靜夜思(정야사)
李白(이백)
牀前明月光 (상전명월광)
침상 앞 스며드는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땅에 내린 서리인가 했네
擧頭望明月 (거두망명월)
고개 드니 달은 산에 걸리고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눈에 삼삼이는 고향 그만 머리 숙이네
(번역 한상철)
중국인'들이 고향'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중국 당'나라 李白詩'라고 한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외우고 있는 詩'이기도 하단다.
독음(讀音 : 글' 읽는 소리)'과 뜻'이 모두 명려(明艳 : 선명하고 아름답다)'하고,
물' 흐르듯 아름다운 詩'이다.
人間'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普遍的)'인
향수(鄕愁)'의 感情'을 表現'하였다.
이 때문에 千年이 넘도록,
中國人'들에게 가장 익숙한 詩'로 자리잡은 作品'이다.
복잡(複雜)'한 사상'이나,
화려한 수식'대신 가장 담담'하고 소박한 필체'로
풍부'하면서도 셈세'한 감정을 묘사한 詩'이다.
遊子吟(유자음 : 여행 중'에 있는 자식'의 노래) - 맹교(孟郊 : 751-814)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인자하신 어머니의 손 안의 실이
遊子身上衣(유자신상의)
길 떠나는 아들의 포근한 옷이 되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떠나기 전에 촘촘하게 깁고 또 깁는 뜻은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돌아올 날 늦어질까 걱정하는 것이라네.
誰言寸草心(수언촌초심)
그 누가 말했던가 한 치 짜리 짧은 풀이
報得三春暉(보득삼춘휘)
석 달 간의 봄빛에 보답할 수 있다고?
母情'을 읊은 宋歌.
世上'에서 가장 위대한 정인, - 어머니'의 사랑을 길이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봄볕에 비유'한 마지막 두 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비유.
화려한 시어'도 없지만,
담백'하고 소탈'한 어투'속에 배여나오는
아름다움'은 진'하다.
만당(晩唐) 시인 맹교(孟郊, 751-814)는 평생 곤궁하게 살다가 마흔여섯 살에 비로소 과거에 급제하여 쉰 살에 처음으로 율양현(碌陽縣, 지금의 강소성 율양시)의 현위(縣尉)라는 말단 관직에 부임했다. 이 詩'는 맹교가 율양현위가 된 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자신의 근무지인 율양으로 모셔온 일을 계기로 옛날에 자신이 몇 차례나 어머니와 작별하던 일을 회상하여 지은 것이라 한다. 풀은 자기 힘으로 자랐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실 그 풀은 맹춘·중춘·계춘의 석 달 동안 따스하게 내리쬐어준 봄볕 때문에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봄볕은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한 치밖에 안 되는 짧디 짧은 풀의 마음이 어찌 깊디 깊은 봄볕의 거룩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부득고원초송별(賦得高原草送別) - 백거이(白居易:772-846)
離離原上草(이리원상초)
우거진 언덕 위의 풀'은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해마다 시들었다 다시 돋누나 ..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나니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돋누나.
遠芳侵古道(원방침고도)
아득한 향기 옛길에 일렁이고,
晴翠接荒城(청취접황성)
옛 성터에는 푸른빛 감도는데,
又送王孫去(우송왕손거)
그대'를 다시 또 보내고 나면
萋萋滿別情(처처만별정)
이별의 정'만 풀처럼 무성하리라.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열여섯 살 때 지은 시다. 그는 당시의 서울인 장안으로 올라가 유명한 시인 고황(顧況, 약 725-약 781)에게 이 詩'를 보여주었다.
