 초조했었으나
이젠 그런 마음
다 비워버릴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호화찬란한 대저택은 아니라도
비바람 피할 수 있는 내 오두막 있고
진수성찬은 아니라도
배 고프면 아무 때나
차려 먹을 수 있는 내 한끼 밥 있고
자나깨나 근심 걱정으로 키우며
잘 되기만을 바래 온 자식
이제 장성하여 자기 스스로의 삶을
살기 시작했으니,
잘 살아주기만을 바라면 되니
그래서 좋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몸을
느낌으로 알 수 있으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일.
삶의 끝자락이
어느 때일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아내 그리고 나 크게 아프지 않고
지금 내 살고 있는 오두막을
날려버릴 정도의
나도 어쩔 수 없는
바깥 세상으로부터의
커다란 거센 바람만 없다면,
머리 아픈 세상 일에 휘말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나 하고 싶은 일 하며 지낼 수 있는
지금의 늙음이
늙어가고 있음이 너무 좋다.
길을 가다가
아리따운 젊은 아가씨를 봐도
'저 아가씨 참 아름답게 생겼네' 하며
그냥 무덤덤하게 쳐다만 봐도 되는
그런 나이가, 몸이 되어 있음이 좋고
높은 학력,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으나
마음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쩔매고
어쩔 수 없이 눈높이보다 낮은 일을 해야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니,
젊은 시절 참 힘겹게 살았었지만
나라가 가난해 많은 이들 그리 살았고
나 또한 그리 살았었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었던
일자리가 넉넉하던 행운의 시대를 만나
젊은 시절을 보낸 것도
고마운 일이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커다란 회오리 바람과도 같은 것이니
그 바람을 헤쳐 나오려면
온갖 힘을 다 기울여야만 되는 것이니
그 회오리바람이
그리 크지 않았던 시대를
젊은 시절 지나 온 것이
돌아보니 참 고마운 일이다.
비록
나 하고 싶었던 일
젊은 시절부터 못하고 산
아쉬움은 있지만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태생적 행운이 뒷받침됐을 때나
가능한 것이니
젊은 시절부터 그리 살 수 있는 행운을
만나는 사람보다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법이니
이런 아쉬움은 아예 생각않는게
살아가는데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법.
그래서 젊어서부터 하고 싶던 일
어쩔 수 없이 늦게 시작했고
시행착오도 있긴 했지만
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지낼 수 있는
지금의 이 늙음,
번다한 세상살이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쓰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하루하루가 편안한 나날인
이 늙음,
젊은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몸과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금의 이 늙음이 좋다.
살아오면서
이러저러한 여러 시련이 있었으나
그 시련들이
지금의 이 삶을 위한
담금질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니
한때 힘들었던 시간
그것도 이제는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
아른아른 언제였던가 싶어져 있는
지금의 이 늙음이 너무 좋다.
때론,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
내가 갖고 싶었던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들,
부러운 적도 있긴 했으나
그들의 삶이
내가 원했던 그런 삶의 모습은 아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부와 명예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들만의 것이고
나는 나대로
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어서
굳이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그들은 그들대로 그리 살고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니
굳이 부러울 일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며 지낼 수 있는
지금의 이 늙음이 좋다.
설사 ,
내가 이것들을 갖고 있더라도
지금처럼 이리 자족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그 부와 명예에 얽힌
어쩔 수 없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것은 내가 꿈꾼
그런 삶의 모습은 아닐테니
그것을 굳이 부러워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내 삶의 모습은 ,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모습은 ,
만약 운명의 신이 있어서
사람들 저마다의 삶을
각자 주어진 몫대로 살도록
예비해 놓은 그런 모습인 것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은 많은 힘들었던
크고 작은 피할 수 없었던 일들 .
그 일들 가운데서
언제나 벗어 날 수 있게 해준 그것도
운명의 신이 예비해 놓은 것이 맞다는
내 믿음이 틀림없는 것이라면
나의 지금 이 삶은
운명의 신이 정해준
그런 삶인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
돌아보니
그리 쉽지는 않은 날들도 많았었으나
짧지 않은 지난 시간들
그래도 큰 탈 없이
행운의 삶을 살아온 셈이라고 봐도 되니
남들이 보면
별 것 아닌 삶을 산 것일지도,
혹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나대로의
내 열심히 살아 온 삶에 대한
긍지를 갖고 지내왔고
지금도 그러면서
지내고 있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이 일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책 읽는 일
남들이 보면 별 것이 아닐수도 있겠으나
나에겐 평생 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이 일
그러기에 내게는 결코 별 것이 아닌 일
이 일을 하고 지낼 수 있는 ,
세상의 혼탁함에 섞여지 않고 지내도 되는 ,
지금의 늙음
이 늙음이 너무 좋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게 있다면'
몸이 늙어지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턱
이 문턱만 좀 더 천천히 넘게 되기를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 일들
원없이 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넘을 수 있게 되기를
그리만 된다면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은
세상 그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마음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지금의 이 늙음,
늙어가고 있음이
너무 좋다.
노년 만세!
2015. 1.18 아침
Johan Peter Emilius Hartmann 의 교향곡을 들으며 쓰기 시작해서
1.24. 아침,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들으며 마무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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