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 문학

[스크랩] 청송 방호정(方壺亭)

餘香堂 2015. 5. 14. 09:42

 

 

방호정(경상북도민속자료 제51호)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181

 

 

현등면 인지리 추모정에서 물길따라 가다보면 방호정유원지가 나온다.

방호정은 스스로 산림처사로 은거하면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다 여생을 보낸

조준도가 건립한 정자로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한 사내의 모정이 만들어낸

산물로, 생모 안동 권씨의 묘소 밑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곳의 지형이 방자(方字)형이므로 스스로 호를 방호(方壺)라 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으로 사친당(思親堂)이라 하였다.

 

 

입구에 세워진 조학래 표성비

방호  조준도 선생의 후손인 조학래가 다리를 완공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방호정을 가기 위해 방호정교를 건너가 보기로 하였다.

 

 

방호정교 우측으로 조학래 헌성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경관이 좋은  길안천변에 아스라히 지어진 방호정의 모습이 보인다.

방호정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은 듯 멋진 곳에 세워져 있다.

 

 

계곡을 내려다 보니  낚시에 열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물이 맑아서 다슬기를 잡는 모습도 포착되는데

 

 

무더위에 지쳐서 시원한 계곡에 풍덩 빠져버리고 싶었다.

 

  

다리 중간에 서니 멀리 방호정이라 쓴 현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방호정 앞 절벽 위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다.

 

 

방호정 송하문(松霞門)

 

이 정자는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지어진 것으로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즙(申楫)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기던 곳으로  광해군 11년(1609)

 방호 조준도 선생이 생모 권씨의 묘가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불리기도 했다.

 

 

담밖에서 올려다 보이는 방호정

송하문을 들어서면 방대강당이 들여다 보인다.

 

 

방대강당(方臺講堂)

순조 27년(1827)에 방대강당(方臺講堂) 4칸을 새로 늘려 지었다.

 

 

현재 건물은 정자 1동, 강당 1동, 관리사 1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대강당에서 우측으로 돌계단을 올라가면 방호정이 자리하고

있는데  뒤쪽으로 돌아가면 방호정 현판이 걸려있다.

 

 

방호정 현판

 

 

방호정의 특징은 조선중기의 건축으로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는 섬세한

기교와 짜임새 있는 구조로 당시의 단아하면서도 엄숙했던

선조들의 생활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방호정 앞쪽으로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안전을 위하여 막아 놓았다.

 

 

방호정에서 바라보는 방호정교가 마치 선계를 이어주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었다.

 

 

 

 

 

 

방호정에서 나오면 비각이 세워져 있는데

비각안에는 유허비가 있다.

 

 

방호 조준도 선생 유허비

 

조준도(趙遵道,1576~1665)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생으로, 청송출신이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던 조지(趙址)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중형인 형도(亨道), 종형인

준남(俊男) 등은 의병으로 나갔으나 노친봉양 때문에 함께 나서지 못한 뜻을 시로 남겼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고을사람들과 함께 창의하고 사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으며,  1664년(현종 5)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받고 이어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저서로는 『방호집』 5권이 있다.

 

 

오선 동오선생 유적비

 

 

방호정 주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가족과 더불어 야영을 하기에 좋아 보였다.

 

 

숲속 안쪽으로는 화장실과 개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보현천과 길안천이 합류해 15km 구간을 흐르는 신성계곡은 청송 8경 중 1경으로

방호정에서부터 백석탄까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낙동강의 상류를 이룬다.

이곳은 물이 차고 깨끗하고 넓은 자갈밭과 울창한 소나무숲, 야영장 등이 있어서

가족 휴양지나 단체 모임  장소로도 손색이 없어 인기가 좋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지리서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은 신성계곡을

"임하천 상류는 청송이다. 큰 냇물 두 가닥이  읍 앞에서 합쳐지고 들판이

제법 틔어있다. 흰 모래와 푸른 물이 벼와 기장 심은 밭골 사이에 띠처럼 어울린다.

 사방 산에는 모두 잣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사시로 늘 푸르러서 시원스럽고

아늑한 것이 거의 속세의 풍경이 아닌 듯하다." 이렇게 묘사했다고 한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석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시름이 날아가 버릴  듯 풍광이 아름다웠다.

 

 

물이 깊지 않고 깨끗해서 물속의  조약돌이 드러나 보인다.

우리는 피서철이 아닌 때 가서 한가함을 즐길 수 있었지만

피서철에는 무척이나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일 듯....

 

 

 

 

 

 

방호정과 계곡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방호정교를 다시 건너갔다.

 

 

방호정교를 건너가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눈을 즐겁게 한다.

 

 

낙동강 상류 줄기를 따라 차를 달리면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담으면서 갔다.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와 고와리를 잇는  신성계곡에 우뚝 서 있는

붉은빛을 띠는 절벽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옛 청송사람들은 이곳을 자줏빛 바위라는 뜻의 '자암(紫巖)'이라

불렀으며  '적벽(赤壁)' 혹은 병풍바위로도 부른다.

 

 

적벽에는 한 남자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신선이 되려고 했던 노인이 그 뜻을 이루고자 적벽에서 뛰어내렸는데

그가 떨어진 자리의 바위들이 부서져 적벽이 되었다고 전한다.

 

 

 

 

한참을 달리니 물놀이 위험지역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백석내수면 관리사무소가 보인다.

 

 

아름다운 생태하천 50선에 포함된 길안천에는

 물이 맑아서 다슬기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신성계곡을 따라  백석탄까지 멋진 풍경들이 펼쳐지는데

 

 

백석탄을 찾아 달리고 또 달리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계곡에 있는 백석탄(白石灘)은  수천만년 동안

 회오리 계곡물에  침식된 새하얀  바위들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광채를 뿜어댄다고 하는데

조선 인조 때 김한룡이 고와마을을 개척하고 시냇물이 맑고 아름다워서 고계라고 칭하였다 하며,

백석탄의 아름다움에 대해 선조 26년(1593)  두곡이란 장수가 왜군에게 부하를 잃고 

이곳을 지나다가 경관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달랬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 A Bird Of Paradise
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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