농담을 좋아하는 고황은 백거이의 이름을 듣더니 대뜸 “장안은 물가가 비싸서 살기가 쉽지 않을 걸세”라고 했다. ‘거이(居易)’라는 그의 이름을 굳이 풀이하자면 ‘살기 쉽다’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이런 농담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거이가 내민 이 詩'를 읽고 난 뒤에 그는 혀를 내두르면서 “이런 詩'를 지을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디에 가서 살아도 어려움이 없겠네”라고 했다. 고황은 특히 세 번째 구절과 네 번째 구절의 “불을 놓아 태워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봄바람이 살랑 부니 다시금 돋아나네”를 보고 탄복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한 구절, 한 구절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칠보시(七步詩) - 조식(曺植:192년 ~ 232년)
중국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 420 - 589)'의 송(宋, 960년~1279년)'나라 출신이며, 육조 송 무제(宋武帝)의 조카로서 임천왕(臨川王)에 책봉되어진 유의경(劉義慶, 403년 ~ 444년)'이 당시 지식인 사이에 유행되고 있던 인물 비평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여 중국 후한(後漢, 23년 - 220년) 末'부터 동진(東晉, 317년 ~ 420년)까지의 지식인들의 일화를 모아서 이 세설신어(世說新語)'책을 저술하였으며, 이 책의 특징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서 덕행, 언어, 문학, 방정(方正), 호상(豪爽), 임탄(任誕), 검색(儉嗇) 등의 이름을 붙여 36편으로 분류되어 있다. 양나라() 유효표(劉孝標)가 註'를 달아서, 《세화(世話)》, 《세설신서》의 이름으로 읽히나 송나라' 以後'의 재편에서는 현재의 명칭을 쓰고 있다. 같은 종류의 다른 책과 비교해서 간결한 표현으로, 인물이나 사건을 선명하게 전하는 이 책은, 문학작품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청담유행(淸談流行)의 실태 등 동란기(動亂期)에 사는 지식인의 모습을 아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이며 칠보시(七步詩)'가 이 안에 포함되여 있다.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 콩'을 삶아 국'을 끓이고 漉豉以為汁 [록시이위즙] 된장을 걸러 국물을 낸다. 萁在釜下燃 [기재부하연] 콩대는 솥아래서 타고 있고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네 本自同根生 [본자동근생] 원래 한뿌리에서 태어 났는데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 대는가?
위나라 문제는 조조의 맏아들 조비이고, 동아왕'은 조조의 셋째아들 조식이다. 조조가 죽은 뒤 조비는 위왕을 세습하고,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문제라 일컬었다.
어느날 문제는 조비가 동아왕으로 책봉된 동생 조식에게,
자기가 일곱걸음을 걷는 동안에 詩를 짓되 형(兄)과 제(第) 이 두 글자를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 동안에 詩'를 짓지 못하면 칙명을 어긴 이유로 중벌에 처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詩가 바로 七步詩[칠보시]입니다.
조식이 일곱걸음 內'로 위의 詩'를 보란 듯이 읊었습니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 살려줘야지 어쩝니까?
자는 자건(子建)이다. 최종 봉국은 진(陳)나라며 시호는 사(思)로 진사왕(陳思王). 아버지 조조, 형 조비와 함께 시작에 능통하여 삼조'라 일컬어졌다.
일찍부터 문재(文才)가 있어 업도의 동작대(銅雀臺)를 노래한 부(賦)는 형들을 능가하여 부친의 총애를 받았다.
우수(憂愁), 감시와 속박에 대한 반항이 강했고, 또한 마음속에 침잠(沈潛)시켜서 5언의 詩'로 결정시켜, 5언시의 기초를 굳혔다. 악부에도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천부의 재능은 증답시(贈答詩)에서의 테마의 확대, 고도의 서정성의 발휘, 화려한 수사 등 다방면에 걸쳤고, 강개의 기가 넘치는 건안의 풍골은 그로써 대표된다
" 煮豆(자두) : 콩을 삶다"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 콩을 삶아 국을 끓이고 漉豉以為汁 [록시이위즙] 된장을 걸러 국물을 낸다. 萁在釜下燃 [기재부하연]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있고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네. 本自同根生 [본자동근생] 원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 대는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칠보시는 위의 詩'에서 1구와 2구를 빼버리고 대중들이 알기 쉽게 오언 절구시로 개작한 것으로 보면 되겠는데
煮豆燃豆箕 [자두연두기]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이 솥 안에서 울고 있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 대는가?
