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 문학

[스크랩] 중국 호남성 악양루(岳陽樓) 풍경

餘香堂 2015. 4. 5. 02:40

중국 호남성 악양루(岳陽樓)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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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님들의 여행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악양루(岳陽樓)

(中國 湖南省 岳陽市) 

 

악양루(岳陽樓)는 중국 호남성 악양의 고적 웨양고성 서문의 윗쪽에 있다.

아래 쪽으로는 동정가 보이며, 앞으로는 군산을 북쪽으로는 장강에 접한다.

악양루는 강남사대명루의 하나로 손꼽힌다.

 

악양루의 전신은 삼국시대 동오의 명장 노숙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누각이다.

당시 오나라촉나라유비형주를 다투고 있었는데,

 215년 노숙동정호파구(巴丘)에 주둔하며 수군을 훈련시키고,

파구성을 세우면서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였다.

 이것이 동정호의 시초이다.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쳐짓고 그때부터 문인재사들의 시를 읊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1044년 송나라등자경(藤子京)이 이곳 태수로 좌천되면서

퇴락해진 누각을 증수하게 되는데 그때 범중엄을 초청하여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짓게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미터에 삼층 목조 건물로 되어 있다.

 

악양루와 등정호를 찬양한 대표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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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기〉(岳陽樓記) 범중엄

 

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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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악양루〉(登岳陽樓) 두보

 

昔聞洞庭水 오랜 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今上岳陽樓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吳楚東南瞬 오와 초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
乾伸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지 한 장 없고
老去有孤舟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
戎馬關山北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憑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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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악양루〉(登岳陽樓) 이태백

與夏十二登岳陽樓 악양루에 올라

 

樓觀岳陽盡 악양루에서 악양이 다보이네.
川逈洞庭開 시내는 멀고 동정호가 펼쳐지네
雁引愁心去 기러기는 시름을 가져가 날아가고
山銜好月來 산들도 좋고 달도 떠오르네
雲間連下榻 구름 사이에 숙소 정해 머물고
天上接行杯 하늘 위에서 술잔 돌려 마시네
醉後凉風起 취하니 서늘한 바람 불어
吹人舞袖回 휘돌아 춤추는 사람 소매깃을 휘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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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가기 전 악양시내 조형물

공자님 입상

 

악양동역 앞 광장의 조형물.

 

등정호가에 새워진 조형물

 

 

악양루에서

호수곁으로 잘 조성된 공원

 

선착장도 보인다

 

성벽 안쪽에서 본 풍경

 

 

저 멀리 노란 모자 같은 지붕의 악양루가 보인다

 

좀 더 가깝게 닥아 온다

 

 

 

릉승장.

파릉의 명승지.

여기에서 악양루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판다.

지금까지는 무료. 지금부터는 80원의 입장료가 필요한 지역이다.

악양루

 

다시 악양루 매표소 입구.

앞에 보이는 누각은 악양루의 고대 조대별 모형이다

 

 

 

 

 

 

잔득 흐리던 날씨가 드디어 비가 많이 온다

 

 

 

단지 주루인 악양루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뿐이라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이렇게 주변에 볼거리를 많이 배치해 놓았다.

이곳은 쌍공사라는 곳.

 

<악양루기>란 명문장을 남긴 북송의 범중엄과 그와 동시대 이곳 수령으로 있으면서

악양루를 중수했던 정치가 등자경 두 사람을 함께 기리는 사당이다.

사당 안에는 두 사람에 관한 사적, 유물, 사진 자료,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시 동정호.

이번에 악양루에 올라서 바라본 모습.

 

 

 

쌍공사 내의 두 주인공인 범중엄과 등자경.

 

 

 사진속의 악양루모습

 

사진속의 악양루를 사진에 담았다

 

 

 

성당시기 왕유와 함께 왕맹으로 별칭되던 대표적 자연시인인 맹호연.

평생을 전업작가로서 이백의 존경을 받은 인물.

그가 동정호에 왔다가 낚시꾼들을 보고 떠오른 느낌을 시로 써서

당시에 재상으로 있던 지인 장구령에 주었다는데...

 

팔월이라 호수물이 가득 넘실거리고,

호수는 허공을 품어 하늘과 구분이 안간다네.

안개가 운몽택에서 김처럼 피어오르고,

물결은 물에 비친 악양성을 뒤흔든다네.

호수를 건너가고 싶건만 배도 없고 노도 없고,

일없이 한가로이 지내자니 밝으신 임금님에게 부끄럽네.

앉아서 낚시꾼들을 구경하노라니,

부질없이 낚인 물고기가 부러워진다네.

 

낚인 물고기처럼,

자기도 승상에게 낚여서 등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나, 낚인 물고기는 곧 죽음이란 사실은 왜 무시했을까?

그 정도로 취직이 절박했었는지.

그래서 그런지 맹호연의 자연시에는 도처에 사람의 한숨과 걱정이 배어 있다.

그에 반해 평생을 무사하게 높은 벼슬에 있던

왕유의 자연시는 그야말로 인간을 배제한 자연이었다.

그래서 맹호연이 훨씬 연장자이었지만

후인들이 그를 앞세워 "왕맹","왕맹체"로 불러주었던 것일까.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역대 악양루, 동정호 관련 명편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전시해 두기도 했다

 

악양루 관련 시로는 최고의 명편으로 꼽는 두보의 <등악양루>

이백보다 열한 살 후배였지만 서로 의기투합하였고,

이백이 시에 있어서만은 그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낭만파, 시선이었다면,

그는 철저히 현실에 바탕하여, 조국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시로 나타내었었다.

그래서 그는 시에 있어서만큼은 공자에 버금가는 시성이라 불리었고,

그의 현실주의 시를 시로 쓴 역사란 뜻의 "시사"라고 불리었던 것이다.

 

예전에 동정호에 대해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사 악양루에 오른다네.

오나라 초나라가 호수 중심으로 동남쪽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이 주야로 호수 위에 떠 있네.

친척과 벗들에겐 한 자의 소식도 없고,

늙고 병든 몸은 겨우 외로운 나룻배 한 척뿐.

북쪽 변방에는 아직도 전쟁 그치지 않았으니,

난간에 기대어 눈물콧물 흘린다네.

 

두보가 이 시를 쓴 곳이 바로 악양루이다.

천하를 떠돌던 회재불우의 천재 두보가 말년에 그렇게 소문으로 만 듣고 있었던

동정호 가의 악양루에 올라 멀리 북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전쟁이 그치지 않는 조국을 생각하고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면서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흘린다.

 

맹호연, 이백, 두보에 이어 중당시기 사회시인으로 유명한 락천 백거이도 한 자리 거들었다.

 

안록산, 사사명의 난으로 기울기 시작한 당나라 국운은 끝내 회복 불능으로 빠지고

다시 중국은 분열기로 접어든다.

이 시기 만당 시기 대표적 시인 이상은도 여기를 찾아, 기우는 국운의 슬픔을 달랬다.


 

출처 : 두레박
글쓴이 : 자유인(김인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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