형을 콩대에, 자신을 콩에 비유하여 육친의 불화를 상징적으로 읊은 詩.
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렇게 자기를 들복는 것이냐는 뜻.
문제는 ... 이 詩'를 듣자 민망하여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 하고 동생을 살려줬다고 한다.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 : 고향의 형제'를 그리며) - 왕유(王維 : 699年 - 759年)-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이위객)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명절 때마다 어버이 생각 더욱 간절하다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멀리 고향의 형제들 지금쯤 높은 곳에 올라 遍插茱萸少壹人(편삽수유소일인) 모두 수유'를 꽂고서야 한 사람이 적음을 알 것이다.
9월 9일 = 중양절(重陽節) 이객(異客) : 타양살이'를 하는 사람. 가절(佳節) ; 아름다운 절기, 즉, "좋은 명절"
이 詩'는 왕유'가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 홀로 장안'에 와 있을때에 지은 것으로 이 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명절(중앙절)'을 맞아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면서 지어진 詩'이다. 왕유'의 고향은 포주(지금의 '산서성 -"영제 : 永濟)'인데, 화산(華山)'의 동쪽'에 위치'하여 산동(山東)'이라 하였고, "억산동형제(憶山東兄弟)'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詩' 첫머리를 "홀로 독(獨)" - 으로 시작하여 타향의 낯설고, 물'섧다'는 의미로 "다를- 이(異)"를 2회'나 반복한 것(異鄕 & 異客)'은 부모형제'를 떠나 타양'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절(佳節)'은 명절'을 말하는 것인데, 主'로 - 설(舊正), 추석(秋夕), 원소절(元宵節 : 정월 보름), 중양절(重陽節 : 9月 9日),단오(端午)'등을 가리키며 한집안 식구나 친한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한자리'에 모여 앉는(團聚 : 단취)'날'이다. 객지'에서 홀로 명절'을 맞으니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하였던 고향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가는데 어찌 고향과 동기(同氣) 생각'이 더욱 간절하지 않겠는가? - 하여 명절'이 돌아오니 어버이'생각'이 더욱 간절'하다(每逢佳節倍思親)'라고 하였다.
세번째 행(轉句:전구)'에서 내 몸'이 객지'에 있으니 고향에서 명절날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할 수 밖에 없어 "머리서 ... 알겠다" (遙知:요지) '라면서 계속 전개해 나간다.
9月 9日'은 중양절(重陽節)'인데 九'는 양수(陽數)'의 최대수'로 달'과 날짜'가 이중으로 되었으므로 重陽節'이라고 부른다. 이 날' 높은 곳'에 올라가 수유가지'를 머리에 꼽고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이 수유나무'의 붉은 열매'는 요귀(妖鬼)'를 쫓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명절에 높은 곳'에 오른 형제들이 수유가지'를 머리에 다 꼽고 나니 수유가지 하나가 남았다.
형제 숫자'대로 수유가지'를 만들었는데 가지 하나'가 남았으니 그 때에서야 형제 中 내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지 않겠는가! - 하면서 형제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우애'등을 잘 나타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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うれしいひなまつり
作詞
作曲 サトウハチロー 河村 光陽
1
あかりをつけましょ ぼんぼりに
お花をあげましょ 桃の花
■五人ばやしの 笛太鼓
■今日はたのしい ひな祭り
2 お内裏様(だいりさま)と おひな様
二人ならんで すまし顔
■お嫁にいらした姉(ねえ)様に
■よく似た官女の白い顔
3 金のびょうぶに うつる灯(ひ)を
かすかにゆする 春の風
■すこし白酒(しろざけ)めされたか
■あかいお顔の右大臣
4 着物をきかえて 帯しめて
今日はわたしも はれ姿
■春のやよいのこのよき日
■なによりうれしいひな祭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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